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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正義(1)

상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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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正元日 于文祖하시다
정월正月 원일元日(초하루)에 임금이 문조文祖의 사당에 이르셨다.
[傳]月正 正月이요 元日 上日也
월정月正정월正月이고, 원일元日상일上日(초하루)이다.
舜服堯喪三年畢이라
임금의 에 삼년복 입기를 끝마치자 장차 즉위하시려 하였다.
復至文祖廟告하시니라
그러므로 다시 문조文祖의 사당에 이르러 고하셨다.
詢于四岳하사 闢四門하시며
사악四岳과 의논하여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傳]詢 謀也
은 모의하다라는 뜻이다.
謀政治於四岳하여 開闢四方之門未開者하여 廣致衆賢하시다
사악四岳의 관원에게 정치에 대한 것을 상의하시어 사방의 열리지 못한 문을 활짝 열어서 어진 사람들을 많이 오게 하셨다.
사방으로 눈이 잘 보이게 하시고, 사방으로 귀가 잘 들리게 하셨다.
[傳]廣視聽於四方하여 使天下無壅塞하시다
보고 듣는 범위를 사방에 넓혀서 천하에 소통되지 못한 곳이 없게 하셨다.
咨十有二牧曰 食哉惟時
12과 상의하기를 “식량이 중요하니, 〈농사철을 경건하게 알려주도록 하며,〉
[傳]咨 亦謀也
또한 모의하다라는 뜻이다.
所重在於民食이니 惟當敬授民時니라
중요한 것은 백성의 식량에 있으니, 마땅히 백성들에게 농사철을 경건하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柔遠能邇하고 하며
멀리 있는 사람을 회유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잘 안정시키며 을 두터이 행하여 이 길러지게 하며,
[傳]柔이요이요 厚也
는 안정하다라는 뜻이요, 는 가깝다라는 뜻이요, 은 두텁다라는 뜻이다.
善之長이니 言當安遠이라야 乃能安近하며 厚行德信하여 使足長善이니라
의 우두머리이니, 마땅히 멀리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여야 가까이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할 수 있으며, 을 두터이 행하여 을 풍족하게 기르도록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而難任人이면 蠻夷率服하리라
아첨한 사람을 거절하면 오랑캐도 서로 거느리고 와서 복종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傳]任이요 拒也
은 아첨하다라는 뜻이요, 은 거절하다라는 뜻이다.
佞人斥遠之 則忠信昭於四夷하여 皆相率而來服이리라
아첨하는 사람을 배척해 멀리하면 충신忠信이 사방의 오랑캐에게 밝게 알려져서 자연히 만이蠻夷가 모두 서로 거느리고 와서 복종할 것이다.
[疏]‘月正’至‘率服’
의 [月正]에서 [率服]까지
○正義曰:自此已下, 言舜眞爲天子, 命百官授職之事.
정의왈正義曰:여기서부터 이하는 임금이 진짜로 천자天子가 되어서, 백관百官을 임명하여 을 주는 일에 대해 말한 것이다.
舜旣除堯喪, 以明年之月正元日, 舜至於文祖之廟, 告己將卽正位爲天子也.
이 이미 임금의 을 마치고, 그 이듬해 정월正月 초하루에 문조文祖의 사당에 이르러서, 자기가 장차 정위正位에 나아가 천자天子가 될 것을 고하셨다.
告廟旣訖, 乃謀政治於四岳之官.
사당에 고하는 일을 이미 마치고 나서 이에 사악四岳의 관원들과 정치에 관한 것을 논의하셨다.
所謀, 開四方之門, 大爲仕路, 致衆賢也.
논의한 바는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크게 벼슬길을 만들어서 여러 현인들을 오게 하신 것이다.
明四方之目, 使爲己遠視四方也, 達四方之聰, 使爲己遠聽聞四方也.
사방으로 눈이 잘 보이게 하였다는 것은 자기가 사방을 멀리 볼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사방으로 귀가 잘 들리게 하였다는 것은 자기가 사방을 멀리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恐遠方有所壅塞, 令爲己悉聞見之.
행여 먼 지방에 막히는 바가 있을까 싶어서 자기가 빠짐없이 듣고 보려고 하셨던 것이다.
旣謀於四岳, 又別勅州牧, 咨十有二牧曰 “人君最所重者, 在於民之食哉,
이미 사악四岳의 관원들과 상의를 하고, 또한 별도로 주목州牧에게 주의를 시켰으며, 12과 의논하기를 “임금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백성들이 먹을 양식에 있다.
惟當敬授民之天時, 無失其農.
백성들에게 농사철을 경건히 알려주어 농사를 그르치는 일이 없게 하라.
要爲政務在安民, 當安彼遠人, 則能安近人耳.
요컨대 정무政務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니, 저 멀리 있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 또한 편안하게 할 수 있다.
遠人不安, 則近亦不安.”
멀리 있는 사람이 편안하지 못하면 가까이 있는 사람 또한 편안하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欲令遠近皆安之也.
이것은 멀리 있는 사람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모두 편안함을 누리게 하려는 뜻에서였다.
又當厚行德信, 而使足爲善長, 欲令諸侯皆厚行其德, 爲民之師長.
또 마땅히 을 두터이 행하여 을 풍족하게 기르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제후諸侯들로 하여금 그 을 두터이 행하여 백성의 사장師長이 되게 하려 하신 것이고,
而難拒佞人, 斥遠之, 使不干朝政, 如是則誠信昭於四夷, 自然蠻夷皆相率而來服也.
이어서 아첨하는 사람은 거절하기 어려우므로 배척해 멀리하여 조정朝政에 간여하지 못하게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성신誠信이 사방의 오랑캐에게 밝게 알려져서 자연히 만이蠻夷가 모두 서로 거느리고 와서 복종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疏]傳‘月正’至‘廟告’
의 [月正]에서 [廟告]까지
○正義曰:正, 訓長也, 月正, 言月之最長.
정의왈正義曰:(우두머리)의 뜻이니, 월정月正은 달의 가장 우두머리임을 말한다.
正月長於諸月, 月正, 還是正月也.
정월正月은 여러 달에서 우두머리인데, 월정月正이 바로 정월正月인 것이다.
上日, 日之最上, 元日, 日之最長, 元日, 還是上日.
상일上日은 날의 가장 위이고, 원일元日은 날의 가장 우두머리인데, 원일元日이 바로 상일上日인 것이다.
王肅云 “月正元日, 猶言正月上日.” 變文耳.
왕숙王肅은 이르기를 “‘월정원일月正元日’은 ‘정월상일正月上日’이라 말함과 같다.”고 하였으니, 문체를 변경했을 뿐이다.
禮云 “令月吉日.” 又變文言“吉月令辰.” 此之類也.
(《儀禮》 〈사관례士冠禮〉)에 “영월길일令月吉日”이라 하고, 또 문체를 변경해서 “길월령신吉月令辰”이라 하였으니, 바로 이와 같은 이다.
知‘舜服堯喪三年畢 將卽政’者, 以堯存且攝其位, 堯崩謙而不居.
[舜服堯喪三年畢 將卽政] 이것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임금이 생존했을 때에는 섭위攝位(攝政)를 하다가 임금이 서거하니 겸양하고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孟子云 “堯崩, 三年喪畢, 舜避丹朱於南河之南,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임금이 서거하시거늘 3년상을 마치고, 이 〈임금의 아들인〉 단주丹朱남하南河의 남쪽으로 피해가시니,
天下諸侯朝覲, 不之堯子而之舜, 獄訟者, 不之堯子而之舜, 謳歌者, 不之堯子而謳歌舜, 曰‘天也’.
천하天下제후諸侯로서 조근朝覲하는 자들이 임금의 아들에게 가지 아니하고 에게 갔으며, 옥송獄訟하는 자들이 임금의 아들에게 가지 아니하고 에게 갔으며, 노래하는 자들이 임금의 아들에게 가지 아니하고 을 노래하면서 ‘천운이다.’라고 하였다.
然後之中國, 踐天子位.”
그런 뒤에야 〈이〉 중국中國(都城)으로 가서 천자天子의 자리에 오르셨다.”라고 하였다.
旣言然矣, 此文又承三載之下,
맹자孟子께서〉 이미 그렇게 말씀하셨거니와, 이 글은 또 ‘삼재三載’라는 문구의 아래를 이어받았다.
故知舜服堯喪三年畢, 將欲卽政.
그러므로 임금의 에 삼년복 입기를 마치고 장차 즉위하시려 하였음을 안 것이다.
‘復至文祖廟告’, 前以攝位告, 今以卽政告也.
[復至文祖廟告] 앞에서는 섭위攝位를 가지고 고하시고, 지금은 즉정卽政(卽位)을 가지고 고하신 것이다.
此猶是堯之文祖, 自此以後, 舜當自立文祖之廟, 堯之文祖, 當遷於丹朱之國也.
아직까지는 임금의 문조文祖였고, 이후로는 임금이 응당 스스로 문조文祖의 사당을 세울 것이므로 임금의 문조文祖는 당연히 단주丹朱의 나라로 옮겼을 것이다.
[疏]傳‘詢謀’至‘衆賢’
의 [詢謀]에서 [衆賢]까지
○正義曰:‘詢 謀’, 釋詁文.
정의왈正義曰:[詢 謀]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闢訓開, 開四方之門, 謂開仕路, 引賢人也.
은 열다라는 뜻으로 풀이하니,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은 벼슬길을 활짝 열어서 어진 사람들을 이끌어옴을 이른다.
論語云 “從我於陳‧蔡者, 皆不及門也.”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나를 따라 나라와 나라에서 함께 곤액을 겪던 사람들이 지금은 내 문하에 없구나.”라고 하였다.
門者, 行之所由.
이란 것은 다니는 사람이 경유하는 곳이다.
故以門言仕路.
그러므로 을 가지고 벼슬길을 말한 것이다.
以堯舜之聖, 求賢久矣.
임금‧임금 같은 성인으로서 어진 사람을 구하신 지 이미 오래였다.
今更言開門, 是開其未開者, 謂多設取士之科, 以此廣致衆賢也.
그런데 이제 다시 개문開門을 말한 것은 아직 열리지 못한 문을 여는 것으로 인재를 취하는 를 많이 설시함을 이른 것이니, 이렇게 해서 많은 현인들을 널리 초치하는 것이다.
[疏]傳‘廣視’至‘壅塞’
의 [廣視]에서 [壅塞]까지
○正義曰:聰謂耳聞之也.
정의왈正義曰:은 귀로 듣는 것을 이른다.
旣云‘明四目’, 不云‘聰四耳’者, 目視苦其不明, 耳聰貴其及遠,
이미 ‘명사목明四目’이라 하고서 ‘총사이聰四耳’라 하지 않은 것은, 눈으로 보는 일은 밝게 보지 못함을 괴로워하고 귀로 듣는 일은 멀리까지 듣는 것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明謂所見博, 達謂聽至遠, 二者互以相見,
은 보는 시야가 넓음을 이르고 은 듣는 범위가 멀리 이름을 이르니, 두 가지는 상호적으로 연관성 있게 보는 것이다.
故傳總申其意“廣視聽於四方, 使天下無壅塞.”
그러므로 공전孔傳에서 총체적으로 그 뜻을 풀어 “보고 듣는 범위를 사방에 넓혀서 천하에 소통되지 못한 곳이 없게 하셨다.”라고 한 것이다.
天子之聞見在下, 必由近臣, 四岳親近之官, 故與謀此事也.
천자天子의 듣고 보는 것은 아래에 있으므로 반드시 근신近臣으로 말미암아 듣고 보기 마련이니, 사악四岳친근親近한 관원인지라 그래서 그들과 더불어 이 일을 상의하신 것이다.
[疏]傳‘咨亦’至‘民時’
의 [咨亦]에서 [民時]까지
○正義曰:‘咨 謀’, 釋詁文.
정의왈正義曰:[咨 謀]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以上‘帝曰咨’上連‘帝曰’, 故爲咨嗟, 此則上有‘詢于四岳’, 言‘咨十有二牧’, 故爲謀也.
이상에 있는 ‘제왈자帝曰咨’는 위로 ‘제왈帝曰’을 연했기 때문에 자차咨嗟로 본 것이고, 여기서는 위에 ‘순우사악詢于四岳’이 있고, ‘자십유이목咨十有二牧’을 말했기 때문에 로 본 것이다.
立君所以牧民, 民生在於粒食, 是君之所重.
임금을 세운 목적은 목민牧民을 하기 위한 것이고, 백성의 생명은 입식粒食에 매여 있으니, 이것이 임금의 중히 여길 바이다.
論語云 “所重, 民食.” 謂年穀也.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소중히 여기신 것은 백성들의 식생활이다.”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매년 생산하는 곡식을 이른다.
種殖收斂, 及時乃穫,
심고 거두는 일을 제때에 해야 소득이 있는 법이다.
故“惟當敬授民時.”
그러므로 “마땅히 백성들에게 농사철을 경건하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疏]傳‘柔安’至‘長善’
의 [柔安]에서 [長善]까지
○正義曰:‘柔 安’‧‘邇 近’‧‘惇 厚’, 皆釋詁文.
정의왈正義曰:[柔 安]‧[邇 近]‧[惇 厚] 모두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元 善之長’, 易文言也.
[元 善之長] 《주역周易》 〈문언文言〉이다.
安近不能安遠, 遠人或來擾亂, 雖欲安近, 近亦不安.
가까이 있는 사람은 편안하게 할 수 있어도 멀리 있는 사람은 편안하게 할 수 없으므로 멀리 있는 사람이 더러 와서 소란을 피우게 되니, 비록 가까이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려고 해도 가까이 있는 사람 또한 편안할 수가 없다.
人君爲政, 其不能安近, 但戒使之柔遠, 故能安近.
임금이 정치를 함에 있어서 가까이 있는 사람은 편안하게 하지 않고 다만 경계하여 멀리 있는 사람을 회유하는 일을 고민하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言當安彼遠人, 乃能安近.
마땅히 멀리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여야 가까이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欲令遠皆安也.
멀리 있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을 모두 편안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王肅云 “能安遠者, 先能安近.” 知不然者, 以牧在遠方, 故據遠之.
왕숙王肅이 이르기를 “멀리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려고 하거든 먼저 가까이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런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은, 목민관牧民官이 먼 곳에 있으므로 먼 곳을 준거해서 말했기 때문이다.
‘惇德’者, 令人君厚行德也. ‘允元’者, 信使足爲長善也. 言人君厚行德之與信, 使足爲善長, 民必效之爲善而行也.
돈덕惇德’이란 것은 임금으로 하여금 을 두텁게 행하도록 한 것이고, ‘윤원允元’이란 것은 을 풍족하게 기르도록 한 것이니, 임금이 을 두터이 행하여 을 풍족하게 기르도록 해야 백성들이 반드시 그를 본받아 을 행할 것임을 말한 것이다.
[疏]傳‘任佞’至‘來服’
의 [任佞]에서 [來服]까지
○正義曰:‘任 佞’, 釋詁文.
정의왈正義曰:[任 佞]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孫炎云 “似可任之佞也.” 論語說爲邦之法云 “
손염孫炎은 이르기를 “믿을 수 있을 법한 것이 이다.”라고 하였고, 《논어論語》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말하기를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해야 한다.”라 하고, “아첨하는 사람은 위험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故以難距佞人, 爲斥遠之, 令不干朝政,
그러므로 아첨하는 사람은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에 배척해 멀리하여 조정朝政에 간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朝無佞人, 則“忠信昭於四夷, 皆相率而來服也.”
조정에 아첨하는 사람이 없으면 “충신忠信이 사방의 오랑캐에게 밝게 알려져서 자연히 만이蠻夷가 모두 서로 거느리고 와서 복종할 것이다.”란 식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擧蠻夷而戎狄亦見矣.
만이蠻夷를 거론하였으면 융적戎狄도 서로 거느리고 와서 복종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역주
역주1 : 孔傳과 蔡傳에는 다 至(이르다)의 뜻으로 보았는데, 조선시대 尹鑴의 《讀書記》에는 “格은 感通을 이르니, 대개 神에 享祀함을 칭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2 卽政 : 明代 王樵의 《尙書日記》에는 “지금 상고하건대 孔安國은 《孟子》에 근거한 것이다. 《孟子》에 ‘堯임금이 서거하시거늘 삼년상을 마치고 舜은 오히려 堯임금의 아들을 피했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喪을 당한 명년에 문득 嗣子의 禮와 같이하겠는가.”라고 하였다.
明代 王夫之의 《尙書稗疏》에는 “正月 元日에 文祖에 가신 것은 곧 堯임금이 서거하신 바로 다음 해이지, 삼년상을 마친 그 다음 해가 아니다. 1년 후에 改元하는 것은 始終의 大義이다. 蘇軾이 孔安國에 대해 의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하가 임금에 대해서,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斬衰服을 입는 것은 같으나 居喪하는 것은 다르다. 《孟子》에 ‘堯임금의 아들을 피했다.’는 설과 같은 것은 고금의 疑案거리다. 요컨대 3년 동안 임금이 없이 천하를 비워둘 수는 없는 문제이다.”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權近의 《五經淺見錄》 〈書淺見錄〉에는 “蔡沈의 《集傳》에는 ‘무엇을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는데, 내가 상고하건대 《孟子》에 ‘堯임금이 서거하시거늘 三年喪을 마치고, 舜이 堯임금의 아들을 南河의 남쪽으로 피해갔다가 朝覲과 獄訟이 모두 〈자기에게〉 돌아온 연후에 가서야 中國으로 가서 天子의 자리에 올랐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근거자료가 되기에 충분하다. 또한 더구나 上文에서 ‘百姓如喪考妣三年’이라 말하였고, 아래에서 ‘月正元日’이라 적었으니, 喪을 마친 이듬해가 워낙 분명하므로 다른 책을 가지고 증거를 댈 필요가 없다.
그런데 蔡沈의 《集傳》에는 ‘여러 해를 임금이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春秋》에서 國君은 모두 喪을 당한 이듬해 정월에 즉위하였다.’고 하면서 孔安國의 말에 대해 의심을 가졌다. 그러나 옛날에는 임금이 서거하면 百官은 각각 자기들의 직무를 3년 동안 冢宰에게 결재를 받았다. 더구나 堯임금이 생존했을 때에 舜은 이미 攝位를 했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堯임금이 서거한 뒤에 丹朱가 主喪을 하니, 舜이 오히려 攝政하고 있다가 喪이 끝난 뒤에 가서야 丹朱에게 정사를 돌려주고 피해갔다. 그러나 正月 元日에 사당에 卽位를 고하였으니, 堯임금의 아들을 피한 시기는 응당 어느 때에 있었을까? 아마 堯임금의 서거하신 날이 12월 그믐이 아니었을 터인즉, 두 돌 되는 大祥 후, 이듬해 정월 전에 자연 피할 수 있는 날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宋文欽의 《寒靜堂集》에도 “孔安國이 舜임금의 卽位를 喪을 마친 다음 해에 한 것으로 본 것은 《孟子》에 근거해서 말한 것 같은데, 蘇軾이 ‘근거가 없다.’고 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상고시대에는 풍속이 이미 質朴하고 또 어진 冢宰가 정사를 맡으면 國事에 본디 걱정될 것이 없거늘, 하물며 舜 같은 성인이 百揆를 맡아 攝位하였으니, 비록 3년 동안 卽位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천하는 안온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3 詢于四岳……達四聰 : 조선시대 任聖周는 이 대문에 대하여 “이는 舜임금이 즉위한 후 최초로 작용한 첫 번째 호령으로 사방을 風動(교화)하는 뜻이 어찌 그리도 속이 시원하고 어찌 그리도 눈이 번쩍 띄고 어찌 그리도 정신이 번쩍 나는가.”라고 하였다. 《經書集說 書傳》
역주4 惇德允元 : 蔡傳에서는 “元은 仁厚한 사람이니, 덕이 있는 사람을 후대하고 仁厚한 사람을 믿다.”라고 풀이하였다.
역주5 (若)[苦] : 저본에는 ‘若’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살펴보건대 ‘若’은 마땅히 ‘苦’가 되어야 한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苦’로 바로잡았다.
역주6 (言)[近] : 저본에는 ‘言’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살펴보건대 ‘言’은 마땅히 ‘近’이 되어야 한다. 아래의 ‘據遠言之’와 서로 바뀌어 잘못되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近’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近)[言] : 저본에는 ‘近’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宋板과 《纂傳》에 ‘近’이 ‘言’으로 되어있으니, 살펴보건대 ‘言’자가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言’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 遠佞人 佞人殆 : 《論語》 〈衛靈公〉에 “鄭나라 음악을 추방하며 말재주 있는 사람을 멀리 해야 하니, 鄭나라 음악은 음탕하고 말 잘하는 사람은 위험하기 때문이다.[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佞人 殆]”라 하였다.

상서정의(1) 책은 2019.11.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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