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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正義(1)

상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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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國子祭酒上護軍曲阜縣開國子 臣孔穎達 奉命撰
국자좨주國子祭酒 상호군上護軍 곡부현개국자曲阜縣開國子 공영달孔穎達칙명勅命을 받들어 하였다.
夫書者 人君辭誥之典이요 右史記言之策이라
대개 《》라는 것은 임금의 말씀과 고명誥命을 적은 전칙典則이요, 우사右史가 임금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古之 事總萬機하니 發號出令 義非一揆
옛날의 왕은 모든 일을 총괄해야 하기 때문에 명령하는 방법이 한 가지뿐이 아니었다.
或設敎以馭下하고 或展禮以事上하고 或宣威以肅震曜하고 或敷和而散風雨하니 得之則百度惟貞하고 失之則千里斯謬
혹은 가르침을 베풀어 아랫사람을 어거하기도 하고, 혹은 예절을 갖추어 윗사람을 섬기기도 하며, 혹은 추상같은 위엄을 베풀어서 두렵게 하기도 하고, 혹은 온화한 은혜를 펴서 비바람처럼 적셔주기도 하였으니, 이렇게 하면 모든 법도가 바르게 펼쳐지고, 이렇게 하지 못하면 크게 잘못된다.
樞機之發 榮辱之 絲綸之動 不可不愼이라
입은 지도리와 오늬의 역할을 하므로 명령에 따라 영욕榮辱이 결정되니, 명령하는 일을 삼가지 않을 수 없다.
所以辭不苟出이니 君擧必書 欲其昭法誡愼言行也
그래서 사령辭令을 구차하게 내보내지 못하니, 임금의 처사를 반드시 적는 것은 그 법계法誡를 밝히고 언행言行을 신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其泉源所漸 基於出震之君하고 黼藻斯彰 郁乎如雲之后
샘물의 근원이 점차적으로 확대되듯 덕정德政이 펼쳐지는 것은 임금에게서 시작되고, 화려한 보불 문장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勳華揖讓而典謨起하고 湯武革命而誓誥興이라
임금과 임금이 읍양揖讓하니 가 일어나고, 탕왕湯王무왕武王혁명革命하니 가 생겨났다.
先君宣父 生於周末하사 有至德而無至位하니
선군先君 선보宣父(孔子)께서 나라 말기에 태어나시어, 지극한 이 있었으나 지극한 를 가지지 못하셨다.
修聖道以顯聖人하사 芟煩亂而翦浮辭하고 擧宏綱而撮機要하여 上斷唐虞하고 下終秦魯하시니 時經五代하여 書總百篇이라
그래서 성도聖道를 닦아 성인聖人을 드러내시어, 번란煩亂한 것을 베어내고 근거없는 말을 잘라내셨으며, 대강大綱을 들고 기요機要를 취하여 위로는 에서 시작하고 아래로는 에서 끝내셨는데, 오대五代의 시기를 거쳐서 《》가 총 100편이 되었다.
採翡翠之羽毛하고 拔犀象之牙角하며 罄荊山之石하니 所得者 連城이요 窮漢水之濱하니 所求者 照乘이라
비취翡翠우모羽毛를 채취하고 서상犀象아각牙角을 뽑은 셈이며, 형산荊山의 돌을 다 쪼갠 결과 얻은 것은 연성벽連城璧이요, 한수漢水의 물가를 끝까지 뒤진 결과 구한 것은 조승벽照乘璧이었다.
巍巍蕩蕩하여 無得而稱이요 郁郁紛紛하여 於斯爲盛하니 斯乃前言往行 足以垂法將來者也
우람하여 무어라 일컬을 수 없고, 찬란하여 이에 최고로 빛났으니, 그래서 전인의 언행이 충분히 장래에 법이 될 수 있었다.
曁乎七雄已戰 未聚하여 儒雅與深穽同埋하고 經典共積薪俱燎하니라
7의 영웅들이 이미 전쟁을 벌일 때에 와서는 오정五精이 모이지 못하여 유아儒雅(儒生)가 깊은 함정과 함께 매몰되고, 경전經典이 쌓인 섶과 함께 타버렸다.
原注
漢氏大濟區宇하고 廣求遺逸하여 採古文於金石하고 得今書於齊魯하니 其文則歐陽夏侯二家之所說 蔡邕碑石刻之하고 古文則兩漢亦所不行 安國注之 寔遭巫蠱하여 遂寢而不用하고 歷及魏晉하여 方始稍興이라
나라가 크게 구우區宇(天下)를 구제하고 널리 숨은 인재를 구하여 고문古文금석金石에서 채취하고 금서今書에서 얻었으니, 금문今文구양歐陽(歐陽和伯)과 하후夏侯 이가二家(夏侯勝‧하후건夏侯建)가 설명한 것을 채옹蔡邕비석碑石에 새겼고, 고문古文양한兩漢에서도 행해지지 못한 것을 공안국孔安國를 달았으나 마침 무고巫蠱 사건을 만나서 결국 좌절되고 쓰이지 못하였고, 시대에 와서 비로소 약간 흥성하였다.
馬鄭諸儒 하여 所注經傳 時或異同이라
그러므로 마융馬融정현鄭玄 제유諸儒가 〈공안국孔安國고문古文〉學을 보지 못하여, 경전經傳를 단 것이 때로 혹 차이가 생김을 면하지 못하였다.
하니 其後傳授 乃可詳焉이라
나라 세대에 황보밀皇甫謐이 홀로 《고문상서古文尙書》를 얻어서 《제왕세기帝王世紀》에 실었으니, 그 뒤로 전수傳授가 자상할 수 있었다.
但古文經 雖然早出晩始得行이나 其辭富而備하고 其義宏而雅
다만 고문경古文經은 비록 일찍 나와서 늦게야 비로소 행해졌으나 그 말이 풍부하고 자세하였으며 그 뜻이 웅대하고 아담하였다.
故復而不厭하고 久而愈亮하니 江左學者 咸悉祖焉이라
그러므로 반복해도 싫증이 나지 않고 오래갈수록 더욱 명랑하니, 강좌江左학자學者들이 모두 경전의 조종祖宗으로 삼았다.
原注
近至隋初 始流河朔하니 其爲正義者 蔡大寶‧巢猗‧費甝‧顧彪‧劉焯‧劉炫等이라
근대 나라 초기에 와서 《고문상서古文尙書》가 비로소 하삭河朔(河北)에 유입되었으니, 《정의正義》를 만든 사람들은 채대보蔡大寶소의巢猗비감費甝고표顧彪유작劉焯유현劉炫 등이었다.
其諸公旨趣 多或因循釋注文이니 義皆淺略하고 惟劉焯‧劉炫 最爲詳雅
그러나 제공諸公의 취지는 대부분 예전대로 주석을 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뜻이 모두 천단淺短하였고, 그중에 오직 유작劉焯유현劉炫만이 가장 상세하고 아정雅正하였다.
이나 焯乃織綜經文하여 穿鑿孔穴하고 詭其新見하여 異彼前儒하니 非險而更爲險하고 無義而更生義니라
그러나 유작劉焯경문經文을 짜 맞추어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하고 새로운 견해를 내세워서 전유前儒들과 다르게 해석하였으니, 험한 것이 아닌데서 다시 험한 것을 만들고 별 뜻이 없는데서 다시 다른 뜻을 만들어낸 꼴이 되었다.
竊以古人言誥 惟在達情이라
가만히 살펴보면, 옛사람의 말과 고명誥命은 오직 뜻을 전달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雖復時或取象이나 不必辭皆有意니라
비록 다시 때로는 을 취하였지만, 반드시 말에 모두 뜻을 담지는 않았다.
若其言必託數하고 經悉對文이면 斯乃鼓怒浪於平流하고 震驚飊於靜樹 使敎者煩而多惑하고 學者勞而少功이나
만일 그 말들이 반드시 숫자를 맞추고 이 모두 을 대응하게 한다면 이것은 바로 평탄하게 흐르는 물에 격랑激浪을 일으키고 가만히 있는 나무에 폭풍이 몰아치는 격이니, 가르치는 사람은 번잡하여 의혹이 많아지게 되고 배우는 사람은 고생만 잔뜩 하고 성과는 적어지게 된다.
過猶不及 良爲此也
지나친 것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한 것이다.
炫嫌焯之煩雜하여 就而刪焉이라
유현劉炫유작劉焯의 주석이 번잡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그의 주석을 산삭刪削하였다.
雖復微稍省要 又好改張前義하여 義更太略하고 辭又過華하니 雖爲文筆之善이나 乃非開獎之路니라
비록 약간은 요약하였지만 또한 전인의 뜻을 고치기를 좋아하여 뜻은 다시 너무 소략해지고 말은 또 너무 화려해졌으니, 비록 문장은 잘 되었으나 곧 독자를 인도하는 길은 아니었다.
義旣無義하고 文又非文하니 欲使後生으로 若爲領袖인댄 此乃炫之所失이니 未爲得也니라
뜻이 이미 뜻답지 못하고 글 또한 글답지 못하니, 후생後生으로 하여금 만일 영수領袖(儀則)로 삼게 한다면 이것은 유현劉炫의 실책이니, 득이 되지 못한다.
原注
今奉明勅하여 考定是非하니 謹罄庸愚하고 竭所聞見하며 覽古人之傳記하고 質近代之異同하여 存其是而去其非하며 削其煩而增其簡하니 此亦非敢臆說이요 必據舊聞이니라
지금 칙명勅命에 의하여 옳고 그른 것을 고찰하여 정하니, 삼가 어리석은 생각과 견문을 다 기울여 쏟으며, 고인古人전기傳記를 열람하고 근대近代이동異同을 살펴서 옳은 것은 놓아두고 그른 것은 제거하며, 번잡한 것은 삭제하고 간략한 것은 보탰으니, 이것은 또한 감히 억설臆說을 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구문舊聞에 근거한 것이다.
謹與朝散大夫行太學博士臣王德韶前四門助敎臣李子雲等 謹共하고 至十六年 又奉勅하여 與前修疏人 及通直郞行四門博士驍騎尉臣朱長才, 給事郞守四門博士上騎都尉臣蘇德融, 登仕郞守太學助敎雲騎尉臣隨德素, 儒林郞守四門助敎雲騎尉臣王士雄等 對勅使趙弘智하고 覆更詳審하여 爲之正義하니 凡二十卷이라
삼가 조산대부朝散大夫 행태학박사行太學博士 왕덕소王德韶, 전사문조교前四門助敎 이자운李子雲 등과 더불어 신중하게 서술하였고, 정관貞觀 16년(642)에 이르러 또 칙명에 의하여 전에 주소注疏를 한 사람 및 통직랑通直郞 행사문박사行四門博士 효기위驍騎尉 주장재朱長才, 급사랑給事郞 수사문박사守四門博士 상기도위上騎都尉 소덕융蘇德融, 등사랑登仕郞 수태학조교守太學助敎 운기위雲騎尉 수덕소隨德素, 유림랑儒林郞 수사문조교守四門助敎 운기위雲騎尉 왕사웅王士雄 등이 칙사勅使 조홍지趙弘智와 머리를 맞대고 다시 자세하게 살펴서 《상서정의尙書正義》를 만들었으니, 무릇 20권이다.
庶對揚於聖範하고 冀有益於童稚니라
성상聖上전범典範이 널리 펼쳐지기를 기대하고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있기를 바란다.
略陳其事하여 敍之云爾니라
그간의 일들을 약간 진술하여 서문을 쓰노라.
역주
역주1 (正)[王] : 저본에는 ‘正’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正’은 마땅히 ‘王’이 되어야 한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王’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生)[主] : 저본에는 ‘生’으로 되어있으나, 《周易》 〈繫辭 上〉에 “말과 행실은 군자의 지도리와 오늬의 역할을 하니, 지도리와 오늬의 발함은 榮辱의 주체이다.[言行 君子之樞機 樞機之發 榮辱之主也]”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主’로 바로잡았다.
역주3 五精 : 五行의 精氣를 가리킨다.
역주4 莫覩其學 : 《古文尙書》는 後漢 말 劉歆 때에 잠시 학관에 세워졌다.
역주5 晉世皇甫謐……載於帝紀 : 《尙書考異》에 의하면, 皇甫謐이 梁柳로부터 《古文尙書》를 얻었기 때문에 《帝王世紀》를 지으면서 孔傳 58편의 글을 실었다고 한다.
역주6 (怗)[帖] : 저본에는 ‘怗’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살펴보건대 ‘怗’은 의심컨대 ‘帖’자의 誤字인 듯하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帖’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銓)[詮] : 저본에는 ‘銓’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銓’은 응당 ‘詮’이 되어야 한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詮’으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1) 책은 2019.11.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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