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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2)

상서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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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 제5권 虞書
益稷 第五
[傳]禹稱其人이라 因以名篇이라
禹가 그 사람을 일컬었기 때문에 편명으로 삼은 것이다.
[疏]傳 ‘禹稱’至‘名篇’
傳의 [禹稱]에서 [名篇]까지
○正義曰:禹言‘曁益’‧‘曁稷’, 是禹稱其二人, 二人佐禹有功, 因以此二人名篇.
○正義曰:禹가 말한 ‘曁益’‧‘曁稷’은 禹가 그 두 사람을 일컬은 것이니, 두 사람이 禹를 도와 공을 세웠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편명으로 삼은 것이다.
旣美大禹, 亦所以彰此二人之功也. 禹先言‘曁益’, 故益在稷上. 馬‧鄭‧王所據書序, 此篇名爲棄稷.
이미 大禹를 아름답게 여겼고, 또한 이 두 사람의 공을 밝힌 것이다. 禹가 ‘曁益’을 먼저 말했기 때문에 益이 稷 위에 놓이게 된 것이다. 馬融‧鄭玄‧王肅이 의거한 〈書序〉에는 이 篇의 이름이 ‘棄稷’으로 되어 있다.
棄稷一人, 不宜言名又言官, 是彼誤耳. 又合此篇於皐陶, 謂其別有棄稷之篇, 皆由不見古文, 妄爲說耳.
棄稷은 한 사람이므로 이름을 말하고 또 벼슬을 말하는 것은 마땅치 않으니, 저 〈書序〉가 잘못되었을 뿐이다. 또 이 〈益稷〉편을 〈皐陶謨〉에 합치고 따로 〈棄稷〉이 있는 것으로 일렀으니, 모두 ≪古文尙書≫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망령되이 말했을 뿐이다.
帝曰 來하라 汝亦昌言하라
帝舜이 말씀하기를 “가까이 오라. 禹야. 너도 온당한 말을 해보라.”고 하자,
[傳]因皐陶謨九德이라 呼禹使亦陳當言이라
皐陶가 九德을 謨慮하였기 때문에 禹를 불러서 또한 온당한 말을 진달하게 한 것이다.
○當 本亦作讜이니 李登聲類云 讜言 善言也라하니라
○當은 어떤 本에 또한 ‘讜’으로도 되어 있으니, 李登의 ≪聲類≫에 “讜言은 善言이다.”라고 하였다.
禹拜曰 都 予何言하리잇가 予思日孜孜하노이다
禹가 절하고 나서 말하기를 “아, 皇帝시여. 제가 무슨 말씀을 아뢰겠습니까. 저는 날마다 부지런히 일할 것을 생각할 따름입니다.”라고 하였다.
[傳]拜而歎하고 辭不言 欲使帝重皐陶所陳이라 言己思日孜孜不怠하여 奉承臣功而已
절하고 나서 탄식하고 사양하며 말하지 않는 것은 帝舜으로 하여금 皐陶가 진달한 말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자기는 날마다 게으름 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여 신하의 직책을 遵行하기를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
皐陶曰 吁 如何
皐陶가 말하기를 “그래. 〈부지런히 일했다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하니,
[傳]問所以孜孜之事
부지런히 했던 일에 대해 물은 것이다.
禹曰 洪水滔天하여 浩浩懷山襄陵하여 下民昏墊이어늘
禹가 말하기를 “홍수가 하늘에 닿을 듯이 불어서, 질펀한 물이 산을 삼키고 언덕을 타고 넘으니, 백성들이 미혹되고 물에 잠겨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傳]言天下民 昏瞀墊溺하여 皆困水災
천하의 백성들이 미혹되고 물에 잠겨서 모두 水災에 곤혹을 겪었다고 말한 것이다.
○瞀 本或作務
○瞀는 어떤 本에 務로 되어 있기도 하다.
予乘四載하여 隨山刊木하고
저는 네 가지의 탈것을 타고서 산을 돌며 나무를 베었고,
[傳]所載者四 謂水乘舟하고 陸乘車하고 泥乘輴하고 山乘樏 隨行九州之山林하여 刊槎其木하여 開通道路以治水也
타는 것 네 가지는 물에서는 배를 타고, 육지에서는 수레를 타고, 진흙에서는 널배를 타고, 산에서는 直轅車를 탄 것을 이른다. 九州의 山林을 돌며 나무를 베어 길을 내면서 홍수를 다스렸다.
○輴 漢書作橇하니 如淳音蕝이니 以板置泥上이라 服虔云 木橇 形如木箕하여 擿行泥上이라하고
○輴은 ≪漢書≫에 橇로 되어 있는데, 如淳은 음이 蕝이라고 하였으니, 蕝은 판목을 진흙 위에 놓는 것이다. 服虔은 “木橇는 모양이 木箕와 같은 것으로서 진흙 위를 썰매처럼 타고 다닌다.”라고 하였고,
尸子云 澤行乘蕝이라하니라 史記作橋하고 漢書作梮이라 說文云 衺斫이라하니라
≪尸子≫에는 “늪 가운데를 다닐 때에는 널배를 탄다.”라고 하였다. 樏는 ≪史記≫에 橋로 되어 있고, ≪漢書≫에 梮으로 되어 있다. 槎는 ≪說文解字≫에 “衺斫이다.(비스듬하게 찍다)”라고 하였다.
曁益으로 奏庶鮮食하며
益과 함께 〈나무를 베다가 갓 잡은〉 여러 가지 새와 짐승 같은 먹을거리를 백성들에게 가져다 먹였으며,
[傳]奏謂進於民이라 鳥獸新殺曰鮮이라 與益槎木이라가 獲鳥獸하면 民以進食이라
奏는 백성들에게 갖다 주는 것을 이른다. 새나 짐승이 갓 죽은 것을 鮮이라 한다. 益과 함께 나무를 베다가 새나 짐승을 잡으면 백성들에게 가져다가 먹였다는 것이다.
○馬云 鮮 生也라하니라
○馬融은 “鮮은 生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予決九川하여 距四海하며 濬畎澮하여 距川하고
제가 九州의 강물을 터서 四海로 흘러들어가게 하고, 밭도랑과 봇도랑을 깊이 파서 물이 강으로 흘러들어가게 하였고,
[傳]距 至也 決九州名川하여 通之至海 一畎之間 廣尺深尺曰畎이라하고
距는 至의 뜻이다. 九州의 이름난 하천들을 터서 소통시켜 바다에 이르게 한 것이다. 한 밭도랑 사이의 너비가 1尺에 깊이가 1尺인 것을 ‘畎’이라 하고,
方百里之間 廣二尋深二仞曰澮 澮畎深之至川하고 亦入海
사방 100리 사이의 너비가 2尋에 깊이가 2仞인 것을 ‘澮’라 한다. 봇도랑과 밭도랑을 깊이 파서 물이 내로 흘러들어가고, 또한 바다로 흘러들어가게 하였다는 것이다.
稷과 함께 播種해서 먹을거리를 얻기 어려운 곳 백성들에게 갖다 주었고, 〈물을 틀 때에〉 얻은 魚鼈로 먹을거리를 삼게 하였으며,
[傳]艱 難也 衆難得食處 則與稷敎民播種之하고 決川有魚鱉이면 使民鮮食之
艱은 難의 뜻이다. 백성들이 먹을거리를 얻기 어려운 곳에는 稷과 더불어 백성들에게 播種하는 일을 가르쳤고, 하천을 틀 때에 魚鱉을 잡으면 백성들로 하여금 먹을거리로 삼게 하였다.
○艱 馬本作根하고 云 根生之食이니 謂百穀이라하니라
○艱은 馬本에 根으로 되어 있고, 이르기를 “뿌리에서 나는 먹을거리이니, ‘百穀’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懋遷有無하여 하니
힘써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옮겨서 쌓여 있는 물건들을 교역하도록 하였으니,
[傳]化 易也 謂所宜居積者 勉勸天下하여 徙有之無호되 魚鹽徙山하고 林木徙川澤하여 交易其所居積이라
化는 易(교역)의 뜻이요, 居는 쌓아둔 것을 이른다. 천하 사람들을 권면하여 있는 곳에서 옮겨 없는 데로 가져가되 魚鹽은 山으로 옮기고, 林木은 川澤으로 옮겨 그 쌓아둔 것들을 交易하게 한 것이다.
烝民乃粒하고 萬邦作乂하니이다
여러 백성들은 쌀밥을 먹게 되었고, 萬邦은 잘 다스려지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자,
[傳]米食曰粒이라 言天下由此爲治本이라
쌀밥을 粒이라 한다. 온 천하가 이로 말미암아 다스려지는 근본이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皐陶曰 兪 師汝 昌言하노라
皐陶가 말하기를 “옳거니. 너의 온당한 말을 師法으로 삼겠다.”라고 하였다.
[傳]言禹功甚當하니 可師法이라
禹의 功이 매우 온당하니 師法으로 삼을 만하다고 말한 것이다.
[疏]‘帝曰來’至‘汝昌言’
經의 [帝曰來]에서 [汝昌言]까지
○正義曰:皐陶旣爲帝謀, 帝又呼禹進之, 曰 “來, 禹, 汝亦宜陳其當言.”
○正義曰:皐陶가 이미 帝舜을 위하여 謀慮를 내놓았는데, 帝舜이 또 禹를 불러 앞으로 오도록 하며 말씀하기를 “가까이 오라. 禹야. 너도 온당한 말을 해보라.”고 하자,
禹拜曰 “嗚乎. 帝, 皐陶之言, 旣已美矣, 我更何所言. 我之所思者, 每日孜孜勤於臣職而已.”
禹가 절하고 말하기를 “아. 皇帝시여. 皐陶의 말이 이미 아름다운데, 제가 다시 무슨 말씀을 아뢰겠습니까. 제가 생각하는 것은 매일 신하의 직책을 부지런히 하는 것일 따름입니다.”라고 하였다.
皐陶怪禹不言, 故謂之曰‘吁’. 問其所以孜孜之事如何. 禹曰 “往者洪水漫天, 浩浩然盛大, 包山上陵, 下民昏惑沈溺, 皆困水災.
皐陶가 禹가 말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겼으므로 ‘그래[吁]’라고 한 것이다. 부지런히 한 일이 무엇인지 묻자, 禹가 말하기를 “지난번 홍수가 하늘에 닿을 듯이 불어서, 질펀한 물이 산을 삼키고 언덕을 타고 넘으니, 백성들이 미혹되고 물에 잠겨서 모두 水災에 곤혹을 겪었습니다.
我乘舟車輴樏等四種之載, 隨其所往之山, 槎木通道而治之. 與益所進於人者, 惟有槎木所獲衆鳥獸鮮肉爲食也.
저는 배‧수레‧널배‧直轅車 등 네 종류의 탈것을 타고 산을 돌며 나무를 베어 길을 내면서 〈홍수를〉 다스렸습니다. 益과 함께 백성들에게 가져다 먹인 것은 나무를 벨 때에 잡은 여러 새와 짐승 같은 신선한 먹을거리였습니다.
我又通決九州名川, 通之至於四海. 深其畎澮, 以至於川, 水漸除矣. 與稷播種五穀, 進於衆人難得食處, 乃決水所得魚鱉鮮肉爲食也.
저는 또 九州의 이름 있는 하천들을 터서 소통시켜 四海로 흘러들게 하고, 밭도랑과 봇도랑을 깊이 파서 물이 하천으로 흘러들게 하니, 水害가 점점 제거되었습니다. 稷과 함께 백성들에게 오곡을 파종하는 일을 가르쳤고, 먹을거리를 얻기 어려운 곳의 많은 사람들에게 가져다준 것은 물을 틀 때에 물고기와 자라 같은 신선한 먹을거리였습니다.
人旣皆得食矣, 又勸勉天下徙有之無, 交易其所居積. 於是天下衆人, 乃皆得米粒之食, 萬國由此爲治理之政.
사람들이 모두 먹을 수 있게 된 뒤에 또 천하 사람들을 권면하여 있는 곳에서 없는 데로 옮겨서 쌓아둔 것들을 交易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쌀밥을 먹을 수 있었고, 萬國이 이로 말미암아 잘 다스려지게 되었습니다.
我所言孜孜者, 在此也.” 皐陶曰 “然. 可以爲師法者, 是汝之當言.”
제가 말한 ‘부지런히 일했다.’는 것은 이것들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皐陶가 말하기를 “옳거니. 師法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너의 온당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疏]○傳‘因皐’至‘當言’
○傳의 [因皐]에서 [當言]까지
○正義曰:上篇皐陶謀九德, 此帝呼禹, 令亦陳當言. 亦者, 亦也.
○正義曰:上篇에서 皐陶가 九德에 대한 謀慮를 진달하자, 여기서 帝舜이 禹를 불러서 또한 온당한 말을 진달하게 한 것이다. 亦은 “또한 禹도 말해보라.”는 뜻으로 쓰였다.
明上篇皐陶雖與相應, 其言亦對帝也. 上傳云 “皐陶爲帝舜謀”者, 以此而知也.
上篇에서 皐陶가 비록 禹와 더불어 서로 응대하였으나 그 말 또한 帝舜을 대해서 한 것이다. 위의 孔傳에서 “皐陶가 帝舜을 위해 謀慮한 것이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가지고 안 것이다.
[疏]○傳‘拜而’至‘而已’
○傳의 [拜而]에서 [而已]까지
○正義曰:旣已拜而歎, 必有所美, 復辭而不言, 是知欲使帝重皐陶所陳, 言己無以加也.
○正義曰:이미 절하고 나서 탄식만 하였고, 반드시 아름다운 謀慮가 있었을 터인데도 다시 사양하고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帝舜으로 하여금 皐陶가 진달한 말을 소중히 여기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는 더 할 것이 없다고 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王肅云 “帝在上, 皐陶陳謀於下, 已備矣, 我復何所言乎.” 是也.
王肅이 “황제는 위에 계시고 皐陶는 아래에서 謀慮를 진달하여 이미 〈모든 것을〉 갖추었는데, 제가 다시 무슨 말씀을 올리겠습니까.”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旣無所言, 故言己思惟日孜孜, 不敢怠惰, 奉成臣職而已. 孜孜者, 勉功不怠之意.
이미 말할 것이 없기 때문에 자기는 날마다 부지런히 하여 감히 게으름 부리지 않고 신하의 직책을 받들어 이룰 것을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 ‘孜孜’는 일에 근면하고 게으름 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疏]○傳‘言天下’至‘水災’
○傳의 [言天下]에서 [水災]까지
○正義曰:瞀者, 眩惑之意, 故言‘昏瞀’. 墊是下濕之名, 故爲溺也.
○正義曰:瞀는 眩惑의 뜻이기 때문에 ‘昏瞀’라고 말한 것이다. 墊은 下濕한 것을 이르는 명칭이기 때문에 ‘溺’이라 한 것이다.
言天下之人, 遭此大水, 精神昏瞀迷, 無有所知, 又苦沈溺, 皆困此水災也.
온 천하 사람들이 홍수를 만나서 정신이 혼몽하고 미혹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고, 또 물에 잠겨서 고생하였으니, 모두 이 水災에 곤혹을 당한 것이다.
鄭云 “昏, 沒也. 墊, 陷也. 禹言洪水之時, 人有沒陷之害.”
鄭玄은 “昏은 沒의 뜻이요, 墊은 陷의 뜻이다. 禹가 洪水 때 사람들에게 沒陷된 피해가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疏]○傳‘所載’至‘治水’
○傳의 [所載]에서 [治水]까지
○正義曰:史記河渠書云 “夏書曰 ‘禹湮洪水十三年, 三過家不入門. 陸行載車, 水行載舟, 泥行蹈橇, 山行卽橋.’”
○正義曰:≪史記≫ 〈河渠書〉에 “〈夏書〉에 ‘禹가 홍수를 다스리는 13년 동안은 자기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면서도 문에 들어가지 않았다. 육지를 다닐 적에는 수레를 타고 물을 다닐 적에는 배를 타고 진흙땅을 다닐 적에는 널배를 타고 산을 다닐 적에는 橋를 탔다.’”라고 하였다.
徐廣曰 “橋一作輂, 輂, 直轅車也.” 尸子云 “山行乘樏, 泥行乘蕝.”
徐廣은 “橋가 어떤 本에는 輂으로 되어 있는데, 輂은 直轅車이다.”라고 하였다. ≪尸子≫에 “산을 다닐 적에는 直轅車를 타고 진흙땅을 다닐 적에는 널배를 탔다.”라고 하였다.
漢書溝洫志云 “泥行乘毳, 山行則梮.” 毳如箕, 擿行泥上.
≪漢書≫ 〈溝洫志〉에는 “진흙땅을 다닐 적에는 널배를 타고 산을 다닐 적에는 直轅車를 탔다.”라고 하였는데, 〈孟康의 注에〉 “널배는 모양이 키와 같아서 진흙 위를 더듬으며 다닌다.”라고 하였다.
如淳云 “毳謂以板置泥上, 以通行路也.” 愼子云 “爲毳者, 患塗之泥也.”
如淳은 “毳는 판자를 진흙 위에 놓고서 길을 통행하였다.”라고 하였다. ≪愼子≫에서는 “毳를 만든 목적은 진흙길을 염려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應劭云 “梮, 或作樏, 爲人所牽引也.” 如淳云 “梮, 謂以鐵如錐, 頭長半寸, 施之履下, 以上山不蹉跌也.”
應劭는 “梮은 樏로 되어 있기도 하는데,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이다.”라 하였고, 如淳은 “梮은 쇠를 송곳처럼 만들되 끝부분을 반 치 가량 길게 해서 신 밑에 대고 산을 올라가면 미끄러지지 않는다.”라 하였고,
韋昭云 “梮, 木器也. 如今轝床, 人轝以行也.” 此經惟言四載, 傳言所載者四, 同彼史記之說.
韋昭는 “梮은 나무로 만든 기구이다. 지금의 轝床과 같은 것인데 사람이 타고 다녔다.”라고 하였다. 이 經文에서는 ‘四載’라고만 말했을 뿐인데, 孔傳에서는 “타는 것이 넷이다.”라고 하여 저 ≪史記≫의 말과 같게 하였다.
古書尸子‧愼子之徒, 有此言也. 輴與毳爲一, 樏與梮‧轝爲一, 古篆變形, 字體改易, 說者不同, 未知孰是.
古書인 ≪尸子≫와 ≪愼子≫ 등에도 이 말이 있다. 輴과 毳는 동일한 것이고, 樏와 梮과 轝는 동일한 것인데, 古篆이 변형되고 字體가 개역되어서, 說者들이 동일하게 해설하지 않고 있으니, 누가 옳은지 모르겠다.
禹之施功, 本爲治水, 此經乃云 “隨山刊木.” 刊木爲治水, 治水徧於九州, 故云 “隨行九州之山林.”
禹가 한 일은 본래 홍수를 다스린 것인데, 이 經文에서 “산을 돌며 나무를 베었다.”라 하였으니, 나무를 벤 것은 홍수를 다스리는 일이고, 홍수를 다스리는 일은 九州에 두루 미쳤기 때문에 〈孔傳에서〉 “九州의 山林을 돌아다녔다.”라고 한 것이다.
襄二十五年 左傳云 “井堙木刊.” 刊是除木之義也. 毛傳云 “除木曰槎.” 故曰 “刊槎其木, 開通道路以治水.”
≪春秋≫ 襄公 25년 조의 ≪左氏傳≫에 “우물을 메우고 나무를 베었다.[井堙木刊]”라고 하였으니, 刊은 나무를 베었다는 뜻이다. 毛傳에 “나무를 벤 것을 ‘槎’라 한다.[除木曰槎]”라고 했기 때문에 〈孔傳에서〉 “그 나무를 베어 길을 내면서 홍수를 다스렸다.[刊槎其木 開通道路以治水]”라고 한 것이다.
[疏]○傳‘奏謂’至‘進食’
○傳의 [奏謂]에서 [進食]까지
○正義曰:黎民阻飢, 爲人治水, 故知奏謂進食於人也. 禮有鮮魚腊, 以其新殺鮮淨, 故名爲鮮.
○正義曰: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을 위하여 홍수를 다스린 것이다. 그러므로 ‘奏’가 먹을거리를 백성들에게 갖다 줌을 이른 것임을 안 것이다. 禮書에 ‘鮮魚腊(생선포)’이란 말이 있으니, 갓 죽은 생선이 정결하기 때문에 이름을 ‘鮮’이라고 한 것이다.
是鳥獸新殺曰鮮, 魚鱉新殺亦曰鮮也. 此承山下, 故爲鳥獸, 下承水後, 故爲魚鱉, 其新殺之意同也.
이는 鳥獸가 갓 죽은 것을 鮮이라 하고, 魚鱉이 갓 죽은 것도 鮮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산의 아래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鳥獸라 하였고, 아래는 물의 뒤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魚鱉이라고 한 것인데, 갓 죽었다는 뜻은 동일하다.
旣言刊木乃進鮮食, 食是除木所得, 故言“與益槎木, 獲鳥獸, 人以進食.”
이미 나무를 베고 나서 鮮食을 갖다 주었음을 말하였으니, 鮮食은 바로 나무를 베고 얻은 것이기 때문에 “益과 함께 나무를 베다가 새나 짐승을 잡으면 백성들에게 가져다가 먹였다.”라고 말한 것이다.
[疏]○傳‘距至’至‘入海’
○傳의 [距至]에서 [入海]까지
○正義曰:距者, 相抵之名, 故爲至也. 非是名川, 不能至海, 故‘決九州之名川, 通之至海’也.
○正義曰:距는 서로 맞닥뜨리는 것을 이르는 명칭이기 때문에 至라고 한 것이다. 이름난 하천이 아니면 바다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九州의 이름난 하천들을 터서 소통시켜 바다에 이르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考工記云 “匠人爲溝洫. 耜廣五寸, 二耜爲耦. 一耦之伐, 廣尺‧深尺謂之畎. 田首倍之, 廣二尺‧深二尺謂之遂.
≪周禮≫ 〈考工記〉에 “匠人은 〈田地 사이의〉 溝洫(용수로)을 만든다. 보습의 너비는 5치이고, 2개의 보습의 너비를 耦로 삼는다. 1耦로 땅을 갈아서 일으킨 너비가 1자에 깊이도 1자인 수로를 ‘畎’이라고 한다. 밭두렁의 양 끝과 반대 방향으로 너비가 2자에 깊이도 2자인 수로를 ‘遂’라고 한다.
九夫爲井, 井間廣四尺‧深四尺謂之溝. 方十里爲成, 成間廣八尺‧深八尺謂之洫.
9夫(1夫는 100畝이다.)를 井으로 삼고, 井 사이의 너비가 4자에 깊이도 4자인 수로를 ‘溝’라고 한다. 사방 10리를 成으로 삼고, 成 사이의 너비가 8자에 깊이도 8자인 수로를 ‘洫’이라고 한다.
方百里爲同, 同間廣二尋‧深二仞謂之澮.” 是畎‧遂‧溝‧洫‧澮皆通水之道也.
사방 100리를 同으로 삼고, 同 사이의 너비가 16자에 깊이도 16자인 수로를 ‘澮’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의 畎‧遂‧溝‧洫‧澮는 모두 물을 통하게 하는 길이다.
以小注大, 故從畎‧遂‧溝‧洫乃以入澮, 澮入於川, 川入於海, 是畎內之水, 亦入海也.
작은 것을 큰 것에 흘러들어가게 했기 때문에 畎‧遂‧溝‧洫을 거쳐서 澮로 들어가고, 澮는 하천으로 들어가며 하천은 바다로 들어가니, 畎 안에 있는 물도 역시 바다로 들어간다.
惟言畎‧澮, 擧大小而略其餘也. 先言決川至海, 後言濬畎至川者, 川旣入海, 然後澮得入川, 故先言川也.
畎과 澮만을 말한 것은 큰 것과 작은 것을 들고 그 나머지는 생략한 것이다. 먼저 하천을 터서 바다에 이르게 한 것을 말하고, 뒤에 畎의 수로를 파서 하천에 이르게 한 것을 말한 것은 하천이 이미 바다로 들어간 연후에 澮의 물이 하천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먼저 하천을 말한 것이다.
[疏]○傳‘艱難’至‘鮮食之’
○傳의 [艱難]에서 [鮮食之]까지
○正義曰:‘艱 難也’, 釋詁文. 禹主治水, 稷主敎播種, 水害漸除, 則有可耕之地, 難得食處, 先須敎導以救之.
○正義曰:[艱 難也] ≪爾雅≫ 〈釋詁〉의 글이다. 禹는 治水를 위주로 하고, 稷은 播種을 가르치는 것을 위주로 하였으니, 水害가 점점 제거되면 경작할 만한 땅이 있기 때문에 먹을거리를 얻기 어려운 곳을 먼저 모름지기 敎導해서 구제해야 한다.
故云 “衆難得食處, 則與稷敎人播種之.” 易得食處, 人必自能得之, 意在救人艱危之厄, 故擧難得食處以言之.
그러므로 “백성들이 먹을거리를 얻기 어려운 곳은 稷과 더불어 백성들에게 播種하는 일을 가르쳤다.”라고 한 것이다. 먹을거리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은 사람들이 필시 스스로 얻을 수 있으니, 사람들의 어렵고 위험한 災厄을 구제하는 일에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먹을거리를 얻기 어려운 곳을 들어서 말한 것이다.
於時雖漸播種, 得穀猶少, 人食未足. 故決川有魚鱉, 使人鮮食之, 言食魚以助穀也.
이때에 비록 점점 파종은 했지만, 곡식의 수확이 아직 적어서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부족하였다. 그러므로 하천을 소통시킬 때에 魚鱉이 있으면 사람들로 하여금 먹을거리로 삼게 하였으니, 물고기를 먹음으로써 부족한 곡식을 보조하게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鄭玄云 “與稷敎人種澤物菜蔬艱厄之食.” 稷功在於種穀, 不主種菜蔬也. 言后稷種菜蔬艱厄之食, 傳記未有此言也.
鄭玄은 “稷과 더불어 사람들에게 澤物(川澤에서 자랄 수 있는 식물)과 채소 등 艱厄을 극복할 수 있는 식자재를 심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稷의 공은 곡식을 심는 데 있고 채소를 심는 데 주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鄭玄은〉 “后稷이 채소 등 艱厄을 극복할 수 있는 식자재를 심었다.”라고 하였지만, 傳記에는 이런 말이 없다.
[疏]○傳‘化易’至‘居積’
○傳의 [化易]에서 [居積]까지
○正義曰:變化是改易之義. 故化爲易也.
○正義曰:變化는 改易의 뜻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化를 易이라고 한 것이다.
‘居謂所宜居積者’, 近水者居魚鹽, 近山者居林木也.
[居謂所宜居積者] 물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魚鹽을 쌓아두기 마련이고, 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林木을 쌓아두기 마련이다.
‘勉勸天下 徙有之無’者, 謂徙我所有, 往彼無鄕, 取彼所有, 以濟我之所無.
[勉勸天下 徙有之無]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옮겨 저 없는 곳으로 가져가서 거기에 있는 것을 취하여 나에게 없는 것을 마련함을 이른 것이다.
魚鹽徙山, 林木徙川澤, 交易其所宜居積, 言此遷者, 謂將物去, 不得空取彼物也.
魚鹽은 山으로 옮기고, 林木은 川澤으로 옮겨 당연히 쌓아 놓을 수 있는 것을 교역하게 하였으니, 여기서 ‘옮긴다.’라고 말한 것은 물건을 가지고 가는 것이고, 저기의 물건을 거저 취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른 것이다.
王肅云 “易居者, 不得空去, 當滿而去, 當滿而來也.”
王肅은 “쌓아둔 것을 교역하는 자는 빈손으로 가지 않고 가득 가지고 가서 〈교역하여〉 가득 가져와야 한다.”라고 하였다.
[疏]○傳‘米食’至‘治本’
○傳의 [米食]에서 [治本]까지
○正義曰:說文云 “粒, 糂也.” 今人謂飯爲米糂, 遺餘之飯, 謂之一粒‧兩粒, 是米食曰粒, 言是用米爲食之名也.
○正義曰:≪說文解字≫에 “粒은 糂(쌀알)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밥을 ‘米糂’이라 이르고, 남은 밥을 ‘一粒’이니 ‘兩粒’이니 하고 말하는데, 이것은 쌀밥을 ‘粒’이라고 하는 것이며, 쌀로 밥을 짓는 것을 이르는 명칭을 말한 것이다.
人非穀不生, 政由穀而就, 言天下由此穀, 爲治政之本也. 君子之道, 以謙虛爲德,
사람은 곡식이 아니면 살 수 없고, 정치는 곡식으로 말미암아 성취되니, 온 천하가 이 곡식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는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君子의 도리는 謙虛함으로 德을 삼는 법인데,
禹盛言己功者, 爲臣之法, 當孜孜不怠. 自言己之勤苦, 所以勉勸人臣, 非自伐也.
禹가 자기의 공을 성대하게 말한 것은 신하된 법도로서 응당 부지런하고 게으름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勤苦를 스스로 말한 것은 남의 신하된 자들을 권면하기 위함이고 자신의 공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역주
역주1 (謀)[謨] : 저본에는 ‘謀’로 되어 있으나, 汲古閣本‧武英殿本‧薈要本에 의거하여 ‘謨’로 바로잡았다.
역주2 : 저본에는 없으나, 汲古閣本‧武英殿本에 의거하여 ‘蕝’을 보충하였다.
역주3 曁稷……鮮食 : 이 문단의 풀이는 孔傳과 蔡傳이 모두 석연치 않다. 여기서는 孔疏에 의해 번역하였다.
역주4 艱食 : 蔡傳에서는 “홍수가 다스려졌지만 파종하는 초기에 백성들이 아직도 먹고 살기 어려웠다.[水平播種之初 民尙艱食]”라고 풀이하였다.
역주5 化居 : 蔡傳에서는 “쌓인 재화를 交易하여 유통시키는 것이다.[交易變化其所居積之貨]”라고 풀이하였다.
역주6 皐陶 : 저본에는 ‘皐陶’로 되어 있으나, 전후 문맥을 살펴 ‘禹’로 번역하였다.
역주7 : 저본에는 ‘益’으로 되어 있으나, 전후 문맥을 살펴 ‘禹’로 번역하였다.
역주8 (或)[惑] : 저본에는 ‘或’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本에 의거하여 ‘惑’으로 바로잡았다.
역주9 (行)[形] : 저본에는 ‘行’으로 되어 있으나, ≪漢書≫ 〈溝洫志〉 ‘泥行乘毳’에 대한 孟康의 注에 “毳形如箕”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形’으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2)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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