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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2)

상서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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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若丹朱傲하소서 惟慢遊 是好하며
丹朱처럼 오만하지 마소서. 〈丹朱는〉 오직 태만하게 노는 것만을 좋아하며,
[傳]丹朱 堯子 擧以戒之
丹朱는 堯임금의 아들이니, 그를 들어서 경계한 것이다.
○傲 字又作奡
○傲는 글자가 또 奡로 되어 있기도 한다.
傲虐 是作하며 罔晝夜頟頟하며
오만하고 포악한 짓을 하며 밤낮없이 〈악한 짓을 자행하여〉 쉬지 않으며,
[傳]傲戱而爲虐하며 無晝夜 常頟頟肆惡無休息이라
오만을 피우고 장난을 치면서 포학한 짓을 하며 밤낮없이 항상 악한 일을 자행하여 쉬지 않았다는 것이다.
罔水行舟하며 朋淫于家하여 用殄厥世하니이다
물이 없는 곳에 배를 끌고 다녔으며, 무리를 지어 집안에서 음탕하게 놀아대어, 이 때문에 그 대를 끊고 말았습니다.
[傳]朋 群也 丹朱習於無水陸地行舟 言無度 群淫於家하여 妻妾亂이라 用是絶其世하여 不得嗣
朋은 群의 뜻이다. 丹朱는 물이 없는 육지에서 배를 끌고 다니는 일을 익혔으니, 법도가 없었음을 말한 것이다. 무리 지어 집에서 음란한 짓을 하여 妻妾이 문란하였다. 이 때문에 대를 끊어서 〈그 아버지의 뒤를〉 계승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予創若時하여 娶于塗山하여 辛壬癸甲이며
저는 이와 같은 것을 경계하여, 塗山의 나라에 장가들어 辛‧壬‧癸‧甲 4일밖에 집에 못 있었고,
[傳]創 懲也 塗山 國名이라 懲丹朱之惡하여 辛日娶妻하여 至于甲日 復往治水하니 不以私害公이라
創은 懲의 뜻이다. 塗山은 나라 이름이다. 丹朱의 惡을 경계하여 辛日에 아내를 맞이하고서 甲日에 이르러서 다시 가서 물을 다스렸으니, 私로 公을 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啓呱呱而泣이나 惟荒度土功하며
啓가 앙앙 울었으나 저는 자식의 이름을 지을 겨를도 없었던 것은 오직 水土만을 크게 다스렸기 때문이며,
[傳]啓 禹子也 禹治水 過門不入하고 聞啓泣聲이나 不暇子名之 以大治度水土之功故
啓는 禹의 아들이다. 禹가 홍수를 다스릴 때에 〈자기 집〉 門前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고, 啓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자식의 이름을 지을 겨를이 없었던 것은 水土의 일을 크게 다스렸기 때문이다.
하되 至于五千하고 州十有二師하며
〈홍수를 다스려〉 五服의 제도를 도와 이루되 〈땅의 넓이가〉 사방 5,000리에 이르렀고, 州마다 12師를 두었으며,
[傳]五服 侯甸綏要荒服也 服五百里 四方相距 爲方五千里 治洪水輔成之 一州用三萬人功이니 九州二十七萬庸이라
五服은 侯服‧甸服‧綏服‧要服‧荒服이다. 服마다 500리이니 사방의 相距는 사방 5,000리인데, 홍수를 다스려서 〈五服의 제도를〉 도와 이루었다. 1州에 30,000명의 인력을 사용하였으니, 9州에 270,000명을 사용한 셈이다.
○至于五千 馬云 面五千里 爲方萬里라하고 鄭云 五服已五千이니 又弼成爲萬里라하니라
○‘至于五千’에 대하여 馬融은 “1面이 5,000리이니 사방 10,000리이다.”라 하였고, 鄭玄은 “五服이 이미 5,000리인데 또 도와서 10,000리를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州十有二師 二千五百人爲師 鄭云 師 長也라하니라
州는 12師인데, 2,500인이 師가 된다. 鄭玄은 “師는 長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外薄四海 咸建五長하니
밖으로는 四海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섯 長을 세우니,
[傳]薄 迫也 言至海 諸侯五國 立賢者一人爲方伯하여 謂之五長이니 以相統治하고 以獎帝室이라
薄은 迫(닿다)의 뜻이니, 바다에 이름을 말한 것이다. 諸侯의 다섯 나라에 어진 이 한 사람을 세워 方伯으로 삼아 이를 ‘五長’이라 이르니, 統治를 돕고 帝室을 돕게 하려고 한 것이다.
○五長 衆官之長이라
○五長은 여러 관원의 長이다.
各迪有功이어늘 苗頑하여 弗卽工하나니 帝其念哉하소서
각각 〈직무를〉 이행하여 공을 세웠건만, 오직 三苗만이 頑凶하여 관직에 취임할 수 없었으니, 황제께서는 유념하소서.”
[傳]九州五長 各蹈爲有功이어늘 惟三苗頑凶하여 不得就官하니 善惡分別이라
九州의 다섯 長들은 각각 직무를 이행하여 功을 세웠건만, 오직 三苗만이 頑凶하여 관직에 취임할 수 없었으니, 善과 惡이 분별된 것이다.
帝曰 迪朕德 時乃功惟敍니라
帝舜이 말씀하셨다. “〈지금 천하 사람들이〉 짐의 德敎를 이행하는 것은 네가 〈홍수를 다스린〉 일에 次序가 있었기 때문이다.”
[傳]言天下蹈行我德 是汝治水之功 有次序커늘 敢不念乎
천하 사람들이 나의 德敎를 이행하는 것은 네가 홍수를 다스린 일에 차서가 있었기 때문이거늘, 감히 생각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疏]‘禹曰’至‘惟敍’
經의 [禹曰]에서 [惟敍]까지
○正義曰:禹旣得帝言, 乃答帝曰 “然. 旣帝之任臣, 又言當擇人, 充滿大天之下, 旁至四海之隅, 蒼蒼然生草木之處, 皆是帝德所及.
○正義曰:禹는 이미 帝舜의 말씀을 듣고 이에 帝舜에게 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이미 황제께서 신하를 임용하시고, 또 마땅히 사람을 선택하여 하늘 아래에 가득 채워 널리 바닷가에 무성하게 풀과 나무가 자라는 곳까지 이르렀으니, 모두 황제의 덕이 미친 바입니다.
其內有萬國衆賢, 皆共爲帝臣.” 言其可用者甚衆也. “帝當就是衆賢之內, 擧而用之.
그 안에는 萬國의 여러 어진 이가 있어 모두 황제의 신하가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쓸 만한 이가 매우 많음을 말한 것이다. “황제께서는 마땅히 이들 여러 어진 이들 중에서 들어 쓰셔야 합니다.
其擧用之法, 各使陳布其言, 納受之, 以其言之所能, 從其所能而驗試之. 明顯衆人所能, 當以功之大小.
들어 쓰는 방법은 각각 그들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해서 받아들이되 그 말의 유능한 바로써 하며 그 유능한 바를 따라 시험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유능한 바를 분명하게 드러내되 마땅히 공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해야 합니다.
旣知有功, 乃賜之以車服, 以表其功有能用. 帝以此法用人, 卽在下之人, 知官不妄授, 必用度才能而使之.
이미 공이 있음을 알았으면 이에 수레와 의복을 하사하여 그 공적이 능히 쓸 만함을 표창해야 합니다. 황제께서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쓰시면 곧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벼슬이 함부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 반드시 재능을 헤아려서 사역할 것입니다.
如此, 誰敢不讓有德. 敢不敬應帝命而推先善人也. 若帝用臣不是, 不宜試驗, 不知臧否,
이와 같이 하신다면 누가 감히 덕이 있는 이에게 양보하지 않겠으며, 감히 공경히 황제의 명에 응하여 선한 사람에게 선두를 양보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황제께서 신하를 임용하기를 이렇게 하지 않으시고 시험하지 않아 선한지 불선한지를 모르신다면
則群臣遠近, 徧布同心, 而日進無功之人.” 旣戒帝擇人, 又勸帝自勤.
신하들이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두루 포진하여 날마다 공이 없는 사람을 진출시킬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미 帝舜에게 사람을 선택하는 일을 경계하고 또 帝舜에게 스스로 근로하도록 권면한 것이다.
[疏]“無若丹朱之傲. 惟慢褻之遊, 是其所好, 傲戱而爲虐, 是其所爲. 爲此惡事, 不問晝夜, 而頟頟然恒爲之無休息.
“丹朱처럼 오만하지 마소서. 오직 태만하게 노는 것만을 좋아하였고, 오만하고 장난을 치며 포악한 짓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악한 일을 하는 것을 밤낮을 따지지 않고 항상 그런 일을 쉰 적이 없었습니다.
又無水而陸地行舟, 群朋淫泆於室家之內. 用此之故, 絶其世嗣, 不得居位.
또 물이 없는데도 육지에서 배를 끌고 다녔으며, 무리를 지어 집안에서 음탕하게 놀아댔습니다. 이 때문에 그 대를 끊어 왕위에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我本創丹朱之惡若是也, 故娶於塗山之國, 歷辛‧壬‧癸‧甲四日而卽往治水.
저는 본래 丹朱의 惡이 이와 같음을 경계하였기 때문에 塗山의 나라에 장가들어 겨우 辛‧壬‧癸‧甲 4일만 지내고 곧 가서 홍수를 다스렸습니다.
其後過門不入, 聞啓呱呱而泣, 我不暇入而子名之, 惟以大治度水土之功故也.
그 뒤에 저의 집 門前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고, 啓가 앙앙 울었으나 저는 들어가서 자식의 이름을 지을 겨를도 없었던 것은 오직 水土의 일만을 크게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水土旣平, 乃輔成五服, 四面相距, 至于五千里. 州十有二師, 其治水之時, 所役人功, 每州用十有二師, 各用三萬人也.
水土가 이미 평정됨에 이에 五服의 제도를 도와 이루되 사면의 相距가 5,000리에 이르렀습니다. 州마다 12師를 두었으며, 홍수를 다스릴 때에 役事를 시킨 인원이 州마다 12師를 이용하고 각각 30,000명을 사용하였습니다.
自京師外迫及四海, 其間諸侯五國皆立一長, 迆相統領. 以此諸侯各蹈行所職, 竝爲有功, 惟有三苗頑凶, 不能就官.
京師로부터 밖으로 四海에 이르렀고, 그 사이의 諸侯 5國에는 모두 한 명의 長을 세워 서로 統領하게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제후들이 각각 맡은 직책을 이행하여 모두 공을 세웠건만, 오직 三苗만이 頑凶하여 관직에 취임할 수 없었습니다.
我以供勤之故, 得使災消沒, 帝念此事哉. 不可不自勤也.”
저는 혼신의 힘을 다하였기 때문에 천재를 소멸시킬 수 있었으니, 황제께서는 이 일을 유념하소서. 스스로 근로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帝答禹曰 “天下之人, 皆蹈行我德, 是汝治水之功, 惟有次敍故也.” 受其戒而美其功也.
帝舜이 禹의 말에 답하시기를 “천하 사람들이 모두 나의 德敎를 이행하는 것은 네가 홍수를 다스리는 일에 次序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으니, 그의 경계를 받아들이고 그의 공을 아름답게 여기신 것이다.
[疏]○傳‘光天’至‘廣遠’
○傳의 [光天]에서 [廣遠]까지
○正義曰:堯典之序, 訓光爲充, 卽此亦爲充, 言充滿大天之下也.
○正義曰:〈堯典〉의 序에서 이미 光을 充(충만)의 뜻으로 풀이하였으니, 여기의 〈光자〉 역시 充의 뜻으로, 광대한 하늘 아래에 충만함을 말한 것이다.
據其方面, 卽四隅爲遠, 至于海隅. 擧極遠之處, 言帝境所及廣遠, 其內多賢人也.
그 방면에 의거하면 곧 네 귀퉁이가 먼 곳이 되니 바닷가에 이르렀다(닿았다)는 것이다. 지극히 먼 곳을 든 것은 帝舜의 지경이 미쳐간 곳이 廣遠하고 그 안에 賢人이 많이 있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疏]○傳‘獻賢’至‘用之’
○傳의 [獻賢]에서 [用之]까지
○正義曰:釋言云 “獻, 聖也.” 賢是聖之次, 臣德不宜言聖, 故爲賢也.
○正義曰:≪爾雅≫ 〈釋言〉에 “獻은 聖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賢은 聖의 다음 단계이고, 신하의 德은 ‘聖’이라 말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賢’이라고 한 것이다.
‘萬國衆賢 共爲帝臣’, 言求臣之處多也. 帝擧是衆賢而用之, 使陳布其言, 令其自說己之所能, 聽其言而納受之,
[萬國衆賢 共爲帝臣] 신하를 구할 곳이 많음을 말한 것이다. ‘황제께서는 이 여러 현인들을 등용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각각 소견을 아뢰게 하소서.’라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의 유능한 점을 말하게 해서 그들의 말을 경청하여 받아들이고,
依其言而考試之, 顯明衆臣, 皆以功大小爲差, 然後賜車服, 以旌別其人功能事用, 是擧賢用人之法也.
그들 말에 의거하여 시험해보며, 여러 신하를 분명하게 드러내되 모두 공의 크고 작음으로써 차등을 정한 다음 수레와 의복을 하사하여 그 사람의 재능과 숙련도를 표창하여 구별하는 것이니, 이것이 어진 이를 등용하고 사람을 쓰는 방법이다.
舜典云 “敷奏以言, 明試以功.” 奏‧試二字與此異者, 彼言施於諸侯, 其人見爲國君, 故令奏言試功,
〈舜典〉에 “행정업무를 각각 아뢰게 하고 그 공적을 밝게 살펴보았다.[敷奏以言 明試以功]”라고 하였는데, 奏와 試 두 글자가 여기와 다른 점은 저기서는 제후에게 베풀어 그 사람이 國君이 됨을 말하였기 때문에 행정업무를 각각 아뢰게 하고 그 공적을 밝게 살펴보았으나,
此謂方始擢用, 故言納‧庶. 納謂受取之, 庶謂在群衆
여기서는 비로소 발탁해 임용함을 말하였기 때문에 納과 庶를 말한 것이다. 納은 받아들여서 취함을 이르고, 庶는 군중에 있음을 이른다.
[疏]○傳‘帝用’至‘流故’
○傳의 [帝用]에서 [流故]까지
○正義曰:帝用臣不是, 不以言考功, 在下知帝不分別善惡, 則無遠近徧布同心, 日日進於無功之人,
○正義曰:황제가 신하를 임용하기를 이렇게 하지 않고 아뢴 말로 공적을 상고하지 아니하여, 아래에 있는 신하들이 황제가 善惡을 구분하지 않음을 안다면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신하들이 같은 마음을 두루 펴서 날마다 공이 없는 사람을 진출시킬 것이니,
由其賢愚竝位, 優劣共流故也. 敷是布之義, 故言‘遠近布同’, 同心妄擧也.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지위에 나란히 서고 우수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이 흐름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敷는 布의 뜻이기 때문에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같은 마음을 두루 편다.”라고 말하였으니, 같은 마음으로 망령되이 천거하는 것이다.
[疏]○傳‘丹朱 堯子’
○傳의 [丹朱 堯子]
○正義曰:漢書律歷志云 “堯讓舜, 使子朱處於丹淵爲諸侯.” 則朱是名, 丹是國也.
○正義曰:≪漢書≫ 〈律曆志〉에 “堯임금은 舜에게 讓位하고 아들 朱를 丹淵에 거처하게 하여 諸侯로 삼았다.”라고 하였으니, 朱는 이름이고 丹은 나라이다.
[疏]○傳‘傲戱’至‘休息’
○傳의 [傲戱]에서 [休息]까지
○正義曰:詩美衛武公云 丹朱反之, 故‘傲戱而爲虐’也.
○正義曰:≪詩經≫ 〈衛風 淇澳〉에서 衛 武公을 아름답게 여기기를 “우스갯말을 잘하였으나 포학한 말(심한 말)은 하지 않았도다.”라고 하였는데, 丹朱는 이와 반대로 했기 때문에 “오만하고 장난치며 포학한 짓을 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頟頟, 是不休息之意. 肆, 謂縱恣也. 晝夜常頟頟然縱恣爲惡, 無休息時也.
‘頟頟’은 쉬지 않는다는 뜻이고, ‘肆’는 방자함을 이른다. 밤낮으로 항상 꾸준히 방자하게 악한 짓을 하여 쉴 때가 없었다는 것이다.
[疏]傳‘朋群’至‘得嗣’
○傳의 [朋群]에서 [得嗣]까지
○正義曰:朋輩與群聚義同, 故朋爲群也. 聖人作車以行陸, 作舟以行水, 丹朱乃習於無水而陸地行舟, 言其所爲惡事無節度也.
○正義曰:朋輩는 群聚와 뜻이 같기 때문에 朋을 群이라고 한 것이다. 聖人은 수레를 만들어 육지를 다니고 배를 만들어 물 위를 다녔는데, 丹朱는 물이 없는 육지에서 배를 끌고 다니는 일을 익혔으니 그가 한 악한 일에 절도가 없었음을 말한 것이다.
此乃稟受惡性, 習惡事也. 鄭玄云 “丹朱見洪水時人乘舟, 今水已治, 猶居舟中, 頟頟使人推行之.”
이것은 惡性을 품부 받아서 악한 일을 익힌 것이다. 鄭玄은 이르기를 “丹朱는 홍수 때에 사람들이 배를 탄 것을 보았기 때문에, 지금 홍수가 이미 다스려졌는데도 오히려 배 안에 살면서 항상 사람들에게 끌고 다니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案下句云, 予創若時, 乃勤治水, 則丹朱行舟之時, 水尙未除, 非效洪水之時人乘舟也.
그러나 下句에서 “저는 이와 같은 것을 경계하여, 이에 열심히 홍수를 다스렸다.”라고 한 것을 살펴보면, 丹朱가 배를 타고 다닐 때에 홍수가 아직 제거되지 않았으니, 홍수가 났을 때에 사람들이 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본받은 것은 아니다.
‘群淫於家’, 言群聚妻妾, 恣意淫之, 無男女之別, 故言‘妻妾亂’也. 用是之惡, 故絶其世位, 不得嗣父也.
[群淫於家] 妻妾을 떼로 모아놓고 멋대로 음란한 짓을 하여 男女의 구별이 없었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妻妾이 문란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이러한 악행 때문에 그 세습한 지위를 끊어 아버지를 계승하지 못하게 되었다.
此用‘殄厥世’一句, 禹旣見世絶, 今始言之, 以明行惡之驗. 此句非禹所創, 創之者, 創其行之惡耳.
‘그 대를 끊고 말았다.[用殄厥世]’라고 한 1句는 禹가 이미 세대가 끊어진 것을 보았으나 이제 비로소 말하여 악을 행한 징험을 밝힌 것이다. 이 句는 禹가 징계한 것이 아니고, 징계한 것은 丹朱가 행한 악한 짓을 징계한 것일 뿐이다.
[疏]○傳‘創懲’至‘害公’
○傳의 [創懲]에서 [害公]까지
○正義曰:創與懲皆是見惡自止之意, 故云 “創, 懲也.”
○正義曰:創과 懲은 모두 악한 것을 보고 스스로 그친다는 뜻이기 때문에 “創은 懲의 뜻이다.”라고 한 것이다.
哀七年左傳云 “禹會諸侯於塗山.” 杜預云 “塗山在壽春縣東北.” ‘塗山, 國名’, 蓋近彼山也.
≪春秋≫ 哀公 7년 조의 ≪左氏傳≫에 “禹가 諸侯들과 塗山에서 회합했다.”라고 하였는데, 杜預는 “塗山은 壽春縣 동북쪽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傳文에서〉 ‘塗山은 나라 이름이다.’라고 한 것은 아마 저산(塗山)에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娶于塗山’, 言其所娶之國耳, 非就妻家見妻也. 懲丹朱之惡, 故不可不勤, 故辛日娶妻, 至于甲日復往治水.
[娶於塗山] 장가간 나라를 말했을 뿐, 妻家에 가서 妻를 만나본 것은 아니다. 丹朱의 惡을 징계했기 때문에 근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辛日에 아내를 맞이하고 甲日에 이르러 다시 가서 홍수를 다스린 것이다.
孔云復往, 則已嘗治水, 而輟事成昏也. 鄭玄云 “登用之年, 始娶于塗山氏, 三宿而爲帝所命治水.”
孔安國이 ‘다시 갔다.’라고 한 것은 〈禹가〉 일찍이 홍수를 다스리다가 일을 중지하고 성혼을 했기 때문이다. 鄭玄은 “등용된 해에 비로소 塗山氏에게 장가들어 사흘을 지내고 황제의 명을 받아 홍수를 다스렸다.”라고 하였으니,
鄭意娶後始受帝命, 娶前未治水也. 然娶後始受帝命, 當云聞命卽行, 不須計辛之與甲日數多少, 當如孔說, 輟事成昏也.
鄭玄은 장가든 뒤에 비로소 황제의 명을 받았고 장가들기 전에는 홍수를 다스리지 않은 것으로 여긴 모양이다. 그러나 장가든 뒤에 비로소 황제의 명을 받았다면 당연히 ‘명을 받고 즉시 행하였다.’라고 했어야 하고, 모름지기 辛日에서 甲日까지 일수의 다소를 계산해서는 안 되니, 孔安國의 말처럼 일을 중지하고 성혼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此時禹父新殛, 而得爲昏者, 鯀放而未死, 不妨禹娶. 且治水四年, 兗州始畢, 禹娶不必在殛鯀之年也.
이때에 禹의 부친이 갓 유배되었지만 〈禹가〉 성혼할 수 있었던 것은 鯀이 추방되었으나 아직 죽지 않아 禹가 장가드는 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홍수를 다스린 지 4년 만에 兗州가 비로소 끝났으니, 禹가 장가든 때가 꼭 鯀을 유배시킨 해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疏]○傳‘啓禹’至‘功故’
○傳의 [啓禹]에서 [功故]까지
○正義曰:‘啓 禹子’, 世本文也. 孟子稱禹治水, 三過其門而不入,
○正義曰:[啓 禹子] ≪世本≫의 글이다. 孟子께서 “禹가 홍수를 다스릴 때에 세 번이나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라고 일컬었으니,
是至門而聞啓泣聲, 不暇如人父子, 名爲己子而愛念之, 以其爲大治度水土之功故也.
〈禹가〉 그 문 앞에 이르러 啓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여느 부자간처럼 자기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며 愛念할 겨를이 없었던 것은 水土의 일을 크게 다스렸기 때문이다.
訓荒爲大治, 謂去其水. 度謂量其功, 故治度連言之.
荒을 大治의 뜻으로 풀이한 것은 홍수를 제거함을 이른다. 度은 그 事功을 헤아림을 이르기 때문에 治와 度을 연달아서 말한 것이다.
[疏]○傳‘五服’至‘萬庸’
○傳의 [五服]에서 [萬庸]까지
○正義曰:據禹貢所云五服之名數, 知五服卽甸‧侯‧綏‧要‧荒服也. 彼五服每服五百里, 四面相距, 爲方五千里也.
○正義曰:〈禹貢〉에서 말한 ‘五服’의 名數에 의거하여 五服이 곧 甸服‧侯服‧綏服‧要服‧荒服이란 점을 안 것이다. 저기의 五服은 매 服이 500里이니, 4面의 상거는 사방 5,000里가 된다.
王肅云 “五千里者, 直方之數. 若其邪委曲, 動有倍加之較.” 是直路五千里也.
王肅은 “5,000里란 것은 直方의 숫자이다. 만일 경사지고 구부러진 거리를 측정한다면 왕왕 갑절로 늘어나는 숫자가 생기게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直路로 5,000里이다.
‘治洪水輔成之’者, 謂每服之內, 爲其小數, 定其差品, 各有所掌, 是禹輔成之也.
[治洪水輔成之] 매 服의 안에 小數의 구역을 만들어 그 差品(차등)을 정하고 각각 관장하는 바를 두었으니, 禹가 도와서 이룬 것이다.
周禮大司馬法, 二千五百人爲師. 每州十有二師, 通計之, 一州用三萬人功, 總計九州用二十七萬庸.
≪周禮≫ 大司馬法에 2,500人이 師가 된다고 하였는데, 매 州가 12師였으니, 통틀어 계산하면 1州가 30,000人의 인력을 사용한 셈이고, 總計하면 9州가 270,000人의 인력을 사용한 셈이다.
庸亦功也. 州境旣有闊狹, 用功必有多少. 例言三萬人者, 大都通率爲然,
庸 또한 功의 뜻이다. 州境에 이미 넓이[闊狹]의 차이가 있었으니, 인력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다소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의례적으로 ‘30,000人이다.’라고 말할 경우는 대체적 통계가 그렇게 된 것이지만,
惟言用三萬人者, 不知用功日數多少. 治水四年乃畢, 用功蓋多矣, 不知用幾日也.
‘30,000人을 사용했다.’라고 말할 경우는 인력을 사용한 일수의 다소를 알 수가 없다. 홍수를 다스린 지 4년 만에 〈兗州가〉 끝이 났으니, 인력을 사용한 것이 아마 많았을 터이지만, 며칠을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疏]鄭玄云 “輔五服而成之, 至于面方, 各五千里, 四面相距, 爲方萬里. 九州州立十二人爲諸侯師, 以佐牧.
鄭玄은 “五服을 도와 이루니, 面方에 이르기까지 각각 5,000리였으므로 4面의 상거가 사방 10,000리였다. 九州는 州에 12人을 세워 諸侯의 師를 삼아서 牧을 돕게 하였다.
堯初制五服, 服各五百里. 要服之內方四千里曰九州, 其外荒服曰四海, 此禹所受.
堯임금이 처음으로 五服을 제정하였는데, 服이 각각 500리였다. 要服의 안 사방 4,000리를 ‘九州’라 하고, 그 밖의 荒服을 ‘四海’라고 하였으니, 禹가 받은 것(版圖)이다.
地記書曰 ‘崐崘山東南, 地方五千里, 名曰神州’者. 禹弼五服之殘數, 亦每服者合五百里, 故有萬里之界‧萬國之封焉.
≪地記書≫에 ‘崐崘山의 동남쪽 사방 5,000인 것을 「神州」라고 이름한다.’란 것은 禹가 五服을 도와 이룬 殘數로서 또한 服마다 500리를 합했기 때문에 萬里의 경계와 萬國의 봉건이 있게 된 것이다.
猶用要服之內爲九州, 州更方七千里. 七七四十九, 得方千里者四十九. 其一以爲圻內, 餘四十八, 八州分而各有六.
오히려 要服의 안을 九州로 삼았는데, 州는 다시 사방 7,000리였다. 7×7=49이니 사방 1,000리를 얻는 것이 49개이다. 그중 하나는 圻內(畿內)가 되고 나머지는 48개이니, 八州가 나누어 각각 6개씩을 가진 셈이다.
春秋傳曰 言執玉帛者, 則九州之內諸侯也.
≪春秋左氏傳≫에 ‘禹임금이 群臣을 會稽에서 조회할 때에 玉帛을 가지고 와서 참가한 것이 1만 개국이나 되었다.’라고 하였으니, 玉帛을 가진 이는 九州의 안에 있는 諸侯를 말한 것이다.
其制特置牧, 以諸侯賢者爲之師. 蓋百國一師, 州十有二師, 則州千二百國也. 八州凡九千六百國, 其餘四百國在圻內.
그 제도는 특별히 牧을 설치하고 諸侯 중에서 어진 이를 師로 삼았다. 대개 100개국에 1師를 두고 州에 12師를 두었다면 州는 1,200개의 나라가 된다. 八州가 모두 9,600개 나라이고 그 나머지 400개 나라는 圻內에 있었던 것이다.
與王制之法準之, 八州通率封公侯百里之國者一, 伯七十里之國二,
≪禮記≫ 〈王制〉의 법에 준거해보면 八州에 통상적으로 公과 侯를 봉하는 100리의 나라가 하나요, 伯을 봉하는 70리의 나라가 둘이요,
子男五十里之國四, 方百里者三, 封國七有畸, 至于圻內, 則子男而已.”
子와 男을 봉하는 50리의 나라가 넷이요, 사방 100리인 것이 셋이요, 나라를 봉한 것이 일곱하고 조금 더 되며, 圻內에 이르러서는 子와 男 뿐이었다.”라고 하였다.
[疏]鄭云 “禹弼成五服, 面各五千里.” 王肅禹貢之注, 已難之矣. 傳稱萬, 盈數也, 萬國, 擧盈數而言, 非謂其數滿萬也.
鄭玄이 “禹가 五服을 도와 이루니 四面이 각각 5,000리였다.”라고 한 것에 대하여 王肅은 〈禹貢〉의 注에서 이미 힐난하였다. 孔傳에서 ‘萬’이라 칭한 것은 盈數이니, ‘萬國’은 盈數를 들어 말한 것이지 그 수가 정확히 1萬임을 이른 것은 아니다.
詩桓曰 ‘綏萬邦’, 烝民曰 ‘揉此萬邦’, 豈周之建國復有萬乎. 天地之勢, 平原者甚少, 山川所在不啻居半, 豈以不食之地, 亦封建國乎.
≪詩經≫ 〈周頌 桓〉에 ‘萬邦을 편안히 하시니’라 하고, ≪詩經≫ 〈大雅 烝民〉에 ‘이 萬邦을 다스려’라고 하였으니, 아마 周나라가 封建한 나라가 다시 萬國이 있었던가. 天地의 형세상 平原은 몹시 적고, 山川이 차지한 땅이 반을 훨씬 넘는데 어떻게 경작하지 못할 땅으로 또한 나라를 封建할 수 있겠는가.
王圻千里, 封五十里之國四百, 則圻內盡以封人, 王城宮室無建立之處, 言不顧實, 何至此也.
王圻 1,000리에 50리의 나라를 400개나 봉했다면 圻內는 온통 사람을 봉해서 王城과 宮室을 건립할 곳이 없었을 터인데, 실제를 고려하지 않고 말한 것이 어찌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百國一師, 不出典記, 自造此語, 何以可從. ‘禹朝群臣于會稽’, 魯語文也. ‘執玉帛者萬國’, 左傳文也. 採合二事, 亦爲謬矣.
〈정현이 말한〉 ‘100개의 나라에 1師를 두었다.[百國一師]’는 것은 典記(典籍)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스스로 이런 말을 지어낸 것이니, 어떻게 따를 수 있겠는가. ‘禹가 會稽에서 君臣의 조회를 받았다.[禹朝群臣於會稽]’는 것은 ≪國語≫ 〈魯語〉의 글이고, ‘玉帛을 가지고 와서 참가한 것이 1만 개국이 되었다.[執玉帛者萬國]’는 것은 ≪春秋左氏傳≫의 글인데, 두 가지 일을 따다가 합쳤으니 또한 잘못이다.
[疏]○傳‘薄迫’至‘帝室’
○傳의 [薄迫]에서 [帝室]까지
○正義曰:釋言云 “逼, 迫也.” 薄者逼近之義, 故云迫也. 外迫四海, 言從京師而至于四海也.
○正義曰:≪爾雅≫ 〈釋言〉에 “逼은 迫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薄은 逼近의 뜻이기 때문에 ‘迫의 뜻이다.’라고 한 것이다. 〈經文의〉 ‘밖으로는 사방의 바다에 이르렀다.[外迫四海]’는 것은 京師로부터 四海에 이름을 말한 것이다.
釋地云 “九夷‧八狄‧七戎‧六蠻謂之四海.” 謂九州之外也. 王制云 “五國以爲屬, 屬有長.”
≪爾雅≫ 〈釋地〉에 “九夷‧八狄‧七戎‧六蠻을 四海라 이른다.”라고 하였으니, 九州의 밖을 이른 것이다. ≪禮記≫ 〈王制〉에 “5國마다 屬을 조직하고 屬에는 長을 둔다.”라고 하였으니,
此‘建五長’, 亦如彼文, 故云 “諸侯五國立賢者一人爲方伯, 謂之五長, 以相統治, 欲以共獎帝室故也.”
여기 〈經文의〉 ‘다섯 長을 세운다.[建五長]’는 것도 저기의 글과 같기 때문에 “諸侯의 다섯 나라에 어진 이 한 사람을 세워 方伯으로 삼아 이를 ‘五長’이라 이르니, 統治를 돕고 다 함께 帝室을 도우려고 했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다.
僖元年公羊傳曰 “上無天子, 下無方伯.” 方伯, 謂周禮‘九命作伯’者也.
≪春秋≫ 僖公 원년 조의 ≪公羊傳≫에 “위에는 天子가 없고 아래에는 方伯이 없었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의〉 方伯은 ≪周禮≫ 〈春官 宗伯〉의 “九命으로 伯을 만든다.”는 것을 이른다.
王制云 “千里之外設方伯.” 方伯, 一之長, 謂周禮‘八命作牧’者也.
≪禮記≫ 〈王制〉에 “千里의 밖에 方伯을 설치한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의〉 方伯은 한 사람이 長이 된 것이니, ≪周禮≫ 〈春官 宗伯〉의 “八命으로 牧을 만든다.”는 것을 이른다.
傳言五國立一人爲方伯, 直是五國之長耳, 與彼異也. 以其是當方之長, 故傳以方伯言之.
孔傳에서 말한 ‘다섯 나라에 한 사람을 세워 方伯을 삼았다.’란 것은 바로 다섯 나라의 長일 뿐이니 저기의 것과 다르다. 그것이 方의 長에 해당하기 때문에 孔傳에서 ‘方伯’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疏]○傳‘九州’至‘分別’
○傳의 [九州]에서 [分別]까지
○正義曰:‘蹈爲有功’之長, 言蹈履典法, 之有功.
○正義曰:직무를 이행하여 功을 세운 長은 典法을 따라 행하여 공을 세움을 말한 것이다.
‘惟三苗頑凶 不得就官’, 謂舜分北三苗之時, 苗君有罪, 不得就其諸侯國君之官, 而被流於遠方也.
[惟三苗頑凶 不得就官] 舜임금이 三苗를 구분해서 유배 보낼 때에 苗의 임금은 죄를 지어 諸侯 國君의 관직에 취임하지 못하고 먼 지방으로 유배되었음을 이른 것이다.
言‘九州五長各蹈爲有功’, 則海內諸侯皆有功矣. 惟有三苗不得就官, 以見天下大治, 而惡者少耳. 頑則不得就官, 言善惡分別也.
“九州의 다섯 長들은 각각 직무를 이행하여 공을 세웠다.”라고 말하였으니, 海內의 諸侯가 모두 공을 세운 것이다. ‘오직 三苗만이 관직에 취임할 수 없었다.’는 것은 천하가 크게 다스려져서 악한 자가 적었음을 보인 것이다. 완악하면 관직에 취임할 수 없는 법이니, 善과 惡이 분별됨을 말한 것이다.
〈비록 三苗의 완악함이 있더라도〉 皐陶가 사방에 〈九德과 考績의〉 次序를 경건하게 행하고, 사방에 象刑을 시행하되 명백하게 하였다.
[傳]方 四方이라 禹五服旣成이라 皐陶敬行其九德考績之次序於四方하고 又施其法刑호되 皆明白이라 史因禹功重美之니라
方은 四方이다. 禹가 五服을 이미 완성하였기 때문에 皐陶가 九德과 考績의 차서를 사방에 경건하게 행하고, 또 法刑을 시행하되 모두 명백하게 하였다. 사관이 禹의 功으로 인하여 거듭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
[疏]‘皐陶’至‘惟明’
經의 [皐陶]에서 [惟明]까지
○正義曰:此經史述爲文, 非帝言也. 史以禹成五服, 帝念禹功, 故因美皐陶, 言禹旣弼成五服,
○正義曰:이 經文은 史官이 기술해서 글을 만든 것이니, 帝舜의 말씀이 아니다. 史官이, 禹가 五服을 이루자 帝舜이 禹의 공로를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로 인해 皐陶를 아름답게 여기어 “禹가 이미 五服을 도와 이루었기 때문에
故皐陶於其四方敬行九德考績之法, 有次敍也, 又於四方施其刑法, 惟明白也. 由禹有此大功, 故史重美之也.
皐陶가 사방에 九德과 考績하는 법을 경건히 행함에 차서가 있었고, 또 사방에 그 刑法을 시행하되 명백하게 하였다.”라고 말한 것이다. 禹로 말미암아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사관이 거듭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
[疏]○傳‘方四’至‘美之’
○傳의 [方四]에서 [美之]까지
○正義曰:皐陶爲帝所任, 徧及天下, 故方爲四方也. 天下蹈行帝德, 水土旣治, 亦由刑法彰明.
○正義曰:皐陶가 帝舜에게 임용되어 〈공적이〉 천하에 두루 미쳤기 때문에 方을 四方이라고 한 것이다. 온 천하가 帝舜의 德을 이행하고, 水土가 이미 다스려졌기 때문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刑法이 彰明해진 것이다.
若使水害不息, 皐陶法無所施, 若無皐陶以刑, 人亦未能奉法. 天下蹈行帝德, 二臣共有其功,
만일 水害가 止息되지 않았다면 皐陶의 法이 베풀어질 바가 없을 것이고, 만일 皐陶가 형법으로 다스리지 않았다면 백성들 또한 능히 法을 받들지 못했을 것이다. 온 천하가 帝舜의 德을 이행한 것은 두 신하가 함께 그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故史因帝歸功於禹, 兼記皐陶之功. 舜典與大禹謨 已美皐陶, 故言‘重美之’也.
그러므로 史官이 帝舜이 공을 禹에게 돌린 것으로 인하여 皐陶의 功까지 겸해서 기록한 것이다. 〈舜典〉과 〈大禹謨〉에서 이미 皐陶를 아름답게 여겼기 때문에 ‘거듭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傳言‘考績之次敍’者, 皐陶所言九德, 依德以考其功績, 亦是刑法之事, 故兼言也.
孔傳에서 ‘考績의 次敍’라고 말한 것은 皐陶가 말한 九德이 德에 의하여 그 功績을 상고하였으니, 역시 刑法의 일이기 때문에 겸해서 말한 것이다.
鄭云‘歸美於二臣’, 則以此經爲帝語. 此文上無所由, 下無所結, 形勢非語辭也. 故傳以爲
鄭玄이 “아름다움을 두 신하에게 돌렸다.”라고 하였으니, 이 經文을 帝舜의 말씀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위에 연유한 바가 없고 아래에 맺는 바가 없으니, 형세상 주고받은 語辭가 아니다. 그러므로 孔傳에서 “史官이 인하여 기록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予弗子 : 蔡傳에서는 ‘妻를 맞이 하고 자식을 낳는 일은 모두 顧念할 겨를이 없었고[娶妻生子 皆有所不暇顧念]’라고 풀이하였다.
역주2 弼成五服 : ‘弼成’을 孔傳에서는 “홍수를 다스려서 도와 이루었다.[治洪水輔成之]”로, 蔡傳에서는 “五服의 제도를 도와 이루게 하였다.[輔成五服之制]”로 풀이하였는데, 유독 蔡傳에 대하여 洪奭周는 ≪尙書補傳≫에서 “弼은 輔의 뜻으로 풀이하고, 또한 正의 뜻으로 풀이하는데, 弼成五服의 弼은 마땅히 正의 뜻으로 풀이해야 하니, 法度를 가지고 단속하고 政敎를 가지고 정제하는 것이 이른바 正이다. 그런데 蔡傳에서는 ‘宇內를 구획하고 다스리는 것은 신하가 독단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와서 이루게 하였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迂廻를 면치 못한 듯싶다.”라고 하였다.
역주3 [天] : 저본에는 없으나, “毛本에는 ‘災’ 위에 ‘天’자가 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天’자를 보충하였다.
역주4 善戱謔兮 不爲虐兮 : 宋代 李樗와 黃櫄이 撰한 ≪毛詩集解≫에서는 “우스갯말 속에도 妙理가 존재하여 사람들이 포학하게 여기지 않았다.[雖戱謔之間 亦有妙理存焉 而人不以爲虐也]”라고 하였다.
역주5 [○] : 저본에는 ‘○’이 없으나, 福建本‧汲古閣本에 의거하여 ‘○’을 보충하였다.
역주6 (迥)[迴] : 저본에는 ‘迥’으로 되어 있으나, 諸本에 의거하여 ‘迴’로 바로잡았다.
역주7 禹朝群臣於會稽 執玉帛者萬國 : ≪春秋左氏傳≫ 哀公 7년 조에 “禹合諸侯于塗山 執玉帛者萬國(禹임금이 塗山에 諸侯들을 모았을 때에 玉帛을 폐백으로 가지고 와서 맹약에 참가한 것이 1만 개국이나 되었다.)”이란 말이 보인다.
역주8 (爲)[州] : 저본에는 ‘爲’로 되어 있으나, 諸本에 의거하여 ‘州’로 바로잡았다.
역주9 (持)[行] : 저본에는 ‘持’로 되어 있으나, 諸本에 의거하여 ‘行’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皐陶方祗厥敍……惟明 : 蔡傳에서는 上文에 연결하여 帝舜의 말에 포함시켰고, ‘方’에 대해서는 풀이가 없다. 그러나 ≪書傳諺解≫에서는 ‘方’을 ‘始’의 뜻으로 보아 “皐陶가 바야흐로 네가 이룬 공을 공경히 이어서 바야흐로 象刑을 베풀되 분명하게 한다.[皐陶方敬承汝之功敍 方施象刑 惟明矣]”라고 해석하였다.
역주11 史因記之 : 孔傳에 “사관이 禹의 功으로 인하여 거듭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史因禹功重美之]”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상서정의(2)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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