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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3)

상서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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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甲中 第六
孔氏 傳 孔穎達 疏
惟三祀十有二月朔
[傳]湯以元年十一月崩하고 至此二十六月 三年服闋이라
伊尹 以冕服으로 奉嗣王하여 歸于亳하다
[傳]冕 冠也 逾月卽吉服이라
[疏]‘惟三’至‘於亳’
○正義曰:周制, 君薨之年屬前君, 明年始爲新君之元年, 此殷法, 君薨之年而新君卽位, 卽以其年爲新君之元年.
‘惟三祀’者, 太甲卽位之三年也. 湯以元年十一月崩, 至此年十一月爲再期, 除喪服也. 至十二月服闋. 闋, 息也.
如喪服息卽吉服. 擧事貴初始, 故於十二月朔, 以冕服奉嗣王歸於亳.
冕是在首之服, 冠內之別名, 冠是首服之大名, 故傳以‘冕’爲冠. 案王制云 “殷人冔而祭.” 大雅云 “常服黼冔.”
冔是殷之祭冠, 今云‘冕’者, 蓋‘冕’爲通名. 王制又云 “有虞氏皇而祭, 夏后氏而祭,
殷人冔而祭, 周人冕而祭.” 竝是當代別名. 殷禮不知天子幾冕, 周禮天子.
大裘之冕, 祭天尙質. 弁師惟掌五冕, 備物盡文, 惟袞冕耳, 此以冕服, 蓋以袞冕之服也.
[疏]顧氏云 “祥禫之制, 前儒不同.” 案士虞禮云 “期而小祥.” 又“期而大祥.” “.”
王肅云 “祥月之內又禫祭, 服彌寬而變彌數也.” 禮記檀弓云 “祥而縞, 是月禫, 徙月樂.”
王肅云 “是祥之月而禫, 禫之明月可以樂矣.” 案此孔傳云 “二十六月, 服闋.” 則與王肅同.
鄭玄以中月爲間一月, 云 “祥後復更有一月而禫.” 則三年之喪, 凡二十七月, 與孔爲異.


3祀(년) 12월 초하룻날에
湯임금이 元年 11월에 승하하였고, 이 26개월 만에 이르러 三年服이 끝났다.
伊尹이 冕服차림으로 嗣王을 받들어 亳으로 돌아왔다.
冕은 冠의 뜻이다. 한 달을 넘겨 곧 吉服을 입었다.
經의 [惟三]에서 [於亳]까지
○正義曰:周나라 제도에는 임금이 승하한 그 해는 전 임금에게 붙이고, 다음 해라야 비로소 새 임금의 원년이 되지만, 이 殷나라 법은 임금이 승하한 그 해에 바로 새 임금이 즉위하여, 그 해를 새 임금의 원년으로 삼았다.
[惟三祀] 太甲이 즉위한 지 3년이다. 湯임금이 〈太甲의〉 원년 11월에 승하하였고, 이해 11월에 이르러 두 돌이 되어서 喪服을 벗었고, 12월에 이르러 服이 완전히 끝났다. 闋은 息(끝나다)의 뜻이다.
이를테면 喪服이 끝나고 곧 吉服을 입게 된 것이다. 일을 거행함에 있어서는 시초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12월 초하루에 冕服 차림으로 嗣王을 받들어 亳으로 돌아온 것이다.
冕은 바로 머리에 쓰는 服飾으로서 冠의 별명이고, 冠은 바로 머리에 쓰는 복식의 總名이기 때문에 傳에서 ‘冕’을 冠이라 한 것이다. 살펴보면, ≪禮記≫ 〈王制〉에 “殷나라 사람은 冔冠 차림으로 제사를 지냈다.”라고 하였고, ≪詩經≫ 〈大雅 文王〉에는 “항상 黼裳과 殷나라 冔冠을 쓰도다.”라고 하였다.
冔冠은 殷나라의 祭冠인데, 지금 ‘冕’이라고 하였으니, 冕은 總稱이다. 〈王制〉에 또 “有虞氏는 皇冠 차림으로 제사를 지내고, 夏后氏는 收冠 차림으로 제사를 지내고,
殷나라 사람은 冔冠 차림으로 제사를 지내고, 周나라 사람은 冕冠 차림으로 제사를 지냈다.”라고 하였으니, 모두 당대의 별명이다. 殷나라 禮에 天子는 몇 종의 冕이었는지 알 수 없고, 周나라 禮에 天子는 6종의 冕服이었다.
大裘冕은 〈술이 없으니,〉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질박함을 숭상〈하므로 여기서 제외시켰다.〉 그러므로 弁師는 오직 5종의 면복만을 관장하는데, 장식물을 구비하여 문채를 최고로 호화스럽게 꾸민 것은 오직 袞冕 뿐이니, 여기서 착용한 冕服은 아마 袞冕服을 착용했을 것이다.
顧氏는 “祥祭와 禫祭의 예제에 대해서는 前儒들의 주장이 동일하지 않다.”라고 하였다. 살펴보면, ≪儀禮≫ 〈士虞禮〉에 “1년이 지나면 小祥을 지낸다.”라고 하고, 또 “1년이 지나면 大祥을 지낸다.”라고 하고, “中月에 禫祭를 지낸다.”라고 하였다.
王肅은 “大祥을 지낸 달 안에 또 禫祭를 지낸 것은 服이 관대하면 관대할수록 禮를 변경하는 일이 더욱 잦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禮記≫ 〈檀弓 上〉에는 “大祥이 지나면 縞冠을 착용하고 이 달에 禫祭를 지내며 달을 넘겨서 음악을 연주한다.”라고 하였다.
王肅은 “이것은 대상을 지낸 달에 담제를 지내는 것이니, 담제를 지낸 다음 달에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의 孔傳에 “26개월 만에 服이 끝났다.”라고 한 것을 살펴보면 王肅과 같다.
鄭玄은 ‘中月’을 한 달을 거르는 것으로 여겨 “大祥 후에 다시 한 달을 걸러서 禫祭를 지낸다.”라고 하였으니, 三年喪은 27개월이 되므로 孔傳과 다르다.


역주
역주1 皇收 : 祭冠 이름이다.
역주2 六冕 : 袞冕(곤면)‧鷩冕(별면)‧毳冕(취면)‧布冕‧玄冕‧大裘冕을 가리킨다.
역주3 中月而禫 : 大祥을 지낸 바로 그 달에 담제를 지낸다고 주장하는 說과 中을 間자의 뜻으로 보아 大祥을 지내고 한 달을 건너서 담제를 지낸다고 주장하는 說이 있기 때문에 본 번역에서는 ‘中月’을 풀지 않았다.

상서정의(3)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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