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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4)

상서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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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周公乃自以請命爲己事
爲三壇하되 同墠하고
[傳]因太王王季文王하여 請命於天이라 爲三壇이라 築土 除地 大除地하고 於中爲三壇이라
○壇 築土也 馬云 土堂이라하니라
爲壇於南方하되 北面하고 周公立焉하사
[傳]立壇上하여 對三王이라
植璧秉珪하사 乃告太王王季文王하시다
[傳]璧以禮神이라 置也 置於三王之坐 周公秉桓珪以爲贄 謂祝辭
[疏]‘旣克’至‘文王’
○正義曰:‘旣克商二年’, 卽伐紂之明年也. 王有疾病, 不悅豫, 召公與太公二公, 同辭而言曰 “我其爲王敬卜吉凶, 問王疾病瘳否.”
周公曰 “王今有疾, 未可以死近我先王, 故當須卜也.” 周公旣爲此言, 公乃自以請命之事爲己事,
除地爲墠, 墠內築壇, 爲三壇同墠. 又爲一壇於南方, 北面, 周公立壇上焉.
置璧於三王之坐, 公自執珪, 乃告大王‧王季‧文王, 告此三王之神也.
[疏]○傳‘伐紂’至‘悅豫’
○正義曰:武王以文王受命十三年伐紂, 旣殺紂, 卽當稱元年. 克紂稱元年, 知此‘二年’是‘伐紂之明年’也.
王肅亦云 “克殷明年.” 顧命云 “王有疾, 不懌.” ‘懌’, 悅也, 故不豫爲‘不悅豫’也.
何休因此爲例云 “天子曰不豫, 諸侯曰負玆, 大夫曰犬馬, 士曰負薪.”
[疏]○傳‘穆敬’至‘之辭’
○正義曰:釋訓云 “穆穆, 敬也.” ‘戚’是親近之義, 故爲近也. 武王時三公, 惟周‧召與太公耳, 知‘二公’是召公‧太公也.
言王疾恐死, 當敬卜吉凶, 周公言武王旣定天下, 當成就周道, 未可以死近我先王.
死則神與先王相近, 故言近先王. 若生則人神道隔, 是爲遠也. 二公恐王死, 欲爲之卜, 周公言王未可以死, 是“相順之辭”也.
鄭云 “戚, 憂也. 周公旣內知武王有九齡之命, 又有文王曰 , 今必瘳, 不以此終,
故止二公之卜. 云未可以憂怖我先王.” 如鄭此言, 周公知王不死, 先王豈不知乎, 而慮先王憂也.
[疏]○傳‘周公’至‘己事’
○正義曰:‘功’訓事也. 周公雖許二公之卜, 仍恐王疾不瘳, 不復與二公謀之, 乃自以請命爲己之事, 獨請代武王死也.
所以周公自請爲己事者, 周公位居冢宰, 地則近親, 脫或卜之不善, 不可使外人知悉, 亦不可苟讓, 故自以爲功也.
[疏]○傳‘因大’至‘三壇’
○正義曰:‘請命’請之於天, 而告三王者, 以三王精神已在天矣, 故“因大王‧王季‧文王以請命於天.”
三王每王一壇, 故爲‘三壇’. 壇是築土, 墠是除地, 大除其地, 於中爲三壇.
周公爲壇於南方, 亦當在此墠內, 但其處小別, 故下別言之. 周公北面, 則三壇南面可知,
但不知以何方爲耳. 鄭玄云 “時爲壇墠於豐, 壇墠之處猶存焉.”
[疏]○傳‘立壇’至‘三王’
○正義曰:禮 欲其高下均也. 神位在壇, 故“周公立壇上, 對三王”也.
[疏]○傳‘璧以’至‘祝辭’
○正義曰:周禮大宗伯云 “以蒼璧禮天.” 詩說禱旱“圭璧旣卒.” 是璧以禮神, 不知其何色也.
鄭云 “植, 古置字.” 故爲置也, 言置璧於三王之坐也. 周禮云 “公執桓圭.”
知周公秉桓圭, 又置以爲贄也. ‘告謂祝辭’, 下文是其辭也.


周公이 스스로 자신이 할 일로 삼으시어
周公은 스스로 〈武王을 대신해서 죽을〉 을 청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았다.
을 만들되 땅을 깨끗이 소제하는 것을 똑같이 하였다.
太王王季文王으로 인하여 하늘에 을 청하기 때문에 세 을 만든 것이다. ‘’은 흙을 쌓는 것이고, ‘’은 땅을 깨끗이 소제하는 것이니, 크게 땅을 소제하고 그 가운데 세 을 만든 것이다.
○‘’은 흙을 쌓는 것이니, 馬融은 “土堂이다.”라고 하였다.
남쪽 방면에 을 만들되 북쪽으로 앞을 두고 周公이 여기에 서시어
위에 서서 세 분 을 대하였다.
을 〈세 임금의 에〉 놓고 를 손에 쥐고는 太王王季文王에게 고하셨다.
을 가지고 에게 예를 올렸다. ‘’은 의 뜻이니, 세 분 의 자리에 놓은 것이다. 周公桓珪를 가지고 폐백을 삼았다. ‘’는 祝辭를 이른다.
의 [旣克]에서 [文王]까지
正義曰:‘이미 나라를 쳐서 승리한 지 2년’이란 것은 곧 를 친 그 이듬해이다. 이 질병이 있어 편찮으시자, 召公太公 두 분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우리는 을 위하여 경건히 吉凶을 점쳐 의 질병이 나을지 여부를 묻겠습니다.”라고 하니,
周公이 말씀하기를 “이 지금 병이 위중하시지만 죽음을 가지고 우리 선왕을 가까이하게 해서는 안 되오. 그런 때문에 응당 모름지기 점을 쳐야 하겠소.”라고 하였다. 周公이 이미 이런 말씀을 하고 나서는 이 스스로 〈武王을 대신해 죽게 해달라는〉 을 청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고서,
땅을 깨끗이 소제하여 터를 만들고 그 터 안에 을 쌓아 세 을 만들되 터를 똑같이 하였다. 또 하나를 남쪽 방면에 만들되 북쪽으로 앞을 두고 周公 위에 섰다.
을 세 분 의 자리에 놓고, 은 스스로 를 가지고서 곧 太王王季文王에게 고하였으니 바로 세 분 에게 고한 것이었다.
의 [伐紂]에서 [悅豫]까지
正義曰文王이 천명을 받은 지 13년 만에 武王를 쳤으며, 무왕이 이미 를 죽이고는 즉시 ‘元年’이라 칭하였다. 를 쳐서 승리하고 ‘元年’이라 칭하였으므로 이 ‘二年’이 바로 ‘를 친 그 이듬해’였음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王肅 또한 “나라를 쳐서 승리한 그 이듬해였다.”라고 하였다. 〈顧命〉에 “이 병이 있어 편치 않았다.”라고 하였으니, ‘’은 의 뜻이기 때문에 ‘不豫’를 ‘不悅豫’로 여긴 것이다.
何休는 이로 인하여 를 만들기를 “天子〈가 병이 났을 경우〉 ‘不豫’, 諸侯는 ‘負玆’, 大夫는 ‘犬馬’, 는 ‘負薪’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의 [穆敬]에서 [之辭]까지
正義曰:≪爾雅≫ 〈釋訓〉에 “穆穆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은 바로 親近의 뜻이기 때문에 ‘’으로 여긴 것이다. 武王 때의 三公은 오직 周公召公太公뿐이었으므로 ‘二公’이 바로 召公太公이란 점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召公太公은〉 의 병이 심해져 죽을까 싶기 때문에 응당 경건히 吉凶을 점쳐야 한다고 말하였고, 周公武王이 이미 天下를 안정시켰으므로 응당 나라의 大道를 성취시켜야 할 것이니, 죽음을 가지고 우리 先王을 가까이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죽으면 先王과 서로 가까이 하기 때문에 ‘先王을 가까이하게 한다.’고 말한 것이다. 만일 산다면 사람과 귀신의 길이 隔絶하니, 이는 먼 것이다. 두 武王이 죽을까 싶어 점을 치려 한 것이고, 周公武王이 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으니, 이래서 〈공안국이〉 “서로 따르는 말이다.”라고 한 것이다.
鄭玄은 “‘’은 의 뜻이다. 周公은 이미 속으로 武王은 90의 수명을 타고 난데다가 또 文王이 ‘내가 너에게 세 살을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으므로 지금 반드시 나을 것이지, 이대로 마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두 의 점치는 일을 만류하면서 ‘우리 先王을 걱정시켜드려서는 안 된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鄭玄의 이 말대로라면 周公이 죽지 않을 것을 알았는데, 先王이 어찌 모를 것이라고 하여 先王이 걱정할까 염려하였겠는가.
의 [周公]에서 [己事]까지
正義曰:‘’은 의 뜻으로 풀이한다. 周公은 비록 두 의 점치는 일을 허락하였으나, 의 병이 낫지 않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다시 두 과 도모하지 않고 스스로 을 청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아서 단독으로 武王을 대신해 죽기를 청한 것이다.
周公이 스스로 을 청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은 것은 그 직위는 冢宰요 처지는 근친이기 때문인데, 설령 점치는 것이 좋지 않더라도 외인이 알게 해서는 안 되고, 또한 구차하게 사양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事功으로 삼은 것이다.
의 [因大]에서 [三壇]까지
正義曰:‘을 청한 것’은 하늘에 청하는 것인데 세 분 에게 고한 것은 세 분 의 정신이 이미 하늘에 있기 때문에 “太王王季文王으로 인하여 하늘에 을 청했다.”라고 한 것이다.
세 분 마다 한 씩이기 때문에 세 을 만든 것이다. 은 흙을 쌓는 것이고 은 땅을 깨끗이 소제하는 것인데, 그 땅을 크게 소제하고 그 가운데 세 을 만든 것이다.
周公이 남쪽 방면에 만든 도 응당 깨끗이 소제한 이 땅에 있겠지만 다만 그 곳이 조금 구별되기 때문에 아래에서 별도로 말한 것이다. 周公이 북쪽으로 앞을 두었으니, 세 이 남쪽으로 앞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다만 어떤 방위를 위로 삼았는지는 알 수 없을 뿐이다. 鄭玄은 “이때는 땅에 설치하였으니 이 설치된 곳이 아직도 남아있다.”라고 하였다.
의 [立壇]에서 [三王]까지
正義曰에 “앉아 있는 이에게 무엇을 줄 때에는 서서 주지 않으며, 서 있는 이에게 줄 때에는 앉아서 주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그 높낮이를 균등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神位에 있기 때문에 “周公 위에 서서 세 분 을 대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의 [璧以]에서 [祝辭]까지
正義曰:≪周禮≫ 〈春官 大宗伯〉에 “푸른 구슬을 하늘에 예물로 올렸다.”라고 하고, ≪詩經≫ 〈大雅 雲漢〉에서 가뭄에 기우제를 지낸 말에 “圭璧을 이미 다 올렸거늘”이라고 하였으니, 이 구슬은 에게 예물로 올린 것인데 그것이 무슨 색깔인지는 알 수 없다.
鄭玄은 “‘’은 ‘’의 古字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을〉 의 뜻으로 여긴 것이니, 구슬을 세 분 의 자리에 놓은 것을 말한다. ≪周禮≫에 “桓圭를 잡는다.”라고 하였으니,
周公桓圭를 잡고 또 〈세 에〉 놓아서 예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告謂祝辭] 아랫글이 바로 그 축사이다.


역주
역주1 公乃自以爲功 : 林之奇(≪尙書全解≫)는 “이는 周公이 武王을 위해 비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해 비는 것이다.[是周公不爲武王禱而爲身禱]”라고 풀이하였다.
역주2 吾與爾三之期 : ≪禮記≫ 〈文王世子〉에 “文王이 병을 앓은 지 12일 만에 나았다. 文王이 武王에게 ‘네 무슨 꿈을 꾸었느냐?’ ‘上帝께서 저에게 이[齒] 아홉 개를 주는 꿈을 꾸었습니다.’ ‘옛날에 나이를 말할 때에 齒라고 하였으니, 齒는 나이를 의미한다. 나는 나이가 100이고 너는 90이니 내 너에게 나이 셋을 준다.’ 이래서 문왕은 97세를 살고 무왕은 93세를 살았다.”란 말이 보인다.
역주3 (王)[上] : 저본에는 ‘王’으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는 ‘王’이 ‘上’으로 되어 있다.”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授坐不立 授立不坐 : ≪禮記≫ 〈曲禮 上〉에 “서 있는 이에게 무엇을 줄 때에는 꿇어앉아서 주지 않으며, 앉아 있는 이에게 줄 때에는 서서 주지 않는다.[授立不跪 授坐不立]”라는 말이 보인다.
역주5 (至)[云] : 저본에는 ‘至’로 되어 있으나, “宋板에는 ‘至’가 ‘云’으로 되어 있다.”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云’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4)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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