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傳]因太王王季文王하여 請命於天이라 故로 爲三壇이라 壇은 築土요 墠은 除地니 大除地하고 於中爲三壇이라
傳
[傳]璧以禮神이라 植은 置也니 置於三王之坐라 周公秉桓珪以爲贄라 告는 謂祝辭라
疏
○正義曰:‘旣克商二年’, 卽伐紂之明年也. 王有疾病, 不悅豫, 召公與太公二公, 同辭而言曰 “我其爲王敬卜吉凶, 問王疾病瘳否.”
周公曰 “王今有疾, 未可以死近我先王, 故當須卜也.” 周公旣爲此言, 公乃自以請命之事爲己事,
除地爲墠, 墠內築壇, 爲三壇同墠. 又爲一壇於南方, 北面, 周公立壇上焉.
置璧於三王之坐, 公自執珪, 乃告大王‧王季‧文王, 告此三王之神也.
疏
○正義曰:武王以文王受命十三年伐紂, 旣殺紂, 卽當稱元年. 克紂稱元年, 知此‘二年’是‘伐紂之明年’也.
王肅亦云 “克殷明年.” 顧命云 “王有疾, 不懌.” ‘懌’, 悅也, 故不豫爲‘不悅豫’也.
何休因此爲例云 “天子曰不豫, 諸侯曰負玆, 大夫曰犬馬, 士曰負薪.”
疏
○正義曰:釋訓云 “穆穆, 敬也.” ‘戚’是親近之義, 故爲近也. 武王時三公, 惟周‧召與太公耳, 知‘二公’是召公‧太公也.
言王疾恐死, 當敬卜吉凶, 周公言武王旣定天下, 當成就周道, 未可以死近我先王.
死則神與先王相近, 故言近先王. 若生則人神道隔, 是爲遠也. 二公恐王死, 欲爲之卜, 周公言王未可以死, 是“相順之辭”也.
鄭云 “戚, 憂也. 周公旣內知武王有九齡之命, 又有文王曰
, 今必瘳, 不以此終,
故止二公之卜. 云未可以憂怖我先王.” 如鄭此言, 周公知王不死, 先王豈不知乎, 而慮先王憂也.
疏
○正義曰:‘功’訓事也. 周公雖許二公之卜, 仍恐王疾不瘳, 不復與二公謀之, 乃自以請命爲己之事, 獨請代武王死也.
所以周公自請爲己事者, 周公位居冢宰, 地則近親, 脫或卜之不善, 不可使外人知悉, 亦不可苟讓, 故自以爲功也.
疏
○正義曰:‘請命’請之於天, 而告三王者, 以三王精神已在天矣, 故“因大王‧王季‧文王以請命於天.”
三王每王一壇, 故爲‘三壇’. 壇是築土, 墠是除地, 大除其地, 於中爲三壇.
周公爲壇於南方, 亦當在此墠內, 但其處小別, 故下別言之. 周公北面, 則三壇南面可知,
但不知以何方爲
耳. 鄭玄云 “時爲壇墠於豐, 壇墠之處猶存焉.”
疏
○正義曰:禮
欲其高下均也. 神位在壇, 故“周公立壇上, 對三王”也.
疏
○正義曰:周禮大宗伯云 “以蒼璧禮天.” 詩說禱旱
“圭璧旣卒.” 是璧以禮神, 不知其何色也.
鄭云 “植, 古置字.” 故爲置也, 言置璧於三王之坐也. 周禮云 “公執桓圭.”
知周公秉桓圭, 又置以爲贄也. ‘告謂祝辭’, 下文是其辭也.
傳
周公은 스스로 〈武王을 대신해서 죽을〉 命을 청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았다.
세 壇을 만들되 땅을 깨끗이 소제하는 것을 똑같이 하였다.
傳
太王‧王季‧文王으로 인하여 하늘에 命을 청하기 때문에 세 壇을 만든 것이다. ‘壇’은 흙을 쌓는 것이고, ‘墠’은 땅을 깨끗이 소제하는 것이니, 크게 땅을 소제하고 그 가운데 세 壇을 만든 것이다.
○‘壇’은 흙을 쌓는 것이니, 馬融은 “土堂이다.”라고 하였다.
남쪽 방면에 壇을 만들되 북쪽으로 앞을 두고 周公이 여기에 서시어
璧을 〈세 임금의 壇에〉 놓고 珪를 손에 쥐고는 太王‧王季‧文王에게 고하셨다.
傳
璧을 가지고 神에게 예를 올렸다. ‘植’은 置의 뜻이니, 세 분 王의 자리에 놓은 것이다. 周公은 桓珪를 가지고 폐백을 삼았다. ‘告’는 祝辭를 이른다.
疏
○正義曰:‘이미 商나라를 쳐서 승리한 지 2년’이란 것은 곧 紂를 친 그 이듬해이다. 王이 질병이 있어 편찮으시자, 召公과 太公 두 분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우리는 王을 위하여 경건히 吉凶을 점쳐 王의 질병이 나을지 여부를 묻겠습니다.”라고 하니,
周公이 말씀하기를 “王이 지금 병이 위중하시지만 죽음을 가지고 우리 선왕을 가까이하게 해서는 안 되오. 그런 때문에 응당 모름지기 점을 쳐야 하겠소.”라고 하였다. 周公이 이미 이런 말씀을 하고 나서는 公이 스스로 〈武王을 대신해 죽게 해달라는〉 命을 청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고서,
땅을 깨끗이 소제하여 터를 만들고 그 터 안에 壇을 쌓아 세 壇을 만들되 터를 똑같이 하였다. 또 壇 하나를 남쪽 방면에 만들되 북쪽으로 앞을 두고 周公이 壇 위에 섰다.
璧을 세 분 王의 자리에 놓고, 公은 스스로 珪를 가지고서 곧 太王‧王季‧文王에게 고하였으니 바로 세 분 王의 神에게 고한 것이었다.
疏
○正義曰:文王이 천명을 받은 지 13년 만에 武王이 紂를 쳤으며, 무왕이 이미 紂를 죽이고는 즉시 ‘元年’이라 칭하였다. 紂를 쳐서 승리하고 ‘元年’이라 칭하였으므로 이 ‘二年’이 바로 ‘紂를 친 그 이듬해’였음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王肅 또한 “殷나라를 쳐서 승리한 그 이듬해였다.”라고 하였다. 〈顧命〉에 “王이 병이 있어 편치 않았다.”라고 하였으니, ‘懌’은 悅의 뜻이기 때문에 ‘不豫’를 ‘不悅豫’로 여긴 것이다.
何休는 이로 인하여 例를 만들기를 “天子〈가 병이 났을 경우〉 ‘不豫’, 諸侯는 ‘負玆’, 大夫는 ‘犬馬’, 士는 ‘負薪’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疏
○正義曰:≪爾雅≫ 〈釋訓〉에 “穆穆은 敬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戚’은 바로 親近의 뜻이기 때문에 ‘近’으로 여긴 것이다. 武王 때의 三公은 오직 周公‧召公‧太公뿐이었으므로 ‘二公’이 바로 召公과 太公이란 점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召公과 太公은〉 王의 병이 심해져 죽을까 싶기 때문에 응당 경건히 吉凶을 점쳐야 한다고 말하였고, 周公은 武王이 이미 天下를 안정시켰으므로 응당 周나라의 大道를 성취시켜야 할 것이니, 죽음을 가지고 우리 先王을 가까이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죽으면 神이 先王과 서로 가까이 하기 때문에 ‘先王을 가까이하게 한다.’고 말한 것이다. 만일 산다면 사람과 귀신의 길이 隔絶하니, 이는 먼 것이다. 두 公은 武王이 죽을까 싶어 점을 치려 한 것이고, 周公은 武王이 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으니, 이래서 〈공안국이〉 “서로 따르는 말이다.”라고 한 것이다.
鄭玄은 “‘戚’은 憂의 뜻이다. 周公은 이미 속으로 武王은 90의 수명을 타고 난데다가 또 文王이 ‘내가 너에게 세 살을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으므로 지금 반드시 나을 것이지, 이대로 마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두 公의 점치는 일을 만류하면서 ‘우리 先王을 걱정시켜드려서는 안 된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鄭玄의 이 말대로라면 周公은 王이 죽지 않을 것을 알았는데, 先王이 어찌 모를 것이라고 하여 先王이 걱정할까 염려하였겠는가.
疏
○正義曰:‘功’은 事의 뜻으로 풀이한다. 周公은 비록 두 公의 점치는 일을 허락하였으나, 王의 병이 낫지 않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다시 두 公과 도모하지 않고 스스로 命을 청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아서 단독으로 武王을 대신해 죽기를 청한 것이다.
周公이 스스로 命을 청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은 것은 그 직위는 冢宰요 처지는 근친이기 때문인데, 설령 점치는 것이 좋지 않더라도 외인이 알게 해서는 안 되고, 또한 구차하게 사양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事功으로 삼은 것이다.
疏
○正義曰:‘命을 청한 것’은 하늘에 청하는 것인데 세 분 王에게 고한 것은 세 분 王의 정신이 이미 하늘에 있기 때문에 “太王‧王季‧文王으로 인하여 하늘에 命을 청했다.”라고 한 것이다.
세 분 王이 王마다 한 壇씩이기 때문에 세 壇을 만든 것이다. 壇은 흙을 쌓는 것이고 墠은 땅을 깨끗이 소제하는 것인데, 그 땅을 크게 소제하고 그 가운데 세 壇을 만든 것이다.
周公이 남쪽 방면에 만든 壇도 응당 깨끗이 소제한 이 땅에 있겠지만 다만 그 곳이 조금 구별되기 때문에 아래에서 별도로 말한 것이다. 周公이 북쪽으로 앞을 두었으니, 세 壇이 남쪽으로 앞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다만 어떤 방위를 위로 삼았는지는 알 수 없을 뿐이다. 鄭玄은 “이때는 壇‧墠을 豐 땅에 설치하였으니 壇‧墠이 설치된 곳이 아직도 남아있다.”라고 하였다.
疏
○正義曰:禮에 “앉아 있는 이에게 무엇을 줄 때에는 서서 주지 않으며, 서 있는 이에게 줄 때에는 앉아서 주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그 높낮이를 균등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神位가 壇에 있기 때문에 “周公이 壇 위에 서서 세 분 王을 대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周禮≫ 〈春官 大宗伯〉에 “푸른 구슬을 하늘에 예물로 올렸다.”라고 하고, ≪詩經≫ 〈大雅 雲漢〉에서 가뭄에 기우제를 지낸 말에 “圭璧을 이미 다 올렸거늘”이라고 하였으니, 이 구슬은 神에게 예물로 올린 것인데 그것이 무슨 색깔인지는 알 수 없다.
鄭玄은 “‘植’은 ‘置’의 古字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植’을〉 置의 뜻으로 여긴 것이니, 구슬을 세 분 王의 자리에 놓은 것을 말한다. ≪周禮≫에 “公은 桓圭를 잡는다.”라고 하였으니,
周公이 桓圭를 잡고 또 〈세 王의 壇에〉 놓아서 예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告謂祝辭] 아랫글이 바로 그 축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