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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4)

상서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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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정의(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傳]順古道하여 我其往東征矣 我所言國家之難備矣 日思念之하라
若考作室하여 旣厎法이나 厥子乃弗肯堂이온 矧肯構
[傳]以作室喩治政也 父已致法이나 不爲其易 則難者可知
厥父菑어든 厥子乃弗肯播 矧肯穫
[傳]又以農喩 其父已菑耕其田이나 其子乃不肯播種이온 況肯收獲乎
○菑 草也 田一歲曰菑
이나 其肯曰 予有後하니 弗棄基
[傳]其父敬事創業이나 而子不能繼成其功이면 其肯言我有後하니 不棄我基業乎 今不이면 是棄之니라
肆予 曷敢不越卬하여 敉寧王大命하리오
[傳]作室農人 猶惡棄基이라 我何敢不於今 撫循文王大命以征逆乎


왕께서 또 말씀하였다. “옛 를 따라 은 〈三監을 치러 동쪽으로〉 갈 것이다. 이 어려운 점을 말할 것이니, 날마다 유념하도록 하라.
를 따라 나는 동쪽으로 가서 정벌할 것이다. 내가 말한 국가의 어려운 점이 빠짐없이 구비되어 있으니, 날마다 유념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버지가 집을 지으려고 이미 건축법을 정해놓았으나 그의 아들은 집터도 닦으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집을 지으려고 하겠는가.
집을 짓는 일을 가지고 정치하는 것을 비유하였다. 아버지가 이미 건축법을 정해놓았으나 아들은 집터도 닦으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집을 지으려고 하겠는가. 쉬운 것도 하지 않으니, 어려운 일을 〈하지 않을 것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아버지가 밭을 일구어 놓았으나 그 아들은 씨도 뿌리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곡식을 수확하려 하겠는가.
또 농사를 가지고 비유하였다. 아버지가 이미 밭을 일구어 갈아 놓았으나 그의 아들은 씨도 뿌리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곡식을 수확하려 하겠는가.
는 풀이니 개간한 지 1년된 밭을 라 한다.
그 아버지는 일을 경건히 해서 창업을 하였으나 〈아들이 능히 그 공을 이어서 이루지 못하면〉 ‘나에게 後嗣가 있으니, 나의 基業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려 하겠는가.
아버지는 일을 경건히 행해서 창업을 하였으나 아들이 능히 그 공을 이어 이루지 못하면 “나에게 후사가 있으니 나의 基業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려 하겠는가. 지금 征討하지 않으면 이는 〈基業을〉 버리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어찌 감히 내 살아생전에 寧王의 큰 을 어루만져 보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집을 짓고 농사를 짓는 사람도 오히려 基業을 버리는 것을 미워한다. 그러므로 내 어찌 감히 오늘에 있어서 文王의 큰 을 따라서 반역을 정토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역주
역주1 若昔……日思 : 蔡傳은 ‘若’은 助詞로 ‘昔’은 前日로 보아 “전일에 내가 〈三監을 치러〉 가려고 할 적에 나도 일의 어려운 점을 말하여 매일같이 생각하였으니[若昔我之欲往 我亦謂其事之難 而日思之矣]”로 풀이하였다.
역주2 子乃不肯爲堂基 況肯構立屋乎 : 兪樾은 ‘堂’을 壇의 뜻으로 보아 “經文에서 ‘堂’만 말하고 ‘堂基’는 말하지 않았는데, 傳에서 반드시 ‘基’자를 보탠 것은 그 ‘構’를 상대해서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堂 또한 반드시 構立해서 이루어진 것이니, ‘堂을 지으려 하지 않거늘, 하물며 構立하려 하겠는가.’라고 한다면 뜻에 온당하지 못함이 있을까 의심했기 때문에 ‘基’자를 보태서 그 뜻을 이룬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經文에서 왜 곧 ‘터를 닦으려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고 꼭 ‘堂을 지으려 하지 않는다.’고 하였을까? 傳의 뜻은 잘못된 것이다. 이 經文에서는 ‘堂’과 ‘構’를 가지고 상대해서 말하여 ‘흙을 쌓아 堂을 만들려 하지 않음을 보겠는데, 또 어떻게 屋을 構立할 책임을 가지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經文이 본래 극히 분명한데, 後人은 옛 제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해석을 잘못한 것이다.[經言堂 不言堂基 傳必增基字者 以其對構而言 疑堂亦必構立而成 不肯堂 矧肯構 於義未安 故增基字 以成其義也 若然則經文何不卽云不肯基而必云不肯堂乎 傳義非也 此經以堂構對言 見封土以爲堂 且不肯 又安責其構立屋乎 經文本極分明 後人不達古制 故失其解]”라고 하였다.(≪群經平議≫)
역주3 考翼 : 蘇軾(≪書傳≫)은 孔傳을 따라 “아버지는 그 일을 경건히 하나 아들이 계승하지 않으면[父雖敬其事而子不繼]”으로, 林之奇(≪尙書全解≫)는 蘇軾을 따라 “아버지는 그 일을 경건히 하나 아들이 계승하지 않는다면[父欽其事而子無以繼之]”으로 풀이하였건만, 유독 蔡傳은 ‘考’는 父의 뜻으로, ‘翼’은 敬의 뜻으로 보아 “아버지로 경건히 섬기던 분이다.[父敬事者也]”라고 풀이하였는데, 李瀷(≪書疾書≫)은 “蔡傳에서 ‘考翼’을 ‘아버지로 경건히 섬기던 분(경건히 섬기던 아버지)이다.’라고 하였고, 이어서 아랫글에 ‘하늘에 계신 武王의 혼령’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成王이 경건히 섬기던 아버지이시다. 만일 그렇다면 왜 ‘翼考’라 하지 않고, 이에 ‘考翼’이라 했을까? 나는 생각건대, ‘翼’을 敬으로 풀이한 것은 그 모습을 경건히 하기 위해서이고, ‘翼’을 輔로 풀이한 것은 그 몸을 돕기 위해서이다. ‘翼’이 몸을 돕기 위한 것은 윗글의 ‘翼于’와 같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蔡傳考翼父敬事者也 下文云 武王在天之靈 然則成王所敬事之父也 若然 何不曰翼考 而乃曰考翼 愚謂翼訓敬者 以其貌也 翼訓輔者 以其體也 翼所以輔身也 如上文翼于是也]”라고 하였다.
역주4 : 毛本에는 ‘征’으로 되어 있다.
역주5 (白)[日] : 저본에는 ‘白’으로 되어 있으나, 宋本에 의거하여 ‘日’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4)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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