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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4)

상서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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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叔得禾하니 異畝同穎이라
[傳]唐叔 成王母弟 食邑內得異禾也이요 穗也 禾各生一壟而合爲一穗
○穗 本亦作遂
獻諸天子
[傳]拔而貢之
王命唐叔하여 歸周公于東이라
[傳]異畝同穎 天下和同之象이니 周公之德所致 周公東征未還이라 命唐叔以禾歸周公이라 唐叔後封晉이라
作歸禾하니라
[傳]亡이라
[疏]‘唐叔’至‘歸禾’
○正義曰:成王母弟唐叔, 於其食邑之內得禾, 下異畝壟, 上同穎穗, 以其有異, 拔而貢於天子, 以爲周公德所感致.
於時周公東征未反, 王命唐叔歸周公於東, 命有言辭. 史敍其事, 作歸禾之篇.
[疏]○傳‘唐叔’至‘一
○正義曰:昭十五年左傳云 “叔父唐叔, 成王之母弟.” 指言“唐叔得禾.” 知其“所食邑內得異禾”也.
唐叔食邑, 書傳無文. 詩述后稷種禾, , 毛傳云 ‘穎垂’, 言穗重而垂, 是‘穎’爲穗也.
“禾各生一壟而合爲一穗.” 言其異也. 書傳云 “成王之時, 有三苗貫桑葉而生, 同爲一穗, 其大盈車, 長幾充箱,
民得而上諸成王.” 下傳云 “拔而貢之.” 若是盈車之穗, 不可手拔而貢, 孔不用書傳爲說也.
[疏]○傳‘異畝’至‘封晉’
○正義曰:禾者, 和也. 異畝同穎, 是天下和同之象, 成王以爲周公德所感致.
於時周公東征未還, 故命唐叔以禾歸周公於東也. 歸禾年月, 史傳無文, 不知在啓金縢之先後也.
王啓金縢, 正當禾熟之月. 若是前年得之, 於時王疑未解, 必不肯歸周公.
當是啓金縢之後, 喜得東土和平而有此應, 故以歸周公也. 唐叔後封於晉, 經史多矣,
傳言此者, 欲見此時未封, 知在邑內得之. 昭元年左傳稱 “成王滅唐, 而封太叔焉.”
所滅之唐, 卽晉國是也. 然則得禾之時, 未封於唐, 從後稱之爲‘唐叔’耳.
周公 旣得命禾하고 旅天子之命하여
[傳]已得唐叔之禾하고 遂陳成王歸禾之命하여 而推美成王하되 善則稱君이라
하니라
[傳]天下和同 政之善者 周公 作書하고禾名篇하여 告天下러니이라
[疏]‘周公’至‘嘉禾’
○正義曰:周公旣得王所命禾, 乃陳天子歸禾之命爲文辭, 稱此禾之善, 推美於成王. 史敍其事, 作嘉禾之篇.
[疏]○傳‘已得’至‘稱君’
○正義曰:鄭云 “受王歸己禾之命與其禾.” 以爲旣得命禾, 謂復得禾, 義當然矣.
成王歸禾之命, 必歸美周公, 周公陳歸禾之命, 又推美成王, 是‘善則稱君’之義也. ‘善則稱君’, 坊記文也.
[疏]○傳‘天下’至‘下亡’
○正義曰:‘嘉’訓善也. 言此禾之善, 故以善禾名篇. 陳天子之命, 故當布告天下,
此以善禾爲書之篇名, 後世同穎之禾, 遂名爲‘嘉禾’, 由此也.
二篇東征未還時事, 微子受命應在此篇後. 篇在前者, 蓋先封微子, 後布此書故也.


唐叔이 〈이상한〉 벼를 얻었는데, 이랑은 다르고 이삭은 같았다.
唐叔成王同母弟이다. 食邑의 안에서 이상한 벼를 얻었다. ‘’는 ‘’의 뜻이고, ‘’은 의 뜻이다. 벼가 각각 다른 이랑에서 나와서 합하여 한 이삭이 되었다.
○‘’가 어떤 에는 또 ‘()’로 되어 있다.
이것을 천자에게 바쳤다.
뽑아다 바쳤다.
唐叔에게 하여 周公을 동쪽에서 돌아오게 하셨다.
이랑은 다르고 이삭이 같은 것은 天下和同이니 周公의 소치이다. 周公東征하고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唐叔에게 명해서 벼의 일을 가지고 周公을 돌아오게 하였다. 唐叔은 뒤에 晉國에 봉해졌다.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歸禾〉를 지었다.
망실되었다.
書序의 [唐叔]에서 [歸禾]까지
正義曰成王母弟 唐叔이 그 食邑의 안에서 이상한 벼를 얻었는데, 아래쪽은 이랑을 달리하고 위쪽은 이삭을 같이하여 이상한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뽑아 天子에게 바치자 〈成王은 하늘이〉 周公에 감동한 소치라고 여겼다.
이때에 周公東征하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상태였는데, 成王唐叔에게 하여 周公을 동쪽에서 돌아오게 하였으니, 에는 言辭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歸禾을 지었다.
의 [唐叔]에서 [一穗]까지
正義曰:≪春秋左氏傳昭公 15년 조에 “叔父 唐叔成王母弟이다.”라고 하였고, “唐叔이 벼를 얻었다.”라고 가리켜 말하였기 때문에 〈공안국이〉 “食邑의 안에서 이상한 벼를 얻었다.”는 점을 알았던 것이다.
唐叔食邑에 대한 것은 書傳에 글이 없다. ≪詩經≫ 〈大雅 生民〉에 后稷이 벼를 심은 일을 서술하면서 ‘實秀’의 아래에 곧 ‘實穎’을 말하였는데, 毛傳에 “‘’은 드리워진 이다.”라고 하였다. 이삭이 무거워서 이삭이 드리워진 것을 말하니, 이 ‘’이 곧 ‘’이다.
禾各生一壟而合爲一穗’는 그 이상한 점을 말한 것이다. ≪尙書大傳≫에 “成王의 시대에 세 개의 싹이 뽕잎을 꿰뚫고 나와서 함께 한 이삭이 되었는데 크기는 수레에 가득 찼고 길이는 거의 수레의 짐칸에 찰 정도였다.
어떤 백성이 이것을 얻어서 成王에게 올렸다.”라고 하였다. 아랫 에서 “뽑아 바쳤다.”라고 하였는데, 이처럼 수레에 가득 찰 정도의 이삭을 손으로 뽑아 바친다는 것은 불가한 일이니, 孔安國은 ≪尙書大傳≫을 이용해서 말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의 [異畝]에서 [封晉]까지
正義曰:‘’는 의 뜻이다. 이랑은 다르고 이삭은 같은 것은 바로 천하가 和同할 상징인데, 成王은 하늘이 周公에 감동한 소치라고 여겼다.
이때에 周公東征하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唐叔에게 명하여 벼의 일을 가지고 周公을 동쪽에서 돌아오게 하였다. 벼의 일을 가지고 돌아오게 한 年月에 대해서는 史傳에 글이 없으니, 金縢을 열기 전이었는지 뒤였는지는 알 수 없다.
成王金縢을 연 시기는 정확히 벼가 익는 달이었다. 만일 전년에 〈이상한 벼를〉 얻었다면 이때에는 成王의 의심이 풀리지 않았으니 반드시 周公을 돌아오게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응당 金縢을 연 뒤라면 東土和平을 얻어 이런 應報가 있음을 기뻐했기 때문에 周公을 돌아오게 했을 것이다. 唐叔이 뒤에 晉國에 봉해진 사실은 經史에 많이 보인다.
그런데도 에서 굳이 이것(唐叔이 뒤에 晉國에 봉해짐)을 말한 것은, 이때에 아직 봉해지지 못하였음을 보이는 동시에 그냥 邑內에 있으면서 〈이상한 벼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春秋左氏傳昭公 원년 조에 “成王唐國을 멸하고 太叔을 봉했다.”라고 하였으니,
멸한 唐國은 곧 晉國이 이것이다. 그렇다면 〈이상한〉 벼를 얻을 때에는 아직 唐國에 봉해지지 못하였으니, 그 뒤에 그를 ‘唐叔’이라 칭했을 뿐이다.
周公이 이미 命禾(이 하사한 벼)를 얻고 天子을 진술하여
唐叔의 벼를 이미 얻고서 드디어 成王이 벼의 일로 돌아오게 한 명을 진술하여 成王에게 아름다움을 미루되, 좋은 일은 임금이 한 것인양 칭하였다.
嘉禾〉를 지었다.
天下和同은 정치의 최선이기 때문에 周公이 글을 지어 ‘嘉禾’로 편명을 해서 천하에 포고하였는데, 망실되었다.
書序의 [周公]에서 [嘉禾]까지
正義曰周公이 이미 이 명한(하사한) 벼를 얻고서 이에 天子가 벼의 일로 돌아오게 한 을 진술하여 文辭를 만들되, 이 벼의 좋은 일을 칭하여 成王에게 아름다움을 미루었는데,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嘉禾〉의 을 지었다.
의 [已得]에서 [稱君]까지
正義曰鄭玄은 “成王이 자기를 벼의 일로 돌아오게 한 과 그 벼를 받은 것이다.”라고 하여 ‘旣得命禾’를 다시 벼를 얻는 것을 이른 것으로 여겼으니, 뜻이 당연한 것이다.
成王은 벼의 일로 명하여 周公을 돌아오게 해서 반드시 아름다움을 周公에게 돌렸고, 周公成王이 벼의 일로 자신을 돌아오게 한 명을 진술하여 또 아름다움을 成王에게 미루었으니, 이것이 바로 “좋은 일은 임금이 한 것인양 칭한다.”는 뜻이다. ‘善則稱君’은 ≪禮記≫ 〈坊記〉의 글이다.
의 [天下]에서 [下亡]까지
正義曰:‘’는 의 뜻으로 풀이한다. 이 벼의 좋은 점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善禾’를 가지고 편명을 한 것이다. 天子의 명을 진술한 것이기 때문에 응당 천하에 포고해야 하니,
이것이 ‘善禾’를 가지고 ≪≫의 편명을 한 것인데, 후세에 이삭을 같이한 벼를 ‘嘉禾’라 명명한 것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東征하러 가서 아직 돌아오기 전의 일을 기록한 것이니, 微子가 명을 받은 것은 응당 이 뒤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앞에 있는 것은 아마 먼저 微子를 봉하고 뒤에 이 글을 포고하였기 때문이리라.


역주
역주1 (德)[穗] : 저본에는 ‘德’으로 되어 있으나, 傳文에 의거하여 ‘穗’로 바로잡았다.
역주2 於實秀之下 乃言實穎 : ≪詩經≫ 〈大雅 生民〉에 “實發實秀 實堅實好 實穎實栗”이라고 보인다.
역주3 [穎] : 저본에는 없으나, 毛傳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4 [穎] : 저본에는 없으나, ≪十三經注疏正字≫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5 作嘉禾 : 孔傳은 〈嘉禾〉를 周公이 지은 것으로 풀이하였으나, 孔疏는 成王이 벼의 일로 주공을 돌아오게 한 일과 주공이 이로 인해 文辭를 지은 일 등을 史官이 서술하여 〈嘉禾〉를 지은 것으로 풀이하였다.
역주6 (善)[嘉] : 저본에는 ‘善’으로 되어 있으나, “岳本과 宋板에는 ‘善’이 ‘嘉’로 되어 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嘉’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4)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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