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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4)

상서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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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甲子昧爽
[傳]是克紂之月甲子之日이니 二月四日이라이요이니 早旦이라
○昧爽 謂早旦也 馬云 昧 未旦也라하니라
[疏]傳‘是克’至‘早旦’
○正義曰:春秋主書動事, 編次爲文, 於法日月時年皆具, 其有不具, 史闕耳.
尙書惟記言語, 直指設言之日. 上篇 “戊午, 次于河朔.” 洛誥“戊辰, 王在新邑.”
與此‘甲子’, 皆言有日無月, 史意不爲編次, 故不具也. “是克紂之月甲子之日, 是周之二月四日.” 以曆推而知之也.
釋言云 “晦, 冥也.” 昧亦晦義, 故爲冥也. 冥是夜, 爽是明, 夜而未明, 謂早旦之時, 蓋鷄鳴後也. 爲下‘朝至’發端, 朝卽昧爽時也.
朝至于商郊牧野하사 乃誓하시니
[傳]이라 癸亥夜陳하고 甲子朝誓하고 將與紂戰이라
[疏]傳‘紂近’至‘紂戰’
○正義曰:傳言“在紂近郊三十里.” 或當有所據也. 皇甫謐云 “在朝歌南七十里.” 不知出何書也.
言“至于商郊牧野.” 知牧是郊上之地. 戰在平野, 故言野耳.
詩云 “于牧之野.” 禮記大傳云 “牧之野, 武王之大事.” 繼牧言野, 明是牧地.
而鄭玄云 “郊外曰野, 將戰于郊, 故至牧野而誓.” 案經“至于商郊牧野乃誓.”
豈王行已至於郊, 乃後到退適野, 誓訖而更進兵乎. 何不然之甚也.
武成云 “癸亥夜陳, 未畢而雨.” 是癸亥夜已布陳, 故甲子朝而誓衆, 將與紂戰, 故戒勅之.
左杖黃鉞하시고 右秉白旄하사 以麾曰 逖矣 西土之人
[傳]鉞 以黃金飾斧 左手杖鉞 示無事於誅 右手把旄 示有事於敎 遠也 遠矣西土之人 勞苦之
○鉞 本又作戌 馬云 白旄 旄牛尾라하니라
[疏]傳‘以’至‘苦之’
○正義曰:太公六韜云 “大柯斧重八斤, 一名天鉞.” 廣雅云 “鉞, 斧也.” 斧稱‘黃鉞’, 故知以黃金飾斧也.
鉞以殺戮, 殺戮用右手, 用左手杖鉞, 示無事於誅. 右手把旄, 示有事於敎.
其意言惟敎軍人, 不誅殺也. 把旄何以白. 旄用白者, 取其易見也.
‘逖 遠’, 釋詁文.


때는 甲子日 이른 새벽,
이는 를 쳐서 이긴 달의 甲子日이니 곧 〈나라〉 2월 4일이다. 의 뜻이요, 의 뜻이니, 이른 새벽을 가리킨다.
昧爽은 이른 새벽을 이른다. 馬融이 “는 아직 아침이 되기 전이다.”라고 하였다.
의 [是克]에서 [早旦]까지
正義曰:≪春秋≫는 주로 행동한 일들을 적어서 편차하여 글을 만들었기 때문에 書法에 있어서 日月時年이 다 구비되었고, 구비되지 못한 것은 사관이 궐략하였다.
尙書≫는 言語만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단지 말을 한 날만을 가리켰을 뿐이다. 上篇에 “戊午日에 황하 북쪽에 머물렀다.”라고 하고, 〈洛誥〉에 “戊辰日이 새로 세운 도읍에 계시다.”라고 하여,
여기의 ‘甲子’와 함께 모두 만 말하고 은 말하지 않았으니, 사관이 편차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구비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를 쳐서 이긴 달의 甲子日이니 바로 나라 2월 4일이다.”라고 한 것은 책력을 가지고 미루어서 알았던 것이다.
爾雅≫ 〈釋言〉에 “의 뜻이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의 뜻이기 때문에 의 뜻으로 여긴 것이다. 은 곧 의 뜻이고, 은 곧 의 뜻인 바, 밤이 이어져 아직 밝지 못한 것은 곧 이른 새벽의 시점을 이르니, 아마 새벽닭이 운 뒤일 것이다. 아래에서 ‘朝至’로 단서를 꺼냈으니, 가 바로 ‘昧爽’의 시점이었던 것이다.
왕께선 아침에 나라의 교외인 牧野에 이르시어 군사들에게 誓戒하셨는데,
의 수도 近郊의 30리 땅을 ‘’이라 부른다. 癸亥日 밤에 진을 치고, 甲子日 아침에 誓戒를 하고는 장차 와 싸우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의 [紂近]에서 [紂戰]까지
正義曰에서 “〈은〉 의 수도 近郊의 30리 지점에 있다.”라고 말하였으니, 혹 응당 의거한 바가 있었을 것이다. 皇甫謐은 “朝歌의 남쪽 70리 지점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어떤 책에 나왔는지 모르겠다.
나라의 교외인 땅의 들에 이르렀다.”라고 말하였으니, 이 바로 수도 근교의 땅임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전쟁이 平野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들’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詩經≫에 “의 들에서.”라고 하고, ≪禮記≫ 〈大傳〉에 “의 들에서 〈일어난 일은〉 武王의 큰일이었다.”라고 하여, 을 이어서 를 말하였으니, 분명 이것은 의 땅이었다.
鄭玄은 “郊外를 ‘’라고 하니, 장차 에서 싸우려고 했기 때문에 牧野에 이르러 서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상고하건대 經文에 “나라의 교외인 牧野에 이르러 군사들에게 誓戒하셨는데.”라고 하였으니,
아마 의 행차가 이미 교외에 이르렀다가 뒤이어 곧 들로 물러나서 서계를 마치고 다시 進兵한 것인가. 어찌 이리도 경위에 안 맞는지 모르겠다.
武成〉에 “癸亥日 밤에 진을 쳤는데 마치기 전에 비가 왔다.”라고 하였다. 이 癸亥日 밤에 이미 진을 쳤기 때문에 甲子日 아침에 군중에게 서계하였고, 장차 와 더불어 싸우려고 했기 때문에 戒勅한 것이었다.
왕께서 왼손에는 황금으로 꾸민 도끼를 들고 오른손에는 흰 깃발을 잡고서 깃발을 휘두르며 “멀리 왔도다. 서쪽 땅의 사람들아!”라고 말씀하였다.
은 황금으로 꾸민 도끼이다. 왼손으로 도끼를 든 것은 誅戮을 일삼지 않는다는 뜻을 보이기 위함이고, 오른손으로 깃발을 잡는 것은 가르침을 일삼는다는 뜻을 보이기 위함이다. 의 뜻이니, “멀리 왔도다. 서쪽 땅의 사람들아.”라고 한 것은 노고를 위로하는 의미이다.
○‘’이 어떤 에는 또 ‘’로 되어 있다. 馬融은 “‘白旄’는 旄牛의 꼬리이다.”라고 하였다.
의 [鉞以]에서 [苦之]까지
正義曰太公의 ≪六韜≫에 “큰 柯斧는 무게가 8근이나 되며, 一名天鉞’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廣雅≫에 “이다.”라고 하였으니, 는 ‘黃鉞’을 칭하기 때문에 황금으로 꾸민 도끼임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도끼는 殺戮을 하는 것이고, 殺戮은 오른 손을 사용하니, 왼손으로 도끼를 든 것은 誅戮을 일삼지 않는다는 뜻을 보이기 위함이고, 오른손으로 깃발을 잡는 것은 가르침을 일삼는다는 뜻을 보이기 위함이다.
그 뜻은 군인들을 가르치기만 하고 誅殺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깃발은 왜 흰 것을 잡았을까. 흰 깃발을 사용한 것은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 ] ≪爾雅≫ 〈釋詁〉의 글이다.


역주
역주1 紂近郊三十里地名牧 : 兪樾은 “여기서는 응당 ‘郊牧野’ 3字를 連文해야 한다. ≪爾雅≫ 〈釋地〉에 ‘邑外를 「郊」라 이르고, 郊外를 「牧」이라 이르고, 牧外를 「野」라 이른다.’고 하였으니, 이는 틀림없이 ≪尙書≫의 ‘郊牧野’ 3字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합해서 말하면 ‘郊牧野’라 하고, 생략해서 말하면 ‘牧’이라 한다.”라고 하였다.(≪群經平議≫)
역주2 (越)[鉞] : 저본에는 ‘越’로 되어 있으나, 傳文에 의거하여 ‘鉞’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4)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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