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傳]卽所識政事而法之라 爵五等은 公侯伯子男이라
傳
[傳]
地封國
에 公侯方百里
요 伯七十里
요 子男五十里
니 爲三品
이라
疏
○正義曰:爵五等, 地三品, 武王於此旣從殷法, 未知周公制禮亦然以否.
孟子曰 “北宮錡問於孟子曰 ‘周之班爵祿如何.’ 孟子曰 ‘其詳不可得聞矣, 嘗聞其略.
天子之制, 地方千里, 公侯方百里, 伯七十里, 子男五十里.’” 漢書地理志亦云 “周爵五等, 其土三等也,
公侯百里, 伯七十里, 子男五十里.” 漢世儒者多以爲然, 包咸注論語云 “千乘之國, 百里之國也.” 謂大國惟百里耳.
周禮大司徒云 “諸公之地, 封疆方五百里, 侯四百里, 伯三百里, 子二百里, 男一百里.”
蓋是周室旣衰, 諸侯相竝, 自以國土寬大, 皆違禮文, 乃除去本經, 妄爲說耳.
鄭玄之徒, 以爲武王時大國百里, 周公制禮大國五百里, 王制之注具矣.
疏
○正義曰:以重總下五事, 民與五敎‧食‧喪‧祭也. 五敎所以敎民, 故與民同句.
下句食與喪‧祭三者各爲一事, 相類而別, 故以惟目之, 言此皆聖王所重也.
論語云 “所重民食喪祭.” 以論語卽是此事, 而彼無五敎, 錄論語者自略之耳.
傳
[傳]民以食爲命하며 喪禮篤親愛하고 祭祀崇孝養하니 皆聖王所重이라
傳
[傳]言武王所修皆是
니 所任得人
이라 로 垂拱而天下治
라
疏
‘垂拱而天下治’, 謂所任得人, 人皆稱職, 手無所營, 下垂其拱, 故美其‘垂拱而天下治’也.
傳
곧 政事를 기록해서 법으로 삼은 것이다. 爵位 5등은 公‧侯‧伯‧子‧男이다.
傳
토지를 나누어 나라를 봉함에 公과 侯는 사방 100리요, 伯은 70리요, 子와 男은 50리였으니, 이것이 3品이다.
疏
○正義曰:爵位를 5등으로 나누고, 토지를 3품으로 나누었으니, 武王이 여기에서 이미 殷나라의 법을 따랐는데, 周公이 禮를 제정함에 있어서도 그랬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孟子≫ 〈萬章 下〉에 “北宮錡가 孟子에게 묻기를 ‘周나라의 爵祿을 班列함은 어떻게 했습니까?’라고 하자, 孟子가 말씀하기를 ‘그 상세한 것은 듣지 못했고 일찍이 그 대략을 들었노라.
天子의 제도는 토지가 사방 1,000리요, 公과 侯는 사방 100리요, 伯은 70리요, 子와 男는 50리였다.’고 했다.”라 하였고, ≪漢書≫ 〈地理志〉에도 “周나라의 爵位는 5등이요, 그 토지는 3등이었는데,
公과 侯는 100리요, 伯은 70리요, 子와 男은 50리였다.”라고 하였다. 漢代의 儒者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였는데, 包咸이 ≪論語≫에 주를 달기를 “千乘의 나라는 100리의 나라이다.”라고 하였으니, 大國만이 100리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周禮≫ 〈地官 大司徒〉에 “諸公의 토지는 封疆(封地)이 사방 500리요, 諸侯는 400리요, 諸伯은 300리요, 諸子는 200리요, 諸男은 100리이다.”라고 하였다.
아마 周나라 왕실이 이미 쇠미해졌을 때 諸侯들이 서로 병합하여 스스로 國土를 광대하게 가짐으로써 모두 禮文을 어긴 것인데, 이에 本經을 제거하고 망령되이 말했을 뿐이다.
鄭玄의 무리는 武王 때에 大國이 100리인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周公이 禮를 제정할 때에 大國은 500리로 하였으니, ≪禮記≫ 〈王制〉의 注가 자세하게 달려 있다.
관직을 세워 〈벼슬을 임명할 때에는〉 오직 어진 이만을 임명하고,
직위에 있으면서 일을 다스리는 것은 오직 유능한 사람에게만 맡기셨으며,
傳
직위에 있으면서 일을 다스리는 것은 반드시 유능한 사람에게 맡겼다.
傳
소중히 여긴 것은 백성과 五常의 가르침에 있었다.
疏
○正義曰:‘重’자를 가지고 아래에 있는 다섯 가지의 일을 총괄하였으니, 곧 백성과 五敎와 음식과 喪禮와 祭禮이다. 五敎는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民’과 더불어 句를 함께하였다.
아랫구의 음식 및 喪禮와 祭禮 세 가지는 각각 한 가지 일이 되어 서로 같은 類인데 분별했기 때문에 ‘惟’자를 가지고 목차를 하였으니 이는 모두 聖王이 소중히 여김을 말한 것이다.
≪論語≫에는 “소중히 여기신 것은 백성의 식생활과 喪禮와 祭禮이다.”라고 하였다. ≪論語≫의 내용은 바로 여기의 일인데 거기에 ‘五敎’가 없는 것은 ≪論語≫를 기록한 자가 스스로 생략했을 뿐이다.
傳
백성은 먹을 것을 생명으로 삼고, 喪禮를 통하여 親愛를 돈독히 하고, 祭祀를 통하여 孝養을 숭상하니, 이는 모두 聖王이 소중히 여긴 것이다.
傳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를 도탑게 행하고 忠義를 나타내게 하였다.
傳
德이 있는 사람은 벼슬을 가지고 높이고, 功이 있는 사람은 녹봉을 가지고 보답하였다.
맞잡은 손을 드리우고 앉아있어도 천하가 저절로 다스려졌다.
傳
武王이 닦는 바가 모두 이러하였는데, 직임을 맡은 자들이 적임자이기 때문에 맞잡은 손을 드리우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천하가 다스려졌다고 말한 것이다.
疏
○正義曰:≪說文解字≫에 “拱은 두 손을 마주 잡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垂拱而天下治] 직임을 맡은 자들이 적임자여서 인재들이 모두 맡은 직책을 잘 이행하여 손수 하는 일 없이 맞잡은 손을 아래로 드리우고 가만히 앉아있기 때문에 그 ‘맞잡은 손을 드리우고 있어도 천하가 저절로 다스려진 것’을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