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正義曰:旣言五者次序, 覆述次序之事, 曰美行致以時之驗, 何者是也. 曰人君行敬, 則雨以時而順之,
曰人君政治, 則暘以時而順之, 曰人君照晢, 則燠以時而順之, 曰人君謀當, 則寒以時而順之,
曰人君通聖, 則風以時而順之, 此則致上文 “各以其次敍, 庶草蕃廡”也.
疏
○正義曰:上旣言失次序, 覆述失次序之事, 曰惡行致備極之驗, 何者是也.
曰君行狂妄, 則常雨順之, 曰君行僭差, 則常暘順之, 曰君行逸豫, 則常煖順之,
曰君行急躁, 則常寒順之, 曰君行蒙闇, 則常風順之, 此卽致上文 “一極備凶, 一極無凶”也.
疏
○正義曰:此
‧‘咎’皆言‘若’者, 其所致者, 皆順其所行, 故言‘若’也.
易文言云 “雲從龍, 風從虎, 水流濕, 火就燥.” 是物各以類相應, 故知天氣順人所行以示其驗也.
其咎反於休者, 人君行不敬則狂妄, 故‘狂’對‘肅’ 也. 政不治則僭差, 故‘僭’對‘乂’也.
明不照物則行自逸豫, 故‘豫’對‘晢’也. 心無謀慮則行必急躁, 故‘急’對‘謀’也.
性不通曉, 則行必蒙闇, 故‘蒙’對‘聖’也. 鄭玄以‘狂’爲倨慢, 以對‘不敬’, 故爲慢也.
鄭‧王本‘豫’作‘舒’, 鄭云 “擧遲也.” 王肅云 “舒, 惰也.” 以對‘昭晢’, 故爲遲惰.
鄭云 “急促, 自用也.” 以‘謀’者用人之言, 故‘急’爲自用己也. 鄭云 “蒙, 見冒亂也.” 王肅云 “蒙, 瞽蒙.”
以‘聖’是通達, 故‘蒙’爲瞽蒙. ‘所見冒亂’, 言其不曉事, 與‘聖’反也. 與孔各小異耳.
傳
임금이 공경을 행하면 제때에 맞는 비가 따른다는 것이다.
임금이 바른 정치를 행하면 제때에 맞는 햇빛이 따르며,
傳
임금이 바른 정치를 행하면 제때에 맞는 볕이 따른다는 것이다.
○政治와 治職(그 직무를 다스림)은 다 같은 뜻이다.
임금이 명석하면 제때에 맞는 따뜻함이 따르며,
傳
임금이 명석하면 제때에 맞는 더위가 따른다는 것이다.
임금이 謀慮를 잘하면 제때에 맞는 추위가 따르며,
傳
임금이 謀慮를 잘하면 제때에 맞는 추위가 따른다는 것이다.
임금이 이치에 통달하면 제때에 맞는 바람이 따르는 것입니다.
傳
임금이 능히 이치에 통하면 제때에 맞는 바람이 따른다는 것이다.
疏
○正義曰:이미 다섯 가지의 차서를 말하고 나서, 다시 차서에 대한 일을 진술하였는데, “아름다운 행실이 제때에 맞는 징험을 불러온다.”고 한 것은 어떤 것인가 하면, “임금이 공경을 행하면 제때에 맞는 비가 따른다.”는 것이고,
“임금이 바른 정치를 행하면 제때에 맞는 볕이 따른다.”는 것이고, “임금이 명석하면 제때에 맞는 더위가 따른다.”는 것이고, “임금이 謀慮를 잘하면 제때에 맞는 추위가 따른다.”는 것이고,
“임금이 이치를 통하면 제때에 맞는 바람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는 윗글의 “각각 차서대로 하면 모든 풀이 번식하고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임금의 행실이 狂妄하면 항상 비만 내리는 날씨가 따르며,
傳
임금의 행실이 狂妄하면 항상 비만 내리는 날씨가 따른다는 것이다.
임금의 행실이 어긋나면 항상 볕만 나는 날씨가 따르며,
傳
임금의 행실이 어긋나면 항상 볕만 나는 날씨가 따른다는 것이다.
임금의 행실이 逸豫하면 항상 덥기만 한 날씨가 따르며,
傳
임금의 행실이 逸豫하면 항상 덥기만 한 날씨가 따른다는 것이다.
임금의 행실이 조급하면 항상 춥기만 한 날씨가 따르며,
傳
임금의 행실이 조급하면 항상 춥기만 한 날씨가 따른다는 것이다.
임금의 행실이 몽매하면 항상 바람만 부는 날씨가 따릅니다.
傳
임금의 행실이 몽매하면 항상 바람만 부는 날씨가 따른다는 것이다.
疏
○正義曰:위에서 이미 차서를 잃은 것을 말하고 나서 다시 차서를 잃은 일을 진술하였는데, “나쁜 행실이 집중적으로 일으키는 징험을 불러온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면,
“임금의 행실이 狂妄하면 항상 비만 내리는 날씨가 따른다.”는 것이고, “임금의 행실이 어긋나면 항상 볕만 나는 날씨가 따른다.”는 것이고, “임금의 행실이 逸豫하면 항상 덥기만 한 날씨가 따른다.”는 것이고,
“임금이 조급하면 항상 춥기만 한 날씨가 따른다.”는 것이고, “임금이 몽매하면 항상 바람만 부는 날씨가 따른다.”는 것이니, 이는 윗글의 “한 가지만 너무 갖추어져도 凶하고, 한 가지만 너무 없어도 凶하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疏
○正義曰:이 ‘休’와 ‘咎’에서 모두 ‘若’을 말한 것은 이르는 것이 모두 그 행하는 바를 따르기 때문에 ‘若’이라 말한 것이다.
≪周易≫ 〈文言傳〉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르며,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건조한 곳으로 번진다.”라고 하였다. 이는 만물이 각각 類로써 서로 응하기 때문에 天氣가 사람의 행하는 바에 따라 그 징험을 보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咎는 休와 상반된 것이니, 임금이 不敬을 행하면 狂妄하기 때문에 ‘狂’을 ‘肅’과 상대한 것이다. 정사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긋나기 때문에 ‘僭’을 ‘乂’와 상대한 것이다.
밝음이 사물을 비치지 않으면 행실이 스스로 逸豫하기 때문에 ‘豫’를 ‘晢’과 상대한 것이다. 마음에 謀慮가 없으면 행실이 반드시 조급하기 때문에 ‘急’을 ‘謀’와 상대한 것이다.
성품이 通曉하지 않으면 행실이 반드시 蒙闇하기 때문에 ‘蒙’을 ‘聖’과 상대한 것이다. 鄭玄은 ‘狂’을 倨慢으로 삼아 ‘不敬’과 상대했기 때문에 慢으로 여긴 것이다.
鄭玄과 王肅의 本에는 ‘豫’가 ‘舒’로 되어 있어, 鄭玄은 “거동이 더딘 것이다.”라고 하고, 王肅은 “舒는 惰의 뜻이다.”라고 하여 ‘昭晢’과 상대했기 때문에 ‘遲’와 ‘惰’로 여긴 것이다.
鄭玄은 “‘急’은 促의 뜻이니, 스스로 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謀’란 남의 말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急’은 스스로 자기의 의견을 쓰는 것으로 여겼다. 鄭玄은 “蒙은 소견이 冒亂한 것이다.”라고 하고, 王肅은 “蒙은 瞽蒙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聖’은 바로 通達한 것이기 때문에 ‘蒙’을 瞽蒙으로 여긴 것이다. ‘소견이 冒亂하다.’는 것은 일을 깨닫지 못함을 말하니, ‘聖’과 반대이다. 〈鄭玄과 王肅은〉 孔安國과 각각 조금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