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尙書注疏(5)

상서정의(5)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상서정의(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戊辰 在新邑하사
[傳]成王旣受周公誥하고 遂就居洛邑하니 以十二月戊辰晦到
○王在新邑 馬孔絶句 鄭讀王在新邑烝이라
러니 文王 騂牛一이며 武王 騂牛一이러라 王命作冊하신대 祝冊하니 러라
[傳]明月 夏之仲冬이니 始於新邑烝祭 故曰烝祭歲라하니라 古者 褒德賞功 必於祭日하여 示不專也
特加文武各하고尊周公하여 立其後爲魯侯
하여 入太室하여하시다
[傳]王賓異周公하고 殺牲精意以享文武하되 皆至其廟親告也 太室 淸廟 鬯告神이라
○王賓絶句 殺禋絶句 一讀連咸格絶句 太室 馬云廟中之夾室이라하니라


戊辰日이 새로 세운 도읍에 계시면서
成王이 이미 周公를 받아들이고 드디어 洛邑으로 가서 거주하였으니, 12월 戊辰日 그믐에 당도한 것이었다.
○‘王在新邑’은 馬融孔安國를 끊은 것이고, 鄭玄은 ‘王在新邑烝’으로 를 끊어 읽었다.
烝祭歲首에 지내되, 文王에게는 붉은 소 한 마리이고, 武王에게도 붉은 소 한 마리였다. 하여 冊書를 지으라 하시니, 史官祝文冊書를 적었는데, 周公을 〈높이고〉 그 후계자를 세운다는 것만을 고하였을 뿐이다.
明月(다음달)’은 나라의 〈달력으로 계산하면〉 ‘仲冬’이니, 처음으로 새로 세운 도읍에서 烝祭를 지냈기 때문에 “烝祭歲”라고 한 것이다. 옛날에는 을 포장하고 을 포상하는 일을 반드시 제삿날에 해서 專擅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였다.
특별히 文王武王에게 각각 소 한 마리씩을 올리고서 “周公을 높이고 그 후계자를 세워 魯侯로 삼는다.”는 것만을 아뢰었다는 것이다.
이 〈周公을〉 손님으로 삼고서 희생을 잡아 정성어린 뜻을 담아가지고 모두 〈그 사당에〉 이르러서, 太室에 들어가 직접 降神禮를 행하셨다
周公을 손님으로 삼아 다른 신하들과 다르게 대우하고, 희생을 잡아 정성어린 뜻을 담아서 文王武王에게 제향을 올리되 모두 그 사당에 이르러서 친히 고하였다는 것이다. ‘太室’은 바로 淸廟요, ‘’는 울창주를 가지고 에게 고하는 것이다.
○‘王賓’에서 를 끊고, ‘殺禋’에서 를 끊었다. 한편에서는 ‘咸格’까지 연결해서 를 끊어 읽었다. ‘太室’은 馬融이 “사당 안의 夾室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烝祭歲 : 蘇軾(≪書傳≫)은 “이해에 비로소 겨울 烝祭를 洛邑에서 지냈다.[是歲 始冬烝於洛]”로, 朱祖義(≪尙書句解≫)는 “친히 烝禮를 행하여 文王과 武王을 한 해가 다하는 날에 제사 지냈다.[親行烝禮 祭文武於歲盡之日]”라고 풀이하였다.
역주2 : 林之奇(≪尙書全解≫)는 “‘歲’를 先儒(孔安國)가 ‘明月’은 夏나라의 仲冬이다.’고 한 것은 그의 생각이 아마 夏나라의 仲冬이 周나라의 正月이니 바로 歲首이기 때문에 ‘歲’라 한 모양이다.[歲先儒以爲明月夏之仲冬 其意以謂夏之仲冬於周之正月是爲歲首 故曰歲]”라고 하였고, 蔡傳은 ‘해마다 거행하는 제사[歲擧之祭]’로 보았다.
역주3 惟告周公其後 : 蔡傳은 “‘惟告周公其後’란 것은 祝冊에 기재한 내용이 다른 것은 언급하지 않고 오직 周公이 뒤에 머물러서 지키는 뜻만을 고한 것이니, 그 일을 중히 여긴 때문이다.[惟告周公其後者 祝冊所載 更不他及 惟告周公留守其後之意 重其事也]”라고 풀이하였다.
역주4 [一] : 저본에는 없으나, 宋兩浙東路茶鹽司本‧宋慶元間建安魏縣慰宅本에 의거하여 ‘一’을 보충하였다.
역주5 (曰)[白] : 저본에는 ‘曰’로 되어 있으나, “古本‧葛本에는 ‘曰’이 ‘白’으로 되어 있으니, 疏와 부합한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白’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王賓……咸格 : 蔡傳은 “제후들은 왕이 犧牲을 잡아 조상의 사당에 〈정결하게〉 제사 지내기 때문에 모두 이른 것이다.[諸侯 以王殺牲祭祖廟 故咸至也]”라고 풀이하였다.

상서정의(5)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