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道는 어디에서나 德을 유념하여 안일함이 없음을 歎美한 것이다. 군자도 외려 그러하거든 하물며 王者야 말할 것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역주
역주1嗚呼君子所其無逸 :
蘇軾(≪書傳≫)은 ‘所’를 處의 뜻으로 보아 “군자는 직위에 처하여 정사를 하니 거기에는 스스로 안일함이 없다.[君子處位爲政 其無自逸豫也]”로, 呂祖謙(≪增修東萊書說≫)은 “君子가 無逸을 처소로 삼는 것은 이를테면 물고기가 물에서, 짐승이 숲에서 떠날 수 없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惟君子以無逸爲所 如魚之於水 獸之於林 有不可得而離者焉]”라고 하였는데, 蔡傳은 呂祖謙을 따랐다. 袁仁(≪尙書砭蔡編≫)은 “蔡註에서 ‘所’를 處의 뜻으로 풀이한 것은 呂東萊(呂祖謙)의 說에 근거한 것인데, 당시 朱晦翁(朱熹)도 그 풀이가 너무 교묘한 점을 조롱하였다. 살펴보면, ≪說文解字≫에서 ≪詩≫의 ‘伐木所所(漢代 사람은 ‘許許’를 ‘所所’로 발음함)’를 인용하여 ‘所’를 ‘힘쓰는 것[用力]’으로 풀이하였다. 楊用修(明代 楊愼)는 ‘所는 勉과 같다.’고 하였다. 西土 사람들은 일에 힘쓰는 것을 ‘所’라고 일렀다. 〈召誥〉의 ‘王敬作所’는 이와 뜻이 같으니, 明順함을 깨달을 것 같다.[註訓所爲處 本呂東萊之說 當時朱晦翁亦譏其太巧 按說文引詩伐木所所 訓所爲用力 楊用修云 所猶勉也 西土人謂用力于有事爲所 召誥王敬作所 與此義同 似覺明順]”라고 하였다.
역주2所其無逸 :
明代 王夫之(≪尙書引義≫)는 “≪書≫에서 말한 ‘所其無逸’은 안일해서는 안 될 바를 안일하지 말라고 말한 것인데, 東萊 呂氏는 이를 해석하기를 ‘임금은 無逸을 처소로 삼아야 한다.’고 하니, 蔡氏는 그 말의 교묘함을 기뻐하고 따라서 〈召誥〉의 ‘作所不可不敬德’이란 글을 구부러뜨리고 글귀를 쪼개서 부회하기를 ‘왕은 공경을 처소로 삼는다.’고 했다.[書云所其無逸 言勿逸其所不可逸者也 而東萊呂氏爲之釋曰 君以無逸爲所 蔡氏喜其說之巧 因屈召誥作所不可不敬德之文 破句以附會之曰 王敬作所]”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