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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5)

상서정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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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정의(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라하여늘 玆迪彛 敎文王蔑德하여 降于國人이니라
[傳]有五賢臣이나 猶曰其少하여 無所能往來로되
而五人 以此道法으로 敎文王以精微之德하여 下政令於國人이니 言雖聖人이라도 亦須良佐


또 ‘〈신하로는 인원수가 적어서〉 능히 왕래〈하면서 빈틈없이 일을 다스릴〉 수 없다.’고 하였으나, 〈다섯 신하들은〉 이 道法을 가지고 文王精微으로써 가르쳐서 〈政令이〉 國人에게 내려가도록 하였다.
다섯 어진 신하를 소유하였으나 외려 ‘〈인원수가〉 적어서 능히 왕래〈하면서 빈틈없이 일을 다스릴〉 수 없다.’고 하였으나,
다섯 사람들은 이 道法을 가지고 文王精微으로써 가르쳐서 政令國人에게 내려가도록 하였으니,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또한 어진 보좌를 필요로 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又曰……降于國人 : 蔡傳은 “蔑은 無의 뜻이다. 夏僎(≪尙書詳解≫)이 말하기를 ‘周公이 앞에서 이미 文王의 興起는 이 다섯 신하에게 근거를 둔 것으로 말했기 때문에 다시 앞의 뜻을 뒤집어서 말하기를 「만약 이 다섯 신하들이 文王을 위해 여기에 분주히 오가며 常敎로 계도하지 않았더라면 文王 또한 德이 國人에게 내려가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하였다. 周公께서 반복하여 그 뜻을 밝혔기 때문에 ‘又曰’로 말끝을 바꿔서 말씀하신 것이다.[蔑 無也 夏氏曰 周公前旣言文王之興 本此五臣 故又反前意而言曰 若此五臣者 不能爲文王 往來奔走於此 導迪其常敎 則文王亦無德降及於國人矣 周公 反覆以明其意 故以又曰 更端發之]”라고 풀이하였다.
역주2 無能往來 : 宋代 夏僎(≪尙書詳解≫)은 “先儒(孔安國)는 여기의 ‘又曰’을 文王이 스스로 한 말로 여겼고, 唐나라 孔氏는 확대 해석하기를 ‘文王은 이미 어진 신하 다섯 명을 소유하였으나 다시 말하기를 「나의 어진 신하가 외려 적어서 왕래할 수가 없다.」고 하였는데, 다섯 사람은 이 道法을 가지고 文王으로 하여금 精微한 德으로써 國人에게 政令을 내리게 했다.’고 하였으니, 그 뜻대로라면 ‘玆迪彛’를 1句로 ‘敎文王蔑德’을 1句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玆迪彛’를 ‘此道法’으로 삼으면 文理가 이미 雅順하지 못한데, 하물며 ‘無能往來’를 文王이 스스로 한 말로 삼아 ‘어진 신하가 적어서 왕래할 수가 없다.’고 한다면, 文王이 이 다섯 사람을 경시한 것 같다. 그러므로 감히 이 해석을 따르지 못하겠다.[先儒于此又曰 乃以爲此文王所自言 唐孔氏廣之謂 文王旣有賢五人 又復言曰 我知得賢臣猶少 無所能往來 五人以此道法敎文王以精微妙蔑之德 下政令于國人 此其意 則以玆迪彛爲一句 以敎文王蔑德爲一句 夫以玆迪彛爲此道法 文理旣不雅順 況以無能往來 爲文王自言 爲賢臣少無所能往來 則文王若輕此五人者 故不敢從]”라고 반박한 반면, 呂祖謙(≪增修東萊書說≫)은 孔傳처럼 “인재가 적어서 임금과 백성들 사이를 왕래할 수가 없었다.[人材之少 無能往來君民之間]”로 풀이하였고, 淸代 毛奇齡(≪尙書廣聽錄≫)은 ‘無能往來’를 1句로, ‘玆迪彛’를 1句로, ‘敎文王蔑德’을 1句로, ‘降于國人’을 1句로 하고서 ‘蔑德’은 隱微한 德이라고 풀이하기도 하였다.

상서정의(5)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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