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尙書注疏(5)

상서정의(5)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상서정의(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曁汝奭으로 其濟小子하리라 同未在位하리니 하라
[傳]我新還政이나 今任重在我小子旦이니 不能同於四이어니와 若遊大川하니
我往 與汝奭으로 其共濟渡成王하리라 同於未在位卽政時 汝大無非責我留하라
이어늘 耉造德 不降하니 我則鳴鳥 不聞이온 矧曰其有能格
而老成德不降意爲之하니 我周則鳴鳳不得聞이온 況曰其有能格于皇天乎
[疏]‘今在’至‘能格’
○正義曰:周公言 “我新還政成王, 今任之重者, 其在我小子之身也.
我不能同於四人輔文武, 使有大功德, 但苟求救溺而已. 譬如遊於大川, 我往 與汝奭其共濟渡小子成王.
用心輔弼, 同於成王未在位之時, 恐其未能嗣先人明德. 我當與汝輔之, 汝大無非責我之留也.
我留與汝輔王者, 欲收敎無自勉力不及道義者. 我今欲立此化, 而老成德之人不降意爲之,
我周家則鳴鳳之鳥尙不得聞知, 況曰其有能格於皇天者乎.”
[疏]○傳‘我新’至‘我留’
○正義曰:周公旣已還政, 則是捨重任矣. 而猶言“今任重在我小(人)[子]旦”者, 周公旣攝王政, 又須傳授得人.
若其不能負荷, 仍是周公之責, 以嗣子劣弱, 故言“今任重猶在我小子旦”也.
彼四人者, 能翼贊初基, 佑成王業, 我不能同於四人, 望有大功, 惟求救弱而已.
詩云 “泳之遊之.” 左傳稱“閻敖遊湧而逸”, 則‘遊’者入水浮渡之名.
譬若成王在大川, 我往與汝奭其同共濟渡成王. 若云從此向川, 故言‘往’也.
[疏]○傳‘今與’至‘天乎’
○正義曰:王朝之臣, 有不勉力者. 今與汝留輔成王者, 正欲收斂敎誨.
無自勉力不及道義者, 當敎之勉力, 使其及道義也. 我欲成立此化, 而老成德之人, 不肯降意爲之.
我周家則鳴鳳尙不聞知, 況曰其有能如伊尹之輩, 使其功格於皇天乎. 言太平不可冀也.
經言“耇造德不降”者, 周公以己年老應退而留, 因卽言己類.
言己若退, 則老成德者, 悉皆退自逸樂, 不肯降意爲之. 政無所成, 祥瑞不至, 我周家則鳴鳳不得聞.
則鳳是難聞之鳥, 必爲靈瑞之物, 故以‘鳴鳥’爲鳴鳳. 孔子稱“鳳鳥不至.” 是鳳鳥難聞也.
詩大雅卷阿之篇, 歌成王之德, 其九章曰 “鳳皇矣, 于彼高岡.”
鄭云 “因時鳳皇至, 固以喩焉.” 則成王之時, 鳳皇至也.
大雅正經之作, 多在周公攝政之後, 成王卽位之初, 則周公言此之時已鳳皇至, 見太平矣,
而復言此者, 恐其不復能然, 故戒之. 此經之意, 言功格上天, 難於致鳳, 故以鳴鳳, 之格天.
案禮器云 “升中于天, 而鳳皇降, 龜龍假.” ‘升中’, 謂功成告天也.
如彼記文, 似功至於天, 鳳皇乃降, 此以鳴鳳易致, 況格天之難者乎.
記以龍鳳有形, 是可見之物, 故以鳳降龍至, 爲成功之驗, 非言成功告天, 然後此物始至也.


지금 나 小子 에 있어서는 상황이 큰 냇물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으니, 내가 〈큰 냇물을 향해〉 감에 당신 과 함께 小子(成王)를 도와 잘 건네주어야 할 뿐이다. 〈그러니 마음을 써서 보필하기를 成王이 아직〉 왕위에 있지 못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할 것이니, 나의 머무르는 것을 크게 나무라지 말도록 하라.
나는 이제 막 〈成王에게〉 정권을 돌려주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무거운 짐이 나 小子 에게 있으니, 나는 네 사람이 〈文王武王을 보필하여 큰 공적을 세운 것처럼〉 할 수는 없거니와 상황이 큰 냇물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으니,
내가 〈큰 냇물을 향해〉 감에 너 과 함께 成王을 도와 잘 건네주리라. 〈마음을 써서 보필하기를 成王이 아직〉 왕위에 앉아 집무하지 못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할 것이니, 너는 내가 머물러있는 것을 크게 그르다고 나무라지 말도록 하라는 것이다.
朝臣 중에서〉 스스로 힘쓰지 않아 〈道義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을 거두어 〈가르치려는〉 것이건만, 노성한 사람이 뜻을 굽혀 하려들지 않으니, 우리 나라는 봉황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공적이 하늘에 이를 수 있다고 하겠는가.
지금 그대와 함께 머물러서 成王을 보필하고자 하는 것은 〈朝臣 중에서〉 스스로 힘쓰지 않아 道義에 미치지 못한 자들을 거두어 가르쳐 이 교화를 성립시키고자 하는 것이건만,
노성한 덕을 가진 사람이 뜻을 굽혀 하려들지 않으니, 우리 나라는 봉황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할 것이거늘, 하물며 공적이 하늘에 이를 수 있다고 하겠는가라는 것이다.
의 [今在]에서 [能格]까지
正義曰周公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나는 이제 막 成王에게 정권을 돌려주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무거운 짐이 나 小子의 몸에 있다.
나는 네 사람이 文王武王을 보필하여 큰 공적을 세우게 한 것처럼 할 수는 없고, 다만 물에 빠진 사람을 구제하는 방법을 구할 뿐이다. 비하자면 큰 냇물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은 상황이므로 내가 〈큰 냇물을 향해〉 감에 너 과 함께 小子成王을 도와 잘 건넬 것이다.
마음을 써서 보필하기를 成王이 아직 왕위에 앉아 집무하지 못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해야 할 것이니, 先人의 밝은 을 잘 계승하지 못할까 두렵다. 나는 응당 너와 함께 보필해야 할 것이니, 너는 내가 머물러있는 것을 크게 그르다고 나무라지 말도록 하라.
내가 머물러서 너와 함께 을 보필하고자 하는 것은 〈朝臣 중에〉 스스로 힘쓰지 않아 道義에 미치지 못한 자들을 거두어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러한 교화를 성립시키고자 하는 것이건만, 노성한 덕을 가진 사람이 뜻을 굽혀 하려들지 않으니,
德政이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 나라는 봉황의 울음소리도 오히려 듣지 못할 것이거늘, 하물며 공적이 하늘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겠는가.”
의 [我新]에서 [我留]까지
正義曰周公은 이미 정권을 돌려주었으므로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셈인데도 외려 “지금도 여전히 무거운 짐이 나 小子 에게 있다.”라고 말한 것은 周公이 이미 王政을 섭행한 경험이 있는데다가 또 모름지기 무거운 짐을 전해줄 사람을 만나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만일 능히 부담시키지 못한다면 여전히 周公의 책임인데, 嗣子劣弱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지금도 무거운 짐이 외려 나 小子 에게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저 네 사람은 능히 나라의 기초를 다지는 일을 돕는 한편, 王業을 도와 이루어놓았으니, 나는 능히 네 사람과 같게 하여 큰 공을 기대할 수는 없고, 오직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질 방법을 구할 뿐이다.”라고 한 것이다.
詩經≫에 “무자맥질을 하고 헤엄을 쳤노라.”라고 하고, ≪春秋左氏傳莊公 18년 조에 “閻敖湧水를 헤엄쳐 도망했다.”라고 칭하였으니, ‘’는 물에 들어가서 헤엄쳐 건너는 데 대한 명칭이다.
비유하자면 成王이 큰 내에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므로 내가 감에 너 과 더불어 공동으로 成王을 건네주겠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냇물로 향해간다.”라는 뜻과 같기 때문에 ‘’이라 말한 것이다.
의 [今與]에서 [天乎]까지
正義曰王朝의 신하들 중에 힘쓰지 않는 자가 있다. 지금 너와 함께 머물러서 成王을 보필하려고 하는 목적은 〈이러한 이들을〉 꼭 거두어 가르치려는 것이다.
스스로 힘쓰지 않아 道義에 미치지 못한 자들을 응당 힘써 道義에 미치도록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교화를 성립시키려고 하는데, 노성한 덕을 가진 사람이 뜻을 굽혀 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 나라는 봉황의 울음소리도 외려 듣지 못할 것이거늘, 하물며 伊尹 같은 무리가 있어 그 공이 皇天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말하겠는가. 태평시대는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經文에서 말한 “耇造德不降”이란 것은 周公이 자기 나이가 늙어서 응당 물러나야 하는데도 머물러 있어야 할 형편이기 때문에 이내 곧 자기 같은 를 폭넓게 말한 것이다.
자기가 만일 물러간다면 노성한 덕을 가진 자가 모두 물러가 스스로 逸樂을 취하고 뜻을 굽혀 하려 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정사가 이루어진 것이 없으면 祥瑞가 이르지 않는 법이라, 우리 나라는 봉황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봉황은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운 새니, 반드시 靈瑞한 물건이기 때문에 ‘鳴鳥’를 〈孔安國이〉 鳴鳳으로 여긴 것이다. 孔子가 “봉황이 이르지 않는다.”라고 한 이 봉황은 그 소리를 듣기 어려운 것이다.
詩經≫ 〈大雅 卷阿〉편에 成王을 노래하면서, 그 9에서 “봉황의 울음은 저 높은 뫼에서 하도다.”라고 하였는데,
鄭玄은 “때에 따라 봉황이 이르므로 굳이 비유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成王의 시대에 봉황이 이르렀던 것이다.
大雅 같은 正經의 저작은 대부분 周公攝政한 뒤, 成王이 즉위한 초기에 있었으니, 周公이 이때에 이미 봉황이 이르러 태평시절을 보인 점을 말한 것인데,
다시 이 점을 강조한 것은 다시는 그렇게 되지 못할까를 염려하기 때문에 경계한 것이다. 이 經文의 뜻은 공적이 上天에 이르는 것이 봉황을 불러오는 것보다 어렵다는 점을 말하기 때문에 봉황의 울음을 가지고 하늘에 이르는 점을 비유한 것이다.
상고하면 ≪禮記≫ 〈禮器〉편에 “〈제후의 공적이〉 이루어짐을 하늘에 고하니, 봉황이 내려오고 거북과 용이 이른다.”라고 한 ‘升中’은 공적이 이루어져 하늘에 고함을 이른 것이다.
저 ≪禮記≫의 글처럼 공적이 하늘에 이를 것 같으면 봉황이 이에 내려오는 법이니, 이래서 봉황의 울음소리를 불러오기 쉬운 점을 가지고 하늘에 이르기 어려운 점을 비유한 것인가.
禮記≫는 용과 봉황은 형상이 있으므로 볼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봉황이 내려오고 용이 이르는 것을 가지고 공을 이룬 징험을 삼은 것이고, 공을 이룬 것을 하늘에 고한 연후에 이 靈物이 비로소 이른 점을 말한 것은 아니다.


역주
역주1 今在予小子旦……誕無我責 : 蔡傳에 의하면 “지금처럼 〈王業이 어려운 때 어린 임금이 왕위에 있으니,〉 나 小子 旦에 있어서는 〈걱정되고 두렵기가〉 마치 큰 냇물을 헤엄쳐감과 같으니, 나는 지금부터 냇물을 향해 감에 오직 당신 奭과 함께 건너고자(협심해서 어려운 정국을 함께 구제하고자) 할 뿐이다. 小子(成王)는 〈어리기 때문에 비록 이미 즉위했으나〉 아직 즉위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니, 크게 우리 책임이 없겠는가.”로 풀이된다.
역주2 : 孔疏는 ‘從此向川’으로, 林之奇(≪尙書全解≫)는 ‘自今以往’으로 보았는데, 蔡傳은 孔疏를 따랐다.
역주3 誕無我責 : 夏僎은 “이는 周公이 召公과 함께 成王을 구제하기를 마치 成王이 아직 즉위하지 못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하고, 나 한 사람에게 다 책임지우는 일이 없게 하려고 한 것이다.[此周公所以欲召公同濟成王 與成王未卽位之時無異 大無盡責于我一人也]”라고 하여 위아래가 연결되게 풀이하였는데, 蔡傳은 “‘誕無我責’ 위에 아마 缺文이 있는 듯하다.”라고 하였다.
역주4 (方)[人] : 저본에는 ‘方’으로 되어 있으나, 諸本에 의거하여 ‘人’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收罔勖不及……曰其有能格 : 蔡傳은 “‘收罔勖不及’은 자세히 알 수 없다. ‘耉造德不降’은 召公이 떠나가면 老成한 사람들의 德이 백성에게 내려지지 않음을 말한 것이니, 교외에 있는 봉황새의 우는 소리를 장차 다시 얻어듣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감히 이보다 나아가 하늘을 감격시킬 수 있다고 말하겠는가.[收罔勖不及未詳 耉造德不降 言召公去 則耉老成人之德 不下於民 在郊之鳳 將不復得聞其鳴矣 況敢言進此而有感格乎]”라고 풀이하였다.
역주6 收罔朂不及 耉造德不降 : 蘇軾(≪書傳≫)은 “나와 당신은 함께 孺子를 보필하고 있으니, 王業이 크게 이루어짐을 기다리지 않고 떠나감을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마땅히 成王의 힘쓰지 않고 불급한 마음을 收蓄해야 하고, 또 마땅히 당신 奭 같은 노성한 사람을 머물려 돕게 해야 하는데, 당신이 만일 뜻을 굽혀 조금 머물러주지 않는다면 이는 하늘이 우리의 王業을 잘 마무리하여 천명을 정해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我與汝同輔孺子 其可以不俟王業之大成而言去乎 我當收蓄成王不勉不及之心 又當留汝奭耉老成人以自助 汝若不降意小留 則是天不欲我終王業定天命也]”라고 하고, 呂祖謙(≪增修東萊書說≫)은 “‘小子同未在位 誕無我責’에서의 ‘小子’는 곧 成王을 가리킨 것이니, 成王이 비록 이미 親政하게 되었지만, 어린 小子라서 艱難한 줄을 몰라 정사가 在位하지 못할 때와 똑같으므로 힘을 다해 보필해야 할 판이니, 成王이 이미 在位했다 해서 내가 마땅히 떠나야 된다고 크게 꾸짖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한 것이고, ‘收罔勗不及 耉造德不降’은 召公이 만일 자취를 거두어 물러가버려 成王의 미급한 점을 힘써 보필하지 않고 耉老로 德을 삼는 이가 멀리 떠나감으로써 마음을 굽혀 머무르지 않는다면 周家의 정사는 우려의 국면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小子同未在位 誕無我責者 此小子 乃指成王 言成王雖巳親政 然幼沖小子 未知艱難 政當同未在位之時 而盡瘁扶持之 不可以成王旣在位 而大責我以當去也 收罔勗不及 耉造德不降者 言召公若收斂退藏 罔勗勉成王之所不逮 以耉老爲德 高視遠引 不降心而屈留 則周家之治可憂矣]”로 풀이하였다. 또한 ‘耉造德’에 대하여 夏僎은 “‘耉造’란 곧 成王이 幼沖한 자질로 마땅히 老成한 德을 가져야 함을 이른 것이다.[耉造者 乃謂成王以幼沖之資 當有老成之德]”라고 보기도 하였다.
역주7 收罔勖不及 : 林之奇는 “아마 成王이 盛滿하게 이루어놓은 王業만을 믿고 교만하고 태만하여 능히 스스로 힘쓰지 않아 治道에 미치지 못할 바가 있을까 염려하기 때문에 거두어 가르치고자 한 것이리라.[蓋恐成王 恃其盈成之業 驕怠懈弛 不能自勉 而於治道有所不及 是以欲收之]”로 풀이하였는데, 蔡傳은 ‘未詳’으로 처리하였다.
역주8 今與汝留輔成王 欲收敎無自勉不及道義者 : 兪樾(≪群經平議≫)은 “枚傳에서는 ‘責’자에 句를 끊고 ‘收’자를 아래에 붙여서 읽었으니, ‘收罔勖不及’은 매우 해석할 수 없게 되었다. 傳의 뜻대로라면 또한 너무 한만스럽다. ‘收’는 응당 위에 붙여서 읽어야 하니, ‘收’는 成의 뜻이다. ≪周易≫ 井卦 上六의 ‘井收勿幕’에 대한 王弼의 注에 ‘井功이 크게 이루어진 것은 이 爻에 있다. 그러므로 「井收」라 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收’에는 成의 뜻이 들어있다. 이는 ‘小子同未在位’를 이어받아 ‘成王은 어려서 비록 이미 집정은 하였지만 아직 在位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만일 내가 그 收成을 責求함이 없다면 그 미급한 바를 권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誕無我責 罔勖不及’이라 한 것이다. ‘誕’은 어조사이니, 꼭 ‘大’로 풀이할 필요가 없다. ‘責’의 본뜻은 ‘求’이니, ≪說文解字≫ 貝部에 ‘「責」은 「求」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非責’으로 해석하였으니, 뜻이 또한 딱 들어맞지 못하다.[枚傳於責字絶句 而以收字屬下讀 收罔勖不及 甚不可解 如傳義 亦太迂廻矣 收當屬上讀 收者成也 周易井上六 井收勿幕 王弼注曰 井功大成 在此爻矣 故曰井收是也 收有成義也 此承小子同未在位 而言 成王沖幼 雖已卽政 與未在位同 若無我責求其收成 則無能勖勉其所不及也 故曰 誕無我責罔勖不及 誕者 語辭 不必訓爲大 責之本義爲求 說文貝部 責求也 以非責釋之 義亦未協]”라고 하였다.
역주9 (傳)[博] : 저본에는 ‘傳’으로 되어 있으나, 宋刊 單疏本‧宋兩浙東路茶鹽司本‧宋慶元間建安魏縣慰宅本에 의거하여 ‘博’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鳥)[鳴] : 저본에는 ‘鳥’로 되어 있으나, ≪詩經≫에 의거하여 ‘鳴’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1 (如)[況] : 저본에는 ‘如’로 되어 있으나, 宋刊 單疏本‧宋兩浙東路茶鹽司本‧宋慶元間建安魏縣慰宅本에 의거하여 ‘況’으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5)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