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傳]劼은 固也라 我惟告汝曰 汝當固愼殷之善臣信用之하라하니라
傳
[傳]侯甸男衛之國도 當愼接之온 況太史內史掌國典法所賓友乎아
傳
[傳]於善臣百尊官도 不可不愼이온 況汝身事服行美道와 服事治民乎아
傳
[傳]圻父는 司馬요 農父는 司徒라 身事且宜敬愼이온 況所順疇咨之司馬乎아 況能迫迴萬民之司徒乎아 言任大라
傳
[傳]宏은 大也라 宏父는 司空이니 當順安之라 司馬司徒司空은 列國諸侯三卿이니 愼擇其人而任之면 則君道定이온 況汝剛斷於酒乎아
疏
○正義曰:殷之存亡, 旣可以爲監若是, 故我惟告汝曰 “汝當堅固愛愼殷之善臣及侯‧甸‧男‧衛之君,
則在外尙然, 況已下太史所賓友, 內史所賓友, 於善臣百尊官而不固愼乎.
此之卑官, 猶尙固愼, 況惟汝之身事所服行美道, 服
事治民, 而可不固愼乎.
於己身事猶當固愼, 況惟所敬順疇咨之圻父, 能迫廻萬民之農父, 所順所安之宏父.
此等大臣能得固愼, 則可定其爲君之道, 固愼大臣, 雖非急要, 尙能使君道得定, 況汝又能剛斷於酒乎. 善所莫大, 不可加也.”
疏
○正義曰:‘劼固’, 釋詁文. 將欲斷酒爲重, 故節文以相況. ‘毖’訓爲愼, 言誠堅固謹愼, 皆敬而
任之. 其文通於下, 皆固愼.
疏
○正義曰:太史掌國六典, 依周禮治典‧敎典‧禮典‧政典‧刑典‧事典也.
內史掌八柄之法者, 爵‧祿‧廢‧置‧殺‧生‧與‧奪. 此太史‧內史, 卽康叔之國大夫.
知者, 以下圻父‧農父‧宏父 是諸侯之三卿, 明太史‧內史 非王朝之官. ‘所賓友’者, 敬也.
疏
○正義曰:‘於善臣’, 卽上經‘殷獻臣’也. ‘百尊官’, 卽上‘侯甸男衛‧太史‧內史也.
‘服行美道 服事治民’, 卽上汝之身事. 知‘服事’ 是治民者, 民惟邦本, 諸侯治民爲事故也.
鄭玄以‘服休’爲燕息之近臣, ‘服采’ 爲朝祭之近臣, 非孔意也.
疏
○正義曰:司馬主圻封, 故云‘圻父’. ‘父’者, 尊之辭. 以司徒敎民
之藝, 故言‘農父’也.
以司馬征伐, 在乎閫外所專, 故隨順而疇咨之, 言君所順疇也. 迫近廻繞於萬民, 言近民事也. 二者皆任大.
疏
○正義曰:‘宏大’, 釋詁文. 以司空亦君所順所安和之, 故言“當順安之.”
諸侯之三卿, 以上有司馬‧司徒, 故知‘宏父’是司空. 言大父者, 以營造爲廣大國家之父.
因節文而分之, 乃總之言 “司馬‧司徒‧司空.” 列國三卿, 令愼擇其人而任之, 則君道定, 況剛斷於酒乎.
爲甚之義也. 其‘定辟’, 總上自‘劼毖殷獻’已下, 獨言三卿者, 因文相況而接之, 其實總上也.
三卿不次者, 以司馬征伐爲重, 次以政敎安萬民, 司徒爲重, 司空直指營造, 故在下也.
司徒言於萬民爲迫廻者, 事務爲主故也. 司徒不言‘若’者, 互相明, 皆爲治民, 而君所順也.
나는 말하노라. “너는 殷나라의 獻臣(賢臣)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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劼은 固의 뜻이다. 나는 너에게 고하기를 “너는 마땅히 殷나라의 착한 신하를 단단히 신중하게 해서 믿고 써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
侯服‧甸服‧男服‧衛服의 諸侯들을 힘써 경계해야 할 것이니, 하물며 네가 벗으로 대하는 太史와 內史와
傳
侯服‧甸服‧男服‧衛服의 나라도 마땅히 신중하게 접촉해야 하거늘, 하물며 나라의 典法을 관장한 太史와 內史는 賓友로 대해야 할 자들이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獻臣과 百宗工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는데,〉 더구나 네가 일삼는 服休와 服采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傳
착한 신하와 百尊官도 신중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거늘, 하물며 네가 몸소 일삼는 아름다운 道를 열심히 행하는 것과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열심히 일삼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더구나 유순하게 疇咨(訪問)해야 할 圻父와 만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農父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傳
圻父는 司馬요 農父는 司徒이다. 몸소 일삼는 것도 마땅히 공경하고 삼가야 할 것인데, 더구나 유순하게 疇咨해야 할 司馬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더더구나 능히 만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司徒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임무가 큼을 말한 것이다.
○違는 馬融이 “違行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宏父를 유순하고 편안하게 대하여 〈신중하게 골라서 임용하면〉 임금의 도리가 정해지거늘, 더더구나 네가 술을 강하게 끊는 일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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宏은 大의 뜻이다. 宏父는 司空이니, 마땅히 유순하고 편안하게 대해야 한다. 司馬와 司徒와 司空은 列國 諸侯의 三卿이니 그 사람들을 신중하게 골라서 임용하면 임금의 도리가 정해지거늘, 더더군다나 네가 술을 강하게 끊는 일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疏
○正義曰:殷나라의 存亡은 이미 거울삼아 볼 수 있음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나는 다음과 같이 너에게 고하겠노라. “너는 마땅히 殷나라의 착한 신하 및 侯服‧甸服‧男服‧衛服의 임금들을 굳게 사랑하고 신중히 대해야 할 것이니,
밖에 있는 자들도 오히려 그렇게 해야 하거늘, 하물며 이하 賓友로 대할 바의 太史와 賓友로 대할 바의 內史와 그리고 착한 신하와 百尊官에게도 단단히 신중하게 대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낮은 벼슬들도 외려 단단히 신중하게 대해야 할 대상이거늘, 하물며 네가 몸소 일삼는 아름다운 道를 열심히 행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열심히 일삼는 것이야 단단히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기가 몸소 일삼을 것에도 외려 응당 단단히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인데, 하물며 경건하고 유순하게 疇咨(訪問)해야 할 圻父와 능히 만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農父와 유순하고 편안하게 대해야 할 宏父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와 같은 大臣들을 단단히 신중하게 대한다면 그 임금 된 도리를 정할 수 있는 것인데, 대신들을 단단히 신중하게 대하는 것은 비록 급하게 요망된 일이 아니라도 외려 능히 임금의 도리를 정해지게 하거늘, 하물며 네가 또 능히 술을 강하게 끊는 일이야 오죽하겠는가. 잘하는 것으로는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여기에 더할 것이 없느니라.”
疏
○正義曰:‘劼固’는 ≪爾雅≫ 〈釋詁〉의 글이다. 장차 술을 끊으려고 하는 것을 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문장을 제한적으로 구성해서 서로 비유하였다. ‘毖’는 해석하면 愼의 뜻이 되므로 堅固히 謹愼함을 말하니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골라서 임용하는 것이다. 그 글이 아래에까지 통하는 것이 모두 ‘固愼’의 강조였다.
疏
○正義曰:太史가 나라의 六典을 관장하는 것은 ≪周禮≫의 治典‧敎典‧禮典‧政典‧刑典‧事典에 의거한 것이다.
內史가 八柄의 法을 관장하는 것은 爵‧祿‧廢‧置‧殺‧生‧與‧奪이다. 이 太史와 內史는 곧 康叔의 나라 大夫이다.
이것을 알게 됨은 아래의 圻父‧農父‧宏父가 바로 諸侯의 三卿이기 때문인데, 太史‧內史가 王朝의 벼슬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所賓友’란 것은 공경한다는 의미이다.
疏
○正義曰:‘於善臣’은 곧 위의 經文의 ‘殷獻臣’이다. ‘百尊官’은 곧 위의 ‘侯服‧甸服‧男服‧衛服‧太史‧內史’이다.
‘服行美道 服事治民’은 곧 위의 네가 몸소 일삼는 것이다. ‘服事’가 바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임을 〈孔安國이〉 알았던 것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諸侯가 백성을 다스리는 것으로 일삼기 때문이다.
鄭玄은, ‘服休’는 燕息하는 近臣으로, ‘服采’는 朝祭하는 近臣으로 여겼으니, 孔安國의 뜻이 아니다.
疏
○正義曰:司馬는 圻封을 주관하기 때문에 ‘圻父’라고 한 것이다. ‘父’라는 것은 높이는 말이다. 司徒는 백성들에게 五土의 藝法을 가르치기 때문에 ‘農父’라 말한
것이다. 司馬는 征伐관계로 閫外에 있어 전결하기 때문에 유순한 태도에 따라 방문하니, 임금이 유순하게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만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백성들을 가까이함을 말한 것이다. 두 가지는 모두 임무가 큰 것이다.
疏
○正義曰:‘宏大’는 ≪爾雅≫ 〈釋詁〉의 글이다. 司空도 임금이 유순하고 편안하게 해서 화합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마땅히 유순하고 편안하게 대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諸侯의 三卿은 이상에 司馬와 司徒가 있기 때문에 ‘宏父’가 바로 司空임을 〈孔安國이〉 알았던 것이다. ‘大父’라 말한 것은 營造로 國家를 廣大하게 만드는 父를 삼기 때문이다.
문장을 제한적으로 구성한 것을 인하여 나누었다가, 곧 총괄해서 “司馬‧司徒‧司空”이라 하였다. 列國三卿을 그에 알맞은 사람을 신중히 골라서 맡기면 임금의 도리가 정해질 수 있는데, 하물며 술을 강하게 끊는 것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심하게 하는 뜻이다. 그 ‘임금의 도리를 정한 것’은 위의 ‘劼毖殷獻’으로부터 이하를 총괄한 것인데, 유독 三卿만을 말한 것은 문장을 인하여 서로 비유해서 접속시킨 것이지만 기실은 위를 총괄한 것이다.
三卿이 차례로 되지 않은 것은 司馬는 征伐을 중하게 여기기 때문이고, 다음 政敎로써 만백성을 편안히 하는 데는 司徒가 막중하기 때문이고, 司空은 단지 營造만을 가리키기 때문에 아래에 놓인 것이다.
司徒에서 만백성에 가까이 다가감을 말한 것은 事務를 위주로 하기 때문이다. 司徒에서 ‘若’을 말하지 않은 것은 상호간에 밝힌 것이니, 모두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고 임금이 유순하게 대하는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