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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5)

상서정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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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敬爲所不可不敬之德이면 則下敬奉其命矣리라
[疏]‘王先’至‘敬德’
○正義曰:召公旣述周公所言, 又自陳己意戒王, 今爲政, 先服治殷家御事之臣, 使之比近於我有周治事之臣,
令新舊和協, 政乃可一. 和比殷周之臣, 時節其性命, 令不失其中, 則王之道化惟日其行矣.
王當敬爲所不可不敬之德, 其德爲下所敬, 則下敬奉其上命, 則化必行矣. 化在下者, 常命之不行, 故以此爲戒.
[疏]○傳‘召公’至‘可一’
○正義曰:自‘今休’已上, 文義相連, 知皆是稱周公言也. 此一句意異於上, 知是“召公自陳己意, 以終其戒.”
‘殷家治事之臣’, 謂殷朝舊人, 常被殷家任使者也. ‘周家治事之臣’, 謂西土新來翼贊周家初基者也.
周臣恃功, 或加陵殷士, 殷人失勢, 或疏忌周臣, 新舊不和, 政必乖戾. 故召公戒王當先治殷臣, 使比近周臣, 必和協, 政乃可一也.
不使周臣比殷, 而令殷臣比周臣者, 周臣奉周之法, 當使殷臣從之, 故治殷臣使比周臣也.
[疏]○傳‘和比’至‘其行’
○正義曰:文承殷周之下, 故知“和比殷周之臣.” 人各有性, 嗜好不同, 各恣所欲, 必或反道.
故以禮義時節其性命, 示之限分, 令不失中. 皆得中道, 則各奉王化, 故王之道化惟日其行,
言日日當行之, 日益遠也. 顧氏云 “和協殷周新舊之臣, 制其性命, 勿使怠慢也.”
[疏]○傳‘敬爲’至‘命矣’
○正義曰:聖王爲政, 當使易從而難犯, 故令行如流水, 民從如順風.
若使設難從之敎, 爲易犯之令, 雖迫以嚴刑, 而終不用命. 故爲其德不可不敬也.
王必敬爲此不可不敬之德, 則下民無不敬奉其命矣. 民奉其王命, 是化行也.


왕께서는 마땅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을 공경히 해야 합니다.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을 공경히 하면 아래에서 그 을 공경히 받들 것이다.
의 [王先]에서 [敬德]까지
正義曰召公이 이미 周公이 한 말을 기술하고 또 자기의 뜻을 스스로 진언하여 을 다음과 같이 경계하였다. “지금 정사를 함에 있어서 먼저 나라의 일을 맡은 신하들을 잘 다스려서 우리 나라의 일을 다스리는 신하들과 친근해지게 하여,
새로 들어온 신하들과 예전에 있던 신하들로 하여금 和協하도록 하여야 정치노선이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 신하들과 나라 신하들을 화협하여 친근해지게 하고, 수시로 그들의 性命을 절제하여 중정을 잃지 않게 한다면, 道化가 날로 행해질 것입니다.
왕께서는 마땅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을 공경히 해야 하니, 그 덕이 아래서 공경하는 바가 되어 아래에서 上命을 받들면 道化가 반드시 행해질 것입니다.”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을 교화함은 이 행해지지 않는 것을 항상 고민하기 때문에 이를 가지고 경계한 것이다.
의 [召公]에서 [可一]까지
正義曰:‘今休’로부터 이상은 文義가 서로 연해졌으므로 모두 바로 周公의 말을 일컬었음을 〈孔安國이〉 알았던 것이다. 이 한 는 뜻이 위와 다르므로 이것은 “召公이 자기의 의사를 개진하여 그 경계함을 마무리했다.”라는 것을 〈孔安國이〉 알았던 것이다.
殷家治事之臣’은 나라 王朝의 옛 사람으로서 항상 나라에서 책임을 맡겨 부림을 입은 이를 이른다. ‘周家治事之臣’은 西土에서 새로 와서 나라의 처음 기반을 다지는 것을 돕는 이를 이른다.
나라 신하들이 공로를 믿고 더러 나라 인사들에 능멸을 가하기도 하고, 나라 사람들이 세력을 잃고 더러 나라 신하들을 꺼리기도 하니, 새로 들어온 신하들과 예전에 있던 신하들이 화합하지 못하면 정사가 반드시 乖戾하기 때문에 召公을 경계하여 “마땅히 먼저 나라 신하들을 다스려 나라 신하들과 가까이 지내게 해야 합니다.”라고 하였으니, 반드시 화협해야 정치노선이 동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 신하들로 하여금 나라 신하들을 가까이 하도록 하지 않고 나라 신하들로 하여금 나라 신하들을 가까이 하도록 한 것은 나라 신하들은 나라의 법을 받듦으로 응당 나라 신하들로 하여금 따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나라 신하들을 다스려 나라 신하들을 가까이 하도록 한 것이다.
의 [和比]에서 [其行]까지
正義曰:글이 나라와 나라의 아래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나라 신하들과 나라 신하들을 화협하여 친근해지게 한다.”는 점을 〈孔安國이〉 알았던 것이다. 사람은 각각 성품이 있어 嗜好가 같지 않으므로 각각 하고 싶은 것을 자행하여 반드시 더러 를 이반하기 때문에
수시로 禮義로 그 性命을 절제하여 分限을 보여서 중정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모두 中道를 얻으면 각각 王化를 받들기 때문에 道化가 날로 행해질 것이다.
날마다 행하면 날로 더욱 멀리 진전됨을 말한 것이다. 顧氏(顧彪)는 “나라의 예전에 있던 신하들과 나라의 새로 들어온 신하들을 화협시키고 그 性命을 절제하여 怠慢하지 말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의 [敬爲]에서 [命矣]까지
正義曰聖王은 정사를 함에 있어서 응당 따르기는 쉽고 범하기는 어렵게 하는 정책을 쓰기 때문에 이 행해짐은 유수와 같고, 백성이 따름은 순풍과 같다.
만일 따르기 어려운 가르침을 베풀고 범하기 쉬운 을 한다면 비록 엄한 형벌로 핍박한다 하더라도 끝내 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을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반드시 이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을 공경히 하면 백성들이 그 을 공경히 받들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백성들이 그 王命을 받드는 것이 바로 道化가 행해지는 것이다.


역주
역주1 王敬作所不可不敬德 : 蘇軾(≪書傳≫)은 所와 德에 句를 끊어 “‘作所’란 바로 ‘所作政事’이니, 이미 그 일을 경건히 행하고 또 그 덕을 공경하면 지극하다.[作所者 所作政事也 旣敬其事 又敬其德則至矣]”라고 풀이하였는데, 林之奇(≪尙書全解≫)는 蘇軾의 풀이에 대하여 “‘所’자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여 말만 늘어놓은 것이니, 마땅히 先儒(孔安國과 孔穎達)의 說을 따라야 한다.[於所字強生義理 其辭爲費 當從先儒之說]”라고 하였다. 朱子도 孔安國을 따랐는데, 蔡傳은 ‘所’를 處所로 풀이하여 2句로 보아 “‘所’는 바로 處所이니, 〈無逸〉의 ‘所其無逸’의 所와 같은 것이다. 왕이 능히 ‘敬’을 處所로 삼으면 動靜과 語默, 出入과 起居가 어디를 가나 敬에 거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不可不敬德’이란 것은 德을 공경하지 않으면 안 됨을 심하게 말한 것이다.[所 處所也 猶所其無逸之所 王能以敬爲所 則動靜語默 出入起居 無往而不居敬矣 不可不敬德者 甚言德之不可不敬也]”라 풀이하고 있다. 呂祖謙은 일찍이 〈無逸〉의 ‘所其無逸’의 所를 居의 뜻으로 풀이한 바 있어, 蔡沈은 이를 따랐는데, 이에 대하여 陳師凱(≪書蔡氏傳旁通≫)는 “‘所其無逸’과 ‘王敬作所不可不敬德’을 朱子가 모두 處所와 安居의 뜻으로 풀이하려고 하지 않은 것은 그 교묘한 천착이 古人의 本意가 아닐 것임을 두려워한 것이다. 그러나 呂氏의 說이 산뜻한 맛이 난다. 그러므로 朱子는 그를 비난하고 蔡氏는 그를 따르게 된 것이다.[所其無逸與王敬作所不可不敬德 朱子皆不欲以處所安居之意釋之 懼其巧鑿 非古人之本意也 然呂說可喜 所以朱子非之 而蔡氏仍本之]”라고 밝히고 있고, 洪奭周(≪尙書補傳≫)도 “蔡傳에서 〈無逸〉을 해석할 때에 이미 呂祖謙의 說을 썼고, 또 그 뜻을 취하여 〈召誥〉의 ‘王敬作所’를 해석하였으니, 그 說은 또한 볼 만하지만, 그 朱子의 뜻에 있어서 어떨지 모르겠다.[蔡傳釋無逸 旣用呂說 又取其意 以釋召誥之王敬作所 其說則亦可觀矣 未知其於朱子之意何如也]”라고 하였다.
역주2 (若)[苦] : 저본에는 ‘若’으로 되어 있으나, “盧文弨는 ‘若’을 ‘苦’로 고쳤으니,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苦’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5)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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