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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5)

상서정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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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誥 第十五
孔氏 傳 孔穎達 疏
召公旣相宅하니 周公往營成周하고 使來告卜하니라
[傳]召公先相宅卜之하고 周公自後至하여 經營作之하고 遣使以所卜吉兆逆告成王하니라
作洛誥
洛誥
[傳]旣成洛邑 將致政成王하고 告以居洛之義
[疏]‘召公’至‘洛誥’
○正義曰:序自上下相顧爲文, 上篇序云“公先相宅.” 此承其下, 故云“召公旣相宅.”
召公以三月戊申相宅而卜, 周公自後而往, 以乙卯日至, 經營成周之邑. 周公卽遣使人來告成王以召公所卜之吉兆.
及周公將欲歸於成王, 乃陳本營洛邑之事, 以告成王, 王因請敎誨之言, 周公與王更相報答, 史敍其事, 作洛誥.
史錄此篇, 錄周公與王相對之言, 以爲後法, 非獨相宅告卜而已.
但周公因致政, 本說往前告卜, 經文旣具, 故序略其事, 直擧其發言之端耳.
[疏]○傳‘召公’至‘成王’
○正義曰:上篇云 “三月戊申, 太保朝至于洛, 卜宅. 厥旣得卜, 則經營.” 是召公先相宅則卜之.
又云 “乙卯日, 周公朝至于洛, 則達觀于新邑營.” 是周公自後至, 經營作之.
召公相洛邑, 亦相成周, 周公營成周, 亦營洛邑, 各擧其一, 互以相明. ‘卜’者, 召公卜也.
周公旣至洛邑, 案行所營之處, 遣使以所卜吉兆, 逆告成王也. 案上篇傳云 “王與周公俱至.” 何得周公至洛逆告王者.
王與周公, 雖俱行, 欲至洛之時, 必周公先到行處所, 故得逆告也.
顧氏云 “周公旣至洛邑, 乃遣以所卜吉兆來告於王.”是也.
經稱成王言 “公旣定宅, 伻來, 來視予卜休恒吉.” 是以得吉兆告成王也.
上篇召公以戊申至, 周公乙卯至, 周公在召公後七日也. 至洛較七日, 其發鎬京, 或亦較七日.
[疏]○傳‘旣成’至‘之義’
○正義曰:周公攝政七年三月經營洛邑, 旣成洛邑, 又歸向西都, 其年冬將致政成王,
告以居洛之義, 故名之曰洛誥, 言以居洛之事告王也. 篇末乃云 “戊辰, 王在新邑”, 明戊辰已上, 皆是西都時所誥也.


召公이 이미 거주할 곳을 살펴보고 나자 周公이 가서 成周를 경영하고 使者를 보내와 점괘를 고하였다.
召公이 먼저 거주할 곳을 살펴보고서 거북점을 쳤고, 周公이 뒤에 와서 經營(측량하고 설계함)하여 구획을 확정하고서 使者를 보내와 거북점을 친 吉兆成王에게 逆告(上奏)하였다.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洛誥〉를 지었다.
이미 洛邑을 완성함에 장차 成王에게 정권을 돌려주고 洛邑에 거주하려는 뜻을 고한 것이다.
書序의 [召公]에서 [洛誥]까지
正義曰序文은 위아래를 서로 고려해서 글을 지은 것이니, 윗의 서문에서는 “召公이 먼저 거주할 곳을 살펴보았다.”라고 하였고, 여기서는 그 아래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召公이 이미 거주할 곳을 살펴보았다.”라고 한 것이다.
召公은 3월 戊申日에 거주할 곳을 살펴보아 거북점을 쳤고, 周公은 〈召公보다〉 뒤에 가서 乙卯日에 도착하여 成周都邑을 경영하였다. 周公은 곧 使者를 보내와서 成王에게 召公이 점친 吉兆를 고하였다.
周公이 장차 成王에게 정권을 돌려주려고 할 때에 가서 본래 洛邑을 경영한 일을 진술하여 成王에 고하고, 은 따라서 敎誨의 말을 청하여 周公이 다시 서로 報答을 하였는데,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洛誥〉를 지었다.
사관은 이 을 기록할 때에 周公이 서로 대하는 말을 기록하여 후세의 법으로 삼았으니, 유독 거주할 곳을 살펴보고 점괘를 고하는 일만 했을 뿐이 아니었다.
다만 周公은 정권을 돌려줄 때에 이전 점괘를 고하던 일로 돌아가서 말한 것이었는데, 經文이 이미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서문은 그 일을 생략하고 단지 그 발언의 단서만을 들었을 뿐이다.
의 [召公]에서 [成王]까지
正義曰:윗의 “3월 戊申日太保가 아침에 洛邑에 이르러 거주할 곳에 대한 거북점을 쳤다. 이미 한 점괘를 얻었으므로 곧 經營(측량하여 설계함)하였다.”라고 한 것이 바로 召公이 먼저 거주할 곳을 살펴보고 곧 거북점을 친 일이다.
또 “乙卯日周公이 아침에 에 이르러 새 도읍터를 닦은 것을 직접 다니며 살펴보셨다.”라는 것이 바로 周公이 뒤에 이르러 경영한 것을 확정한 것이다.
召公洛邑을 살펴보고 또한 成周를 살펴보았으며, 周公成周를 경영하고 또한 洛邑을 경영하였으니, 각각 그 하나를 들어서 互文으로 서로 밝힌 것이다. ‘’이란 것은 召公이 점친 것이다.
周公이 이미 洛邑에 이르러 〈召公이 이미〉 경영한 곳을 살펴보며 다녔고, 使者를 보내와 점친 吉兆成王에게 상주하였다. 살펴보면 윗에 “周公이 함께 이르렀다.”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周公에 이르러서 에게 上奏할 수 있었을까.
周公이 비록 서로 더불어 함께 갔다 하더라도 에 이르려고 할 무렵에는 필시 周公이 먼저 行處所(行在所)에 이르렀기 때문에 上奏할 수 있었을 것이다.
顧氏가 “周公이 이미 洛邑에 이르러 사람을 보내 점친 吉兆를 와서 에게 고했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經文에서 成王의 말로 칭하여 “께서 이미 거주할 곳을 정하고 나서 使者를 보내 와 나에게 점괘가 아름다움과 항상 吉祥할 거주지임을 보여주셨다.”라고 한 것이 바로 吉兆를 얻은 것을 成王에게 고한 것이다.
에 의하면 召公戊申日에 이르고 周公乙卯日에 이르렀으니, 周公이 〈이른 날은〉 召公이 이른 7일 뒤에 있었다. 에 이른 날이 7일 차이가 나니, 鎬京을 출발한 날도 아마 7일 차이가 날 듯하다.
의 [旣成]에서 [之義]까지
正義曰周公攝政한 7년 3월에 洛邑을 경영하였고, 이미 洛邑을 이루고 나서는 또 西都로 돌아갔고 그 해 겨울에는 장차 成王에게 정권을 돌려주려고 하였으며,
洛邑에 거주할 뜻을 고하였기 때문에 명명하기를 〈洛誥〉라 하였으니, 洛邑에 거주할 일을 에게 고했음을 말한 것이다. 끄트머리에서 “戊辰日이 새로 세운 도읍에 계시면서”라고 하였으니, 戊辰日 이상은 모두 西都 시절에 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역주
역주1 (周)[召] : 저본에는 ‘周’로 되어 있으나, 〈召誥〉의 書序 및 宋刊 單疏本‧宋兩浙東路茶鹽司本‧宋慶元間建安魏縣慰宅本에 의거하여 ‘召’로 바로잡았다.
역주2 [政] : 저본에는 없으나, 宋刊 單疏本‧宋兩浙東路茶鹽司本‧宋慶元間建安魏縣慰宅本에 의거하여 ‘政’을 보충하였다.
역주3 (與相)[相與] : 저본에는 ‘與相’으로 되어 있으나, 宋刊 單疏本‧宋兩浙東路茶鹽司本에 의거하여 ‘相與’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5)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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