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尙書正義(6)

상서정의(6)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상서정의(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哀矜庶戮之不辜하사 報虐以威하사 遏絶苗民하여 無世在下하시니라
[傳] 帝堯也 哀矜眾被戮者之不辜하여 乃報爲虐者以威하여 誅遏絕苗民하여 使無世位在下國也
○君帝君 宜作皇字 帝堯也
[疏]‘王曰’至‘在下’
○正義曰:呂侯進言於王, 使用輕刑. 又稱王之言以告天下, 說重刑害民之義.
王曰 “順古道有遺餘典訓, 記法古人之事.
昔炎帝之末, 有九黎之國君號蚩尤者, 惟造始作亂, 惡化遞相染易, 延及平善之民.
平民化之, 亦變爲惡, 無有不相寇盜, 相賊害, 爲鴟梟之義.
鈔掠良善, 外姦內宄, 劫奪人物, 攘竊人財, 矯稱上命, 以取人財, 若己固自有之.
然蚩尤之惡已如此矣, 至於高辛氏之末, 又有三苗之國君, 習蚩尤之惡, 不肯用善化民, 而更制重法.
惟作五虐之刑, 乃言曰此得法也. 殺戮無罪之人, 於是始大爲四種之刑.
刵, 截人耳, 劓, 截人鼻, 劅, 椓人陰, 黥, 割人面. 苗民於此施刑之時, 幷制無罪之人.
對獄有罪者無辭, 無罪者有辭, 苗民斷獄, 竝皆罪之, 無差簡有直辭者. -言濫及無罪者也.-
三苗之民, 慣瀆亂政, 起相漸染, 皆化爲惡, 泯泯爲亂, 棼棼同惡, 小大爲惡. 民皆巧詐, 無有中于信義.
以此無中于信, 反背詛盟之約, 雖有要約, 皆違背之.
三苗虐政作威, 眾被戮者 方方各告無罪於上天, 上天下視苗民, 無有馨香之行,
其所以爲德刑者, 發聞於外, 惟乃皆腥臭, 無馨香也.
君帝帝堯哀矜眾被殺戮者, 不以其罪, 乃報爲暴虐者以威, 止絕苗民, 使無世位在於下國. -言以刑虐, 故滅之也.-”
[疏]○傳‘順古’至‘蚩尤’
○正義曰:古有遺訓, 順而言之, 故爲‘順古有遺訓’也.
‘蚩尤造始作亂’, 其事往前未有, 蚩尤今之, 必是亂民之事, 不知造何事也.
下說三苗之主, 習蚩尤之惡, 作五虐之刑, 此章主說虐刑之事, 蚩尤所作, 必亦造虐刑也.
以峻法治民, 民不堪命, 故惡化轉相染易, 延及於平善之民, 亦化爲惡也.
‘九黎之君號曰蚩尤’, 當有舊說云然, 不知出何書也.
史記五帝本紀云 “神農氏世衰, 諸侯相侵伐, 蚩尤最爲暴虐, 莫能伐之.
黃帝乃徵師諸侯, 與蚩尤戰於涿鹿之野, 遂擒殺蚩尤, 而諸侯咸尊軒轅爲天子.”
如本紀之言, 蚩尤是炎帝之末諸侯也.
應劭云 “蚩尤, 古天子.” 鄭云 “蚩尤霸天下, 帝所伐者.”
漢書音義有臣瓚者, 引孔子三朝記云 “蚩尤, 庶人之貪者.” 諸說不同, 未知蚩尤是何人也.
楚語曰 “少昊氏之衰也, 九黎亂德, 顓頊受之, 使復舊常.” 則九黎在少昊之末, 非蚩尤也.
韋昭云 “九黎氏九人, 蚩尤之徒也.” 韋昭雖以九黎爲蚩尤, 要史記蚩尤在炎帝之末, 國語九黎在少昊之末, 二者不得同也.
‘九黎’之文, 惟出楚語, 孔以蚩尤爲九黎. 下傳又云 “蚩尤黃帝所滅.” 言“黃帝所滅.” 則與史記同矣.
孔非不見楚語, 而爲此說, 蓋以蚩尤是九黎之君, 黃帝雖滅蚩尤, 猶有種類尙在, 故下至少昊之末, 更復作亂.
若其不然, 孔意不可知也. 鄭玄云 “學蚩尤爲者, 九黎之君, 在少昊之代也.”
其意以蚩尤當炎帝之末, 九黎當少昊之末, 九黎學蚩尤, 九黎非蚩尤也.
[疏]○傳‘平民’至‘之甚’
○正義曰:蚩尤作亂, 當是作重刑以亂民.
以峻法酷刑, 民無所措手足, 困於苛虐所酷, 人皆苟且, 故平民化之, 無有不相寇賊.
群行攻劫曰‘寇’, 殺人曰‘賊’, 言攻殺人以求財也.
‘鴟梟’, 貪殘之鳥. 詩云 “爲梟爲鴟.” 梟是鴟類.
鄭玄云 “盜賊狀如鴟梟, 鈔掠良善, 劫奪人物.” 傳言“鴟梟之義.” 如鄭說也.
釋詁云 “虔, 固也.” ‘若固有之’, 言取得人物, 如己自有也.
[疏]○傳‘三苗’至‘同惡’
○正義曰:上說蚩尤之惡, 即以‘苗民’繼之, 知經意言“三苗之君, 習蚩尤之惡.” ‘靈’, 善也. 不用善化民, 而制以重刑.
學蚩尤制之, 用五刑而虐爲之, 故爲‘五虐之刑’, 不必皐陶五刑之外, 別有五也.
‘曰法’者, 述苗民之語, 自謂所作得法, 欲民行而畏之.
如史記之文, “蚩尤黃帝所滅.” 下句所說 “三苗帝堯所誅.” 楚語云 “三苗復九黎之惡.” 是“異世而同惡”也.
鄭玄以爲 “苗民即九黎之後. 顓頊誅九黎, 至其子孫爲三國. 高辛之衰, 又復九黎之惡.
堯興, 又誅之. 堯末, 又在朝, 舜臣堯又竄之. 後禹攝位, 又在洞庭逆命, 禹又誅之.
孔惟言“異世同惡.” 不言三苗是蚩尤之子孫. 韋昭云 “三苗, 炎帝之後諸侯共工也.”
[疏]○傳‘三苗’至‘五虐’
○正義曰:三苗之主, 實國君也.
頑凶若民, 故謂之‘苗民’, 不於上經爲傳者, 就此惡行解之, 以其頑凶, 敢行虐刑, 以殺戮無罪.
釋詁云 “淫, 大也.” ‘於是大爲截人耳鼻, 椓陰, 黥面’, 苗民爲此刑也. ‘椓陰’, 即宮刑也, ‘黥面’, 即墨刑也.
康誥 周公戒康叔云 “無或劓刵人.” 即周世有劓刵之刑, 非苗民別造此刑也. 以加無辜, 故曰‘五虐’.
鄭玄云 “刵, 斷耳, 劓, 截鼻. 椓, 謂椓破陰, 黥, 爲羈黥人面, 苗民大爲此四刑者, 言其特深刻, 異於皐陶之爲.”
鄭意, 蓋謂截耳截鼻多截之, 椓陰苦於去勢, 黥面甚於墨頟, 孔意或亦然也.
[疏]○傳‘三苗’至‘之約’
○正義曰:‘三苗之民’, 謂三苗國內之民也. ‘瀆’, 謂慣瀆, 苗君久行虐刑, 民慣見亂政, 習以爲常, 起相漸化.
‘泯泯’, 相似之意. ‘棼棼’, 擾攘之狀. ‘泯泯爲亂’, 習爲亂也. ‘棼棼同惡’, 共爲惡也.
‘中’, 猶當也, ‘皆無中於信義’, 言爲行無與信義合者.
詩云 “君子屢盟, 亂是用長.” 亂世之民, 多相盟詛, 既無信義, 必皆違之, 以此無中於信, 反背詛盟之約也.
[疏]○傳‘三苗’至‘腥臭’
○正義曰:‘方方各告無罪於上天’, 言其處處告也. 天矜於下, 俯視苗民, 無有馨香之行. ‘馨香’, 以喻善也.
‘其所以爲德刑’, 苗民自謂是德刑者, 發聞於外, 惟乃皆是腥臭. ‘腥臭’, 喻惡也.
[疏]○傳‘君帝’至‘下國’
○正義曰:釋詁云 “皇, 君也.” 此言“遏絕苗民.”
下句即云 “乃命重黎.” 重黎是帝堯之事, 知此滅苗民亦帝堯也.
此滅苗民在堯之初興, 使無世位在於下國, 而堯之末年, 又有竄三苗者, 禮天子不滅國, 擇立其次賢者.
此爲五虐之君, 自無世位在下, 其改立者復得在朝. 但此族數生凶德, 故歷代每被誅耳.
乃命重黎하여 絕地天通하여 罔有降格케한대
[傳]重即羲 黎即和 堯命羲和하여 世掌天地四時之官이라
使人神不擾하여 各得其序하니 是謂絕地天通이라
言天神無有降地하고 地(袛)不至於天이니 明不相干이라
群后之逮在下 明明棐常이라 鰥寡無蓋하니라
[傳]群后諸侯之逮在下國 皆以明明大道 輔行常法이라 使鰥寡得所하여 無有掩蓋
皇帝淸問下民하시니 鰥寡有辭于苗어늘
[傳]帝堯詳問民患하니 皆有辭怨於苗民
○清問 馬云 清訊이라하니라
德威하신대 惟畏하고 하니라
[傳]言堯監苗民之見怨한대 則又增修其德하고 行威한대 則民畏服하고 明賢한대 則德明人이라 所以無能名焉이라
[疏]‘乃命’至‘明’
○正義曰:三苗亂德, 民神雜擾. 帝堯既誅苗民, 乃命重黎二氏, 使絕天地相通, 令民神不雜.
於是天神無有下至地, 地民無有上至天. -言天神地民不相雜也.-
群后諸侯相與在下國群臣, 皆以明明大道, 輔行常法, 鰥寡皆得其所, 無有掩蓋之者.
君帝帝堯, 清審詳問下民所患, 鰥寡皆有辭怨於苗民. -言誅之合民意.-
堯視苗民見怨, 則又增修其德, 以德行威, 則民畏之, 不敢爲非.
以德明人, 人皆勉力自修, 使德明. -言堯所行賞罰得其所也.-
[疏]○傳‘重即’至‘相干’
○正義曰:楚語云 “昭王問於觀射父曰 ‘周書所謂重黎實使天地不通者, 何也. 若無然, 民將能登天乎.’
對曰 ‘非此之謂也. 古者民神不雜, 少昊氏之衰也, 九黎亂德, 家爲巫史, 民神同位, 禍災薦臻.
顓頊受之, 乃命南正重司天以屬神, 命火正黎司地以屬民, 使復舊常, 無相侵瀆, 是謂絕地天通.
其後三苗復九黎之德, 堯復育重黎之後, 不忘舊者, 使復典之.’”
彼言主說此事, 而堯典云 “乃命羲和, 欽若昊天.” 即所謂‘育重黎之後, 使典之’也. 以此知“重即羲也, 黎即和”也.
言羲是重之子孫, 和是黎之子孫, 能不忘祖之舊業, 故以‘重黎’言之.
傳言“堯乃命羲和, 掌天地四時之官”, 堯典文也,
“民神不擾, 是謂絕地天通.” 楚語文也. 孔惟加“各得其序.”一句耳.
楚語又云 “司天屬神, 司地屬民.” 令神與天在上, 民與地在下, 定上下之分, 使民神不雜, 則祭享有度, 災厲不生.
經言民神分別之意, 故言“罔有降格.” 言天神無有降至於地者, 謂神不干民.
孔因互文云 “地民不有上至於天”者, 言民不干神也. 乃總之云 “明不相干.” 即是民神不雜也.
‘地民’ 或作‘地祇’, 學者多聞神祇, 又‘民’字似‘祇’, 因妄改使謬耳.
如楚語云“乃命重黎”, 是顓頊命之, 鄭玄以“‘皇帝哀矜庶戮之不辜’, 至‘罔有降格’, 皆說顓頊之事.
‘乃命重黎’, 即是命重黎之身, 非羲和也. ‘皇帝清問’以下, 乃說堯事.
顓頊與堯再誅苗民, 故上言‘遏絕苗民’, 下云‘有辭於苗’, 異代別時, 非一事也.”
案楚語云 “少昊氏之衰也, 九黎亂德”, 又云 “其後三苗復九黎之德”, 則‘九黎’․‘三苗’, 非一物也.
顓頊誅九黎, 謂之“遏絕苗民”, 於鄭義爲不愜, 楚語言顓頊命重黎, 解爲帝堯命羲和, 於孔說又未允, 不知二者 誰得經意也.
[疏]○傳‘言堯’至‘名焉’
○正義曰:此經二句, 說帝堯之德事也, 而其言不順.
文在‘苗民’之下, 故傳以爲 “堯監苗民之見怨, 則又增修其德”, 敦德以臨之, 以德行其威罰, 則民畏之而不敢爲非.
‘明賢則德明人’者, 若凡人雖欲以德明賢者, 不能照察. 今堯德明賢者, 則能以德明識賢人, 故皆勸慕爲善.
明與上句相互, 則‘德威’者, 凡人雖欲以德行威, 不能威肅, 今堯行威罰, 則能以德威罰罪人, 故人皆畏威服德也.


황제皇帝()께서 여러 형륙刑戮을 당한 백성들의 무고함을 가엾게 여기시어, 위엄으로써 포학한 이에게 갚아 묘민苗民(묘군苗君)을 멸절하여 세대를 이어가는 자리가 하국下國에 있을 수 없게 하셨느니라.
황제皇帝’는 바로 제요帝堯이다. 여러 형륙刑戮을 당한 사람들의 무고함을 가엾게 여기어, 포학한 자에게 위엄으로써 갚아 묘민苗民(묘군苗君)을 멸절하여 세대를 이어가는 자리가 하국下國에 있을 수 없게 하였다는 것이다.
○‘군제君帝’의 은 의당 ‘’자여야 하니, ‘제요帝堯’이다.
의 [왕왈王曰]에서 [在下]까지
정의왈正義曰여후呂侯에게 진언하여 가벼운 형벌을 쓰도록 하였다. 또한 의 말씀이라 칭해서 천하에 고하여 무거운 형벌이 백성을 해치는 뜻을 설명하였다.
왕이 말씀하였다. “옛날의 도의를 따르면 남긴 전훈典訓이 있어, 거기에 참고할 만한 옛사람을 본받을 만한 일이 기록되었다.
옛날 염제炎帝의 말엽에 구려九黎의 나라 임금에 를 ‘치우蚩尤’라고 한 자가 있어 처음으로 난을 일으키자, 악으로 변화하여 서로 물들어 바꿔서 평선平善한 백성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쳤다.
평선平善한 백성들이 그에 동화되자, 〈이들도〉 또한 악한 사람으로 변화해서 서로 도적질을 하고 서로 해를 끼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치효鴟梟처럼 악하여 사람을 해침을 로 삼아
선량한 사람을 약탈하고 밖에서의 소란과 안에서의 반란을 일삼으며, 남의 물건을 겁탈하고 남의 재물을 훔치며, 상명上命을 거짓으로 꾸며서 칭하여 남의 재물을 취하기를 마치 자기의 고유한 물건처럼 하였다.
그러나 치우蚩尤이 이미 이와 같았는데, 고신씨高辛氏의 말엽에 이르러 또한 삼묘三苗국군國君이 있어 치우蚩尤을 익혀서, 을 사용하여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하지 않고 다시 무거운 법을 만들었다.
오직 다섯 가지의 포학한 형벌만을 만들어서 곧 말하기를 ‘이것이 「」을 〈제대로〉 얻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죄 없는 사람을 살육하고 이에 비로소 네 종류의 형벌을 크게 만들었다.
’는 사람의 코를 자르는 것이고, ‘’은 사람의 얼굴에 자자하는 것이다. 묘민苗民이 이에 형벌을 시행할 때에 죄 없는 사람까지도 아울러 처벌하였다.
옥사獄事에 대해서는 죄가 있는 사람은 변명할 말이 없고 죄가 없는 사람은 변명할 말이 있는 법이건만, 묘민苗民은 옥사를 단결할 때에 아울러 모두 죄를 주어버리고, 직사直辭가 있는 자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형벌이 죄가 없는 사람까지 지나치게 미쳤음을 말한 것이다.-
삼묘三苗의 백성들이 난정亂政에 익히 더렵혀진지라 일어나 서로 점점 물들어 모두 으로 변화하여 혼미하게 혼란을 일으키고, 문란하게 함께 악한 짓을 함에 대소大小가 악한 짓을 하였다. 백성들이 모두 교사巧詐하여 신의信義에 맞지 않았다.
이처럼 신의에 맞지 않음이 없었기 때문에 저맹詛盟의 약속을 등졌고, 비록 요약要約은 있었으나 모두 위배하였다.
삼묘三苗학정虐政으로 위엄을 부려 여러 형륙刑戮을 입은 자들이 방방곡곡에서 각각 무고함을 하늘에 호소한대, 하늘이 묘민苗民을 내려다보니 향기로운 행실은 없고
덕형德刑이란 것은 밖으로 발현하여 모두 비린내만을 풍길 뿐 향기로운 냄새는 없었다.
황제皇帝이신 제요帝堯께서 여러 살육殺戮을 당한 자들이 정당한 죄로 당한 것이 아님을 가엾게 여기어, 포학한 자에게 위엄으로써 갚아 묘민苗民(묘군苗君)을 단절하여 세대를 이어가는 자리가 하국下國에 있지 못하게 하였다. -형벌을 포학하게 썼기 때문에 멸망시켰음을 말한 것이다.- ”
의 [順古]에서 [치우蚩尤]까지
정의왈正義曰:옛날에 남긴 전훈典訓이 있었는데, 이것을 따라서 말했기 때문에 “옛날의 〈도의를〉 따르면 남긴 전훈典訓이 있어”라고 한 것이다.
치우蚩尤가 지금 비로소 만들었으니, 필시 백성을 어지럽히는 일이었을 것이나 무슨 일을 만들었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아래에서 삼묘三苗의 임금이 치우蚩尤을 익히어 다섯 가지의 포학한 형벌을 만든 점을 말하는 등 이 에서 주로 포학한 형벌의 일을 말하였으니, 치우蚩尤가 만든 것은 반드시 또한 포학한 형벌을 만들었을 터이다.
포악한 법률로 백성들을 다스리니, 백성들이 을 견디지 못하였기 때문에 악으로 변화하여 서로 바뀌어서 평선平善한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쳐 〈이들도〉 또한 변화하여 을 하였던 것이다.
九黎之君號曰蚩尤’는 응당 그와 같은 옛말이 있었을 테지만 무슨 책에서 나왔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신농씨神農氏의 세대가 쇠약해지자 제후諸侯들이 서로 침벌侵伐을 하였는데, 치우蚩尤가 가장 포학해서 칠 수가 없었다.
황제黃帝가 곧 제후諸侯의 군사들을 징집하여 치우蚩尤탁록涿鹿의 들에서 싸워서 결국 치우蚩尤를 사로잡아 죽였더니, 제후諸侯들이 모두 헌원軒轅을 높여 천자天子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오제본기五帝本紀〉의 말대로라면 치우蚩尤는 바로 염제炎帝의 말엽 제후諸侯의 이름이다.
응소應劭는 “치우蚩尤는 옛적 천자天子였다.”라고 하고, 정현鄭玄은 “치우蚩尤는 천하를 제패하였다가 황제黃帝에게 정벌된 자였다.”라고 하고,
한서음의漢書音義≫에 신찬臣瓚이란 자가 있어 그가 인용한 ≪공자삼조기孔子三朝記≫에 “치우蚩尤서인庶人의 탐욕부린 자였다.”라고 하여 제설諸說이 동일하지 않으니, 치우蚩尤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국어國語≫ 〈초어楚語〉에 “소호씨少昊氏가 쇠락하자 구려九黎을 어지럽혔고, 전욱顓頊이 이를 이어받아 옛 법을 회복시켰다.”라고 하였는데, 구려九黎소호少昊의 말엽에 있었으니 치우蚩尤는 아니었다.
위소韋昭는 “구려씨九黎氏 9치우蚩尤의 무리이다.”라고 하였으니, 위소韋昭는 비록 구려九黎치우蚩尤로 여겼으나 요컨대 ≪사기史記≫의 치우蚩尤염제炎帝의 말엽에 있었고 ≪국어國語≫의 구려九黎소호少昊의 말엽에 있었으니, 둘은 동일할 수 없는 것이다.
구려九黎’에 관한 글은 오직 〈초어楚語〉에서만 나왔는데, 공안국孔安國치우蚩尤구려九黎로 여겼다. 아랫 에서 또 “치우蚩尤황제黃帝에게 멸망되었다.”라고 하였으니, “황제黃帝에게 멸망되었다.”라는 말은 ≪사기史記≫와 동일하다.
공안국孔安國은 〈초어楚語〉를 보지 못한 게 아니었을 텐데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마 치우蚩尤가 바로 구려九黎의 임금이었기 때문일 터이니, 황제黃帝가 비록 치우蚩尤를 멸망했다 할지라도 외려 종류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아래로 소호少昊의 말엽에 이르러서 다시 을 일으켰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공안국孔安國의 의중을 알 수가 없다. 정현鄭玄은 “치우蚩尤를 배워서 을 일으킨 자는 구려九黎의 임금인데 소호少昊의 세대에 있었다.”라고 하였으니,
그 뜻이 치우蚩尤염제炎帝의 말엽으로 해당시켰으니, 구려九黎소호少昊의 말엽에 해당되고 구려九黎치우蚩尤를 배웠다면 구려九黎치우蚩尤는 아니었던 것이다.
의 [평민平民]에서 [之甚]까지
정의왈正義曰치우蚩尤을 일으킨 것은 응당 무거운 형벌을 만들어 백성들을 어지럽힌 바로 그것일 터이다.
포악한 법률로 혹독하게 형벌을 가함에 백성들이 수족을 둘 곳이 없거니와 가혹한 형벌에 곤혹스러워서 사람들이 모두 구차한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평민平民이 변화하여 서로 구적寇賊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리지어 다니며 공격하고 겁탈하는 것을 ‘’라 하고, 살인殺人하는 것을 ‘’이라 하니, 사람을 공격하고 살해하여 재물을 탐하는 것을 말한다.
치효鴟梟’는 탐욕스럽고 잔인한 새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첨앙瞻卬〉에 “올빼미가 되고 솔개가 되도다.”라고 하였으니, 올빼미는 바로 솔개의 종류이다.
정현鄭玄은 “도적질하는 모양새가 솔개나 올빼미와 같아서 선량한 사람을 노략질하고 남의 물건을 겁탈한다.”라고 하고, 에서는 “치효鴟梟처럼 〈악하여 사람을 해치는 것으로〉 를 삼았다.”라고 하였으니, 정현鄭玄의 말과 같다.
이아爾雅≫ 〈석고釋詁〉에 “‘’은 의 뜻이다.”라고 하였으니, ‘若固有之’는 남의 물건을 취득하기를 마치 자기의 고유한 물건처럼 하는 것을 말한다.
의 [삼묘三苗]에서 [동악同惡]까지
정의왈正義曰:위에서 치우蚩尤을 말하고 곧 ‘묘민苗民’을 가지고 뒤를 이었으니, 의 뜻이 “삼묘三苗의 임금이 치우蚩尤을 익혔다.”고 말한 점을 〈공안국이〉 알았던 것이다. ‘’은 의 뜻이다. 을 써서 백성을 교화하지 않고 무거운 형벌을 가지고 제재하였다.
치우蚩尤를 배워 제재하고, 오형五刑을 써서 포학하게 했기 때문에 ‘다섯 가지의 포학한 형벌’을 만든 것인데, 고요皐陶의 다섯 가지 형벌 밖에 별도로 다섯 가지를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묘민苗民의 말을 그대로 기술하여 “만든 법이 〈제대로 된〉 법을 얻었다.”라고 스스로 말해서 백성들이 행하면서 두렵게 하고자 한 것이었다.
사기史記≫의 글처럼 “치우蚩尤황제黃帝에게 멸망되었다.”라는 것과 아랫 구에서 말한 “삼묘三苗〈의 임금〉은 제요帝堯에게 주벌되었다.”라는 것과 ≪국어國語≫ 〈초어楚語〉에서 말한 “삼묘三苗구려九黎악덕惡德을 답습했다.”라는 것이 바로 ‘세대는 다르나 은 동일한 것’이었다.
정현鄭玄은 “묘민苗民은 곧 구려九黎의 후손이다. 전욱顓頊구려九黎주벌誅罰하였는데, 그 자손에 이르러 세 나라를 만들었다. 고신高辛이 쇠약하자 또 구려九黎악덕惡德을 답습하였다.
가 일어나서 또 〈그 족속을〉 주벌하였다. 의 말엽에 〈그 족속이〉 조정에 있었는데, 의 신하로 있으면서 또 귀양 보냈다. 뒤에 섭위攝位할 때 또 〈그 족속이〉 동정洞庭에 있으며 명령을 거역하자 가 또 주벌하였다.
목왕穆王이 그 족속이 세 번이나 흉덕凶德을 빚어냄을 매우 미워하였기 때문에 그 을 드러내어 그를 ‘’이라 일렀다.”라고 하였고,
공안국孔安國은 오직 “세대는 다르나 은 동일하였다.”라고만 말하고 삼묘三苗가 바로 치우蚩尤의 자손이란 점은 말하지 않았다. 위소韋昭는 “‘삼묘三苗’는 염제炎帝의 뒤에 제후諸侯 공공共工이었다.”라고 하였다.
의 [삼묘三苗]에서 [오학五虐]까지
정의왈正義曰삼묘三苗의 임금은 실로 나라의 임금인 것이다.
미련하고 흉악한 것이 일반 백성과 같기 때문에 ‘묘민苗民’이라 이른 것인데, 윗 에서 을 하지 않은 것은 이 악행惡行에서 풀이하기 위해서였으니, 미련하고 흉악하기 때문에 감히 포학한 형벌을 행하여 죄 없는 사람을 살육한 것이다.
이아爾雅≫ 〈석고釋詁〉에 “‘’은 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크게 사람의 귀와 코를 자르고 생식기를 제거하고 얼굴에 자자하였다.”라는 것은 묘민苗民이 이런 형벌을 만든 것이다. ‘탁음椓陰’은 곧 궁형宮刑이고, ‘경면黥面’은 곧 묵형墨刑이다.
강고康誥〉에서 주공周公강숙康叔을 경계하기를 “혹시라도 사람의 코를 자르거나 귀를 자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였으니, 곧 나라 세대에도 코를 자르고 귀를 자르는 형벌이 있었고, 묘민苗民이 별도로 이 형벌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이 형벌을〉 무고한 사람에게 가하기 때문에 ‘다섯 가지 포학’이라 한 것이다.
정현鄭玄은 “‘’는 코를 자르는 것이다. ‘’은 생식기를 못 쓰게 만드는 것이고, ‘’은 사람의 얼굴에 자자하는 것이다. 묘민苗民이 이 네 가지 형벌을 크게 만든 것은 그 특히 심각함이 고요皐陶가 하던 것과 다름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정현鄭玄의 생각은 아마 귀를 자르고 코를 자르는 것은 과다하게 자르는 것으로, 생식기를 제거하는 것은 불알을 까는 것보다 고통스럽고, 얼굴에 자자하는 것은 이마에 자자하는 것보다 심한 것으로 여긴 것이리니, 공안국孔安國의 생각도 혹 그렇게 여겼으리라.
의 [삼묘三苗]에서 [之約]까지
정의왈正義曰:‘삼묘국三苗國 안의 백성들을 이른다. ‘’은 익히 더렵혀짐을 이르니, 의 임금이 오랜 동안 포학한 형벌을 행하자, 백성들이 난정亂政을 익히 보아 배워서 예사로 여기고 일어나 서로 점점 변화하였다.
민민泯泯’은 서로 같은 뜻이다. ‘분분棼棼’은 흔드는 모양이다. ‘을 하는 것이다.
’은 의 뜻과 같으니, ‘신의信義와 합당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교언巧言〉에 “군자君子가 자주 맹약盟約을 하는지라 이 이 때문에 조장되며”라고 하였으니, 난세亂世의 백성들이 많이들 서로 맹약盟約은 하지만 이미 신의信義가 없어 반드시 모두 어기니, 이로써 신의와 합당하지 않고 맹약盟約한 약속을 배반하였다는 것이다.
의 [삼묘三苗]에서 [성취腥臭]까지
정의왈正義曰:‘묘민苗民을 굽어보니 향기로운 덕행이 없었다. ‘형향馨香’은 을 비유한 것이다.
묘민苗民이 스스로 ‘덕형德刑’이라 이른 것은 밖으로 발현하여 모두 비린내만을 풍겼다. ‘성취腥臭’는 을 비유한 것이다.
의 [군제君帝]에서 [하국下國]까지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고釋詁〉에 “‘’은 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묘민苗民(묘군苗君)을 멸절하여”라고 말하고,
아랫 구에서는 곧 “중씨重氏여씨黎氏에게 명하여”라고 말하였는데, 중씨重氏여씨黎氏는 바로 제요帝堯의 일에 속하니, 이 묘민苗民을 멸망시킨 것도 또한 제요帝堯였다는 점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묘민苗民을 멸망시킨 것이 가 처음 일어났을 때에 있어서, 대를 이어가는 자리가 하국下國에 있을 수 없게 하였고, 의 말년에 또 삼묘三苗를 귀양 보낸 일이 있었던 것은 천자天子는 〈어떤〉 나라를 〈영영〉 멸망시키지 않고 그 〈나라 임금〉 다음으로 어진 자를 골라서 세우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 다섯 가지의 포학한 것을 만든 임금은 스스로 대를 이어가는 자리가 하국下國에 있을 수 없게 만들고, 그 고쳐서 세운 자는 다시 조정에 있을 수 있게 하였다. 다만 이 족속은 자주 흉덕凶德을 빚어냈기 때문에 역대로 매번 주벌을 받았을 뿐이다.
중씨重氏여씨黎氏에게 명하여 땅과 하늘이 통하는 길을 끊어서 〈하늘에 있는 은 땅에〉 내려오지 못하게 하고, 〈땅에 있는 사람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게 한대,
’은 곧 ‘’요 ‘’는 곧 니, 임금이 희씨羲氏화씨和氏에게 명하여 대대로 천지天地사시四時에 관한 일을 맡는 관직을 관장하게 하였다.
사람과 이 요란하지 않아 각각 질서를 얻게 하였으니, 이것을 ‘絶地天通’이라 이른다.
하늘에 있는 은 땅에 내려올 수 없게 하고 땅에 있는 사람은 하늘에 올라갈 수 없게 함을 말하는 것으로 곧 서로 간섭하지 못하게 함을 밝힌 것이다.
여러 임금(제후諸侯)과 하국下國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밝고 밝은 대도大道를 가지고 상법常法을 도와 행했기 때문에 홀아비와 과부라 하더라도 〈그 안정된 처소를 얻어서〉 가려지는 일이 없었느니라.
여러 임금인 제후諸侯하국下國에 있는 여러 신하들이 모두 밝고 밝은 대도大道를 가지고 상법常法을 도와 행했기 때문에 홀아비와 과부들이 안정된 처소를 얻어서 가려지는 일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황제皇帝께서 하민下民들에게 겸허히 물으시니, 홀아비와 과부가 에 대해 원망하는 말이 있었다.
제요帝堯가 백성들의 우환憂患을 자세히 물으니, 모두 묘민苗民(묘군苗君)에 대해 원망하는 말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융馬融이 “청신清訊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으로 위엄을 행하신대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으로 〈어진 이를〉 밝히신대 〈사람들이 힘써 스스로 닦아 덕을〉 밝아지게 하였느니라.
임금은 묘민苗民이 원망 받는 것을 보자 더욱 그 을 닦았고, 〈으로〉 위벌威罰을 행하자 백성들이 두려워 복종하였고, 〈으로〉 어진 이를 밝히자 이 사람을 밝아지게 했다. 그래서 〈임금의 에 대하여〉 딱히 무어라고 명명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의 [내명乃命]에서 [추명推明]까지
정의왈正義曰삼묘三苗을 어지럽히자, 백성과 이 뒤섞여 어지러웠다. 제요帝堯가 이미 묘민苗民주벌誅罰하고 나서 이에 중씨重氏여씨黎氏에게 명하여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하는 것을 끊게 하고, 백성과 이 뒤섞이지 않도록 하였다.
그래서 하늘에 있는 은 아래로 땅에 이를 수 없었고, 땅에 있는 백성은 위로 하늘에 이를 수 없었다. -하늘에 있는 과 땅에 있는 백성이 서로 뒤섞이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여러 임금인 제후諸侯가 서로 하국下國에 있는 여러 신하와 더불어 모두 밝고 밝은 대도大道를 가지고 상법常法을 도와 행했기 때문에 홀아비와 과부들이 모두 안정된 처소를 얻어서 가려지는 것이 없게 되었다.
군제君帝이신 제요帝堯께서 하민下民들이 걱정하는 바를 겸허히 살피고 자세히 물으시니, 홀아비와 과부가 모두 묘민苗民(묘군苗君)에 대해 원망하는 말이 있었다. -주벌誅罰이 백성들의 뜻에 합함을 말한 것이다.-
임금이 묘민苗民이 원망 받는 것을 보자 또 더욱 그 을 닦았고, 으로 위벌威罰을 행하자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비방하지 못하였다.
으로 사람을 밝히자 사람들이 모두 힘써 스스로 닦아 을 밝아지게 하였다. -임금이 행한 상벌賞罰이 그 적소를 얻었다고 말한 것이다.-
의 [重即]에서 [상간相干]까지
정의왈正義曰:≪국어國語≫ 〈초어楚語 〉에 “소왕昭王관사보觀射父에게 묻기를 ‘〈주서周書〉에 이른바 「중씨重氏여씨黎氏가 실제로 하늘과 땅을 통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은 어떤 것이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백성들이 장차 하늘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라고 하자,
관사보觀射父가〉 대답하기를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백성과 이 뒤섞이지 않았었는데, 소호씨少昊氏가 쇠락하자, 구려九黎을 어지럽혀 집집마다 가 되어 백성과 이 지위가 같아지고 화재禍災가 거듭 닥쳤습니다.
전욱顓頊이 이(왕위)를 이어받아 이에 남정南正에게는 명하여 하늘을 맡아 을 소속시키고, 화정火正에게는 명하여 땅을 맡아 백성을 소속시켜 옛 법을 회복하여 〈백성과 이〉 서로 침독侵瀆함이 없게 하였으니, 이것을 「땅과 하늘이 통하는 것을 끊었다.」고 이른 것입니다.
그 뒤에 삼묘三苗구려九黎을 답습하였는데, 임금이 다시 중씨重氏여씨黎氏의 후손을 육성하여 〈그중에서〉 선대의 일을 잊지 않는 자로 다시 〈하늘과 땅의 일을〉 맡도록 하였습니다.’ 했다.”라고 하였다.
저기에서 한 말은 이 일을 위주로 해서 설명한 것이고, 〈요전堯典〉에 “이에 희씨羲氏화씨和氏에게 명하여 호천昊天의 명을 경건하게 따르게 하고”라는 것은 곧 이른바 ‘중씨重氏여씨黎氏의 후손을 육성하여 맡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써 “‘’은 곧 ‘’요 ‘’는 곧 다.”라는 점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가 바로 의 자손이고 가 바로 의 자손으로 능히 조상의 옛 사업을 잊지 않았음을 말하였기 때문에 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에서 말한 “임금이 이에 희씨羲氏화씨和氏에게 명하여 대대로 천지天地사시四時에 관한 일을 맡는 관직을 관장하게 하였다.”란 것은 〈요전堯典〉의 글이고,
“백성과 이 요란하지 않았으니, 이것을 ‘땅과 하늘이 통하는 것을 끊었다.’고 이른 것이다.”라는 것은 〈초어楚語〉의 글이다. 공안국孔安國은 오직 “각각 그 질서를 얻게 했다.”란 한 만을 더했을 뿐이다.
초어楚語〉에 또 “하늘을 맡아 을 소속시키고, 땅을 맡아 백성을 소속시킨다.”라는 것은 으로 하여금 하늘과 함께 위에 있게 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땅과 함께 아래에 있게 하여 위와 아래의 분별을 정해서 백성과 으로 하여금 뒤섞이지 않도록 하면 제향祭享에 법도가 있어 재려災厲가 생기지 않는다.
은 백성과 을 분별하는 뜻을 말했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은 땅에〉 내려오지 못하게 하고, 〈땅에 있는 사람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게 한다.”라고 말한 것이니, “하늘에 있는 은 내려와 땅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 백성을 간섭하지 못하게 함을 이른 것이다.
공안국孔安國은 따라서 호문互文을 하기를 “땅에 있는 백성은 올라가 하늘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라는 것은 백성이 을 간섭하지 못하게 함을 말한 것이다. 이에 총합해서 이르기를 “서로 간섭하지 못하게 함을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곧 이 백성과 이 뒤섞이지 않는 것이다.
지민地民’은 더러 ‘지기地祇’로 적는데, 학자學者들 대부분이 ‘신기神祇’로 들었고 또 ‘’자가 ‘’와 비슷하기 때문에 따라서 망령되이 고쳐서 잘못되게 한 것일 뿐이다.
초어楚語〉에서 말한 “이에 중씨重氏여씨黎氏에게 명하여”라고 한 경우와 같은 것은 바로 전욱顓頊이 명한 것인데, 정현鄭玄은 “‘전욱顓頊의 일을 말한 것이다.
내명중려乃命重黎’는 곧 중씨重氏여씨黎氏의 본인에게 명한 것이니, 희씨羲氏화씨和氏가 아니다. ‘임금의 일을 말한 것이다.
전욱顓頊임금이 두 번 묘민苗民을 주벌했기 때문에 위에서는 ‘遏絕苗民’이라 말하고, 아래에서는 ‘有辭於苗’라 하였으니, 시대가 다르고 동일한 일이 아니었다.”라고 하였다.
상고하건대, 〈초어楚語〉에 “소호씨少昊氏가 쇠락하자 구려九黎을 어지럽혔다.”라고 하고, 또 “그 뒤에 삼묘三苗구려九黎을 답습했다.”라고 하였으니, ‘구려九黎’와 ‘삼묘三苗’는 동일한 인물이 아니다.
전욱顓頊구려九黎를 주벌하였는데, 이를 일러 “묘민苗民알절遏絶했다.”라고 한 것은 정현鄭玄의 뜻풀이에 합당하지 못한 점이 있고, 〈초어楚語〉에서 말한 ‘전욱顓頊중씨重氏여씨黎氏에게 명한 것’을 제요帝堯희씨羲氏화씨和氏에게 명한 것으로 풀이한 것은 공안국孔安國에 또 합당하지 못한 점이 있으니, 두 가지는 누가 의 뜻을 제대로 터득했는지 모르겠다.
의 [言堯]에서 [名焉]까지
정의왈正義曰:이 의 두 제요帝堯에 관한 일을 말한 것인데, 그 말이 순조롭지 못하다.
글이 ‘묘민苗民’의 아래에 놓였기 때문에 에서 “임금은 묘민苗民이 원망 받는 것을 보자 또 더욱 그 을 닦았다.”라고 하였으니, 을 도탑게 해서 백성들에게 임하고 을 가지고 그 위벌威罰을 행하니,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비방하지 못하였다.
‘어진 이를 밝히니, 덕이 사람을 밝아지게 했다.’는 것은 범상한 사람 같은 경우는 비록 으로 어진 이를 밝히려고 해도 잘 살필 수 없지만, 지금 임금이 으로 어진 이를 밝히면 으로 어진 이를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에 모두들 권면하고 사모해서 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윗 구와 상호 관련을 밝힌다면 ‘덕위德威’란 것은 범상한 사람은 비록 으로써 위엄을 행하고자 하여도 위엄으로 엄숙하게 할 수 없지만, 지금 임금이 위벌威罰을 행하면 능히 으로써 죄인을 위벌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위엄에 두려워하고 에 복종한다는 것이다.


역주
역주1 皇帝 : 蘇軾은 孔傳처럼 ‘堯’로 보고, 林之奇와 呂祖謙은 ‘舜’으로 보았는데, 蔡傳은 林之奇와 呂祖謙을 따랐다. 洪奭周(≪尙書補傳≫)는 “孔傳은 ‘皇帝는 帝堯이다.’라고 하고, 蔡傳은 ‘皇帝는 帝舜이다.’라고 하였는데, 孔傳은 아마 ≪國語≫의 ‘堯가 다시 重氏와 黎氏의 후손을 육성했다.’에 의거하고, 蔡傳은 ‘舜이 三苗를 귀양 보냈다.’에 의거한 것 같으니, 두 설이 다 통할 수 있다. 皇帝의 號가 秦나라 始皇에서 시작되어 歷代로 그를 따라 지금에 이르기까지 典法으로 삼고 있는데, 胡寅이 일찍이 그 잘못을 기롱한 바 있었으나 그것이 이미 堯舜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은 몰랐던 것이다.[孔傳曰 皇帝帝堯也 蔡傳曰 皇帝帝舜也 孔傳蓋據國語堯復育重黎之後 蔡傳則據舜竄三苗 二說皆可通也 皇帝之號 起於秦始 而歷代沿之 至于今爲典 胡寅嘗譏其非 然不知其已自堯舜始矣]”라고 하였다.
阮校에 “陸氏는 ‘皇은 마땅히 君字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상고하건대, 陸氏는 傳에 ‘君帝’란 말이 있는 것으로 인하여 결국 ‘經의 皇字는 마땅히 君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經은 스스로 皇으로 만들고 傳은 스스로 君으로 만든 것임을 알지 못하였다. 傳에서 君帝를 가지고 經의 皇帝를 풀이하여 秦나라의 이른바 ‘皇帝’와 구별하였다. 皇이 君이 된 것은 일상적인 訓釋이기 때문에 傳에서 특별히 풀이하지 않았다. 아랫 經의 官伯을 傳에서 官長으로 만들었으니, 또한 장차 經의 伯字를 마땅히 長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르겠는가. 單本의 ≪經典釋文≫을 상고하면 곧 ‘君帝’ 두 글자를 크게 쓰고, 注에서 ‘君은 마땅히 皇字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더욱 잘못된 것이다. 注疏本에 실린 것이 틀리지 않았다.[陸氏曰 皇宜作君字 ○按陸氏因傳有君帝之語 遂謂經之皇字宜作君 不知經自作皇 傳自作君 傳以君帝 釋經皇帝 以別於秦之所謂皇帝也 皇之爲君 自是常訓 故傳不特釋之 下經官伯 傳作官長 亦將謂經之伯字 當作長乎 考單本釋文 乃大書君帝二字 注云君宜作皇字 尤爲舛誤 注疏本所載不誤也]”라고 하였다.
역주2 : 阮元의 校勘記에는 “岳本․葛本은 같고, 毛本은 皇이 君으로 되었는데, 山井鼎은 ‘宋板은 君이 皇으로 되었는데, 正嘉本도 같고, 古本과 萬曆本․崇禎本도 모두 君으로 되었다.’고 하였다. 지금 상고하건대, 岳本․葛本․十行本․閩本․纂傳 또한 모두 皇으로 되었는데, 疏는 ≪爾雅≫ 〈釋詁〉로 인하여 傳을 풀이하였으니, ≪傳≫은 응당 君으로 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陸德明이 의거한 本은 아마 또한 君으로 된 것이었으리라.[岳本葛本同 毛本皇作君 山井鼎曰 宋板君作皇 正嘉同 古本萬曆崇禎本 俱作君 今按 岳葛十行閩本纂傳 亦俱作皇 疏因釋詁以解傳 則傳宜作君明矣 陸德明所據之本 蓋亦作君也]”라고 하였다.
역주3 (末)[於] : 저본에는 ‘末’로 되어 있으나, 宋刊 單疏本에 의거하여 ‘於’로 바로잡았다.
역주4 始造 : 孔傳은 經文의 ‘惟始作亂’에서 ‘惟’를 뺀 ‘始作亂’을 문장구성의 리듬을 맞추기 위하여 ‘비로소 造’자를 ‘始’자 위에 얹어서 ‘造始作亂’으로 만든 것인데, 孔疏는 造를 ‘지을 造’자로 보기 위하여 孔傳의 ‘造始’를 ‘始造’로 순서까지 바꾸어서 ‘今始造之(지금 비로소 조작했다.)’로 만들어 다른 뜻을 도출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역주5 (君)[名] : 저본에는 ‘君’으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는 ‘君’이 ‘名’으로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君’자는 오류이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名’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皇)[黃] : 저본에는 ‘皇’으로 되어 있으나, 宋刊 單疏本에 의거하여 ‘黃’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此)[亂] : 저본에는 ‘此’로 되어 있으나, “浦鐺이 ‘亂’은 ‘此’로 잘못되어 있다고 한 것이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亂’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 穆王深惡此族三生凶德, 故著其惡而謂之民 : 兪樾은 “상고하건대, ≪禮記≫ 〈坊記〉편의 ‘先民有言’에 대한 鄭注에 ‘“先民’은 上古의 임금을 이른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三苗之君’은 ‘苗民’를 이른 것이니, ‘先民之義’에 딱 들어맞는다. 그런데 鄭玄이 이 經文에서 또 꼭 曲說을 늘어놓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召誥〉에 ‘옛날 先民인 夏나라를 살펴보소서.’라고 하였으니, 그 또한 미워한 것인가.[謹按 禮記坊記篇 先民有言 鄭注曰 先民謂上古之君也 然則三苗之君 謂之苗民 正合先民之義 鄭於此經 又必曲爲之說 何也 召誥曰 相古先民有夏 豈亦惡之歟]”라고 하였다.(≪群經平議≫)
역주9 [民] : 저본에는 ‘袛’로 되어 있으나, 疏文에 의거하여 ‘民’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德明 惟明 : 蔡傳은 “덕으로 밝히자 천하가 밝지 않음이 없었다.[以德明而天下無不明也]”라고 풀이하였다.
역주11 (推)[惟] : 저본에는 ‘推’로 되어 있으나, 經文에 의거하여 ‘惟’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6)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