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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正義(6)

상서정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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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曰 嗚呼 念之哉어다
[傳]念以伯夷爲法하고 苗民爲戒
伯父 伯兄 仲叔 季弟 幼子 童孫 하라
[傳]皆同姓이니 有父兄弟子孫列者
伯仲叔季 順少長也 舉同姓包異姓 言不殊也 聽從我言하여 庶幾有至命이라
[傳]今汝無不用安自居하여 汝無有徒念戒而不勤이라
[傳]天整齊於下民 使我爲之 一日所行 非爲天所終하고 惟爲天所終 在人所行이라
○天齊于民 絕句 馬云 齊 中也라하니라 俾我 絕句 馬本作矜하니 哀也
爾尙敬逆天命하여 以奉我一人하라 하라
[傳]汝當庶幾敬逆天命하여 以奉我一人之戒하라 行事雖見畏 勿自謂可敬畏하고 雖見美 勿自謂有德美하라
[傳]先戒以勞謙之德하고 次教以惟敬五刑하니 所以成剛柔正直三德也
天子有善이면 則兆民賴之하니 其乃安寧長久之道니라
[疏]‘王曰’至‘惟永’
○正義曰:王言而歎曰 “嗚呼, 汝等諸侯, 其當念之哉.” 念以伯夷爲法, 苗民爲戒.
既令念此法戒, 又呼同姓諸侯曰 “伯父․伯兄․仲叔․季弟․幼子․童孫等, 汝皆聽從我言, 依行用之, 庶幾有至善之命.
-命, 必長壽也.- 今汝等諸侯, 無不用安道以自居, 曰我當勤之哉.
汝已許自勤, 即當必勤, 汝無有徒念我戒, 許欲自勤而身竟不勤. -戒使必自勤也.-
上天欲整齊於下民, 使我爲之, -令我爲天子整齊下民也.-
我一日所行失其道, 非爲天所終, 一日所行得其理, 惟爲天所終, 此事皆在人所行. -言己當慎行以順天也.-
我已冀欲順天, 汝等當庶幾敬逆天命, 以奉用我一人之戒. 汝所行事, 雖見畏, 勿自謂可敬畏.
雖見美, 勿自謂有德美. -欲令其謙而勿自取也.-
汝等惟當敬慎用此五刑, 以成剛柔正直之三德, 以輔我天子. 我天子一人有善事, 則億兆之民蒙賴之.
若能如此, 其乃安寧, 惟久長之道也.”
[疏]○傳‘皆王’至‘至命’
○正義曰:此總告諸侯, 不獨告同姓, 知“舉同姓包異姓”也.
‘格’, 訓至也, 言“庶幾有至命”, ‘至命’, 當謂至善之命, 不知是何命也.
鄭玄云 “格, 登也. 登命謂壽考者.” 傳云 ‘至命’, 亦謂壽考.
[疏]○傳‘今汝’至‘不勤’
○正義曰:‘由’, 用也, ‘慰’, 安也. 人之行事, 多有始無終, 從而不改.
王既殷勤教誨, 恐其知而不行, 或當曰欲勤行而中道倦怠, 故以此言戒之.
今汝等諸侯, 無不用安道以自居, 言曰我當勤之. ‘安道’者, 謂勤其職, 是安之道, 若不勤其職, 是危之道也.
[疏]○傳‘天整’至‘所行’
○正義曰:‘天整齊於下民’者, 欲使之順道依理, 以性命自終也. 以民不能自治, 故使我爲之, -使我爲天子.-
我既受天委付, 務欲稱天之心. 墜失天命, 是不爲天所終. 保全祿位, 是爲天所終.
我一日所行善之與惡, 非爲天所終, 惟爲天所終, 皆在人所行. -王言‘已冀欲使爲行稱天意也.’-
[疏]○傳‘汝當’至‘德美’
○正義曰:‘逆’, 迎也. 上天授人爲主, 是下天命也, 諸侯上輔天子, 是逆天命也, 言與天意相迎逆也.
‘汝當庶幾敬逆天命, 以奉我一人之戒’, 欲使之順天意而用己命.
凡人被人畏, 必當自謂己有可畏敬, 被人譽, 必自謂己實有德美.
故戒之, “汝等所行事, 雖見畏, 勿自謂可敬畏, 雖見美, 勿自謂有德美.” 教之令謙而不自恃也.
[疏]○傳‘先戒’至‘之道’
○正義曰:上句“雖畏勿畏, 雖休勿休.” 是“先戒以勞謙之德”也.
, 易謙卦九三爻辭, 謙則心勞, 故云 ‘勞謙’, 天子有善, 以善事教天下, 則兆民蒙賴之.


이 말씀하였다. “아, 유념할지어다.
백이伯夷를 법으로 삼고 묘민苗民을 경계로 삼을 것을 유념하라는 것이다.
백부伯父백형伯兄중형仲兄숙형叔兄계제季弟유자幼子동손童孫들아. 모두 내 말을 경청하여 부디 지명至命(장수長壽)을 갖도록(누리도록) 하라.
모두 동성同姓이니, , , , , 의 항렬이 있는 것이다.
, , , 소장少長의 순서를 따른 것이다. 동성同姓을 들어 이성異姓을 포함시킨 것은 다르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나의 말을 경청하여 부디 지선至善수명壽命을 갖도록 하라는 것이다.
지금 너희는 〈안위할 방도를〉 써 자위하기를 ‘응당 근면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자가 없지만, 너희는 경계하는 말만 유념하고 근면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라.
지금 너희는 안위할 방도를 써 자처하여 말하기를 ‘응당 근면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자가 없지만, 너희는 한갓 경계하는 말만 유념하고 근면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하늘이 하민下民정제整齊하려는 일을 나로 하여금 하게 한다. 하루라도 행하는 바가 〈그 도리를 잃는 것은〉 하늘을 위하여 잘 마무리하는 바가 아니고, 〈하루라도 행하는 바가 그 이치를 얻는 것은〉 하늘을 위하여 잘 마무리하는 것이니, 〈이 일은〉 모두 사람이 행하는 바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늘이 하민下民정제整齊하려는 일을 나로 하여금 하게 한다. 하루라도 행하는 바가 〈그 도리를 잃는 것은〉 하늘을 위하여 잘 마무리하는 바가 아니고, 〈하루라도 행하는 바가 그 이치를 얻는 것은〉 하늘을 위하여 잘 마무리하는 것이니, 〈이 일은〉 모두 사람이 행하는 바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를 끊는다. 마융馬融은 “‘’는 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를 끊는다. 〈‘’가〉 마본馬本에는 ‘’으로 되어 있는데, ‘’은 의 뜻이다.
너희는 부디 천명天命을 경건히 맞이하여 나 한 사람의 〈경계를〉 받들도록 하라. 〈너희들은 행하는 일에〉 비록 위협을 당하더라도 떨리는 마음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 말고, 비록 칭찬을 듣더라도 실제로 아름다운 덕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 말도록 하라.
너희들은 부디 천명天命을 경건히 맞이하여 나 한 사람의 경계를 받들도록 하라. 〈너희들은〉 일을 행함에 있어서 비록 위협을 당하더라도 스스로 놀라고 떨리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지 말고, 비록 칭찬을 듣더라도 스스로 실제로 아름다운 덕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너희들은〉 오직 오형五刑경근敬謹하여 〈정직正直의〉 삼덕三德을 도와 이루어 〈나 한 사람을 보필하여야 한다.〉 나 한 사람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조민兆民이 그를 힘입으니, 이것이 안녕을 장구히 누리는 길이다.”
먼저 노겸勞謙을 가지고 경계하였고, 그 다음 오형五刑경근敬謹할 것을 가지고 가르쳤으니, 그것은 정직正直삼덕三德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천자天子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조민兆民이 그를 힘입으니, 그것이 바로 안녕安寧을 장구히 누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의 [왕왈王曰]에서 [惟永]까지
정의왈正義曰이 말씀하다가 탄식하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아, 너희들 제후諸侯는 의당 유념할지어다.”라고 한 것은 백이伯夷으로 삼고 묘민苗民을 경계로 삼을 것을 유념하라는 것이다.
이미 이 과 경계를 유념하도록 하고 나서 또 동성同姓제후諸侯들을 불러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백부伯父백형伯兄중숙仲叔계제季弟유자幼子동손童孫들아. 너희들은 모두 나의 말을 들어 따라 그에 의해 행용하여 부디 지선至善을 갖도록(누리도록) 하라.
-‘’은 필시 ‘장수長壽’일 것이다.-지금 너희들 제후諸侯는 안위할 방도를 써서 자처하기를 ‘우리는 마땅히 근면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너희는 이미 스스로 근면할 것을 다짐하였으므로 즉시 응당 반드시 근면해야 할 것인데, 너희는 한갓 나의 경계만 유념하여 스스로 〈말로만〉 근면하려 한다고 다짐하고서 몸은 끝내 근면하지 않는다. -반드시 스스로 근면하도록 경계한 것이다.-
하늘이 하민下民정제整齊하려는 일을 나로 하여금 하게 한다. -나로 하여금 천자天子가 되어 하민을 정제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하루라도 행하는 바가 그 도리를 잃는 것은 하늘을 위하여 잘 마무리하는 바가 아니고, 하루라도 행하는 바가 그 이치를 얻는 것은 하늘을 위하여 잘 마무리하는 것이니, 이 일은 모두 사람이 행하는 바에 달려 있는 것이다. -자기가 마땅히 행실을 삼가서 하늘을 따라야 함을 말한 것이다.-
나는 이미 하늘을 따르려는 것을 희망하였으니, 너희는 부디 천명天命을 경건히 맞이하여 나 한 사람의 경계를 받들도록 하라. 너희들은 행하는 일에 비록 위협을 당하더라도 놀라고 떨리는 마음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 말고,
비록 칭찬을 듣더라도 실제로 아름다운 덕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 말라. -겸손해서 스스로 취했다고 하지 않게 하고자해서다.-
너희들은 오직 마땅히 이 오형五刑경근敬謹하게 활용하여 정직正直삼덕三德을 이루어서 천자天子인 나를 보필하여야 한다. 나 천자 한 사람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억조창생이 그를 힘입을 것이다.
만일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그것이 바로 안녕安寧을 장구히 누리는 길이니라.”
의 [皆王]에서 [지명至命]까지
정의왈正義曰:이 문단은 총체적으로 제후諸侯들에게 고한 것이고 동성同姓에게만 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성同姓을 들어 이성異姓을 포함했다.”라는 점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은 의 뜻으로 풀이하므로 “부디 지명至命을 갖도록 하라.”고 말한 것이니, ‘지명至命’은 응당 지선至善을 이를 터이나 이것이 무슨 ‘’인지는 알 수 없다.
정현鄭玄은 “‘’은 의 뜻이니, ‘등명登命’은 수고壽考를 이른 것이다.”라고 하였은즉, 에서 말한 ‘지명至命’ 역시 수고壽考를 이른 것일 터이다.
의 [今汝]에서 [불근不勤]까지
정의왈正義曰:‘’는 의 뜻이고, ‘’는 의 뜻이다. 사람이 일을 행함에 있어 시작은 있고 마무리는 없이 그대로 따르고 고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은 이미 은근히 교훈을 하였거니와 그들이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서 더러 응당 ‘부지런히 행하려고 한다.’ 하고는 중도에 권태倦怠를 부릴까 싶기 때문에 이런 말을 가지고 경계한 것이다.
지금 너희 제후諸侯들은 안위할 방도를 써 자처하여 말하기를 ‘마땅히 근면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안도安道’란 그 직무를 부지런히 함을 이르니 이것이 바로 안전한 방도이고, 만일 그 직무를 부지런히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위험한 방도인 셈이다.
의 [天整]에서 [소행所行]까지
정의왈正義曰:‘성명性命으로써 스스로 마무리를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능히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정제하게 하는 것이니, -나로 하여금 천자天子가 되게 한 것이다.-
나는 이미 하늘의 위탁을 받았으니, 힘써 하늘의 마음을 맞추려고 한다. 천명天命을 실추하면 이는 하늘을 위하여 잘 마무리하는 바가 아니고, 녹위祿位을 보전하면 이는 하늘을 위하여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내가 하루라도 행하는 바의 하고 함이 하늘을 위하여 잘 마무리하는 바가 아니고, 하늘을 위하여 잘 마무리하는 것은 모두 사람이 행하는 바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은 ‘모든 행위가 하늘의 뜻에 맞추고자 함을 이미 바랐다.’라고 말한 것이다.-
의 [汝當]에서 [덕미德美]까지
정의왈正義曰:‘’은 의 뜻이다. 하늘이 사람에게 주어 임금으로 삼으니, 이것이 천명天命을 내리는 것이고, 제후諸侯가 위로 천자天子를 보필하니, 이것이 천명天命을 맞이하는 것이므로 천의天意와 함께 서로 맞이함을 말한 것이다.
汝當庶幾敬逆天命 以奉我一人之戒’란 것은 하늘의 뜻을 따라 자기의 명령을 쓰도록 하려는 것이다.
범상한 사람은 남에게 위협을 당하면 반드시 응당 자신에게 놀라고 떨리는 마음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고, 남에게 칭찬을 받으면 반드시 자신에게 실제로 아름다운 덕이 있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러므로 경계하여 “너희가 행하는 일에 비록 위협을 당하더라도 놀라고 떨리는 마음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 말고, 비록 칭찬을 듣더라도 〈자신에게 실제로〉 아름다운 덕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교훈을 통하여 겸손을 부려서 자신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의 [선계先戒]에서 [之道]까지
정의왈正義曰:윗 구에 “비록 위협을 당하더라도 떨리는 마음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 말고, 비록 칭찬을 듣더라도 아름다운 덕이 〈실제로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이 바로 “먼저 노겸勞謙을 가지고 경계하였고”라는 것이다.
노겸勞謙’은 ≪주역周易겸괘謙卦구삼효사九三爻辭인데, 겸손을 부리자면 마음이 피로하기 때문에 ‘노겸勞謙’이라 한 것이니, 천자天子에게 좋은 일이 있어 좋은 일로 천하天下를 가르치면 조민兆民이 그를 힘입는다는 것이다.


역주
역주1 皆聽朕言 庶有格命 : 蔡傳은 “모두 朕의 말을 경청하라. 거의 지당한 명령이 있을 것이다.”로 풀이하였다.
역주2 (石)[王] : 저본에는 ‘石’으로 되어 있으나, 宋兩浙東路茶鹽司本에 의거하여 ‘王’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今爾罔不由慰日勤 爾罔或戒不勤 : 孔傳에서 經文의 ‘日勤’이란 日을 曰로 적은 점에 대하여 〈阮校〉에서는 “〈孔本〉에 본래 ‘曰’자로 되어 있으니 지금 ‘曰’자로 정한다. ≪唐石經≫에 ‘日’자로 된 것은 잘못이다.[孔本本作曰字 今定作曰 唐石經作日非也]”라고 하였고, 夏僎은 “經文이 본시 ‘曰’자로 되어 있으니, ‘日’자로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너희는 오늘날 서로 安慰하며 말하기를 ‘각각 맡은 직책을 근면하자.’고 해야 되지, 내가 두세 번 경계해도 외려 근신하지 않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이른 것이다.[經文本是曰字 不當作日字解……謂汝等今日惟用相安慰而言曰 各勤乃職 無有待我再三戒之 而猶不勤者]”라고 하였다.
그러나 蘇軾은 “너희는 獄吏를 〈임용함에 있어서〉 위안하면서 날로 근신하는 자를 임용해야 하고, 경계하면서 끝내 근신하지 않는 자를 임용해서는 안 된다.[爾當用獄吏慰安之而日愈勤者 不當用戒勅之而終不勤者]”로, 林之奇는 지금 너희는 마땅히 朕의 말을 들어 서로 위로하고 힘쓰면서 날로 더욱 근면해야 하지 서로 근면하지 않을 것으로 경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言今爾當無不由朕之言 相慰勉而日愈勤 不可相戒以不勤也]”라고 하고, 呂祖謙은 “‘今爾罔不由慰日勤’은 편안히 행하여 스스로 위로할 일은 근면하지 않는 날이 없는 데에 있을 뿐이란 것이다. ‘위로’란 것은 〈죄인의〉 정상을 얻어낸 점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 대개 맡은 직책을 해이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자위한 것이다. ‘爾罔或戒不勤’은 반드시 일찍이 게으름을 부린 연후에야 경계하는 것이다.[今爾罔不由慰日勤 所以安行而自慰 止在乎無日不勤也 慰者非得其情而喜 盖以不弛其職自慰也 爾罔或戒不勤者 必嘗惰然後戒]”라고 하여 ‘日’자로 보았다.
역주4 曰當勤之 : 孔傳에서 經文의 ‘日勤’의 日을 曰로 본 점에 대하여 兪樾(≪群經平議≫)은 “만일 枚傳의 뜻과 같다면 經文에서 응당 ‘曰勤’으로 적었을 것이고, ≪唐石經≫에서 ‘日’로 적은 것은 잘못일 터이다. 枚傳의 뜻은 迂曲하여 經의 本旨를 얻지 못하였다. 穆王의 생각은 아마 ‘지금 너희는 스스로 위안하면서 “우리는 이미 근면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 자가 없지만, 너희는 근면하지 않음을 스스로 경계하는 자가 없다.’고 여긴 것이리라. 위안함과 경계함은 정 상반된 것이니, 근면함을 가지고 스스로 위안하기 때문에 근면하지 않음을 스스로 경계할 줄 모른 것이다. 經文의 뜻이 본래 너무도 簡明한데, 傳의 뜻은 도리어 말이 많이 허비된 것이 혐의쩍다.[如枚傳義 則經文當作曰勤 唐石經作日誤也 惟枚義迂曲 未得經旨 穆王之意 蓋謂 今汝等 無不用以自安曰 我已勤矣 汝等無有自戒其不勤者 慰與戒正相反 惟其以勤自慰 故不知以不勤自戒也 經義本極簡明 傳義反嫌詞費矣]”라고 하였다.
역주5 天齊于民……在人 : 蘇軾은 “刑獄은 믿는 바가 있어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이것을 가지고 亂民을 정제할 뿐이다. 대개 나로 하여금 단 하루만 형벌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궁극적인 要道가 아니다. 믿어 잘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올바른 사람을 얻는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다.[刑獄非所恃以爲治也 天以是整齊亂民而已 蓋使我爲一日之用 非究竟要道也 可恃以終者 其惟得人乎]”로, 林之奇는 “하늘이 형벌로써 下民을 정제하는 일을 나로 하여금 미루어 행하게 한다. 하루라도 행하는 바가 혹 하늘을 위하여 잘 마무리되지 않기도 하고 혹 하늘을 위하여 잘 마무리되기도 하는 것은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天以刑而整齊下民 使我推而行之 一日所行 或非爲天所終 或爲天所終 在人如何耳]”로 풀이하였다.
夏僎은 “하늘이 이것으로 亂民을 정제하되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주관하게 하니, 만일 獄訟을 맡은 사람이 하루 사이에 능히 근면하기도 하고 능히 근면하지 않기도 한다면 獄訟을 단정하는 일에 능히 그 마무리를 잘하는 경우도 있고 능히 그 마무리를 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니, 이 일은 모두 사람이 능히 근면하고 능히 근면하지 아니하는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다.[天以是整齊亂民 俾我人君主之 茍典獄之人 于一日之間 能勤與不能勤 則于斷獄之事 有能善其終者 有不能善其終者 此事全在人之能勤與不能勤耳]”로 풀이하였다.
呂祖謙은 “‘天齊于民俾我 一日非終 惟終在人’이란 것은 날마다 근면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고한 것이다. ‘형벌’이란 하늘이 이 세상 백성들을 정제하기 위한 것이니, 獄訟을 맡은 자가 특별히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그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가사 우리가 하루라도 직무를 유기하여 하늘의 일을 잘 마무리하지 않는다면 국권이 장차 바뀌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게란 것이다.[天齊于民 俾我一日非終惟終在人者 申告之以不可不日勤也 刑者天之所以整齊斯民 而典獄者 特承天意 以終其事者也 使我一日曠職 不能終天之事 則是柄將改而在它人矣]”로 풀이하였다.
역주6 雖畏……勿休 : 蔡傳은 “〈절대로 나의 비위를 맞추지 말아서〉 내가 비록 살육을 하라 하더라도 살육하지 말고 내가 비록 용서하라 하더라도 용서하지 말고[我雖以爲辟 爾惟勿辟 我雖以爲宥 爾惟勿宥]”라고 풀이하였다.
역주7 皆聽朕言……其寧惟永 : 蔡傳은 “‘格’은 지극함이다. 교차적으로 비교 분석도 하고 심문도 하고 추국도 하는 등 천하에 없는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은 獄訟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만일 털끝만치라도 태만한 마음을 가지면 백성들이 올바른 죽음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罔不由慰日勤’이란 것은 너희들이 힘써서 그 마음을 자위해야 하는 것이니, 날마다 근면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직무가 거행되어 형벌이 알맞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爾罔或戒不勤’이란 것은, 형벌의 씀은 한 번 이루어지면 다시는 변경할 수 없는 것이니, 만일 잠시라도 근면하지 않으면 형벌이 알맞음을 잃어서 비록 깊이 경계하더라도 이미 형벌이 가해진 자에게는 원상복구가 될 수 없는지라, 경계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마음이나 형벌을 써버렸으면 어찌 혹시라도 경계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또한 刑獄은 그를 믿어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 때문에 하늘이 어지러운 백성을 정제하려 할 때 우리로 하여금 단 하루만 쓰게 할 뿐이다. ‘非終’은 곧 〈康誥〉에서 말한 ‘큰 죄를 지었더라도 끝까지 저지를 죄가 아니다.’란 것이니, 우연히 저지른 과실로서 마땅히 용서받을 자를 말한 것이며, ‘惟終’은 곧 〈康誥〉에서 말한 ‘작은 죄를 지었더라도 모르고 지은 죄가 아니거든 바로 끝까지 저지를 것이다.’라는 것이니, 고의적인 범죄로서 마땅히 형벌이 가해져야 할 자를 말한 것이다.
‘非終’과 ‘惟終’은 모두 내가 가볍게 또는 무겁게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 사람이 범한 죄의 경중에 달려 있을 뿐이니, 너희들은 마땅히 天命을 공경히 맞이해서 나 한 사람을 받들라는 것이다. ‘畏’와 ‘威’는 옛날에 통용되었으니, ‘威’는 辟의 뜻으로 형벌을 가하는 것이고, ‘休’는 宥의 뜻으로 죄를 용서하는 것이다. 내가 비록 살육하라 하더라도 너희들은 살육하지 말고, 내가 비록 용서하라 하더라도 너희들은 용서하지 말고서 오직 五刑의 씀을 경건히 하여 剛․柔와 正直의 德을 이루면 임금은 위에서 경사를 누리고 백성은 아래에서 임금의 은혜를 힘입어 상하 모두가 안녕의 복을 중단 없이 영구히 향유할 것이란 말이다.[格至也 參錯訊鞠 極天下之勞者 莫若獄 苟有毫髮怠心 則民有不得其死者矣 罔不由慰日勤者 爾所用以自慰者 無不以日勤 故職舉而刑當也 爾罔或戒不勤者 刑罰之用 一成而不可變者也 苟頃刻之不勤 則刑罰失中 雖深戒之 而已施者亦無及矣 戒固善心也 而用刑 豈可以或戒也哉 且刑獄 非所恃以爲治也 天以是整齊亂民 使我爲一日之用而已 非終 卽康誥大罪非終之謂 言過之當宥者 惟終 卽康誥小罪惟終之謂 言故之當辟者 非終惟終 皆非我得輕重 惟在夫人所犯耳 爾當敬逆天命 以承我一人 畏威 古通用 威 辟之也 休 宥之也 我雖以爲辟 爾惟勿辟 我雖以爲宥 爾惟勿宥 惟敬乎五刑之用 以成剛柔正直之德 則君慶於上 民賴於下 而安寧之福 其永久而不替矣]”라고 풀이하였다.
역주8 勞謙 : 王弼의 注는 “힘써 겸손을 부리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勞謙匪解]”로, 孔疏는 “겸손부리기에 피로하다.[勞倦於謙]”로, 程傳은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한 德을 가진 자[有功勞而持謙德者]”라고 풀이하였다.

상서정의(6)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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