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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經注疏

효경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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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風‧雅‧頌 分爲四詩하야
[疏]正義曰:詩有國風‧小雅‧大雅‧周頌‧魯頌‧商頌, 故曰“國風‧雅‧頌”.
四詩者, 毛詩‧韓詩‧齊詩‧魯詩也. 毛詩, 自夫子授卜商, 傳至大毛公, 名.
大毛公授毛萇, 趙人, 爲河間獻王博士. 先有子夏詩傳一卷, 萇各置其篇端, 存其作者.
至後漢大司農鄭玄, 爲之箋. 是曰毛詩. 韓詩者, 漢文帝時博士燕人韓嬰所傳. 武帝時, 與董仲舒論於上前, 仲舒不能難.
至晉, 無人傳習. 是曰韓詩. 齊詩者, 漢景帝時博士淸河太傅轅固生所傳, 號齊詩.
傳夏侯始昌, 昌授后蒼輩, 門人尤盛. 後漢陳元方亦傳之, 至西晉亡. 是曰齊詩.
魯詩者, 漢武帝時魯人申公所述. 以經爲訓詁, 敎之, 無傳, 疑者則闕, 號爲魯詩.


국풍國風은 4가지 ≪≫로 갈려서,
정의왈正義曰:≪≫에는 국풍國風소아小雅대아大雅주송周頌노송魯頌상송商頌이 있기 때문에 〈≪≫를 일컬어〉 ‘국풍國風’이라고 한 것이다.
4가지 ≪≫는 ≪모시毛詩≫‧≪한시韓詩≫‧≪제시齊詩≫‧≪노시魯詩≫이다. ≪모시≫〈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시≫〉를 부자夫子(공자孔子)가 복상卜商(자하子夏)에게 전수한 〈뒤에〉 대모공大毛公에게까지 전해졌는데, 그의 이름은 이다.
대모공이 모장毛萇에게 전수했는데, 모장은 지방 사람으로, 하간헌왕河間獻王박사博士였다. 이보다 앞서 자하子夏의 ≪시전詩傳≫ 1권이 있었는데, 모장이 이(각 편의 대의大義에 대한 자하의 전주傳注)를 각 편의 서두에 배치하고 작자作者를 기록하였다.
후한後漢대사농 정현大司農 鄭玄에 이르러 을 달았다. 이것을 ‘모시’라고 한다. ≪한시≫는 한 문제漢 文帝박사博士였던 지방 사람 한영韓嬰이 전한 것이다. 그는 무제武帝동중서董仲舒와 함께 황제 앞에서 토론을 벌였는데, 동중서가 논난論難하지 못하였다.
나라 때는 전수받아 익히는 사람이 없었다. 이를 ‘한시’라고 한다. ≪제시≫〈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한 경제漢 景帝박사博士로서 청하왕淸河王태부太傅였던 원고생轅固生이 전한 것을 ‘제시’라고 부른다.
〈이것이〉 하후시창夏侯始昌에게 전해지고 하후시창이 후창后蒼의 무리에게 전수하였는데, 이때 문인門人이 더욱 많아졌다. 후한後漢진원방陳元方도 이를 전수받았는데, 서진西晉 때 이르러 없어졌다. 이것을 ‘제시’라고 한다.
≪노시≫는 한 무제漢 武帝 지방 사람 신공申公전술傳述한 것으로, 경문經文에 대해 〈자구字句를〉 해석하여 가르쳤을 뿐 〈대의大義에 대한〉 전주傳注는 없었으며 의심나는 부분은 해석하지 않았다. 이를 ‘노시’라고 부른다.


역주
역주1 (享)[亨] : 저본에는 ‘享’으로 되어 있으나, 閔本‧監本에 의거하여 ‘亨’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효경주소 책은 2019.11.0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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