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疏]正義曰:至於者, 語更端之辭也. 跡, 蹤跡也. 祖, 始也. 因而明之曰述.
言學者蹤跡相尋, 以在前者爲始, 後人從而述脩之, 若仲尼祖述堯舜之爲也. 殆, 近也. 言近且百家, 目其多也.
案其人, 今文則有魏王肅‧蘇林‧何晏‧劉邵, 吳韋昭‧謝萬‧徐整, 晉袁宏‧
,
東晉楊
‧殷仲文‧車胤‧孫氏‧庾氏,
荀昶‧孔光‧何承天‧釋慧琳, 齊王玄載‧明僧紹,
及漢之長孫氏‧江翁‧翼奉‧后蒼‧張禹‧鄭衆‧鄭玄所說, 各
爲一家也.
其梁皇侃撰義疏三卷, 梁武帝作講疏, 賀瑒‧嚴植之‧劉貞簡‧明山賓咸有說, 隋有鉅鹿魏眞克者亦爲之訓注.
其古文出自孔氏壞壁, 本是孔安國作傳, 會
, 其本亡失. 至隋, 王邵所得以送劉炫, 炫敍其得喪, 述其義疏議之.
劉綽亦作疏, 與鄭義俱行. 又馬融亦作古文孝經傳, 而世不傳. 此皆祖述名家者也.
발자취를 서로 이어 옛 설을 기반으로 부연함에 이르러서는 거의 100가家나 되며,
疏
정의왈正義曰:‘지어至於’는 말끝을 바꾸는 말이다. 적跡은 발자취이고, 조祖는 시始(처음)이다. 이어서 밝히는 것을 술述이라 한다.
‘학자學者들이 발자취를 서로 이어서, 전에 있던 것을 시작으로 삼아 후인이 그에 따라 부연해 밝히기를 마치 중니仲尼(공자孔子)가 요堯‧순舜을 시작으로 삼아 부연해 밝힌 것과 같이 했다.’라는 말이다. 태殆는 근近(가까움)이다. 100가家에 가깝다고 말한 것이니, 그 많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 사람들을 살펴보면, ≪금문효경今文孝經≫에는 위魏나라의 왕숙王肅‧소림蘇林‧하안何晏‧유소劉邵, 오吳나라의 위소韋昭‧사만謝萬‧서정徐整, 진晉나라의 원굉袁宏‧우반우虞槃佑,
동진東晉의 양홍楊泓‧은중문殷仲文‧차윤車胤‧손씨孫氏‧유씨庾氏, 〈남조 송南朝 宋나라의〉 순창荀昶‧공광孔光‧하승천何承天‧승려 혜림慧琳, 남조 제南朝 齊나라의 왕현재王玄載‧명승소明僧紹
및 한漢나라의 장손씨長孫氏‧강옹江翁‧익봉翼奉‧후창后蒼‧장우張禹‧정중鄭衆‧정현鄭玄이 해설한 것이 각기 일가一家를 점하였다.
양梁나라의 황간皇侃은 ≪효경의소孝經義疏≫ 3권을 지었고, 양 무제梁 武帝는 ≪효경강소孝經講疏≫를 지었으며, 하창賀瑒‧엄식지嚴植之‧유정간劉貞簡‧명산빈明山賓이 모두 설說이 있다. 수隋나라에는 거록鉅鹿의 위진극魏眞克이란 자가 또 훈주訓注(훈석訓釋과 주해注解)를 내었다.
≪고문효경古文孝經≫은 공자가 살았던 옛 집을 허물던 중 벽에서 나왔다. 본디 공안국孔安國이 전傳을 지었지만 무고巫蠱의 일(B.C.91)을 만나는 바람에 그 책이 유실되었다. 수隋나라에 이르러 왕소王邵가 얻은 것을 유현劉炫에게 보내자 유현이 그 잘잘못을 서술하고 의소義疏(의미를 풀이한 소疏)를 써서 논의하였다.
류작劉綽도 소疏를 지었는데, 정현鄭玄이 풀이한 뜻과 함께 통행되었다. 또 마융馬融도 ≪고문효경전古文孝經傳≫을 지었으나 〈지금은〉 세상에 전해지지 않는다. 이들이 모두 옛 것을 기반으로 부연한 명가名家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