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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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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9-11-나(按)
按 是時 季氏以大夫而專魯國之政하고 陽虎 以家臣而專季氏之政하니 孔子 蓋傷之也
9-11-나(按)
[臣按] 이 당시에 季氏가 대부의 신분으로서 魯나라의 정사를 전단하고 陽虎가 가신으로서 季氏의 정사를 전단하였으니, 공자의 이 말은 이러한 상황을 마음 아파한 것입니다.
天無二日이요 이요 이라 天下之事 惟天子 得專之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나라에는 두 제왕이 없으며 높이는 대상에는 둘이 없으니, 천하의 일은 오로지 천자만이 전단할 수 있습니다.
故天下 有道則禮樂征伐 自天子出하여 而諸侯干焉하고 天下 無道則天子 不能有其柄하여 而諸侯 得以竊之矣
그러므로 천하에 도가 행해지면 예악과 정벌이 천자에게서 나와 제후가 감히 간여하지 못하고, 천하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천자가 그 권력을 갖지 못하여 제후가 그 권력을 훔칠 수 있게 됩니다.
諸侯 猶不可專이온 況大夫乎 大夫 猶不可專이온 況家臣乎
제후도 전단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대부는 어떻겠습니까. 대부도 전단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가신은 어떻겠습니까.
하여 禮樂征伐 不出於天子하니 世變 至是하니 蓋可傷矣로소이다
춘추시대에 齊나라‧晉나라‧秦나라‧楚나라가 번갈아 諸夏의 맹주가 되어 예악과 정벌이 천자에게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世道가 변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슬퍼할 만합니다.
未幾 而諸國大夫 專權自用하여 禮樂征伐 又不出於諸侯러니 旣而 家臣 竊弄하여 而政令 復不出於大夫하니
이윽고 여러 나라의 대부들이 권력을 전단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여 예악과 정벌이 또 제후에게서 나오지 않았는데, 이윽고 가신이 대부의 권력을 훔쳐 政令이 더 이상 대부에게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名分 하여 舛逆 日甚하니 其可傷 益甚焉이니이다
名號와 分數의 체계가 무너져 悖逆이 날로 심해졌으니, 그것이 더욱 심하게 가슴 아픈 점입니다.
原注
然非道而得이면 亦必以非道而失하나니 逆理愈甚則失之愈速이라
그러나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으면 또한 반드시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잃는 법이니,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 심할수록 잃는 것도 더 빠릅니다.
故諸侯 竊天子之柄이면 少有十世而不失者하고 自餘則或五世‧或三世 少不失者하니
그러므로 제후가 천자의 권력을 훔치면 10대 만에 잃지 않는 자가 드물 것이고, 그 나머지는 5대나 3대 만에 잃지 않는 자가 드물 것입니다.
以理言之컨대 大槪如此 曷若三代盛時 天子下以至家臣 各安其分하여 歷數百年而無禍哉리오
이치로 말하자면 대체로 이렇기 때문에, 三代의 태평성대에 천자 이하로 가신에 이르기까지 각자 자기 분수를 편안하게 여겨 수백 년이 지나도록 재앙이 없었던 것과 어떻게 같겠습니까.
旣又言天下 有道則政不在大夫하고 天下 有道則庶人 不議라하시니
또 천하에 도가 행해지면 정권이 대부에게 있지 않고, 천하에 도가 행해지면 庶人이 비난하지 않는 법이라고 하였습니다.
蓋是時 諸侯之政 多在大夫하니 如魯之三家 齊之田氏 皆以人臣으로 專國而公議 皆所不與
이 당시에는 제후의 정권이 대부분 대부에게 있었으니, 예컨대 魯나라의 三家와 晉나라의 六卿과 齊나라의 田氏는 모두 신하로서 국정을 전단하여 國人과 公議가 모두 그들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故重言之하여 以見政在大夫 決非可久之道也니이다
그러므로 이를 거듭 말하여 정권이 대부에게 있는 것이 결코 장구하게 이어나가는 방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原注
諸侯 不得以擅天子之事하니 宜若海內之勢 歸於一尊이로되
秦나라가 제후를 혁파하고 守를 두고부터는 제후가 천자의 일을 擅斷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천하의 형세가 천자 한 사람에게 귀속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而內重之勢하여 當國用事之臣 又得以竊其柄하니 如漢之莽‧操 魏之師‧昭 至於簒國하여
그러나 중앙집권의 형세가 이루어져 국정을 맡아 권력을 휘두르는 신하가 또 그 권력을 훔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漢나라의 王莽과 曹操, 魏나라의 司馬師와 司馬昭는 나라를 찬탈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왕망의 재앙은 자신에게 미쳤고, 조조는 처음에 황위를 3대까지 전했다가 사마씨가 찬탈하였으며, 사마씨는 2대까지 전했다가 여러 왕과 五胡로 인한 병란이 잇달아 계속되어 거의 망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質諸先聖之言 殆若符契하니 吁可戒哉로소이다
先聖들의 말에서 검증해보았을 때 거의 부절을 맞춘 것처럼 꼭 들어맞으니, 아, 경계할 만합니다.
역주
역주1 : 대전본‧사고본에는 ‘之’로 되어 있다.
역주2 國無二王 : 사고본에는 없다.
역주3 尊無二上 : 《예기》 〈坊記〉에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나라에는 두 제왕이 없으며, 집안에는 두 주인이 없고 높이는 대상에는 둘이 없으니, 이는 백성들에게 군신간의 분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天無二日 土無二王 家無二主 尊無二上 示民有君臣之別也]”라는 孔子의 말이 보인다.
역주4 : 대전본‧사고본에는 ‘能’으로 되어 있다.
역주5 春秋……夏盟 : 春秋五霸로 부르는 齊 桓公(?~기원전 643, 재위 기원전 685~기원전 643)‧晉 文公(기원전 697~기원전 628, 재위 기원전 636~기원전 628)‧秦 穆公(?~기원전 621, 재위 기원전 659~기원전 621)‧楚 莊王(?~기원전 591, 재위 기원전 613~기원전 591) 등이 잇달아 패자가 된 것을 말한다.
역주6 : 사고본에는 ‘凌’으로 되어 있다.
역주7 : 사고본에는 ‘之’로 되어 있다.
역주8 晉之六卿 : 范氏, 中行氏, 知氏, 韓氏, 趙氏, 魏氏를 가리킨다.
역주9 國人 : 8-8-가의 ‘甲士……二人’ 주석 참조.
역주10 自秦……置守 : 秦 始皇은 6국을 병탄한 후, 李斯의 건의에 따라 황자들을 제후국의 왕으로 세우자는 신하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천하를 36郡으로 나누어 군마다 守‧尉‧監을 두었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역주11 莽之……其身 : 王莽은 漢나라의 황권을 찬탈하고 新나라를 세웠으나, 농민과 호족들의 반란을 평정하지 못하였다. 결국 신나라는 건국 15년 만에 멸망하고 자신은 長安 未央宮에서 부하의 손에 죽고 말았다.
역주12 操始……取之 : 曹操 자신이 漢나라를 멸하고 제위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아들 曹丕가 220년 魏를 건국하게 하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曹魏의 권력이 손자인 2대 황제 曹叡, 증손자인 3대 황제 曹芳에게까지 이르게 했다. 또 魏나라가 曹芳의 代에서 바로 멸망하지는 않았으나, 조방이 즉위한 뒤 249년 司馬懿가 아들 司馬師‧司馬昭와 함께 거병하여 당시 權臣이었던 曹爽 등을 주살함으로써 曹魏의 권력이 사마씨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역주13 司馬……無幾 : 결국 司馬昭의 아들 司馬炎이 晉을 건국하였으나, 2대 황제인 惠帝 때에는 8王의 난이 일어나고, 3대 황제인 懷帝 때에는 匈奴의 劉聰이 洛陽을 함락시킨 永嘉의 난이 일어나 진나라는 큰 혼란을 겪고 쇠퇴하게 되었다. 이후 晉나라는 남쪽 建康으로 천도하게 되었고, 중국 대륙은 匈奴‧羯‧鮮卑‧氐‧羌의 5胡 및 16개의 나라들이 잇달아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5胡 16國 시대가 되었다.
역주14 諸王五胡 : 사고본에는 ‘天下多故’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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