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子
가 曰 牛山之木
이 嘗美矣
러니 以其郊於大國也
라 斧斤
이 伐之
어니 可以爲美乎
아 是其日夜之所息
注+① 是其日夜之所息:息, 生長也.과 雨露之所潤
에 非無萌蘖之生焉
이언마는 牛羊
이 又從而牧之
라
是以
로 若彼濯濯也
注+② 是以若彼濯濯也:濯濯, 蕩然之貌.하니 人
이 見其濯濯也
하고 以爲未嘗有材焉
이라하나니 此
가 豈山之性也哉
리오
雖存乎人者
인들 豈無仁義之心哉
리오마는 其所以放其良心者
가 亦猶斧斤之於木也
에 而伐之
어니 可以爲美乎
아
其日夜之所息
과 平
之氣
에 其好惡
가 與人相近也者
가 幾希
어늘 則其
晝之所爲
가 有梏亡之矣
注+① 有梏亡之矣:梏, 械也.나니
梏之反覆
注+② 梏之反覆:反覆, 猶展轉也.則其夜氣
가 不足以存
이요 夜氣
가 不足以存則其違禽獸
가 不遠矣
니 人
이 見其禽獸也
하고 而以爲未嘗有
이라하나니 是豈人之情也哉
리오
故
로 苟得其養
이면 無物不長
이요 苟失其養
이면 無物不消
니라
孔子가 曰 操則存하고 舍則亡하여 出入無時하여 莫知其鄉은 惟心之謂與인저하시니라
29-20-가
맹자孟子가 말하였다. “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그것이 큰 나라의
국도國都 근교에 있기 때문에 도끼와 자귀가 그 나무를 베어내니,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그 낮과 밤에 자라나는 바와
注+‘息’은 ‘생장하다’라는 뜻이다. 비와 이슬이 적셔주는 바에 싹과 움돋이가 나오는 것이 없지 않지마는 소와 양이 또 따라서 방목된다.
이 때문에 저처럼 민둥민둥하게 되었다.
注+‘濯濯’은 텅 빈 모양이다. 사람들이 그 민둥민둥한 것만을 보고는 ‘훌륭한 재목이 있었던 적이 없다.’라고 하니,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비록 사람에게 보존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는가마는 그 양심良心을 잃어버리는 것이 또한 도끼와 자귀가 나무를 아침마다 베는 것과 같으니, 이렇게 하고서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그 낮과 밤에 자라나는 바와 새벽의 맑은 기운에 그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사람들과 서로 가까운 것이 얼마 되지 않는데 낮에 하는 행실이 또 이것을 속박하여 없앤다.
注+‘梏’은 ‘형틀’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속박하여 없애기를 반복하면
注+‘反覆’은 ‘展轉(반복하다)’과 같다. 밤에 자라난 기운이 보존될 수 없고, 밤에 자라난 기운이 보존될 수 없으면 짐승과 차이가 크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그의
금수禽獸와 같은 행실을 보고는 ‘훌륭한 자질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라고 하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실정實情이겠는가.
그러므로 만일 그 길러주기를 잘하면 물건마다 자라지 않을 것이 없고, 만일 그 길러주기를 잘못하면 물건마다 소멸하지 않을 것이 없다.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어버려서 나고 듦이 일정한 때가 없으며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