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雞犬이 至輕也어늘 放則知求之호대 人心이 至重也어늘 放而不知求하나니 借至輕而喩至重은 所以使人知警也라
然則人心之放은 何也오 欲이 汨之則放하고 利가 誘之則放이니 心旣放則其行必差라
故孟子가 始以人心人路로 竝言而終獨諄諄於放心之知求하시니 能求放心則中有主而行不失矣라
故曰學問之道는 無它라 求其放心而已矣라하시니 自天子以至庶人히 其道가 皆然而人君이 以一心而受衆攻이라 尤易以放이니
然則其可以不知求乎아 求之匪它라 以敬自持而一念을 不敢肆而已니 心本非外라 縱之則放이요 求之則存이 猶反覆手也라
心存則仁存하고 仁存則動無非理니 即所謂由義路也라 聖學之要가 孰先乎此리잇고
原注
[신안臣按] ‘인仁’은 마음의 덕인데 맹자孟子가 다만 사람의 마음이라고 한 것은, 아마도 이 마음을 가지면 곧 이 인심仁心을 가져서 인仁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자孔子의 문하에서 인에 대해 말한 것이 많은데 모두 그 힘을 쓸 부분을 가리켜 말하였고, 여기에서는 곧바로 전체를 들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곧 인이고 인이 곧 마음이라서 두 가지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의義’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이니 반걸음만 가더라도 이를 따라가지 않으면 그릇된 길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마침내 이 길을 버려두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 모르는 것은 바로 풍을 앓아 실성한 사람이 발광하여 제멋대로 걸어서 돌아올 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原注
닭과 개는 지극히 하찮은 것인데 잃어버리면 그것을 찾을 줄 압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귀중한 것인데 잃어버려도 찾을 줄 모릅니다. 지극히 하찮은 것을 차용하여 지극히 귀중한 것을 비유한 것은 사람들이 경계할 줄 알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욕망이 빠뜨리면 잃어버리고 이익이 유혹하면 잃어버립니다. 마음을 이미 잃어버렸다면 그 길은 반드시 어그러집니다.
그러므로 맹자가 처음에는 사람의 마음과 사람이 가야 할 길로 함께 말하고 끝에는 유독 잃어버린 마음을 찾을 줄 아는 것에 대해 거듭 타이른 것입니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을 수 있다면 마음에 주인이 있어서 가는 길이 잘못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학문하는 길은 다른 것이 없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을 뿐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천자天子로부터 서민庶民에 이르기까지 그 길이 모두 그러하지만, 군주는 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외물外物의 공격을 받기에 더욱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찾을 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공경으로 스스로 지켜서 한 생각이라도 감히 함부로 하지 않을 뿐입니다. 마음은 본래 외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풀어놓으면 잃어버리고 찾으면 보존되는 것이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보존되면 인仁이 보존되고 인이 보존되면 동할 때 이치가 아닌 것이 없으니 바로 이른바 ‘의義의 길을 따른다.’라는 것입니다. 성학聖學의 핵심이 무엇이 이보다 우선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