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公
이 作無逸
注+① 周公作無逸:作此以戒成王.曰 嗚呼
라 君子
는 所其無逸
注+② 君子所其無逸:所, 猶居也.이니라 先知稼穡之艱難
注+③ 先知稼穡之艱難:種曰稼, 成曰穡.이오사 乃逸
하면 則知小人之依
注+④ 小人之依:依, 謂小人所恃以爲生也.하리이다
相小人
혼대 厥父母
가 勤勞稼穡
注+⑤ 相小……稼穡:相, 也.이어든 厥子
가 乃不知稼穡之艱難
하고 乃逸
하며 乃諺
注+⑥ 乃諺:諺, 鄙語也.하며 旣誕
注+⑦ 旣誕:誕, 妄言也.하나니 否則侮厥父母曰 昔之人
이 無聞知
注+⑧ 昔之人無聞知:昔之人, 指父母也.라하나니이다
周公曰 嗚呼
라 我聞
호니 曰 昔在殷王
注+① 殷王中宗:卽太戊也.하사 嚴恭寅畏
注+② 嚴恭寅畏:四者, 皆敬也.하사 天命自度
하시며 治民祗懼
하사 不敢荒寧
하시니 肆中宗之享國
이 七十有五年
이시니이다
其在
時
하산 舊勞于外
하사 爰曁小人
注+③ 爰曁小人:曁, 及也. 高宗爲太子時, 父乙令居民間習民事.이러시니 作其卽位
注+④ 作其卽位:作, 起也.하사 乃或
三年
을 不言
注+⑤ 乃或……不言:亮, 信也. 陰, 默也.하시니 其惟不言
하시나 言乃雍
注+⑥ 言乃雍:雍, 和也.하시며 不敢荒寧
하사 嘉靖殷邦
하사 至于小大
히 無時或怨
하니 肆高宗之享國
이 五十有九年
이시니이다
其在
하산 不義惟王
이라하사 舊爲小人
이러시니 作其卽位
하사 爰知小人之依
하사 能保惠于庶民
注+⑦ 能保惠于庶民:保, 安也. 惠, 愛也.하시며 不敢侮鰥寡
하시니 肆祖甲之享國
이 三十有三年
이시니이다
自時厥後
로 立王
이 生則逸
注+① 自時……則逸:謂商之後王也.하니 生則逸
이라 不知稼穡之艱難
하며 不聞小人之勞
하고 惟耽樂之從
하니
自時厥後로 亦罔或克壽하여 或十年하며 或七八年하며 或五六年하며 或四三年하니이다
周公曰 嗚呼
라 厥亦惟我周
엣 ․
가 克自
畏
注+① 克自抑畏:抑, 也.하시니이다 이 으로 卽康功․田功
하시니이다
徽柔懿恭
注+② 徽柔懿恭:徽, 美也. 懿, 亦美也.하사 懷保小民
하시며 惠鮮鰥寡
하사 自朝
로 至于日中昃
히 不遑暇食
하사 用咸和萬民
하시니이다
文王
이 不敢盤于遊田
注+③ 文王……遊田:盤, 樂也.하사 以庶邦惟正之供
注+④ 以庶邦惟正之供:供, 貢也.하시니 文王受命
이 惟中身
이러시니 厥享國
이 五十年
이시니이다
周公曰 嗚呼
라 繼自今
으로 嗣王
은 則其無淫于觀․于逸․于遊․于田
注+① 其無……于田:淫, 過也.하사 以萬民惟正之供
하소서 無皇曰 今日
에 耽樂
이라하소서
乃非民의 攸訓이며 非天의 攸若이라 時人이 丕則有愆하리니 無若殷王受之迷亂하사 酗于酒德哉하소서
31-8-가
주공周公이 〈
무일無逸〉을 지어
注+周公이 이 〈無逸〉편을 지어 周 成王을 경계시켰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 군자는 ‘안일하지 않음[
무일無逸]’을 처소로 삼습니다.
注+‘所’는 ‘居(처소로 삼다)’와 같다. 먼저 농사의 고생스러움을 알고 나서야
注+곡식을 파종하는 것을 ‘稼’라고 하고, 다 익은 곡식을 수확하는 것을 ‘穡’이라고 한다. 안일하면 백성들이 의지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注+‘依’는 백성들이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을 이른다.
백성들을 살펴보건대, 그들의 부모가 농사에 부지런히 애쓰면,
注+‘相’은 ‘보다’라는 뜻이다. 그 아들은 농사의 고생스러움을 알지 못하고 안일하며 비루한 말을 하며
注+‘諺’은 비루한 말이다. 망언을 하게 됩니다.
注+‘誕’은 망언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 부모를 업신여겨 ‘예전 사람들은 듣고 아는 것이 없다.’라고
注+‘昔之人(예전 사람)’은 부모를 가리킨다. 말합니다.”
주공周公이 말하였다. “아. 제가 들으니, 옛날
은殷나라 왕
중종中宗注+‘殷王 中宗’은 곧 殷나라 太戊이다. 때 장엄하고 공손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注+‘嚴’, ‘恭’, ‘寅’, ‘畏’ 네 가지는 모두 敬이다. 천명天命으로 스스로를
검속檢束하며 백성을 다스림에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방탕하고 안일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중종의 재위 기간이 75년이었습니다.
고종高宗 때에는 오랫동안 바깥에서 수고하여 이에 백성들과 함께하였는데,
注+‘曁’는 ‘및’이라는 뜻이다. 高宗이 태자로 있을 때, 부친 祖乙이 고종을 민간에 살게 하면서 백성의 일을 익히게 하였다. 떨쳐 일어나 왕위에 올라서는
注+‘作’은 ‘일어나다’라는 뜻이다. 거상居喪하는 3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注+‘亮’은 ‘믿다’라는 뜻이다. ‘陰’은 ‘침묵하다’라는 뜻이다.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말을 하면 온화하였으며,
注+‘雍’은 ‘온화하다’라는 뜻이다. 감히 방탕하고 안일하지 않아서 은나라를 훌륭하고 안정되게 만들어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혹시라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고종의 재위 기간이 59년이었습니다.
조갑祖甲 때에는 왕이 되는 것이 의롭지 않다 하여 오랫동안 백성의 신분으로 있었는데, 떨쳐 일어나 왕위에 올라서는 이에 백성들이 의지하는 것을 알아서 서민들을 능히 안정시키고 사랑하였으며,
注+‘保’는 ‘안정시키다’라는 뜻이다. ‘惠’는 ‘사랑하다’라는 뜻이다. 홀아비와 과부들을 감히 업신여기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조갑의 재위 기간이 33년이었습니다.
이로부터 그 뒤로 즉위하는 왕들은 태어나면 곧 안일하였으니,
注+‘自時厥後 立王生則逸’은 商나라 후대 왕들을 두고 한 말이다. 태어나면 곧 안일하였기에 농사의 고생스러움을 알지 못했으며 백성들의 노고를 듣지 못하고 오로지 향락에 빠지는 것을 좇았습니다.
이로부터 그 뒤로 또한 혹 능히 장수했던 사람이 없어서 혹은 10년 동안 재위하였으며, 혹은 7년에서 8년 동안 재위하였으며, 혹은 5년에서 6년 동안 재위하였으며, 혹은 3년에서 4년 동안 재위하였습니다.”
주공周公이 말하였다. “아! 그 또한 우리
주周나라의
태왕太王과
왕계王季께서는 능히 스스로 억누르고 두려워하였습니다.
注+‘抑’은 ‘억누르다’라는 뜻이다. 문왕文王께서 변변치 않은 의복으로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사업과 농사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아름답게 유연하고 아름답게 공손하여
注+‘徽’는 ‘아름답다’라는 뜻이다. ‘懿’ 또한 ‘아름답다’라는 뜻이다. 힘없는 백성들을 품어서 보전하였으며, 홀아비와 과부에게 은혜를 베풀어 살게 하여, 아침부터 해가 중천에 떠서 기울 때까지 먹을 겨를도 없이 분주하여 만백성을 모두 화합하게 하였습니다.
문왕께서 감히
유락遊樂과 사냥을 즐기지 않고서
注+‘盤’은 ‘즐거워하다’라는 뜻이다. 여러 나라에서 정당하게 바치는
공물貢物만 받았습니다.
注+‘供’은 ‘貢物’이라는 뜻이다. 문왕께서 천명을 받으신 것이 중년이었는데, 그 재위 기간이 50년이었습니다.”
주공周公이 말하였다. “아! 지금부터 계속하여
사왕嗣王께서는 구경,
안일安逸함,
유락遊樂, 사냥에 지나침이 없는 것을 본받아
注+‘淫’은 ‘지나치다’라는 뜻이다. 만백성이 정당하게 바치는
공물貢物만 받으소서. 겨를이 있다고 여겨 오늘만 향락에 빠지겠다고 말하지 마소서.
백성들이 본받을 바가 아니며 하늘이 순하게 여기는 바가 아니어서 동시대 사람들이 그 잘못을 크게 본받을 것이니, 은殷나라 왕 수受(주왕紂王)가 미혹되었던 것처럼 하여 주덕酒德에 탐닉하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