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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5)

대학연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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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32-3-나(按)
按 商受 淫酗어늘 臣民 化之하니 方文王之在西土 已告教在位者하사 謹戒于酒矣
及成王 封康叔于衛하여는 受之故都也 漸染 惟舊 故作酒誥하여 以訓敕之하시니 妹邦 即衛也 成王之誥 專爲衛而作이라 故云然也니라
朝夕祀玆酒 言文王之告教諸侯而下至于治事之臣하여 朝夕丁寧하여 惟祀則飲斯酒也 天之始生黍稷하여 俾民爲酒 惟用之大祀而已 非資其沈酗也어늘
及我民 以之喪德하며 諸侯 以之喪邦 無不斯酒하나니
一也로되 飲之有度而受福則爲天之降命하고 飲之無度而受禍則爲天之降威하니 觀小大邦用喪之言則當時以酒亡國者 衆矣로다
原注
惟行 以酒爲行也 惟辜 以酒爲罪也 文王 既教群下勿常于酒하시고 又教之德將無醉하시니 凡飲酒 能以德自持則無酣之過 所謂
民蒙文王之化하여 亦各訓迪子弟하여 惟土地所生之物 是愛 故其心하니 蓋一溺於酒則必旁求珍異하여 以自奉이니 其欲 廣則其心 蠧矣
是時爲子弟者 亦各聰聽祖考之常訓하니 訓之常則入于耳者하고 聽之聰則志于心也이라
故於小大之德 視之惟一하여 不以謹酒 爲小焉하니 謹酒 非小德則腆酒 非小過 亦明矣
原注
夫有司之不腆酒 於天命 何預而王 乃以克受商命으로 爲職此之由 何邪 但觀之朝 上下 沈酣하여 以致墜失天命則謹酒而受天命 復何疑哉리오
既又叙成湯之謹酒 與後王之酣身하여 爲康叔戒하시니 蓋湯 上畏天하시며 下畏民하사 常其德而不變하시며 秉其智而不惑이어시늘
自是至于帝乙 皆以成君德․敬輔相으로 爲心而治事之臣 亦各盡輔翼之敬하여 雖自暇自逸이라도 且猶不敢이온 況曰崇飲乎 崇飲 謂相尚以飲也
是時内外大小之臣 無敢湎于酒者 不惟禀上之教하여 不敢違 亦以職守所在 不暇爲 不敢勉强이어니와 不暇則安之矣니라
職守 謂何 上以助成君德之顯明하며 下以助大臣之祗辟也 一時群臣 以此自勵어니 雖欲不興이나 得乎
原注
及受 沈酣其身하여 命令 不著于民이요 惟作怨之事 是守하며 惟淫泆非彛 是縱하여 安燕以喪其威儀하니
考之史記컨대 爲酒池肉林하여 使男女 倮而相逐이라하니 其威儀之喪 如此 民所以痛傷其心하여 悼國之將亡也而紂 方且荒腆于酒하여 逸欲 不息하여
其心이라 雖殺身而不畏也하며 罪在商邑하여 雖滅國而不憂也하니 觀今之小人 一醉之餘 急疾强하여 水火可入이며 兵刃可蹈則受之情狀 可知矣로다
馨德者 穢德之對也 夷居하여 弗事上帝하여 既無馨香以祀而作怨于民하며于酒하여 惟有腥穢 上聞于天하니 天之喪商 無復眷愛之意者 以受 自放于逸故也
天豈虐商者哉리오 以商人 自速其辜耳니라 此書 言沈湎之禍 至深至切하니 豈惟康叔 敬守弗渝리오 萬世人君 皆當視爲龜鑑이니이다


原注
[신안臣按] 나라 (주왕紂王)가 지나치게 술에 빠지자 신하와 백성들이 이에 동화되었는데, 그 당시 문왕文王서토西土에 있으면서 이미 지위에 있는 자들에게 고하여 가르쳐서 술을 삼가고 경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성왕成王나라에 강숙康叔을 봉하게 되었는데, 위나라는 의 옛 도읍지였기 때문에 차츰차츰 물든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고酒誥〉를 지어 가르치고 경계한 것입니다. 매방妹邦은 바로 위나라입니다. 성왕의 고계告誡는 오로지 위나라를 위해서 지은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말하여 이 술을 제사에만 쓰도록 한 것은, 문왕이 제후들에게 일러 가르쳐서 아래로 일을 하는 신하들에게까지 이르도록 하여 아침저녁으로 당부하여 오직 제사에만 이 술을 마시도록 했다는 말입니다. 하늘이 처음 찰기장과 메기장을 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술을 만들도록 한 것은 오직 큰 제사에만 사용하도록 한 것이고 그 술에 빠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백성들이 이 술로 덕을 잃고 제후들이 이 술로 나라를 잃은 것이 이 술을 마시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게 되었으니,
술은 똑같은 술이지만 마시는 것이 절도가 있어서 복을 받으면 하늘이 내리는 명이 되고, 마시는 것이 절도가 없어서 화를 받으면 하늘이 내리는 위엄이 됩니다. 작은 나라와 큰 나라가 이 때문에 망하였다는 말을 보면 당시에 술로 나라를 망하게 한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原注
유행惟行’은 술로 행함을 삼은 것이고, ‘유고惟辜’는 술로 죄를 삼은 것입니다. 문왕文王은 이미 아랫사람들에게 가르쳐서 술에 항상 취하지 말라고 하고는, 또 가르치기를 덕으로 이어가고 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술을 마실 때에 능히 덕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으면 술에 취해 주정하는 허물이 없을 것이니, 이른바 “술에 곤란함을 당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문왕의 교화敎化를 받아 마찬가지로 저마다 자제들을 가르치고 인도하여 오직 토지에서 나오는 물건만을 아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선하였던 것입니다. 한 번 술에 빠지면 반드시 진기하고 이상한 것을 널리 구하여 자신을 받들기 마련이니, 그 욕심이 크면 그 마음이 좀먹게 됩니다.
이때 자제 된 자들은 또한 저마다 조상의 떳떳한 가르침을 잘 들어야 할 것이니, 가르침이 떳떳하면 귀에 들어오는 것이 익숙하고 듣기를 잘 들으면 마음에 뜻을 두는 것이 삼가게 됩니다.
이 때문에 소덕小德대덕大德에 대해 한결같이 여겨서 술을 삼가는 것으로 작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니, 술을 삼가는 것이 소덕이 아니라면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작은 허물이 아닌 것이 또한 명백합니다.
原注
담당 관리가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 천명天命에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왕이 마침내 능히 나라의 을 받은 것으로 이 이유를 삼은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단지 유왕幽王여왕厲王, 나라와 나라의 왕조에서 상하가 술에 빠져 천명을 실추시키는 데에까지 이른 것을 보면 술을 삼가서 천명을 받은 것을 다시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이윽고 또 성탕成湯이 술을 삼간 것과 후왕後王이 자신을 술에 빠트린 것을 서술하여 강숙康叔의 경계로 삼았습니다. 성탕은 위로는 하늘을 두려워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그 덕을 떳떳이 하여 변치 않고 그 지혜를 잡아 지켜서 미혹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로부터 제을帝乙에 이르기까지 모두 임금의 덕을 이루고 재상을 공경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게 되었고, 일을 하는 신하들 역시 각각 보필하는 공경을 다하여 비록 스스로 한가하고 스스로 안일하더라도 오히려 감히 즐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술 마시는 것을 숭상한다고 하였겠습니까. ‘숭음崇飲’은 서로 술 마시는 것을 숭상한다는 말입니다.
이때 안팎의 대소 신하들이 감히 술에 빠지지 못했던 것은 단지 윗사람의 가르침을 봉행하여 감히 어기지 못해서만이 아니라, 또한 맡고 있는 직책 때문에 그렇게 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감히 못했다’는 것은 그래도 애써 힘쓴다는 뜻이 있지만, 겨를이 없었다는 것은 이것을 편안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맡고 있는 직책’이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위로는 군주의 덕을 이루어서 군주의 덕이 드러나고 밝혀지도록 돕고, 아래로는 대신이 임금을 공경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한 시대의 신하들이 이것으로 스스로를 면려하였으니, 비록 일어나지 않고자 해도 그렇게 될 수 있었겠습니까.
原注
그러다가 (주왕紂王)에 이르자 그 자신을 술에 빠트려 명령이 백성들에게 드러나지 못하고, 오직 원망 살 일을 하는 것만을 직책으로 삼으며 오직 음일淫佚하고 떳떳하지 않은 것만을 마음껏 행하여 편안하게 즐겨서 그 위의威儀를 잃었습니다.
사기史記》를 살펴보건대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어서 남녀들로 하여금 벌거벗은 채 서로를 쫓아다니도록 하였다고 하니, 그 위의를 잃음이 이와 같았습니다. 백성들이 이 때문에 마음을 아파하여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이라고 슬퍼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왕紂王은 한창 술에 푹 빠져서 안일함을 바라는 마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마음이 미워하고 사나웠기 때문에 비록 자신을 죽이는 것이라 해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죄가 나라 도읍에 있어서 비록 나라가 망한다 해도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소인들이 일단 술에 빠지고 난 뒤에는 조급하고 사나워져서 물에도 불에도 뛰어들 수 있고 병기의 칼날도 밟을 수 있는 것을 보면 의 정상을 알 수 있습니다.
‘향기로운 덕’은 ‘더러운 덕’과 상대되는 말입니다. 주왕紂王이 오만무례하여 상제上帝를 섬기지 않아서 이미 향기로운 덕으로 올리는 제사는 없고 백성들에게 원망을 살 일만 하며, 술에 빠져서 오직 그 더러운 덕만 위로 하늘에 들리니, 하늘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 더 이상 돌아보고 아끼는 뜻이 없었던 것은 가 스스로 안일함에 방종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어찌 상나라를 학대한 것이겠습니까. 상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그 죄를 부른 것입니다. 이 글에서 술에 빠진 화를 말한 것이 지극히 깊고 절절하니, 어찌 오직 강숙康叔만이 공경히 지켜 변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만대의 군주가 모두 보고서 귀감龜鑑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역주
역주1 : 대전본․사고본에는 ‘自’로 되어 있다.
역주2 : 사고본에는 이 뒤에 ‘音泳’이라는 小注가 있다.
역주3 不爲酒困 : 《論語》 〈子罕〉 제15장에 “나가서는 公卿을 섬기고, 들어와서는 父兄을 섬기며, 喪事를 감히 힘쓰지 않음이 없으며, 술에게 곤란함을 당하지 않는 것, 이 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出則事公卿 入則事父兄 喪事不敢不勉 不爲酒困 何有於我哉]”라는 孔子의 말이 보인다.
역주4 幽厲 : 西周의 12대 왕인 幽王(기원전 795~기원전 771, 재위 기원전 782~기원전 771)과 10대 왕인 厲王(?~기원전 828, 재위 기원전 878~기원전 841)을 이른다. 여왕은 탐욕스러운 데다 학정을 일삼고 끊임없이 주변 민족과 전쟁을 벌였다. 결국 國人의 폭동이 일어나자 周나라의 변경 지역인 彘(체)로 달아나 그곳에서 죽었다. 여왕이 체로 달아난 14년간은 주나라 최초의 共和政으로 불린다.
幽王은 褒姒(포사)를 총애하여 申后와 신후가 낳은 태자 宜臼(의구)를 폐하고 포사가 낳은 伯服을 태자로 세웠다. 이에 신후의 아버지 申侯는 기원전 771년에 犬戎과 연합하여 주나라에 쳐들어가 주나라의 수도인 鎬京을 파괴하고 유왕을 죽인 뒤 태자 의구를 왕으로 옹립하였다. 이 사람이 周 平王이다. 평왕이 동쪽 洛邑으로 천도하였기 때문에 이때부터 東周라고 부른다.
역주5 陳隋 : 각각 32-10-가1, 32-10-가2 참조.
역주6 : 사고본에는 ‘見’으로 되어 있다.
역주7 : 대전본․사고본에는 ‘很(흔)’으로 되어 있다.
역주8 : 대전본․사고본에는 ‘很’으로 되어 있다.
역주9 : 사고본에는 ‘酗(후)’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5)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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