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0-가2 수隋양제煬帝는 강도江都에 이르러 주색酒色에 빠지는 것이 더욱 심해져서 궁 안에 백여 개의 방을 만들고서 각각 휘장 등을 성대하게 설치하고 미인들로 채웠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의 방으로 하여금 주인이 되도록 하고서 양제가 소후蕭后 및 총애하는 희첩姬妾과 함께 차례로 나아가 연회를 베풀고 술을 마셔서 술잔을 입에서 떼지 않으니, 따르던 희첩 천여 명 역시 늘 취해 있었다.注+隋 煬帝는 얼마 되지 않아 宇文化及에게 시해되었다.
역주
역주132-10-가2 :
《資治通鑑》 권185 唐 高祖 武德 원년(618) 3월 조에 보인다.
역주2隋煬帝 :
569~618(재위 604~618). 隋나라 제2대 임금이다. 휘는 廣으로, 文帝의 2남이다. 582년(開皇 2)에 晉王이 되었으며, 589년(開皇 9)에 南朝 陳나라를 멸망시켰다. 중신 楊素와 결탁하여 형인 태자 楊勇을 폐위시키고 태자가 되었다. 즉위 후에는 大業禮, 大業律令을 정비하기도 하였으나, 궁궐과 성들을 수축하고 大運河 등 대규모 토목 공사를 일으키며 吐谷渾, 高句麗 등의 대외 원정을 일삼아 국력을 크게 소모하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후에 宇文化及에게 살해되었다.
역주3江都 :
郡 이름이다. 治所는 지금의 강소성 揚州市에 있었다. 隋 煬帝가 行都로 삼은 곳이다.
역주6宇文化及 :
?~619. 隋나라 말의 대신이다. 代郡 武川 사람이다. 부친은 左翊衛大將軍 宇文述이다. 성격이 간교하고 부친의 권세를 믿고서 법도를 따르지 않고 非違를 저질렀다. 양제가 즉위한 뒤 右屯衛將軍에 올랐다. 大業 14년(618)에 황제가 江都에 갔을 때 武賁郎將 司馬德勘 등이 그를 수령으로 추대하자, 驍果軍을 거느리고 兵變을 일으켜 양제를 시해하였다. 이후 秦王 楊浩를 옹립하고 大丞相이 되어 섭정하였다. 洛陽으로 출정하여 李密과 싸웠으나 童山에서 李密․徐世勣 등에게 대패하였다. 이후 양호를 독살하고 稱帝하여 연호를 天壽, 국호를 許라고 하였다. 619년에 竇建德에게 사로잡혀 참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