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大學衍義(5)

대학연의(5)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대학연의(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原注
27-14-나(按)
按 聶夷中之詩 即臣前所謂 是也
新絲之出 以五月而貸以二月하고 新穀之登 以八月而貸以五月하니 此猶當時之俗也어니와 若今則往往 貸於半歲之前矣
千錢之物 僅得數百하며 或不及其半焉하니 富家鉅室 乘時射利어든 田夫蠶婦 低首仰給하고 否則亡以爲耕桑之本하나니
迨繭浴於湯하며 禾登於場而責逋者 狎至어든 解絲量穀하여 亟以授之하고 回顧其家 索無所有矣
償或未足則又轉息爲本하여 因本生息하니 昔之千錢 俄而兼倍하며 昔之數百 俄而千錢이라
於是 一歲所貸 至累載不能償하며 己之所貸 子孫 不能償하여 牒訟 一投 追吏 奄至하면 伐桑撤屋․賣妻鬻子 有不容惜者矣
原注
且人情所望者 一稔而歲稔則督逋 尤峻하여 竭其廬之入하여 不容錙銖龠合留
故昔人 謂豐年이라하니 其言 似於過激이나 然實農家之眞利病也
嗚呼 民生之艱 一至於此하니 上之人 奈何爲當然而弗之恤哉리오
唐明宗 五季之君而儉約愛民하니 所謂 因馮道之對誦夷中之詩하여 惻然若有所感하나
然未聞當時 有所施行則亦徒言而已爾 故孟子 曰 雖有仁心․仁聞而民不被其澤者 不行先王之라하시니 仁聖之君 可不念哉잇가


原注
[신안臣按] 섭이중聶夷中의 시는 바로 신이 전에 말씀드렸던 ‘거두어들일 수입을 미리 가리켜서 빌릴 담보로 삼는다.’라고 한 것이 이런 경우입니다.
새 명주실은 5월에 나오는데 이것을 담보로 2월에 빌리고, 새 곡식이 익는 것은 8월인데 이것을 담보로 5월에 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래도 당시의 습속이지만 지금은 종종 반년 전에 빌리고 있습니다.
천 냥짜리 물건에 겨우 수백 냥을 받거나 혹은 그 반도 못 받으니, 부호들이 때를 틈타 이득을 노리면 농사짓는 농부와 누에 치는 아녀자들은 머리를 숙이고 빌려주기를 앙망仰望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밭 갈고 누에 칠 자금마저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누에고치를 뜨거운 물에 담그고 곡식을 타작마당에 올리는 때가 되면 빚을 독촉하는 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듭니다. 이들에게 고치실을 풀고 곡식을 계산하여 재빨리 갚아주고 돌아와 자기 집을 돌아보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갚는 것이 혹 부족하기라도 하면 또 이 이자가 원금으로 바뀌면서 이 원금으로 인해 이자가 발생하게 되니, 지난날의 천 냥 빚이 순식간에 곱절이 되고 지난날의 수백 냥 빚이 순식간에 천 냥이 됩니다.
이에 한 해에 빌린 것을 수년이 되어도 갚을 수가 없으며 자신이 빌린 것을 자손 대에 이르러도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소장訴狀이 날아들자마자 추징하는 관리가 대번에 들이닥치면 뽕나무를 베고 가옥을 헐며 처자식을 내다파는 것을 조금도 안타까워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原注
그리고 인정人情이 바라는 것은 한 번 풍년이 드는 것인데, 한 해 풍년이 들면 밀린 것을 독촉하는 것이 더욱 혹독하여 그 집의 수입을 모두 쓸어가 낟알 한 톨도 남겨두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옛사람이 말하기를 “풍년이 흉년만 못하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말이 다소 과격한 듯하지만 실로 농가의 실제 병폐입니다.
아, 민생民生의 어려움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윗사람이 어찌 이를 당연시하여 구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후당後唐 명종明宗오대五代 시기의 군주였지만 검약儉約하고 백성을 사랑하였으니 이른바 ‘저쪽이 이쪽보다 나은 것은 있다.’에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명종은 풍도馮道의 대답 중에 섭이중聶夷中의 시를 읊은 것을 통해 측연히 감동하는 바가 있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명종이 이를 실제로 시행한 정사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그렇다면 이 또한 빈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맹자孟子》에 이르기를 “비록 어진 마음과 어질다는 명성이 있더라도 백성이 그 은택을 입지 못하는 것은 선왕先王인정仁政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어질고 밝은 군주가 유념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역주
역주1 : 사고본에는 ‘預’로 되어 있다.
역주2 豫指……之資 : 27-10-4(按)에 보인다.
역주3 : 대전본에는 ‘知’로 되어 있다.
역주4 昔人……凶年 : 宋 哲宗 元祐 7년(1092) 蘇軾(1037~1101)이 知杭州로 있을 때 올린 소의 내용 중 일부이다. 《東坡集》 권34 〈論積欠六事乞檢會應詔四事-處行下狀〉에 “신이 데리고 가던 관리들을 물리치고 몸소 촌락으로 들어가 父老들을 방문하였더니 모두 걱정하는 기색으로 말하였습니다. ‘풍년이 흉년만 못합니다. 天災가 유행하면 백성들은 비록 먹을 것이 부족하기는 하나 입는 것을 줄이고 먹는 것을 절약하면 그래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풍년이 들어서 밀린 빚을 한꺼번에 갚으라고 재촉하여 아전들이 문에 들이닥치고 형틀에 묶여 형신을 받게 되면 백성들은 죽을래야 죽을 수조차 없습니다.’ 부로들이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니 신 또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臣屛去吏卒 親入村落 訪問父老 皆有憂色云 豊年不如凶年 天災流行 民雖乏食 縮衣節口 猶可以生 若豊年擧催積欠 胥徒在門 枷捧在身 則人戶求死不得 言訖淚下 臣亦不覺流涕]”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5 : 사고본에는 ‘眂(시)’로 되어 있다. ‘眡’는 視의 古字이다.
역주6 彼善於此 : 《孟子》 〈盡心 下〉 제2장에 “《春秋》에는 의로운 전쟁이 없었으니, 그중에 저것이 이것보다 나은 것은 있다.[春秋無義戰 彼善於此 則有之矣]”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7 : 사고본에는 ‘道’로 되어 있다.
역주8 雖有……政也 : 《孟子》 〈梁惠王 上〉 제7장 朱熹(1130~1200)의 주에서 인용한 楊時(1053~1135)의 말이다.

대학연의(5)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