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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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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午]二年이라
春正月 病篤이어늘 霍光 涕泣問曰 如有不諱注+[釋義]死者 人之所不能避 云如有不諱라하니라인대 誰當嗣者잇고 上曰 君 未諭前畫意注+[釋義]謂去年 使黃門으로 圖畫周公負成王朝諸侯하야 以賜霍光하니라
立少子하고 君行周公之事하라
頓首讓曰 臣 不如金日磾니이다 日磾亦曰 臣 外國人이라 不如光이요 且使匈奴輕漢矣리이다
乙丑 詔立弗陵하여 爲皇太子하니 時年 八歲
丙寅 以光爲大司馬大將軍하고 日磾爲車騎將軍하고 太僕上官桀 爲左將軍하야 受遺詔輔少主하다
出入禁闥注+[釋義]이라 禁中門曰黃闥이라 二十餘年 出則奉車하고 入侍左右하야 小心謹愼하야 未嘗有過
爲人 沈靜詳審하야 每出入下殿門 進止有常處
郞僕射竊視之注+[釋義] 記也 郞與僕射 皆官名이니 謂郞僕射皆私竊識見光之進止處하니 不失尺寸이러라
〈出光傳〉
日磾在上左右하야 目不忤視者數十年이요 賜出宮女호되 不敢近하고 欲內(納)其女後宮호되 不肯하니 其篤愼 如此
尤奇異之러라
〈出日磾傳〉
○ 丁卯 帝崩于五柞宮注+[釋義]漢離宮也 取五柞木爲之 故以名하니 宮在扶風이라 或云 宮中 有五柞樹하야 因名焉이라이어늘 太子卽位하다
霍光 輔幼主하야 政自己出하니 天下想聞其風采러라
〈出本傳〉
班固贊曰
漢承百王之弊하야 高祖 撥亂注+[頭註] 治也, 除也反正하고 文景 務在養民하야 至于稽古禮文之事하야는 猶多闕焉이라
孝武初立 卓然罷黜百家注+[頭註]謂諸雜說 違背六經者하고 表章注+[頭註]言表而出之하고 章而明之六經하며 遂疇咨海內하야 擧其俊茂하야 與之立功하고
興太學, 修郊祀하고 改正朔, 定曆數하고 協音律, 作詩樂하고 建封禪, 禮百神하야 紹周後하야 號令文章 煥然可述이요 後嗣得遵洪業하야 而有三代之風이라
如武帝之雄材大略으로 不改文景之恭儉하야 以濟斯民이런들 雖詩書所稱이나 何有加焉이리오
敍傳曰
世宗曄曄하야 思弘祖業하고 疇咨熙載하야 髦俊竝作이라
厥作伊何
百蠻是攘이니 恢我疆宇하야 外薄四荒이라
武功旣抗 亦迪斯文하니 憲章하야 統一聖眞이라
封禪郊祀하야 登秩百神하고 協律改正하야 饗玆永年이라
溫公曰
孝武窮奢極欲하고 繁刑重斂하야 內侈宮室하고 外事四夷하며 信惑神怪하고 巡遊無度하야 使百姓疲敝하야 起爲盜賊하니 其所以異於秦始皇者 無幾矣
이나 秦以之亡하고 漢以之興者 孝武能遵先王之道하야 知所統守하고 受忠直之言하며 惡人欺蔽하고 好賢不倦하고 誅賞嚴明하며 晩而改過하고 顧托得人하니 此其所以有亡秦之失이나 而免亡秦之禍乎인저


후원後元 2년(갑오 B.C.87)
봄 정월에 의 병환이 위독하자, 곽광霍光이 눈물을 흘리며 묻기를 “만일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으면(황제가 승하하시면)注+[釋義]죽음은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으면’이라고 한 것이다. 누가 뒤를 이어야 합니까?” 하니, 이 말하기를 “그대는 전에 내가 준 그림의 뜻을注+[釋義]전화의前畫意는 지난해에 황문黃門으로 하여금 주공周公성왕成王을 업고 제후에게 조회 받는 그림을 그려서 곽광霍光에게 하사한 것을 이른다. 깨닫지 못하였는가?
작은 아들을 세우고, 그대가 주공周公의 일을 행하라.” 하였다.
곽광霍光이 머리를 조아리고 사양하기를 “신은 김일제金日磾만 못합니다.” 하니, 김일제金日磾 또한 말하기를 “신은 외국 사람이라서 곽광霍光만 못하고, 또 흉노匈奴로 하여금 나라를 경시하게 할 것입니다.” 하였다.
을축일에 조서를 내려 불릉弗陵을 세워 황태자皇太子로 삼으니, 이때 나이가 여덟 살이었다.
병인일에 곽광霍光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으로 삼고, 김일제金日磾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삼고, 태복太僕상관걸上官桀좌장군左將軍이 되어서 유조遺詔를 받아 어린 군주를 보필하였다.
곽광霍光은 궁중의 금문禁門注+[釋義]천자天子가 거하는 문각門閣에는 금지가 있어서 황제를 모시는 신하가 아니면 천자가 다니는 길인 표미豹尾 가운데로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금중禁中이라 한 것이다. 금중禁中의 문을 황달黃闥이라 한다. 출입한 지 20여 년에 나가서는 황제의 수레를 받들고 들어와서는 좌우에서 모셔서 조심하고 근신하여 일찍이 잘못함이 있지 않았다.
사람됨이 침착하고 고요하며 자세히 살펴서 출입하여 대궐문에서 내릴 적에 나아가고 멈춤이 일정한 곳이 있었다.
낭관郎官복야僕射가 몰래 표시해 놓고 살펴보니,注+[釋義]는 표시함이다. 복야僕射는 모두 관명이니, 낭관郎官복야僕射가 몰래 은밀히 표시해 놓고 곽광霍光의 나아가고 멈추는 곳을 살펴봄을 이른다. 한 자와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 《한서漢書곽광전霍光傳》에 나옴 -
김일제金日磾의 좌우에 있으면서 눈으로 거만하게 흘겨보지 않은 것이 수십 년이었고, 궁녀를 하사하여 내주었으나 감히 가까이하지 않았으며, 이 그의 딸을 후궁으로 들이고자 하였으나 좋아하지 않으니, 그 돈독하고 신중함이 이와 같았다.
이에 이 더욱 기이하게 여겼다.
- 《한서漢書김일제전金日磾傳》에 나옴 -
정묘일丁卯日에 황제가 오작궁五柞宮에서注+[釋義]오작궁五柞宮나라의 이궁離宮(別宮)이니, 오작목五柞木을 사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이름하였으니, 궁궐이 부풍扶風에 있었다. 혹은 궁궐 안에 오작五柞 나무가 있어서 인하여 이름했다 한다. 승하하자, 태자太子가 즉위하였다.
곽광霍光이 어린 임금을 보필하여 정사가 자기로부터 나오니, 천하 사람들이 그의 훌륭한 풍채를 우러러 사모하였다.
- 《한서漢書곽광전霍光傳》에 나옴 -
반고班固무제武帝에 말하였다.
나라는 역대 임금의 폐해를 이어서 고조高祖는 난을 다스려注+[頭註]은 다스림이고 제거함이다. 바름으로 돌아오게 하였고, 문제文帝경제景帝는 백성을 기르는 데 힘써서 옛 경전經傳을 상고함과 예문禮文의 일에 있어서는 오히려 부족한 점이 많았다.
효무제孝武帝는 처음 즉위하자 우뚝하게 백가百家注+[頭註]백가百家는 여러 잡설雜說로서 육경六經에 위배되는 것을 이른다. 폐출하고 육경六經을 드러내었으며,注+[頭註]겉으로 나타내고 드러내어 밝힘을 말한다. 마침내 온 천하에 물어서 준재俊才들을 천거하게 하여 이들과 더불어 을 세웠다.
그리하여 태학太學을 일으키고 제사를 지내며 정삭正朔을 바꾸고 역법曆法을 정하며 음률音律를 맞추고 악장樂章을 만들며 봉선封禪하는 곳을 만들고 백신百神로 제사 지내어 나라의 뒤를 이어서, 호령號令문장文章이 환하여 기술할 만하였고, 후사後嗣대업大業을 따라서 삼대三代유풍遺風이 있었다.
무제武帝와 같은 훌륭한 재주와 큰 지략智略으로 문제文帝경제景帝의 공손함과 검약함을 고치지 않고서 이 백성들을 구제하였더라면 비록 에서 칭찬한 훌륭한 군주라 한들 어찌 이보다 더할 수 있었겠는가.”
한서漢書》 〈서전敍傳〉에 말하였다.
세종世宗은 기상이 뛰어나고 성대하여 선조先祖사업事業을 넓힐 것을 생각하고 여러 현자賢者들에게 물어 인재를 등용하고 일을 밝혀서 준걸俊傑들이 함께 나왔다.
그 일삼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여러 오랑캐들을 물리치는 것이었으니, 우리 강토를 넓혀 밖으로 사방四方의 변방에 이르렀다.
무공武功이 이미 높아지자 또한 문교文敎를 여니, 육학六學헌장憲章하여 성인聖人의 진리로 통일하였다.
봉선封禪하고 제사를 지내어 여러 신을 차례로 제사하고, 율력律曆을 맞추고 정삭正朔을 고쳐 천년을 누렸다.”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효무제孝武帝가 사치함을 지극히 하고 욕망을 다하며 형벌을 번거롭게 하고 세금을 무겁게 거두어서, 안으로는 궁실을 사치스럽게 꾸미고 밖으로는 사이四夷를 정벌함을 일삼았으며, 신선神仙과 괴이한 것을 믿고 현혹하며 순행과 유람이 한도가 없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피폐하여 일어나 도적이 되게 하였으니, 진시황秦始皇과 다른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나라는 이 때문에 망하고 나라는 이 때문에 흥한 것은 효무제孝武帝선왕先王를 준수하여 계통을 이어 지킬 바를 알았고 충직한 말을 받아들였으며, 사람들이 속이고 은폐함을 미워하였으며, 어진 이를 좋아하여 게을리 하지 않고 을 엄격히 하고 분명히 하였으며, 말년에는 과오를 고치고 후사를 부탁함에 훌륭한 인물을 얻었으니, 이 때문에 망한 나라의 잘못이 있었으나 망한 나라의 화를 면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天子所居……故曰禁中 : 釋義에는 이렇게 되어 있으나 蔡邕의 說에 의하면 “天子가 거처하는 곳에는 禁함이 있어 侍御하는 신하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으며, 길을 갈 때에 豹尾를 매단 수레 가운데를 또한 禁中이라 한다.[門閣有禁 非侍御之臣 不得妄入 行道豹尾中 亦爲禁中]” 하였다. 豹尾는 天子의 屬車 위에 장식하는 물건으로, 天子의 屬車는 81대인데 세 줄로 만들어 尙書와 御史가 타고 가장 뒤의 수레 한 대에 豹尾를 매단다.
역주2 : 지
역주3 : 지
역주4 六學 : 六藝를 學으로 삼아 六學이라고 이른 것이다. 六藝는 여섯 가지 경전으로 《詩經》‧《書經》‧《易經》‧《禮經》‧《樂經》‧《春秋》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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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오]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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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갑오] 2년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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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갑오] 2년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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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갑오] 2년 344

통감절요(2)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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