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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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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辰]五年이라
操欲自攻備한대 諸將 皆曰 袁紹方來어늘 而棄之東이라가 紹乘人後 若何
郭嘉曰 紹性遲而多疑하니 來必不速이요 備新起 衆心 未附하니 急擊之 必敗하리이다
操師遂東하다
○ 冀州別駕田豐 說袁紹曰 曹操與劉備連兵하니 未可卒解注+[通鑑要解] 讀曰猝이요 判也
擧軍而襲其後 可一往而定하리이다 紹辭以子疾未得行注+[通鑑要解] 擧杖擊地曰 嗟呼 遭難遇之時어늘 而以嬰兒之病失其會하니 惜哉 事去不諧矣로다하다
○ 曹操擊劉備破之하야 獲其妻子하고 進拔下邳하야 禽關羽하다
備奔靑州하야 歸袁紹하니 操還軍官渡注+[頭註]地名이니 在河南이라하다
○ 紹乃議攻許注+[頭註]曹操迎帝하야 都許하니라하야 進軍黎陽하고 遣其將顔良하야 攻劉延於白馬어늘
曹操北救劉延하니 顔良 來逆戰이라
操使張遼, 關羽 先登注+[頭註]猶言先軍이니 左傳注 率先鄭兵以登許國之城이라하니라擊之러니 羽望見良麾蓋注+[頭註]大將軍所乘戎車 設幢麾張蓋하고 策馬하야 刺良於萬衆之中하야 斬其首而還하니 紹軍 莫能當者
遂解白馬之圍하다
○ 初 操壯關羽之爲人이나 而察其心神하니 無久留之意
使張遼 以其情問之한대 羽歎曰 吾極知曹公待我厚이나 吾受劉將軍恩하야 誓以共死하니 不可背之
吾終不留 要當立效하야 以報曹公하고 乃去耳리라
遼以羽言報操한대 操義之러라
及羽殺顔良 拜書告辭하고 而奔劉備於袁軍注+[頭註] 備與紹連兵이라하니 左右欲追之어늘 操曰 彼各爲其主 勿追也하라하다
○ 孫策注+[頭註]孫堅生四男하니 曰策, 權, 翊, 匡이라 病甚하니 呼權하야 佩以印綬하고 謂曰
擧江東之衆하야 決機於兩陳之間하야 與天下爭衡注+[通鑑要解] 所以平輕重也 爭衡 言分爭之世 兵力所加 天下大勢爲之輕重也 卿不如我
擧賢任能하야 各盡其心하야 以保江東 我不如卿이라하다
하니 張昭, 周瑜等 謂權可與共成大業이라하야 遂委心而服事焉이러라
○ 袁紹軍陽武어늘 曹操擊破之하야 盡燔其糧穀하고 殺士卒千餘人하야 皆取其鼻하야 以示紹軍하니 於是 紹軍 驚擾大潰
紹與八百騎 渡河走어늘 操追之不及하다
爲人 寬雅有局度하야 喜怒 不形於色이나 而性 矜愎注+[通鑑要解] 字彙 自用也 又咈也自高하야 短於從善이라
至於敗러라


건안建安 5년(경진 200)
조조曹操가 직접 유비劉備를 공격하고자 하자, 제장諸將들이 모두 말하기를 “원소袁紹가 막 쳐들어올 터인데 그를 버리고 동쪽으로 갔다가 원소袁紹가 기회를 틈타 배후를 공격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며 반대하였다.
곽가郭嘉가 말하기를 “원소袁紹는 성질이 느리고 의심이 많으니 오더라도 반드시 속히 오지 않을 것이요, 유비劉備가 새로 일어나서 사람들의 마음이 아직 완전히 따르지 않으니 급히 공격하면 반드시 패퇴시킬 것입니다.” 하였다.
조조曹操의 군대가 마침내 동쪽으로 진출하였다.
기주冀州별가別駕 전풍田豐원소袁紹를 설득하기를 “조조曹操유비劉備와 전쟁을 계속하니, 대번에 결판注+[通鑑要解]로 읽고, 는 판가름이다. 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군대를 일으켜 조조曹操의 후미를 습격하면 한 번 가서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으나, 원소袁紹는 아들의 병 때문에 갈 수 없다고 사양하였다.注+[通鑑要解]說袁紹……未得行:전풍田豐이 지팡이를 들어 땅을 치며 말하기를 “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좋은 때를 만났는데 어린 자식의 병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니, 안타깝다. 일이 글러 버려 이루어지지 못하겠구나.” 하였다.
조조曹操유비劉備를 공격하여 깨뜨려서 그 처자식을 사로잡고, 진군進軍하여 하비下邳를 함락하고 관우關羽를 사로잡았다.
유비劉備청주靑州로 달아나 원소袁紹에게 귀부歸附하니, 조조曹操가 군대를 이끌고 관도官渡注+[頭註]관도官渡는 지명이니, 하남河南에 있다. 로 돌아왔다.
원소袁紹가 마침내 허도許都를 공격할 것을 의논하여注+[頭註]조조曹操가 황제를 맞이하여 허현許縣에 도읍하였다. 여양黎陽으로 진군하고, 장수 안량顔良을 보내어 백마白馬에서 유연劉延을 공격하였다.
조조曹操가 북쪽으로 가서 유연劉延을 구원하니, 안량顔良이 와서 맞이하여 싸웠다.
조조曹操장료張遼관우關羽로 하여금 선봉先鋒注+[頭註]선등先登선군先軍(先鋒)이란 말과 같으니,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나라 군대에게 솔선을 보여 나라의 에 올라갔다.” 하였다. 이 되어 공격하게 하였는데, 관우關羽안량顔良의 지휘하는 깃발과 일산日傘注+[頭註]휘개麾蓋대장군大將軍이 타는 융거戎車당휘幢麾를 설치하고 일산을 편 것이다. 을 멀리서 바라보고는 말에 채찍질을 하여 달려 나가 수많은 무리 가운데에서 안량顔良을 찔러 머리를 베고 돌아오니, 원소袁紹의 군사들이 맞서는 자가 없었다.
마침내 백마白馬의 포위가 풀렸다.
○ 처음에 조조曹操관우關羽의 사람됨을 장하게 여겼으나 그의 심신心神을 관찰해보니 오랫동안 머물 뜻이 없었다.
장료張遼를 시켜 그 사정을 묻자, 관우關羽가 탄식하기를 “조공曹公께서 나를 후대하신 것을 내가 잘 알고 있으나 나는 유장군劉將軍의 은덕을 입어서 함께 죽기로 맹세하였으니, 그를 배반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끝내 머물지 않을 것이니, 다만 를 세워서 조공曹公에게 보답한 뒤에 비로소 떠날 것입니다.” 하였다.
장료張遼관우關羽의 말을 조조曹操에게 보고하니, 조조曹操가 의롭게 여겼다.
관우關羽안량顔良을 죽였을 때에 글을 올려 하직을 고하고 원소袁紹 군중軍中유비劉備에게 달려가니,注+[頭註]당시에 유비劉備원소袁紹와 병력을 연합하였다. 좌우左右가 그를 추격하려 하자 조조曹操가 말하기를 “저는 각기 그 주인을 위하는 것이니, 쫓지 말라.” 하였다.
손책孫策注+[頭註]손견孫堅은 네 아들을 낳았으니, 손책孫策손권孫權손익孫翊손광孫匡이다. 이 병이 심해지자, 손권孫權을 불러서 인수印綬를 채워 주고 이르기를
강동江東의 무리를 동원하여 두 진영 사이에서 기회를 노려 천하의 영웅들과 승패를 다툼注+[通鑑要解]저울대는 경중輕重을 공평하게 하는 것이다. 쟁형爭衡은 분쟁하는 세상에 병력兵力이 어느 한쪽에 가해지면 천하의 대세大勢가 이 때문에 가벼워졌다 무거워졌다 함을 말한다. 이 나만 못하고,
어진 사람을 들어 쓰고 유능한 사람에게 맡겨서 각각 그 마음을 다하여 강동江東을 보존하게 하는 것은 내가 만 못하다.” 하였다.
손책孫策이 죽으니, 장소張昭주유周瑜 등은 손권孫權이 함께 대업을 이룰 만하다고 여겨 마침내 마음을 바쳐 복종하고 섬겼다.
원소袁紹양무陽武에 주둔하자, 조조曹操가 그를 격파하여 양곡糧穀을 다 불태우고 사졸士卒 천여 명을 죽여서 그 코를 모두 베어 원소袁紹의 군사들에게 보이니, 이에 원소袁紹의 군사들이 놀라고 동요하여 크게 무너졌다.
원소袁紹가 800명의 기병騎兵황하黃河를 건너 도망하였는데, 조조曹操가 추격하였으나 따라잡지 못하였다.
원소袁紹는 사람됨이 너그럽고 고상하여 기국과 도량이 있어서 기쁨과 노여움을 얼굴빛에 나타내지 않았으나 성품이 교만하고 괴팍하여注+[通鑑要解]은 《자휘字彙》에 “스스로 자신만 옳다고 하는 것이요, 또 성내는 것이다.” 하였다. 스스로 높은 체해서 선언善言을 따르는 데에 부족하였다.
그러므로 실패함에 이른 것이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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