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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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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皇帝 上 名禪이요 字公嗣 昭烈皇帝之子
在位四十年이요 壽六十五
[甲辰]建興二年이라 〈魏黃初五年이요 吳黃武三年이라
魏主丕大興軍伐吳할새 留尙書僕射司馬懿하야 鎭許昌하고 爲水軍하야 親御龍舟하고 至廣陵注+[釋義]廣陵 禹貢揚州也 漢爲荊王國, 吳王國이러니 景帝更江都國하고 武帝更廣陵郡하고 唐爲楊州하니라하니 江水盛長이라
丕臨望하고 歎曰 魏雖有武騎千群이나 無所用之 未可圖也로다
丕御龍舟러니 暴風 漂蕩하야 幾至覆沒이라 乃旋師하다


후황제後皇帝는 이름이 이고 공사公嗣이니, 소열황제昭烈皇帝의 아들이다.
재위가 40년이고 가 65세이다.
건흥建興 2년(갑진 224) - 나라 황초黃初 5년이요, 나라 황무黃武 3년이다. -
위주魏主 조비曹丕가 크게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정벌할 때에 상서복야尙書僕射 사마의司馬懿를 남겨 두어 허창許昌을 진무하게 하고, 수군水軍을 다스려 친히 용주龍舟를 타고 광릉廣陵注+[釋義]광릉廣陵은 《서경書經》 〈우공禹貢〉의 양주揚州이다. 나라 때 형왕荊王의 나라와 오왕吳王의 나라가 되었는데, 경제景帝강도국江都國으로 고치고 무제武帝광릉군廣陵郡으로 고쳤으며, 나라는 양주楊州라고 하였다. 에 이르니, 이때 양자강揚子江의 물이 크게 불어 넘쳤다.
조비曹丕가 강에 임하여 바라보고 탄식하기를 “나라에 비록 무기武騎 천만 무리가 있으나 쓸 곳이 없으니, 도모할 수 없다.” 하였다.
조비曹丕용주龍舟에 타고 있었는데, 마침 폭풍을 만나 배가 위아래로 일렁여서 거의 전복될 지경에 이르자, 마침내 회군回軍하였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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