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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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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丁卯]太和二年이라 〈秦建元三年이요 燕建熙八年이라
燕太原王恪注+[頭註]皝之第四子 疾病이어늘注+[頭註]皝之第二子雋之子親視之하고 問以後事한대
恪曰 吳王 文武兼資하야 , 蕭之亞 陛下若任以大政이면 國家可安이어니와
不然이면 秦, 晉 必有窺窬注+[通鑑要解] 音由 門邊小竇也之計하리이다
言終而卒하다
秦王堅 聞恪卒하고 陰有圖燕之計러라


태화太和 2년(정묘 367) - 나라 건원建元 3년이고, 나라 건희建熙 8년이다. -
나라 태원왕太原王 모용각慕容恪注+[頭註]태원왕太原王 모용각慕容恪모용황慕容皝의 넷째 아들이다. 이 병이 심해지자, 모용위慕容暐注+[頭註]모용위慕容暐모용황慕容皝의 둘째 아들인 모용준慕容雋의 아들이다. 가 친히 가서 병을 살펴보고 그가 죽은 뒤의 일을 물었는데,
모용각慕容恪이 말하기를 “오왕吳王문무文武를 겸비하여 관중管仲소하蕭何에 버금가니, 폐하께서 만약 그에게 큰 정사를 맡기신다면 국가가 평안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라와 나라가 반드시 틈注+[通鑑要解]이 유이니, 문 옆의 작은 구멍이다. 을 엿보아 동하려는 계책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모용각慕容恪이 말을 마치고 죽었다.
진왕秦王 부견苻堅모용각慕容恪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은밀히 나라를 도모할 계책을 세웠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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