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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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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卯] 〈宋元嘉四年이요 魏始光四年이라
魏奚斤注+[頭註]姓名也 山陽公이라 與夏平原公定으로 相持於長安이러니 魏主 欲乘虛伐統萬注+[釋義]夏赫連勃勃 於黑水之南 營都하고 號統萬하니 卽朔方也하야 以輕騎注+[頭註]人馬不帶甲曰輕騎三萬으로 倍道注+[頭註]凡軍 日行三十里則止하니 過六十里以上 爲倍道 亦曰이라先行하다
夏主 將步騎三萬하고 出城이어늘 魏主 乃分騎爲左右隊하야 以掎之注+[釋義]隗囂傳曰 秦失其鹿 劉季逐而掎之라하니라 註見漢昭烈帝章武二年掎角하니라[通鑑要解]掎 音己 罥其首曰角이요 掎其足曰掎也하니 夏衆 大潰
夏主不及入城하고 遂奔上邽하다
魏主爲人 壯健하야 臨城對陳注+[釋義] 凡鳥之勇銳 獸之猛悍者 皆名鷙也 與陣同이라 親犯矢石하고 左右死傷相繼호되 神色 自若하니 由是 將士畏服하야 咸盡死力이러라
明於知人하야 或拔士於卒伍之中하야 惟其材用所長하고 不論本末하며 聽察 精微하야 下無遁情이라
賞不遺賤하고 罰不避貴하야 雖所甚愛之라도 終無寬假
常曰 法者 朕與天下共之 何敢輕也리오
이나 性殘忍하야 果於殺戮이라 往往已殺而復悔之러라


정묘(427) - 나라 원가元嘉 4년이고, 나라 시광始光 4년이다. -
나라 해근奚斤注+[頭註]해근奚斤성명姓名이니, 산양공山陽公이다. 나라 평원공平原公 혁련정赫連定장안長安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었는데, 위주魏主가 빈틈을 타고 통만統萬注+[釋義]나라 혁련발발赫連勃勃흑수黑水의 남쪽에 도성을 경영하고 통만統萬이라 하였으니, 바로 삭방朔方이다. 을 정벌하고자 해서 경무장한 기병注+[頭註]사람과 말이 갑옷을 입지 않은 것을 경기輕騎라 한다. 3만 명을 데리고 행군속도를 배가하여注+[頭註]무릇 군대는 하루에 30리를 가면 그치니, 60리 이상을 넘는 것을 배도倍道라 하고, 또한 배일겸행倍日兼行이라고도 한다. 먼저 떠났다.
하주夏主가 보병과 기병 3만 명을 거느리고 성을 나오자, 위주魏主가 마침내 기병을 나누어 좌대左隊우대右隊를 만들어서 협공하니,注+[釋義]후한서後漢書》 〈외효전隗囂傳〉에 이르기를 “나라가 그 사슴을 잃었을 때에 유계劉季가 쫓아가 잡았다.” 하였다. 나라 소열제昭烈帝 장무章武 2년(222) 기각조掎角條에 보인다. [通鑑要解]掎는 음이 기이니, 머리에 올가미를 씌우는 것을 이라 하고, 발을 잡아당기는 것을 라 한다. 나라 군대가 크게 무너졌다.
하주夏主가 미처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침내 상규上邽로 도망하였다.
위주魏主는 사람됨이 건장하고 사납고 용맹스러워서 성에 임하여 적과 대치하여 진을 칠 적에注+[釋義]는 새가 용맹하고 날랜 것과 짐승이 사나운 것을 모두 라고 이름한다. 과 같다. 직접 화살과 포석을 무릅썼으며 좌우에 죽고 부상한 자가 속출하였으나 안색이 태연자약하니, 이로 말미암아 장병들이 두려워하여 복종해서 모두 사력을 다하였다.
인재를 알아보는 데 밝아서 혹 대오 가운데에서 인재를 발탁하여 오직 재주의 소장所長만을 따르고 본말本末(출신)을 따지지 않았으며, 듣고 살핌이 정밀하여 아랫사람들이 실정을 숨기지 못하였다.
상을 줄 때에는 천한 사람을 빠뜨리지 않고 벌을 줄 때에는 귀한 사람을 피하지 않아서 비록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끝내 너그럽게 용서하는 일이 없었다.
항상 말하기를 “이라는 것은 이 천하와 함께 하는 것이니, 어찌 감히 가벼이 하겠는가.” 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잔인하여 살육을 결행하고는 왕왕 죽이고 난 뒤에 다시 뉘우쳤다.


역주
역주1 倍日兼行 : 하루에 이틀 노정을 가는 것을 倍日 또는 兼程이라 하며, 속도를 배가하여 길을 재촉하는 것을 兼行이라 한다.
역주2 : 지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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