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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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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宗注+[]久罹幽辱하야 備嘗險阻러니 하니 所謂者矣로다 이니 高宗第七子
卽位之後 皇太后武氏 欲專政革命하야
廢居房陵이라가 後尋復位하다
在位二十七年이요 壽五十五
附則天順聖皇后※注+[通鑑要解]名曌 武后改造照字爲曌 曌(照) 僭位二十一年이요 壽八十一이라
※乘唐中衰하야 攘竊神器하고 任用酷吏하야 屠害宗支하고 毒流縉紳하니 其禍慘矣


중종中宗注+[]오랫동안 유폐되는 치욕을 당하여 온갖 험한 일을 다 겪었는데, 하루아침에 뜻을 이루게 되자, 주색에 빠져 잘못을 고치지 않아서 직접 모후母后의 난을 겪었으면서도 자신이 스스로 이러한 잘못을 범하였으니, 이른바 ‘하우불이下愚不移’라는 것일 것이다. 이름이 이니, 고종高宗의 일곱째 아들이다.
즉위한 뒤에 황태후皇太后무씨武氏가 정권을 독점하여 혁명革命하고자 하였다.
이에 중종中宗은 유폐당하여 방릉현房陵縣에 거하다가 얼마 뒤 복위하였다.
재위가 27년이고 가 55세이다.
측천순성황후則天順聖皇后를 붙임.注+[通鑑要解]측천순성황후則天順聖皇后는 이름이 (조)이니, 무후武后조자照字를 고쳐 로 만들었다. 이름은 이니, 참위僭位한 것이 21년이고 가 81세이다.
중간에 나라가 쇠퇴한 틈을 타서 신기神器(帝位)를 도둑질하고 혹리酷吏를 임용하여 나라의 종자宗子지손支孫을 도륙하고 해독이 사대부들에게까지 미치니, 그 가 참혹하였다.


역주
역주1 一旦得志……躬自蹈之 : 中宗은 高宗의 아들이며 則天武后의 소생으로, 즉위한 다음 측천무후에게 폐위당하여 廬陵王으로 강등된 후 房州로 쫓겨났다가 측천무후 말년에 다시 복위되었으나 韋后에게 혹하고 武三思를 등용하여 나라가 혼란에 빠졌으며 결국 위후에게 독살당하였다.
역주2 下愚不移 : 가장 어리석어 변화되지 않는 것으로, 《論語》 〈陽貨〉에 孔子가 말씀하기를 “오직 上智(지극히 지혜로운 자)와 下愚(가장 어리석은 자)는 변화되지 않는다.[唯上智與下愚不移]” 하였다.

통감절요(7)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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