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壹이 旣伏誅에 權이 因遣人하여 告謝諸大將하고 問時事所當損益이러니 諸將이 皆不敢有所言이라
權이 復以詔責之曰 子瑜, 子山, 義封, 定公이 皆不肯有所陳하고 而伯言, 承明이 涕泣危怖하여 有不自安之心이라하니
聞之
에 悵然
하여 深自刻恠
注+子瑜, 諸葛瑾字. 子山, 步騭字. 義封, 朱然字. 定公, 呂岱字. 伯言, 陸遜字. 承明, 潘濬字. 刻, 通作克, 痛責也. 怪, 亦責也.하노라 夫惟聖人
이라야 能無過行
이요 明者
라야 能自見耳
注+行, 去聲.라
人之擧厝 何能悉中
注+厝, 通作措. 中, 去聲. 悉中, 猶言皆當也.이리오 獨當己有以傷拒衆意
로되 忽不自覺
이라 故
로 諸君
이 有嫌難耳
注+當, 猶應也. 言己應有違衆心, 處嫌疑也. 難, 猶不肯也. 謂諸君皆避嫌疑, 而難於陳言也.라
與諸君從事
하여 自少至長
하여 髮有二色
注+二色, 謂班白也.하니 義雖君臣
이나 恩猶骨肉
하여 榮福喜戚
을 相與共之
라
忠不匿情
하고 智無遺計
하니 事統是非
어늘 諸君
이 豈得從容而已哉
注+事統是非, 言行事是則君臣同其是, 非則同其非也. 從, 七容切. 容, 如字. 謂其舒肆自在也.리오
齊桓이 有善에 管子未嘗不歎하고 有過에 未嘗不諫하여 諫而不得이면 終諫不止라
今孤自省에 無桓公之德이요 而諸君諫諍이 未嘗出口하고 仍執嫌難하니
以此言之컨대 孤於齊桓에 良優로되 未知諸君於管子에 如何耳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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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曹叡가 묻기를 “세 가지 방법 중에 公孫淵이 어떤 방책으로 나오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오직 밝고 지혜로운 자라야 능히 彼我의 형세를 살피고 헤아려서 일에 앞서 포기하는 것이니, 이는 공손연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그는 반드시 먼저 遼水에서 막고 뒤에 후퇴하여 襄平을 지킬 것입니다.” 하였다.
조예가 묻기를 “갔다가 돌아오는 데 며칠이 걸리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가는 데 100일, 공격하는 데 100일, 돌아오는 데 100일이 걸리고 60일 동안 휴식을 해야 하니, 이와 같이 하면 1년이면 충분합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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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魏主 曹叡가 盧毓에게 묻기를 “누가 司徒가 될 만한 자인가?” 하니, 노육은 處士 管寧을 천거하였다.
曹叡가 그를 등용하지 않고 다시 그 다음 사람을 묻자, 대답하기를 “敦厚하고 지극한 행실이 있는 자는 太中大夫 韓曁요,
성실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고 方正한 자는 司隷 崔林이요, 貞固하고 純粹한 자는 太常 常林입니다.” 하였다. 이에 한기를 사도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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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여일이 伏誅되자, 孫權은 인하여 사람을 보내어 여러 大將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時事에 마땅히 줄이고 더할 바를 물었는데, 장수들은 모두 감히 말하려 하지 않았다.
손권은 다시 詔書를 내려 다음과 같이 責望하였다. “子瑜(諸葛瑾)와 子山(步騭), 義封(朱然)과 定公(呂岱)은 모두 말을 하려고 하지 않고, 伯言(陸遜)과 承明(潘濬)은 눈물을 흘리며 위태롭게 여기고 두려워해서 스스로 편안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 하니,
내 이 말을 들음에 마음이 서글퍼져서 통렬히 자책하노라.
注+子瑜는 諸葛瑾의 字이고, 子山은 步騭(보즐)의 字이고, 義封은 朱然의 字이고, 定公은 呂岱의 字이고, 伯言은 陸遜의 字이고, 承明은 潘濬의 字이다. 刻은 克과 通하니, 痛烈히 책망함이요, 怪 또한 책망함이다. 오직
聖人이라야 능히 잘못된 행실이 없고, 현명한 자는 능히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아는 것이다.
注+行(행실)은 去聲이다.
사람의
擧措가 어찌 능히 모두 도리에 맞겠는가.
注+厝는 措와 通한다. 中(맞다)은 去聲이니, “悉中”은 모두 도리에 맞다는 말과 같다. 다만 내가 스스로 옳다고 여겨서 사람들의 의견을 어기면서도 소홀하여 깨닫지 못해서,
諸君들이 혐의하여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것이다.
注+當은 應과 같다. 〈“獨當己有以傷拒衆意”는〉 자신이 응당 사람들의 마음을 어기는 바가 있어 혐의를 받게 됨을 말한 것이다. 難은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으니, 〈“有嫌難”은〉 諸君들이 모두 혐의를 피하여 말하는 것을 어려워함을 이른 것이다.
내 제군들과 함께 일하여 젊었을 때로부터 장성함에 이르러서 머리털이
斑白이 되었으니,
注+“二色”은 班白(검은 머리와 흰 머리가 반반임)을 말한다. 의리는 비록 군신 간이나 은혜는 골육 간과 같아서
榮華와
福, 기쁨과 슬픔을 서로 함께하고 있다.
충성스러우면 실정을 숨기지 않고 지혜로우면 계책을 남기지 않고 다 말하는 법이니, 일의 옳고 그름에 군주와 신하의 의견이 함께해야 하는데,
諸君들이 어찌
從容하게 있을 수 있는가.
注+“事統是非”는 행하는 일이 옳으면 君主와 신하가 그 옳게 여김을 함께하고, 그르면 그 그르게 여김을 함께함을 말한 것이다. 從은 七容의 切이고 容은 본음대로 읽으니, 〈“從容”은〉 느긋하고 자유로움을 말한 것이다.
齊 桓公이 善行이 있을 적에 管子(管仲)가 일찍이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잘못이 있을 적에 일찍이 諫하지 않은 적이 없어서 간하여 듣지 않으면 그치지 않고 끝까지 간하였다.
지금 내 스스로 살펴봄에, 나는 제 환공의 덕이 없고, 諸君들은 간쟁하는 말을 일찍이 입에서 내지 아니하여 그대로 혐의하고 어려워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말하건대 〈잘못을 깨달은〉 나는 제 환공에게 비하여 참으로 넉넉하지만, 제군들은 관자에 비하여 어떨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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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처음에 魏 太祖(曹操)가 劉放과 孫資를 秘書郞으로 삼았는데, 文帝(曹丕)가 秘書의 이름을 고쳐 中書라 하고 유방을 中書監으로 삼고 손자를 中書令으로 삼아서 기밀의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魏主 曹叡가 즉위하자 이들을 더욱 총애하고 신임하여, 조예가 때로 직접 萬機를 살피고 자주 군대를 일으켰으나, 심복의 임무는 모두 이 두 사람이 관장하였다.
그리하여 큰일이 있어서 朝臣들이 회의할 때마다 항상 이들로 하여금 그 옳고 그름을 결정해서 선택하여 행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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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中護軍 蔣濟가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臣이 들으니 大臣의 권력이 너무 무거우면 나라가 위태롭고, 좌우의 신하가 너무 군주와 친하면 군주가 愚昧해진다.” 하였으니, 옛날의 지극한 경계입니다.
先君 때의
大臣이
政事를 전횡하여
外內가 선동하였는데,
注+〈“往者大臣”은〉 아마도 文帝(曹丕) 때의 대신을 이른 듯하다. 혹자는 “遺詔를 받은 大臣을 이른다.” 한다. 폐하께서
卓然히 직접
萬機를 살펴보시니, 신하 중에 공경하고 숙연해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大臣이 충성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권세가 아랫사람에게 있으면 사람들이 윗사람(군주)을 소홀히 여김은 당연한 형세입니다. 폐하께서 이미 大臣들을 살피셨으니, 좌우 신하들에 대한 경계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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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劉放과 孫資가 오랫동안 기밀의 임무를 맡으니 夏侯獻과 曹肇가 불평하는 마음이 있었다. 대궐에 닭이 깃들어 사는 나무가 있었는데,
하후헌과 조조 두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 또한 오래되었으니, 얼마나 더 있을 수 있겠는가.”
注+宮殿에 닭을 길러서 새벽에 울어 시간을 알리는 일을 맡게 하였는데, 나무 위에 깃들었으므로 인하여 鷄棲樹라 한 것이다. 夏侯獻과 曹肇는 이것을 가리켜 劉放과 孫資를 비유한 것이다. 하니, 유방과 손자가 두려워하여 은밀히 이들을 이간질할 것을 도모하였다.
注+間(이간질하다)은 古莧의 切이다.
曹宇가 성품이 공손하고 선량하여
誠心을 다하여
大將軍의 직책을 굳이 사양하자,
曹叡가 유방과 손자를
臥室로 불러 들어오게 해서 묻기를 “
燕王이 진실로 이와 같이 사양한단 말인가.”
注+“正爾爲”는 “진실로 이와 같이 사양한단 말인가.”라는 말과 같다. 일설에 “그의 성품이 공손하고 선량하여 일을 함이 바로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 한다. 하니,
대답하기를 “연왕은 실제로 자신이 큰 임무를 감당하지 못할 줄을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조예가 묻기를 “누가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자인가?” 하니, 이때 曹爽이 곁에 있었다.
유방과 손자는 인하여 조상을 천거하고 또 司馬懿를 불러와 함께 정사를 보좌하는 일에 참여하게 할 것을 청하였다. 조예가 그들의 말을 따랐는데, 얼마 후 중간에 마음이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