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諸葛恪不欲諸王이 處濱江兵馬之地하여 乃徙齊王奮於豫章하고 琅邪王休於丹陽하니
是以
로 家天下
하고 臣父兄
하여 仇讐有善
하면 不得不擧
하며 親戚有惡
하면 不得不誅
하니 所以承天理物
하고 先國後身
注+先‧後, 皆去聲.이라
蓋聖人立制는 百代不易之道也니 大行皇帝覽古戒今하여 慮於千載라
是以로 寢疾之日에 分遣諸王하여 詔策勤渠하고 科禁嚴峻하니
誠欲上安宗廟하고 下全諸王하여 使百世相承하여 無凶國害家之悔也라
大王宜上惟太伯順父之志
注+惟, 思也. 周太王三子, 長曰太伯, 次曰仲雍, 次曰季歷. 季歷之子曰昌, 有盛德, 太王欲傳國季歷以及昌, 太伯‧仲雍遂逃之荊蠻, 讓國季歷以成父之志.하고 中念河間東海恭順之節
注+漢河間獻王德, 於武帝兄也. 東海恭王彊, 於明帝異母兄也. 二王之事二帝, 極爲恭順.하고 下存前世驕恣荒亂之戒
注+存, 察也.어늘
而聞頃至武昌以來로 多違詔勅하고 不拘制度하여 擅發諸將하고 私殺左右하니 小大驚怪하여 莫不寒心이라
里語曰 明鑑
은 所以照形
이요 古事
는 所以知今
이라하니 大王宜深以魯王爲戒
하여 改易其行
注+前年魯王霸被殺.이니
若棄忘先帝法敎하고 懐輕慢之心이면 臣下寧負大王이언정 不敢負先帝遺詔며
寧爲大王所怨疾이언정 豈敢令詔勅不行於藩鎭邪아 奮懼遂行하다
目
是時에 征南王昶征東胡遵鎭南毌丘儉이 各獻征吳之策이어늘 詔以問尙書傅嘏하니
嘏曰 吳爲寇六十年에 君臣相保하고 吉凶同患하니 設令列船津要하면 則彼堅城據險하니
橫行之計
가 其殆難捷
이라 今邊城之守
가 與賊相遠
하고 羅落重密
하여 間諜不行
注+羅, 布也. 落, 與絡同, 聯絡也. 羅落, 謂設烽燧, 遠候望, 以羅落邊面也. 重, 直龍切.이어늘
而擧大衆하여 臨巨險하여 以徼功하니 先戰而後求勝이 非長策也라
唯有進軍大佃
이 最差完牢
注+佃, 讀曰田. 差, 初加切, 猶愈也.라 可詔昶遵等擇地居險
하여 三方竝進
이니
奪其肥壤
하여 使還塉地
가 一也
注+塉, 秦昔切, 薄土也.요 兵出民表
하여 寇抄不犯
이 二也
요
招懐近路하여 降附日至가 三也요 羅落遠設하여 間構不來가 四也요
賊退其守하여 佃作易立이 五也요 坐食積穀하여 士不運輸가 六也요 釁隙時聞하여 討襲速決이 七也니
凡此七者는 軍事之急務也라 不進據則賊擅便資요 據之則利歸於國이니 不可不察也라하되 師不從하다
目
[目] 諸葛恪은 여러 왕들이 長江 가의 군사적 요지에 머물지 않게 하고자 하여 齊王 孫奮을 豫章으로 옮기고, 琅邪王 孫休를 丹陽으로 옮겼다.
손분이 옮기려 하지 않자, 제갈각이 손분에게 편지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帝王의 존귀함은 하늘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천하를 집으로 삼고 부형을 신하로 삼아서 원수라도 선행을 행하면 등용하며, 친척이라도 악행을 행하면 주벌하니, 이는 천명을 받들고 만물을 다스리며 나라를 우선하고 자신을 뒤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注+先(앞서다)과 後(뒤로 미루다)는 모두 去聲이다.
聖人이 세운 제도는 百代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법칙입니다. 大行皇帝(孫權)께서는 옛날을 살피시고 지금을 경계하시어 천년 후를 염려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병환으로 누워 계실 때에 여러 왕들을 지방에 나누어 파견하면서 내리신 조칙이 간절하고 금령이 엄준하셨으니,
이는 진실로 위로는 宗廟를 편안하게 하고 아래로는 여러 왕들을 온전하게 하여 百世토록 서로 계승하게 하여 나라에 재앙을 끼치고 집안에 해독을 끼치는 후회가 없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大王께서는 마땅히 위로
周나라
太伯이 아버지의 뜻을 따른 것을 생각하고,
注+惟는 생각한다는 뜻이다. 周나라 太王의 세 아들은 장남이 太伯이고, 차남이 仲雍이고, 삼남이 季歷이다. 계력의 아들은 昌인데, 盛德이 있어 太王이 나라를 계력에게 전하여 창에게 미치게 하려고 하자 태백과 중옹이 마침내 荊蠻으로 도망을 가서 나라를 계력에게 양보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하였다. 注+漢나라 河間獻王 劉德은 武帝에게 형이고, 東海恭王 劉彊은 明帝에게 이복형이다. 두 왕이 두 황제를 섬긴 것이 지극히 공순하였다. 아래로 이전 시대의 교만하고 방자하며 황폐하고 혼란하게 했던 것을 경계로 삼아야 합니다.
注+存는 살핀다는 뜻이다.
그러나 듣건대 대왕께서 일전에 武昌에 도착한 뒤로, 여러 번 조정의 명령을 어기고 제도에 구애받지 않아서 여러 장수들을 제멋대로 출동시키고 사사로이 좌우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하니, 大小의 관리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며 한심해합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밝은 거울은 물건의 형체를 비추기 위한 것이고, 옛일들은 지금을 알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을 깊이 경계로 삼아 행실을 고치셔야 합니다.
注+전년에 魯王 孫霸가 죽임을 당하였다.
만약 선제의 法敎를 잊어버리고 교만한 마음을 품으신다면 신하들이 차라리 대왕을 저버릴지언정 감히 선제께서 내린 遺詔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며,
차라리 대왕에게 원망과 미움을 받을지언정 어찌 감히 조칙이 藩鎭에서 행해지지 않게 하겠습니까.” 손분이 두려워하여 마침내 〈豫章으로〉 옮겼다.
目
[目] 이때에 征南大將軍 王昶‧征東將軍 胡遵‧鎭南將軍 毌丘儉이 각각 吳나라를 정벌할 계책을 올렸는데, 조서를 내려서 尙書 傅嘏(부하)에게 물으니,
부하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吳나라의 군신이 서로 보존하고 길흉을 함께 근심하였습니다. 설령 나루와 요충지에
軍船을 배치한다 하더라도 저들이 성을 견고하게 지키고 험준한 곳을 의거하고 있으니,
〈우리가
長江을〉 가로질러 가는 계책으로는 아마도 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변방 성곽의 수비가 적과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적의 감시망과 연락망이 중첩되고 엄밀하여 우리의 간첩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注+羅는 편다는 뜻이다. 落은 絡과 같으니, 연락한다는 뜻이다. “羅落”은 봉화를 설치하여 멀리서 망을 보는 것으로써 변방에 연락망을 펼쳐놓는 것을 말한다. 重(거듭하다)은 直龍의 切이다.
그런데 大軍을 동원하여 매우 험한 곳에 가서 공을 이루려고 하니, 먼저 싸움을 하고 뒤에 승리를 구하는 것은 장구한 계책이 아닙니다.
오직 군대를 전진시켜 크게
屯田을 하는 것이 가장 견고한 방책입니다.
注+佃(둔전하다)은 田으로 읽는다. 差(낫다)는 初加의 切이니, 愈와 같다. 왕창‧호준 등에게 조서를 내려 지역을 선택해서 험준한 곳을 점거하여 세 방향에서 나란히 전진하게 해야 합니다.
적들의 비옥한 땅을 빼앗아서 저들을 척박한 땅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注+塉은 秦昔의 切이니, 척박한 땅이다. 우리 병사들이 백성들이 사는 지역 밖으로 나아가서 적이 침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두 번째이고,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을 회유하여 투항하고 귀의하는 자를 날마다 오게 하는 것이 세 번째이고, 감시망과 연락망을 멀리까지 설치하여 적의 간첩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네 번째이고,
적들이 지키는 곳을 뒤로 물려서 둔전을 세우기 용이하게 하는 다섯 번째이고, 앉아서 쌓아놓은 곡식을 먹어서 병사들이 양식을 운송하지 않는 것이 여섯 번째이고, 적의 약점을 알았을 때 기습하여 속전속결하는 것이 일곱 번째입니다.
무릇 이 일곱 가지는 군사의 급선무입니다. 전진하여 점거하지 않으면 적들이 유리한 조건을 마음대로 활용할 것이고, 점거하면 이익이 국가에 돌아오니,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司馬師는 따르지 않았다.
目
[目] 王昶 등에게 조서를 내려 세 길로 吳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왕창은 南郡을 공격하고, 毌丘儉은 武昌으로 향하고, 胡遵과 諸葛誕은 東興을 공격하였는데, 諸葛恪이 병사 4만을 거느리고서 동흥을 구원하였다.
호준 등이
浮橋를 만들어 건너가서 제방 위에 진을 치고
注+陳(진을 치다)은 陣으로 읽는다. 병사를 나누어 두 성을 공격하였는데, 성이 높고 험준하여 함락하지 못하였다.
제갈각이 將軍 丁奉으로 하여금 呂據와 함께 선봉으로 삼아 산의 서쪽을 따라 올라가게 하니, 정봉이 말하기를 “각 부대의 행군이 느리니, 만약 적이 유리한 지역을 점거하게 되면 그들과 다투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빨리 달려가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정봉이 여러 군대를 물리쳐서 도로에서 비켜나게 하고
注+辟(물리치다)은 闢과 같이 읽는다. 여러 군대를 물리쳐서 그들로 하여금 길에서 비켜나게 하고 자신의 군대는 전진하는 것이다. 자신은 휘하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곧바로 전진하였다. 배를 타고 돛을 올린 지 2일 만에
東關에 이르러 마침내
徐塘을 점거하였다.
注+徐塘은 東關에 가깝다.
이때에 눈이 내려서 날씨가 추워서 호준이 한창 술자리를 마련하여 큰 연회를 열었는데, 정봉은
魏나라 선두 부대의 병력이 적은 것을 보고 병사들에게 모두 갑옷을 벗고
矛와
戟을 버리고 투구와 칼과 방패만을 가지고 웃통을 벗은 채 제방을 기어오르게 하니,
注+“兜鍪”는 투구이다. 倮는 裸와 통하니, 웃통을 벗는다는 뜻이다. 堨은 其謁의 切이니, 제방이다. 〈“倮身緣堨”은〉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제방을 따라서 기어오르는 것을 말한다.
魏나라 군사들이 바라보면서 크게 비웃고는 곧바로 엄중히 대비하지 않았다.
目
[目] 吳나라 병사들이 제방에 올라가서 곧장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면서 魏나라의 선두 진형을 격파하였고, 呂據 등이 이어서 도착하였다.
魏나라 군사들이 놀라서 흩어져 달아나서 서로 다투어 浮橋를 건너려고 하다가 부교가 부서지니, 서로 짓밟고 물에 빠져 죽은 자가 수만이나 되었다.
吳나라가 수레, 소와 말, 나귀와 노새를 획득한 것이 각각 천으로 헤아렸고 資材와 器物이 산처럼 쌓였는데, 부대를 정돈하여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