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侯玄은 曹爽의 고종사촌인데, 李勝을 辟召하여 長史로 삼았다. 이승과 鄧颺이 조상으로 하여금 천하에 威名을 세우게 하고자 하여 蜀漢을 정벌하게 할 것을 권하였는데, 司馬懿가 그들을 만류하였으나 할 수 없었다.
3월에 조상이 長安에 와서 병졸 10여만 명을 동원하여 하후현과 함께 駱谷에서 漢中으로 들어가니,注+駱谷은 關門의 이름이다. 漢中郡의 興勢縣에 駱谷路가 있는데, 남쪽 입구를 儻谷이라고 하고, 북쪽 입구를 駱谷이라고 한다. 한중을 지키는 병사가 3만 명이 되지 못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성을 지키며 나오지 않고 涪縣의 병력을 기다리려고 하자,注+蔣琬이 涪에 주둔함으로부터 蜀漢의 중요한 병력이 거기에 있게 되었다.王平이 말하기를 “이곳은 부현과의 거리가 거의 천 리나 됩니다. 적이 만약 關城을 얻게 된다면 바로 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注+垂는 거의 미친다는 뜻이다. 關은 關城이다. 杜佑가 말하기를 “關城은 俗名을 張魯城이라 하는데 西縣의 서쪽 40리에 있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護軍劉敏을 보내서 興勢山을 점거하고 旗幟를 많이 펼쳐서 길이가 백여 리에 이르렀다.注+興勢는 山의 이름이다.
[目] 윤3월에 後主가 費禕를 보내서 漢中을 구원하게 하였다. 출발하려고 할 적에 光祿大夫來敏이 비위를 찾아와 송별을 할 적에 함께 바둑을 두자고 하였다.
이때에 급보가 교대로 도착하였기에 병사들과 말이 갑옷과 마갑을 착용하고 군장을 갖추고 말에 수레를 얹어 출동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注+擐은 음이 患이며, 입는다는 뜻이다. 嚴은 裝의 뜻이니, 裝은 짐을 꾸린다는 뜻이다. 수레와 말을 갖춘 것을 駕라고 한다. 그런데도 비위는 내민과 바둑을 두면서도 조금도 싫증내는 기색이 없자,
내민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조금 전에는 잠깐 그대를 시험해본 것입니다. 그대는 확실히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니, 반드시 적을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綱
[綱] 여름 4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綱
[綱] 5월에 魏나라 병사들이 퇴각하여 달아났다.
目
[目] 魏나라 병사들이 興勢山에 이르러 전진하지 못하고,注+距는 이른다는 뜻이다.關中의 사람들과 氐人‧羌人들이 군수물자를 운송하여 능히 조달하지 못하였는데, 운송하는 도중에 자신들의 소와 가축(말, 노새 등)이 대부분 죽게 되자 백성들과 夷人들이 길에서 소리쳐 울었다.
司馬懿가 夏侯玄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春秋≫에 ‘責望이 매우 큰 것은 그 은덕이 매우 중하다.’注+責은 責望이다. 德은 恩德이다. 責望이 매우 큰 것은 그 은덕이 매우 중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지금 興勢山이 매우 험준한데 蜀漢이 이미 먼저 점거하고 있다.
만약 전진하여 싸움을 할 수 없고, 퇴각할 때 길이 차단을 당하게 되면 군대가 패배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어떻게 그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注+邀는 막는다는 뜻이다. 絶은 끊는다는 뜻이다. 하후현이 두려워하여 曹爽에게 말하자 마침내 군대를 인솔하여 돌아갔다.
그런데 費禕가 진군하여 세 개의 고개를 점령하여 조상의 퇴로를 막았다.注+駱口에서 扶風으로 나가면 中南山으로 막혀 있으며 그 사이에 세 개의 고개가 있는데, 하나는 沈嶺으로 芒水에 가깝고, 하나는 衙嶺이며, 하나는 分水嶺이다. 조상이 험준한 곳을 쟁탈하여 악전고투하면서 겨우 이 지역을 통과하였지만, 병력의 손실이 매우 많았다. 이로 인해 關中의 사람과 물자가 소모되어 텅 비게 되었다.注+爲(때문에)는 去聲이다.
綱
[綱] 겨울에 費禕로 益州刺史를 겸하게 하고, 董允으로 守尙書令으로 삼았다.
目
[目] 蔣琬이 병으로 州刺史의 직책을 굳게 費禕에게 사양하였다. 이때에 국가의 일이 번잡하였는데注+猥는 복잡하다는 뜻이다. 비위의 식견이 남들보다 뛰어나서 尙書令으로 삼으니,
文書를 살필 적에 눈으로 보자마자 그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고 끝내 그것을 잊지 않았다. 항상 아침부터 晡時(오후 3~5시)까지 일을 처리하였는데, 그사이에 빈객을 접대하고 음식을 먹으며 장기를 두면서 남들이 즐기는 것을 다하면서도 일에 내버려두거나 빠뜨린 것이 없었다.
董允이 비위의 후임이 되어서는 처음에 그를 본받으려고 하였으나注+斅(본받다)는 마땅히 效로 써야 한다. 愆은 어긴다는 뜻이다. 열흘 사이에 이미 어긋나고 지체된 것이 많았다.
동윤이 감탄하며 말하기를 “사람의 재주가 이처럼 서로 큰 차이가 있으니, 내가 미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하고, 마침내 하루 종일 일을 처리하면서도 여전히 쉴 틈이 없었다.
역주
역주1征西將軍 :
四征將軍의 하나이다. 四征將軍은 征東將軍, 征南將軍, 征西將軍, 征北將軍을 가리킨다. 이 명칭들은 대부분 光武帝 시기에 등장하였는데, 漢나라 말기 曹操가 사방을 경략하면서 常置하였다. 四征將軍은 秩 二千石이었고, 魏 文帝 때 9品으로 나누면서 2품으로 三公 다음이 되었다. 晉나라 때에는 3품으로 開府하여 公과 동등하였다. 이는 蜀漢과 吳나라에도 설치되었다.
역주2太平寰宇記 :
중국 宋나라의 樂史가 지은 地理書로, 총 200권이다. 宋나라 疆域의 版圖를 기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