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時에 聰이 在逍遙園李中堂이러니 元達이 先鎖腰而入하여 卽以鎖로 鎖堂下樹하고
呼曰 臣所言者는 社稷之計어늘 而陛下殺臣하시니 朱雲有言호되 臣得與龍逢, 比干遊면 足矣라하니이다 左右曳之호되 不能動이라
大司徒任顗等이 叩頭出血하여 曰 元達이 爲先帝所知하여 盡忠竭慮하여 知無不言하니
臣等이 毎見之에 未嘗不發愧니이다 今言雖狂直이나 願陛下容之하소서 聰이 黙然이러라
目
劉后聞之하고 密勅左右停刑하고 手疏上言호되 今宮室已備하니 無煩更營이요
四海未一하니 宜愛民力이니이다 廷尉之言은 社稷之福也니 宜加封賞이어늘
而更誅之하시면 四海謂陛下何如哉잇가 夫忠臣進諫者는 固不顧其身也요 而人主拒諫者도 亦不顧其身也라
陛下爲妾營殿하여 而殺諫臣이면 使忠良結舌者由妾이요 遠近怨怒者由妾이요
公私困弊者由妾
이요 社稷阽危者由妾
注+阽音, 反坫之坫, 又音屋檐之檐, 近邊, 知墮意.하여 天下之罪 皆萃於妾
하리니 妾何以當之
리잇고
妾觀自古敗國喪家에 未始不由婦人하고 心常疾之러니 不意今日에 身自爲之호니
使後世視妾
이 由妾之視昔人也
注+由, 與猶通.라 妾
은 誠無面目復奉巾櫛
하오니 願賜死此堂
하노이다
目
譚
이 嘗在壽春
에 依周馥
이러니 至是
하여 睿謂譚曰 周祖宣
이 何故反
注+祖宣, 馥字.고
譚曰 周馥이 雖死나 天下尙有直言之士니이다 馥이 見寇賊滋蔓하고 欲移都以紓國難이어늘
執政이 不悅하여 興兵討馥이러니 死未踰時에 而洛都淪沒하니 若謂之反이면 不亦誣乎잇가
睿曰 馥이 位爲征, 鎭하여 召之不入하고 危而不持하니 亦天下之罪人也니라
譚曰 然하니이다 危而不持는 當與天下共受其責이니 非但馥也니이다
目
嶷이 淸方有幹略이러니 兄武爲玄菟太守라가 卒커늘
嶷이 與武子開로 以其喪歸할새 過廆한대 廆敬禮之하다
行及遼西에 道不通하여 嶷이 欲還하니 開曰 等爲流寓인댄 段氏彊하고 慕容氏弱하니 何必去此而就彼也잇고
嶷曰 欲求託足之地
인댄 豈可不愼擇其人
이리오 汝觀諸段
이 豈有遠略
이리오 且能待國士乎
注+諸段, 謂段疾陸眷‧段匹磾‧段文鴦‧段末柸等.아
慕容公은 修仁行義하여 有霸王之志하고 加以國豐民安하니
今往從之하면 高可以立功名이요 下可以庇宗族이니 汝何疑焉이리오 旣至에 廆大喜러라
目
浚이 甚喜하여 謂子春曰 石公을 可信乎아 子春曰 殿下는 中州貴望으로 威行夷, 夏하니
自古胡人이 爲輔佐名臣則有矣어니와 未有爲帝王者也라 石將軍이 非惡帝王不爲而讓於殿下요
顧以帝王이 自有歷數하여 非智力之所取故也니 又何怪乎잇가
浚
이 大悅
하여 遣使報聘
하다 遊綸兄統
이 爲浚鎭范陽
이러니 遣使私附於勒
注+遊綸保據苑鄕, 僞降於勒, 勒已襲禽之.이어늘
勒이 斬其使以送浚하니 浚이 雖不罪統이나 益信勒爲忠誠하여 無復疑矣러라
目
[
目]
漢主 劉聰이
劉后를 위하여
䳨儀殿을 지으려 하자,
注+䳨는 본래 凰으로 되어 있으니, “䳨儀”는 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廷尉 陳元達이 다음과 같이 간절히
諫하였다. “하늘이 백성을 내고 군주를 세운 것은, 군주로 하여금 백성을 맡아 기르게 한 것이요,
결코 만백성의 목숨으로 군주 한 사람의 욕망을 만족시키려 한 것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先帝(劉淵)께서는 몸소 삼베옷을 입고 거처하는 곳에 이중으로 된 깔자리가 없었으며,
后妃들도 얇은 비단옷을 입지 않았고, 황제의 수레를 끄는 말은 곡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注+衣(입다)는 於旣의 切이다.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이미 궁전과 누각 40여 곳을 지었고
게다가 군대를 자주 일으켜서 끊임없이 군량을 운반하였으며 또 기근과 역병으로 죽는 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궁실을 경영하고 수선할 것을 생각하시니, 어찌 하늘이 폐하를 백성의 부모로 세운 뜻이겠습니까.”
유총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朕이 천자가 되어서 궁전 하나를 경영하는 것이 쥐새끼 같은 너희들에게 어찌 물을 것이 있단 말인가.” 하고는, 좌우 신하에게 진원달을 끌어내어 참수하고 그 처자식까지 아울러 참수하여 동쪽 시장에 梟示하라고 명하였다.
目
[目] 劉后가 이 말을 듣고 은밀히 좌우에게 명하여 刑의 집행을 중지하게 하고, 손수 상소문을 써서 다음과 같이 上言하였다. “지금 궁실이 이미 구비되어 있으니, 번거롭게 다시 경영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하가 아직 통일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백성들의 힘을 아껴야 합니다. 廷尉(陳元達)의 말은 社稷의 福이니, 封爵과 賞을 내리셔야 마땅한데,
도리어 그를 죽이신다면 천하 사람들은 폐하를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간언을 올리는 忠臣은 진실로 자기 한 몸의 安危를 돌아보지 않고, 간언을 거절하는 군주 또한 자기 한 몸에 대한 것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妾을 위하여 궁전을 경영해서 간언하는 신하를 죽이신다면, 충직하고 선량한 신하들이 입을 다물고 간하지 않는 것도 첩 때문이요, 遠近에서 원망하고 노여워하는 것도 첩 때문이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곤궁하고 피폐해지는 것도 첩 때문이요, 사직이 위태로움에 빠지는 것도 첩 때문입니다.
注+阽의 音은 反坫(술잔을 놓는 자리)의 坫이요, 또 屋檐(처마)의 檐이니, 가장자리에 가까우면 떨어질 줄 아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천하의 죄가 모두 첩의 몸에 모일 것이니, 첩이 어떻게 이것을 감당하겠습니까.
첩이 보건대, 예로부터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망하는 것이 일찍이 婦人 때문이 아닌 적이 없었습니다. 첩은 마음속으로 항상 이것을 미워했는데, 뜻밖에 오늘 첩이 바로 이런 사람이 되었으니,
후세 사람들이 첩을 보기를, 지금 첩이 옛날 나라와 집안을 망친 부인을 보듯 할 것입니다.
注+由(같다)는 猶와 通한다. 첩은 진실로 다시 수건과 빗을 받들고 폐하를 모실 면목이 없으니, 원컨대 이
堂에서 첩에게 죽음을 내려주소서.”
目
[
目]
華譚이 일찍이
壽春에 있을 적에
周馥에게 의지해 있었다. 이때
司馬睿가 화담에게 이르기를
注+祖宣은 周馥의 字이다. 하니,
화담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복이 비록 죽었으나 천하에는 아직도 직언하는 선비가 있습니다. 주복은 적들이 점점 불어나는 것을 보고 都邑을 옮겨 國難을 늦추려고 하였는데,
執政大臣이 좋아하지 않아서 군대를 일으켜 주복을 토벌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복이 죽은 지 한 철이 지나지 않아서 都城인 洛陽이 함락되었으니, 만약 그가 배반했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마예가 말하기를 “주복은 지위가 征, 鎭인데도 불구하고 불러도 들어오지 않고 나라가 위태로운데도 붙들어 지키지 않았으니, 그도 천하의 죄인이다.” 하니,
화담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위태로운데도 붙들어 지키지 않은 것은 비단 주복 한 사람뿐만이 아니니, 마땅히 천하 사람과 함께 그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하였다.
目
[目] 司馬睿의 참모들이 대부분 일을 피하면서 자신의 편안함을 꾀하자, 參軍 陳頵이 사마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洛陽이 태평하던 때에 조정의 관리들이 조심하고 공손하고 근신하는 것을 평범하고 속되다 하고,
교만하고 방자한 것을 優雅하다 하니, 그 풍속에 물들어서 나라가 결국 패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관속들이 모두
西臺(낙양)의 남은 병폐를 계승하여
虛名을 길러 높은 체하니,
注+江東에서는 도성인 洛陽을 일러 西臺라고 하였다. 이는 앞의 수레가 이미 전복되었는데 뒤의 수레가 또 그
前轍을 뒤따라 밟으려 하는 꼴입니다.
청컨대 지금부터는 使命을 받고도 병을 핑계하는 자는 모두 관직을 파면하여야 합니다.” 사마예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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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齊王 司馬冏, 成都王 司馬穎, 河間王 司馬顒의 세 왕이 趙王 司馬倫을 주벌할 적에 〈己亥格〉을 제정하여 功이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도록 명하였는데, 이후로 이것을 따라 사용하니,
陳頵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날 趙王이 찬탈하고자 역모를 꾸며 孝惠皇帝가 지위를 잃었는데, 三王이 이들을 토벌하였으므로 후하게 상을 내려서 義로움에 향하는 마음을 품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功의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고 모두 〈기해격〉의 예로 결단하여,
注+〈“今功無大小 皆以格斷”은〉 功의 輕重에 따른 차등을 모두 〈己亥格〉에 준하여 결단함을 말한 것이다. 마침내
金紫를
士卒의 몸에 채우고
符策을 노예의 집에 맡기니,
이는 名器를 소중히 여기고 紀綱을 바로 잡는 방도가 아닙니다. 일절 정지할 것을 청합니다.” 진균은 미천한 가문 출신으로 자주 올바른 의논을 하니, 府中이 거의 다 그를 미워하여 譙郡太守로 내보냈다.
目
[目] 裴嶷은 청렴결백하고 방정하며 일을 주관하는 지략이 있었다. 배억은 형 裴武가 玄菟太守로 있다가 卒하자,
배무의 아들 裴開와 함께 형의 영구를 모시고 돌아갈 적에 慕容廆를 방문하니, 모용외가 공경히 예우하였다.
상여의 행차가 遼西에 이르렀을 적에 길이 막혀 배억이 모용외에게 돌아가려고 하니, 배개가 말하기를 “똑같이 더부살이를 할 것이라면, 段氏는 강하고 慕容氏는 약한데, 어찌 굳이 이곳의 단씨를 버리고 저 모용씨에게 나갈 것이 있습니까.” 하였다.
배억이 말하였다. “발을 붙일 곳을 구하려고 한다면, 어찌 의탁할 사람을 신중히 가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네가 보건대, 여러 단씨들이 원대한
經略을 갖고 있으며, 또 우리들을
國士로 대우할 수 있겠는가.
注+여러 段氏는 段疾陸眷과 段匹磾, 段文鴦, 段末柸 등을 이른다.
慕容公은 仁과 義를 닦고 행하여 霸王의 뜻이 있고 게다가 나라가 풍족하고 백성들이 편안하니,
이제 우리가 가서 그를 따르면, 높게는 功名을 세울 수 있고 낮게는 우리 宗族을 비호할 수 있는데, 너는 무엇을 의심하는가.” 배억이 모용외의 처소에 도착하자, 모용외가 크게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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詔令을 내려 “이제 마땅히 큰 고래와 같은 적을 깨끗이 소탕하고 황제(
晉 懷帝)의
梓宮을 받들어 맞이하여야 한다.
幽州와
幷州로 하여금 30만의 병력을 무장하여 곧바로
平陽으로 달려가게 하였으니,
注+고래는 큰 물고기로, 갈고리와 그물로 잡을 수 없으니, 敵들 중에 출중하고 호걸스러운 자를 비유한 것이다. “奉迎梓宮”은 懷帝가 平陽에서 살해당하였는데 재궁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을 이른다.
右丞相은 마땅히 秦州, 涼州, 梁州, 雍州의 병력을 인솔하여 곧바로 長安으로 나아가고, 左丞相은 거느리고 있는 정예병을 인솔하고서 洛陽으로 가서 회합하기로 한 날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 큰 공을 이루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려 司馬睿에게 제때 진군해서 乘輿와 만나 함께 모여 中原의 적을 소탕하자고 하였다.
사마예는 막 江東 지역을 평정하여 북쪽을 정벌할 겨를이 없다고 사양하고는, 刁協을 丞相左長史로 삼고 劉隗를 司直로 삼았는데,
유외가 평소 文史에 익숙하고 사마예의 뜻을 잘 살폈으므로, 특별히 그를 친애하였다.
目
[目] 처음에 氐族의 王인 楊茂搜의 아들 楊難敵이 자신의 養子를 보내어 梁州에서 물건을 판매하자, 刺史 張光이 그를 죽였다.
장광이 王如의 잔당인 楊虎와 교전할 적에 양무수에게 구원을 청하니, 양무수가 양난적을 보내어 장광을 구원하게 하였다. 양호가 양난적에게 많은 뇌물을 주어 함께 협공해서 장광을 대파하였다.
장광이 성벽을 둘러싸고 스스로 지키다가 격분한 나머지 병을 얻게 되자, 관속들이 장광에게 魏興으로 후퇴하여 수비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장광은 劍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내가 국가의 중한 책임을 맡아서 적을 토벌하지 못하였으니,
지금 싸우다가 죽을 수 있다면, 이는 마치 신선이 되는 것과 같다. 어찌 후퇴하라고 말하는가.” 하고는 말을 마치고 卒하니, 양난적이 끝내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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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勒이
王浚을 기습하고자 하였으나,
虛實을 알지 못하여 장차 사자를 보내어 엿보려 하였는데, 보좌들이
를 따라 왕준에게 편지를 보낼 것을 청하였다.
注+〈“請用羊祜 陸抗故事”는〉 敵國이 이웃나라와 사귀는 禮를 사용하고자 한 것이다.
석륵이 張賓에게 물으니, 장빈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왕준이 명목상으로는 晉나라 신하라고 하나 실제는 晉나라 황제를 폐하고 스스로 즉위하고자 하는데, 다만 四海의 영웅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까 근심할 뿐입니다.
장군은 위엄이 천하에 진동하니, 지금 허리를 굽혀 그를 섬기더라도 그가 믿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양호와 육항이 서로를 대등한 적수로 여겼던 일을 하신단 말입니까.
남을 도모하면서 남으로 하여금 우리의 실정을 알게 하면 뜻을 얻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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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石勒이 말하기를 “좋다.” 하고는, 舍人인 王子春을 보내어 王浚에게 다음과 같이 표문을 올렸다. “저 석륵은 본래 작은 오랑캐로 기근이 들고 혼란한 세상을 만나서
살 곳을 잃고 流離하면서 곤궁하여 冀州 지역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보전하고 삼가 서로 모여 지키면서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였습니다.
지금 晉나라의 國統이 망하고 中原에 군주가 없으니, 公이 아니면 帝王이 될 자가 다시 누가 있겠습니까. 원컨대 殿下께서는 하늘의 뜻에 응하고 인심에 순응하여 속히 황제의 자리에 오르소서.
석륵은 천지와 부모처럼 전하를 받들어 섬기니, 전하께서 저의 보잘것없는 마음을 헤아리신다면, 또한 응당 저를 자식처럼 여기실 것입니다.”
目
[目] 王浚은 石勒이 올린 표문을 보고 몹시 기뻐하여 王子春에게 이르기를 “石公을 믿을 수 있는가?” 하니, 왕자춘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殿下는 中州의 현달하고 명망 있는 가문 출신으로 위엄이 오랑캐와 中夏 지역에 진동합니다.
예로부터 오랑캐 사람 중에 제왕을 보좌한 名臣은 있으나 제왕이 된 자는 있지 않습니다. 石將軍이 제왕의 지위를 싫어하여 제왕이 되려 하지 않고 전하에게 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왕은 본래 歷數(運數)가 있어서 지혜와 힘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또 무엇을 괴이하게 여기십니까.”
왕준이 크게 기뻐하여 사신을 보내어
聘問에 답하였다.
遊綸의 형
遊統이 왕준을 위하여
范陽을
鎭守하고 있었는데, 사자를 보내어 은밀히 석륵에게 귀의하려 하였다.
注+遊綸이 苑鄕을 점거하고서 거짓으로 石勒에게 항복하였는데, 석륵이 끝내 그를 습격하여 사로잡았다.
석륵이 그 사자를 참수하여 왕준에게 보내니, 왕준은 비록 유통을 처벌하지는 않았으나, 석륵의 충성을 더욱 믿어서 다시는 의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