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猗密謂皮, 惇曰 二王逆狀을 主上及相國이 具知之矣니 卿同之乎아 二人驚하여 曰 無之로라
猗曰 茲事已決하니 吾憐卿親舊幷見族耳라하고 因歔欷流涕한대
二人이 大懼하여 叩頭求哀라 猗曰 相國이 問卿이어든 卿但云有之라하니 皮, 惇이 許諾하다
粲이 問之에 二人이 至不同時로되 而其辭若一하니 粲以爲信然이러라
目
聰이 問沈等於粲한대 粲이 盛稱其忠淸하니 聰이 悅하여 封沈等爲列侯하다
易 又上疏極諫한대 聰이 大怒하여 手壞其疏하니 易 忿恚而卒하다
易 素忠直이라 元達이 倚之爲援하여 得盡諫爭이러니
及卒에 元達이 哭之慟하여 曰 人之云亡에 邦國殄悴라하니 吾旣不復能言하니 安用默默苟生乎아하고 歸而自殺하다
旣而요 聰이 宴群臣할새 引見太弟義하여 見其憔悴하고 涕泣陳謝어늘 聰亦慟哭하여 待之如初러라
目
初에 代王猗盧 愛其少子比延하여 欲以爲嗣하여 使長子六脩로 出居新平城하고 而黜其母하다
六脩來朝에 猗盧使拜比延한대 六脩不從而去하니 猗盧大怒하여 帥衆討之라가 兵敗하여 遂爲所弑하다
猗㐌子普根이 攻六脩하여 滅之하고 代立하니 國中이 大亂이라
將軍衛雄, 箕澹이 與劉琨質子遵으로 帥晉人及烏桓三萬家와 馬, 牛, 羊十萬頭하여 歸于琨하니 琨兵이 由是復振이러라
目
至是하여 帝泣謂允曰 今窮厄如此하고 外無救援하니
當忍恥出降하여 以活士民이라하고 因歎曰 誤我事者는 麴, 索二公也라하다
使侍中宗敞으로 送降牋於曜하니 綝이 潛留敞하고 使其子說曜曰 若許綝以車騎, 儀同, 萬戸郡公者면 請以城降하리라하니
曜斬而送之하고 曰 帝王之師는 以義行也라 孤將兵十五年에 未嘗以詭計敗人하고 必窮兵極勢然後에 取之러니
今綝所言如此
하니 天下之惡
이 一也
니 輒相爲戮之
注+爲, 去聲.호리라
目
[目] 漢나라(前趙) 中常侍 王沈과 郭猗 등이 총애를 믿고 권력을 행사하였다. 漢主 劉聰이 後宮에서 놀며 잔치를 하느라 혹 100일 동안 후궁에서 나오지 않고 모든 政事를 相國인 劉粲에게 맡겨두고서,
오직 살리고 죽이는 일과 관직을 제수하는 일만 왕침 등으로 하여금 들어와 아뢰게 하니, 왕침 등은 대부분 자기의 사사로운 생각으로 결정하였다.
곽의가
太弟 劉义에게 원한이 있어 유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듣자하니 태제가
大將軍(
劉敷)과 상의하여
上巳日(음력 3월 3일)에 여는 큰 잔치를 틈타
亂을 일으키려 한다고 합니다.
注+劉粲의 아우 勃海王 劉敷가 이때 大將軍이었다.
지금 禍가 닥칠 시기가 매우 임박하였으니, 빨리 도모하여야 합니다. 전하께서 혹시라도 신의 말을 믿지 못하시겠으면,
大將軍(유부)의
從事인 〈
衛軍大將軍의〉
王皮와
司馬인
劉惇을 불러서 그들이 귀순하여 자수하기를 허락한 다음 물으시면, 반드시 실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유찬이 이를 허락하였다.
注+≪資治通鑑≫에는 “衛軍大將軍의 司馬인 劉惇이다.” 하였으니, 유찬의 아우 齊王 劉勸이 이때 衛軍大將軍이었다.
目
[目] 郭猗가 은밀히 王皮와 劉惇에게 이르기를 “두 왕(勃海王 劉敷와 齊王 劉勱)의 반역하는 내용을 主上과 相國이 자세히 알고 있다. 卿들도 이 일에 함께 참여하였는가.” 하니, 두 사람이 놀라며 말하기를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하였다.
곽의가 말하기를 “이 일은 이미 결정되었다. 나는 卿들의 친척과 벗들 모두 족멸하게 되는 것을 가엾게 여긴다.” 하고는,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이 크게 두려워하여 머리를 땅에 두드리면서 살려줄 것을 애걸하자, 곽의가 말하기를 “相國(劉粲)이 卿에게 물으시면, 卿들은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대답하라.” 하니, 왕피와 유돈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유찬이 물었는데, 동시에 오지 않았는데도 두 사람의 말이 한결같으니, 유찬은 두 왕이 참으로 모반한 것이라고 믿었다.
目
[
目] 이때에
劉聰이 명하여
陳休와
卜崇,
인
綦毋達 등 7명을 체포하여 주살하니, 이들은 모두 환관들이 미워한 자들이었다.
注+綦毋는 音이 其無이니, 複姓이다. 7명은 陳休, 卜崇, 綦毋達, 公師彧, 王琰, 田歆, 朱諧이다.
卜幹이 울며 諫하자 왕침이 그를 질타하니, 유총은 노하여 복간의 관직을 파면하여 庶人으로 삼았다.
河間王 劉易(유이)와
陳元達 등이 다음과 같이
諫하였다.
注+劉易는 劉聰의 아들이다. “지금 남아 있는
晉 왕조의 무리가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고,
巴‧
蜀 지역도 귀순하지 않았으며,
石勒은 趙와 魏 지역을 점거할 것을 도모하고, 曹嶷은 齊 지역 전체를 차지하여 왕이 되고자 하니, 陛下의 心腹과 四肢에 어느 곳인들 병통이 없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다시 왕침 등으로 하여금 亂을 조장하게 해서 巫咸을 죽이고 扁鵲을 죽이시니,
신은 마침내
膏肓(고황)의 병이 되어서 뒤에 치료하려고 해도 미칠 수 없게 될까 두렵습니다.
注+巫咸은 殷나라의 유명한 무당이고, 扁鵲은 옛날의 훌륭한 의원이다. 膏는 音이 高이니, 심장 아래를 膏라 한다. 肓은 音이 荒이니, 명치이다. ≪春秋左氏傳≫ 成公 10년 조에 “晉侯가 병이 위독하여 秦나라에 의원을 요구하자, 秦伯이 의원 緩을 보내 치료하게 하였다. 의원이 와서 보고 말하기를 ‘이 병은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肓의 위, 膏의 아래에 있어서 약쑥으로 떠도 병을 공격할 수 없고 침을 놓아도 도달하지 못하고 약을 마셔도 약이 도달하지 못해서 치료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하였다. 청컨대 왕침 등의 관직을 파면하고
有司에게 맡겨서 죄를 다스리기를 바랍니다.”
유총은 이 표문을 왕침 등에게 보여주고는 웃으며 말하기를 “여러 아이들이 진원달에게 유인되어 마침내 바보가 되었다.” 하였다.
目
[目] 劉聰이 劉粲에게 王沈 등에 대하여 묻자, 유찬이 그들이 충성스럽고 청백하다고 크게 칭찬하니, 유총은 기뻐하여 왕침 등을 봉하여 列侯로 삼았다.
劉易(유이)가 또다시 상소하여 지극히 諫하자, 유총이 크게 노하여 손수 그 상소문을 찢으니, 유이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卒하였다.
유이는 평소 충직하였기 때문에 陳元達이 그의 도움에 의지하여 지극히 간쟁을 할 수 있었다.
유이가 죽자, 진원달이 슬피 통곡하며 말하기를 “‘훌륭한 사람이 죽음에 나라가 병든다.’라고 하였는데, 내 이미 더 이상 직언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침묵을 지키며 구차히 살겠는가.” 하고는 돌아가 자살하였다.
얼마 후 유총이 여러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 적에, 太弟 劉义를 引見하고서 그가 초췌한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는 것을 보고는, 유총도 함께 통곡하고 그를 처음과 같이 대우하였다.
目
[目] 처음에 代王 拓跋猗盧가 작은아들 拓跋比延을 사랑하여 그를 후사로 삼고자 해서 長子인 拓跋六脩로 新平城에 나가 살게 하고 그의 어미를 내쳤다.
탁발육수가 조회 왔을 적에, 탁발의로가 그로 하여금 탁발비연에게 절하게 하자, 탁발육수가 따르지 않고 떠나갔다. 이에 탁발의로가 크게 노해서 군사를 거느리고 탁발육수를 토벌하다가 군대가 패하여 마침내 시해를 당하였다.
拓跋猗㐌의 아들 拓跋普根이 탁발육수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그를 대신하여 즉위하니, 나라 안이 크게 혼란하였다.
將軍 衛雄과 箕澹이 인질로 온 劉琨의 아들 劉遵과 함께 晉나라 사람과 烏桓의 3만 가호와 말, 소, 양 10만 마리를 거느리고 유곤에게 귀의하니, 유곤의 세력이 이로 말미암아 다시 크게 떨쳐졌다.
얼마 되지 않아 탁발보근이 卒하니, 나라 사람들은 拓跋鬱律을 왕으로 세웠다.
目
[目] 張寔이 자기가 통솔하고 있는 관리와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자가 있으면 삼베와 명주와 양고기와 쌀을 상으로 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인
隗瑾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注+漢나라 이래로 公府와 方州(州郡)와 郡國의 여러 曹에 掾이 있고 屬이 있고 佐史가 있었으니, 賊曹의 佐職은 盜賊을 잡는 일을 주관하였다. “
明公이 정사를 함에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모두 스스로 결단하시니, 아랫사람들은 위엄을 두려워해서
明公이 내린 명령을 받을 뿐입니다.
이와 같으면 비록 천금의 상을 주더라도 그들은 감히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명공께서 빼어난 지혜와 타고난 총명을 다소 감추시고 아랫사람들을 불러 의견을 물어서 각각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다 말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채택하여 행하시면 아름다운 말이 저절로 이를 것입니다. 어찌 굳이 상을 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장식이 기뻐하여 그의 말을 따르고, 외근에게 세 등급의 지위를 더 올려주었다.
장식이
將軍 王該를 보내어 보병과 기병 5천 명을 거느리고 들어가서
長安을 구원하게 하고, 또 여러
郡에
貢物로 바칠 토산품의 장부를 보내자,
注+貢은 토산물이고, 計는 計吏의 장부이다. 詔令을 내려서 장식을
都督陝西諸軍事로 제수하였다.
目
[
目]
劉曜가 마침내
涇陽에 이르니
渭水 북쪽에 있는 여러
城이 모두 궤멸하였다.
注+涇陽은 涇水의 북쪽으로, 安定의 涇陽縣이 아니다. 유요가 장군
魯充과
梁緯를 사로잡아 술을 마시게 하며 말하기를 “내 그대들을 얻었으니, 천하를 굳이 평정할 것이 없다.” 하였다.
노충이 말하기를 “이 몸이 晉나라의 장수가 되어서 국가가 패망하였으니, 이 몸이 감히 살기를 바랄 수가 없습니다. 만약 公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면, 속히 죽는 것이 다행일 것입니다.” 하니, 유요가 말하기를 “義士이다.” 하고, 검을 주어서 자살하도록 허락하였다.
양위의 아내
辛氏는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다. 유요가 그녀를 아내로 삼으려고 하자,
注+妻(아내로 삼다)는 본음대로 읽는다. 辛氏가 크게 통곡하며 말하기를 “첩의 남편이 이미 죽었으니, 의리상 첩이 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한 부인이 두 남편을 섬기면,
明公이 이런 저를 또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하였다.
유요가 말하기를 “정숙한 여인이다.” 하고 그녀에게도 자살하도록 허락하고는, 모두 禮를 갖춰 장례하였다.
目
[目] 이때에 황제가 울면서 麴允에게 이르기를 “지금 곤궁함이 이와 같고 밖에는 구원하는 세력이 없으니,
마땅히 치욕을 참고 나가 항복해서 선비와 백성들을 살리겠다.” 하고는 인하여 탄식하기를 “나의 일을 그르친 자는 바로 麴公(麴允)과 索公(索綝)이다.” 하였다.
侍中 宗敞을 보내서 劉曜에게 항복하는 글을 전달하려 하였는데, 삭침이 은밀히 종창을 붙들어두고 자기 아들을 보내어 유요를 설득하기를 “만약 나에게 車騎將軍과 儀同三司와 萬戸의 郡公을 허락해준다면, 城을 가지고 항복하겠다.” 하였다.
유요가 사자를 참수하고서 그 시신을 보내며 말하기를 “제왕의 군대는 義로써 일을 행하는 것이다. 내가 군대를 통솔한 지 15년에 일찍이 속임수로써 남을 패망하게 한 적이 없고, 반드시 상대로 하여금 무력을 다 쓰고 세력을 다하게 한 뒤에야 취하였다.
그런데 지금 삭침이 말하는 바가 이와 같으니, 천하에서 악한 짓을 하는 자는 똑같으므로, 내가 그대들을 위해 대신하여 삭침을 죽이겠다.”
注+爲(위하다)는 去聲이다. 하였다.
目
[
目] 황제가
羊이 끄는 수레를 타고 웃통을 벗고 도성을 나와 항복할 적에 여러 신하들이 흐느껴 울며 수레를 부여잡으니, 황제 또한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愍帝가 나와 劉曜에게 항복하다
御史中丞 吉朗이 탄식하기를 “나는 지혜가 국가를 위해 도모하지 못하고 용맹이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지 못하였으니, 어찌 차마 군주와 신하가 함께 북향하고서 오랑캐를 섬기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자살하였다.
劉曜가 황제를 平陽으로 보내자 漢主 劉聰이 光極殿에 나오니 황제가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麴允이 땅에 엎드려 슬피 통곡하자, 유총이 노하여 그를 가두니, 국윤이 자살하였다.
유총은 황제를 光祿大夫로 삼아서 懷安侯를 봉하고, 유요를 太宰로 삼아 黃鉞을 주어 陝西 지역을 도독하게 하고 秦王으로 봉하였으며,
국윤에게는 車騎將軍을 추증하고 시호를 節愍侯로 하였으며, 삭침은 시장에서 참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