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東萊博議(2)

동래박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동래박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05 禹湯罪己桀紂罪人
[左傳]莊十一年이라 宋大水하다 公使弔焉曰 天作하야 害于粢盛하니 若之何不弔리오
〈對〉曰 孤實不敬하야 天降之災어늘 又以爲君憂하니 하노라
臧文仲曰 宋其興乎ㄴ저 禹湯罪己 하고 桀紂罪人이라 이라
旣而聞之하니 曰 公子之辭也 臧孫達曰 是宜爲君이로다有恤民之心이라
近禹湯者 莫如桀紂니라 禹湯 大聖也 桀紂 大惡也 其相去之遠 不啻天淵이어늘 何爲其相近也
禹湯 善之極이요 桀紂 惡之極이니 善惡二也 其所以行之者 一也ㄹ새니라 禹湯 歸功於人하고 桀紂 亦歸罪于人하니라
禹湯 功冠天下로되 皆推而歸之人曰 此左右之功이요 此群臣之功이요 此諸侯之功이요 此萬姓之功이라하야 自視不見有一毫之功焉하며
桀紂 罪冠天下로되 皆推而歸之人曰 此左右之罪 此群臣之罪 此諸侯之罪 此萬姓之罪라하야 自視不見有一毫之罪焉하니
然則禹湯歸功之心 豈非卽桀紂歸罪之心乎
禹湯 歸罪於己하고 桀紂 亦歸功于己하니라
禹湯 引天下之罪而歸之己曰 此我之愆이요 非汝之愆이며 此我之責이요 非汝之責이라하야 欲以一身盡代天下之罪焉하고
桀紂 引天下之功而歸之己曰 此我之謀 非汝之謀 此我之力이요 非汝之力이라하야 欲以一身盡攘天下之功焉하니
然則禹湯歸罪之心 豈非桀紂歸功之心乎 由是觀之컨대 禹湯之所以爲善 乃桀紂之所以爲惡者也
使禹湯移歸功之心하야 爲歸罪之心이면 則桀紂矣 使桀紂移歸罪之心하야 爲歸功之心이면 則禹湯矣리라
人之所甚尊而不敢仰望者 禹湯也 人之所甚賤而不足比數者 桀紂也
平居自期호되 以謂吾雖自奮이라도 必不能爲禹湯이요 吾雖이라도 必不至爲桀紂라하나니라
今觀自狂入聖 如此之易 則吾有時而禹湯矣 安得而不喜 自聖入狂 亦如此之易 則吾有時而爲桀紂矣 安得而不懼리오
一念之是 咫尺禹湯이요 一念之非 咫尺桀紂 誘于前하고 迫於後 則善豈待勉이며 惡豈待戒哉리오
凡人之學 太高則驕하고 太卑則怠하니 二者 學者之大病也 苟思去禹湯爲甚近이면 怠烏乎生이며
又思去桀紂爲甚近이면 驕烏乎生이리오 聖狂二法으로 更相懲勸이면 驕怠二病 更相掃除리라
或輓之하고 或推之 此顔子所以欲罷不能也歟注+見論語어늘 久矣로다 世之不知此理也
而臧文仲獨知之曰 禹湯罪己 其興也勃焉하고 桀紂罪人이라 其亡也忽焉이라하야 判禹湯與桀紂호되 以人己之兩語하니 意者古之遺言歟ㄴ저
至其論公子御說之宜爲君하여는 則流入于하니 惜乎
天下之人 忿爭貪暴하야 衆惡蔓延하야 徧布海內하니 禹湯皆之於己하야 以爲己罪하니라
人見禹湯之罪己하고 忿者平하고 爭者息하며 貪者愧하고 暴者悔하니 禹湯一罪己하야 而盡收天下之惡하야 使歸于善일새니라
天下皆歸于善 是亦禹湯之善也 雖曰罪己 然天下功孰有居禹湯之右者哉
禹湯所收者惡이로되 所得者善이요 所引者罪로되 所得者功이니 何耶
蓋旣除稂莠 何必復求稼之茂 旣除塵垢 何必復求鏡之明이리오 但收其惡이요 不必求善이라
惡旣盡이면 則善將焉往哉리오 此所以收惡而得善也 引罪而得功也니라
桀紂安于爲惡하야 不自咎而咎人하니 天下亦從而相咎하니라 本所犯者一惡耳로되 諱其惡而不自咎하니 詐也 嫁其惡而咎人하니 險也
變一惡而數惡하야 日滋月長하야 自十而百하고 自百而千하며 自千而萬하야 覆國亡身하야 遺臭後世하니
由不能收天下之惡하고 而長天下之惡也ㄹ새니라 禹湯受其罪로되 而終不能汚하고 桀紂辭其罪로되 而終不能逃하니라
一興一亡 邈然遼絶이나 揆厥本原이면 不過差之辭受之間而已니라 吾是以益知其相近이로라
雖然이나 大聖大惡相近若此 屠酤盜賊 翻然爲善者 尙多有之어니와 未聞有旣聖而復爲惡者하니 何也
曰 河之險 入則死하고 出則生이니 死生之分 纔跬步 人固有陷其中而得脫者矣어니와 豈有旣出而復肯入者哉


우왕禹王탕왕湯王를 자기에게 돌리고, 걸왕桀王주왕紂王은 죄를 남에게 돌리다
장공莊公 21년, 가을에 나라에 큰물이 졌다. 장공이 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위문慰問하기를 “하늘이 장맛비를 내려 자성粢盛재해災害를 입혔으니 어찌 위로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니,
송 민공宋 閔公이 대답하기를 “가 실로 하늘을 공경하지 않아 하늘이 재앙을 내린 것인데, 도리어 (노 장공魯 莊公)께 근심을 끼쳐 관심關心을 보여주시니 한없이 감사합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장문중臧文仲이 말하기를 “나라는 아마도 부흥復興할 것이다. 를 자신에게 돌렸으므로 그 하는 것이 빨랐고, 는 죄를 남에게 돌렸으므로 그 망하는 것이 빨랐다.
열국列國흉재凶災가 있으면 그 나라 임금이 자신을 ‘’라고 칭하는 것이 이다. 송공宋公은 말이 공구恐懼스러웠고 명칭名稱에 맞았으니 아마도 부흥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얼마 뒤에 그 말이 공자 어열公子 御說의 말이었다는 것을 듣고, 장손달臧孫達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아마도 임금이 될 것이다.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라고 하였다.
에 가까운 자로는 만 한 자가 없다. 은 큰 성인聖人이고, 는 큰 악인惡人이니, 서로의 거리가 하늘과 땅만큼 멀 뿐만이 아닌데, 어째서 서로 가깝다고 하는가?
극치極致이고, 극치極致이니, 은 비록 다르지만 그것을 행한 방법은 같았기 때문이다. 을 남에게 돌렸고, 를 남에게 돌렸다.
이 천하에 으뜸이었으되, 그 공을 모두 남에게 돌리면서 “이는 좌우左右의 공이고, 이는 군신群臣의 공이고, 이는 제후의 공이고, 이는 만백성의 공이다.”라고 하여, 자기에게는 터럭만 한 공도 없는 것으로 여겼으며,
가 천하에 으뜸이었으되, 그 죄를 모두 남에게 돌리면서 “이는 좌우의 죄이고, 이는 군신의 죄이고, 이는 제후의 죄이고, 이는 만백성의 죄이다.”라고 하여, 자기에게는 터럭만 한 죄도 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이 공을 남에게 돌린 마음이, 어찌 바로 가 죄를 남에게 돌린 마음이 아니겠는가?
은 죄를 자기에게 돌렸고, 도 공을 자기에게 돌렸다.
은 천하의 죄를 다 끌어다가 자기에게 돌리면서 “이는 나의 잘못이고 너의 잘못이 아니며, 이는 나의 책임이고 너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하여, 자기 한 몸으로 천하의 죄를 모두 대신 지고자 하였으며,
는 천하의 공을 다 끌어다가 자기에게 돌리면서 “이는 나의 계모計謀이고 너의 계모가 아니며, 이는 나의 힘이고 너의 힘이 아니다.”라고 하여, 자기 한 몸으로 천하의 공을 다 빼앗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를 자기에게 돌린 마음이, 어찌 을 자기에게 돌린 마음이 아니겠는가? 이로써 보면, 을 행한 방법이 바로 을 행한 방법이니,
가령 이 공을 남에게 돌리는 마음을 바꾸어 죄를 남에게 돌리기로 마음먹었다면 가 되었을 것이고, 가령 가 죄를 남에게 돌리는 마음을 바꾸어 공을 남에게 돌리기로 마음먹었다면 이 되었을 것이다.
성인聖人이라도 선행善行을 생각하지 않으면 광인狂人이 되고, 광인이라도 능히 선행을 생각하면 성인이 되니, 아침에 성인이 되었다가 저녁에 광인이 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듯이 쉬울 뿐이다.
사람들이 매우 존경하여 감히 우러러보지도 못하는 분은 이고, 사람들이 매우 천시賤視하여 함께 논할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자는 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평소에 “내가 아무리 분발해도 이 될 수는 없지만, 내가 아무리 자화自畫하여도 가 되는 데는 이르지 않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지금 광인狂人에서 성인聖人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처럼 쉬운 것을 보면 나도 때로 이 될 수 있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며, 성인에서 광인으로 들어가는 것도 이처럼 쉬운 것을 보면 나도 때로 가 될 수 있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생각이 옳으면 에 가까워지지만, 한 생각이 그르면 에 가까워진다. 〈이 되는 기쁨이〉 앞에서 유인하고 〈가 되는 두려움이〉 뒤에서 핍박하니, 어찌 남의 권면勸勉을 기다려 을 행하고, 어찌 남의 경계警戒를 기다려 을 없애겠는가?
대체로 학문學問이 너무 높은 사람은 교만驕慢하고 너무 낮은 사람은 태만怠慢하니, 이 두 가지는 학자들의 큰 병통이다. 만약 과 거리가 매우 가까워지기를 생각한다면 태만이 어찌 생기겠으며,
와 거리가 매우 가까워질 것을 생각한다면 교만이 어찌 생기겠는가? 성인聖人이 되는 법과 광인狂人이 되는 법으로 서로 경계하고 권면한다면 교만한 병과 태만한 병이 다 없어질 것이다.
앞에서 끌어주기도 하고 뒤에서 밀어주기도 한다면, 이것이 바로 안자顔子가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 없었던 방법인데,注+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보인다. 세상 사람들이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런데 장문중臧文仲만 홀로 그런 이치를 알고서 “은 죄를 자기에게 돌렸으므로 그 하는 것이 빨랐고, 는 죄를 남에게 돌렸으므로 그 망하는 것이 빨랐다.”라고 하여, 를 ‘죄를 남에게 돌리고 죄를 자기 돌렸다.’는 두 마디 말로 판별判別하였으니, 이 말은 아마도 예로부터 전해온 말인 듯하다.
그러나 그가 “공자 어열公子 御說이 아마도 임금이 될 것이다.”라고 논한 것은 고사瞽史에 빠져든 말이니, 애석하다, 여우 갖옷에 염소 가죽으로 소매를 단 것이여!
내 일찍이 아래와 같이 한 적이 있다. 은 천하의 제거除去[]하였는데, 는 천하의 악을 조장助長하였다.
천하 사람이 분한忿恨해하며 서로 다투고, 탐욕貪慾을 부리며 포학을 부리는 등의 온갖 악행惡行이 만연하여 사해四海 안에 두루 퍼지자, 은 이 악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려 자기의 죄로 삼았다.
사람들은 이 자기의 죄로 돌리는 것을 보고서 분한해하던 자가 화평해지고, 다투던 자가 다툼을 중지하고, 탐욕을 부리던 자가 부끄러워하며, 포학하던 자가 후회하였으니, 이는 이 한 번 죄를 자기에게 돌림으로써 천하의 악을 다 제거하여 사람들을 으로 돌아가게 하였기 때문이다.
천하 사람이 모두 으로 돌아간 것은 이 또한 선행善行이다. 비록 죄를 자기에게 돌렸으나, 천하의 중에 의 공보다 더한 공이 어디 있겠는가?
이 제거한 것은 뿐이었으되 백성이 해지는 효과를 얻었고, 인책引責한 것은 죄뿐이었으되 태평을 이룬 을 얻었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대체로 잡초를 이미 제거하였으면 다시 농작물農作物이 무성해지기를 구할 필요가 뭐 있고, 이미 먼지를 제거하였으면 다시 거울이 밝아지기를 구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단지 그 악만 제거할 뿐, 선을 구할 필요가 없다.
악이 다 없어지면 선이 어디로 가겠는가? 이것이 바로 악을 제거하여 선을 얻고, 죄를 인책하여 공을 얻는 방법이다.
악행惡行을 편안히 여겨 죄를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남에게 돌리니, 천하 사람들도 따라서 서로 죄를 남에게 돌렸다. 본래 범한 것은 한 가지 죄악罪惡일 뿐인데, 그 죄악을 숨기고서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으니 이는 속이는 죄까지 범한 것이고, 그 죄악을 전가하여 남에게 돌렸으니 이는 음험陰險한 죄까지 범한 것이다.
하나의 죄악이 몇 가지 죄악으로 변하여 나날이 불어나고 다달이 자라나서, 열이 백으로, 백이 천으로, 천이 만으로 죄악이 늘어나서, 나라를 망치고 자신도 죽임을 당하여, 악명惡名을 후세에 전하였으니,
이는 천하의 악을 제거하지 않고, 천하의 악을 조장하였기 때문이다. 은 죄를 자신의 죄로 받아들였으되 끝내 그 몸을 더럽히지 않았고, 는 죄를 남에게 떠넘겼으되 끝내 죄를 피하지 못하였다.
한 번 흥성興盛하고 한 번 멸망滅亡하는 것이 아득히 먼 것 같지만, 그 근원根源을 따져보면 그 차이가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불과할 뿐이니, 나는 이로 인해 가 서로 가깝다는 것을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다.
비록 그러하나 큰 성인聖人과 큰 악인惡人이 이처럼 서로 가깝다면, 백정이나 술장수나 도적 중에 마음을 고쳐먹고 선인善人이 된 자는 오히려 많이 있지만, 이미 성인이 되었던 사람 중에 다시 악인이 된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위험한 황하黃河에 들어가면 죽고 나오면 사니, 죽고 사는 갈림길이 겨우 반걸음 차이일 뿐이다. 사람 중에는 황하에 빠졌다가 탈출한 자는 있지만, 어찌 이미 탈출하였다가 다시 들어가는 자가 있겠는가?


역주
역주1 : 지나친 것이다.
역주2 拜命之辱 : ‘拜命之辱’을 글자대로 直譯하여 “命이 辱되게 이른 것을 절하고 받는다.”로 번역할 경우 문장이 難澁할 뿐만이 아니라 이해도 잘 되지 않으므로, 楊伯峻의 說에 따라 번역하였다. 양백준은 이 말은 당시의 慣用語로, 관심을 보여주니 매우 감사하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역주3 其興也勃焉 : 勃은 盛한 모양이다.
역주4 其亡也忽焉 : 忽은 빠른 모양이다.
역주5 列國有凶 稱孤禮也 : 列國은 諸侯이다. 凶災가 없으면 임금은 항상 자신을 ‘寡人’이라 칭한다.
역주6 言懼而名禮 其庶乎 : 言懼는 죄를 자신에게 돌린 것이고, 名禮는 자신을 ‘孤’라고 칭한 것이고, 其庶는 復興하기에 가깝다는 말이다.
역주7 御說 : 宋 莊公의 아들이다.
역주8 惟聖……作聖 : ≪書經≫ 〈周書 多方〉에 보인다.
역주9 自畫 : 땅에 금을 그어놓고서 그 금 밖을 나아갈 수 없다고 스스로 제한함이니, 곧 능력이 있는데도 할 수 없다고 하여 하지 않는 것을 이른다.
역주10 瞽史之學 : 瞽는 樂師이고, 史는 卜筮를 맡은 太史이다. 여기서는 卜筮術을 이른 뜻으로 쓰인 듯하다.
역주11 狐裘而羔袖 : 귀한 여우 가죽으로 지은 갖옷에 천한 염소 가죽으로 소매를 달았다는 말로, 대체는 좋으나 좋지 못한 곳이 조금 있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는 臧文仲의 ‘禹湯罪己……桀紂罪人’이라는 말을 ‘狐裘’에 비유하고, 점쟁이처럼 예언한 ‘公子御說之宜爲君’이라는 말을 ‘羔袖’에 비유한 것이다.
역주12 禹湯能收天下之惡……此所以收 : 여기에 보이는 다섯 ‘收’자는 收去(沒收해 제거함)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역주13 : ‘자기의 탓으로 돌린다.’는 뜻으로 쓰인 듯하다.

동래박의(2) 책은 2022.11.0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