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東萊博議(3)

동래박의(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동래박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左傳]僖二十年이라 宋襄公欲合諸侯하니 臧文仲聞之하고어니와 라하다
12-05-02 宋爲鹿上之盟
[左傳]僖二十一年이라 宋人爲鹿上之盟하야 하니 楚人許之하다
公子目夷曰 小國爭盟 禍也 宋其亡乎ㄴ저 로다
12-05-03 楚執宋公
[左傳]秋 諸侯會宋公于盂하다 子魚曰 禍其在此乎ㄴ저 리오 於是 楚執宋公하야 以伐宋하다
12-05-04 宋公伐鄭
[左傳]僖二十二年이라 하니 子魚曰 所謂禍在此矣
12-05-05 楚宋戰于泓
[左傳]僖二十二年이라 楚人伐宋以救鄭하다 宋公將戰한대
弗聽하다 宋公及楚人戰于泓하다 宋人旣成列하고 어늘
司馬曰 彼衆我寡하니 及其未旣濟也하야 請擊之하소서 公曰 不可하다
旣濟而未成列이어늘 又以告한대 公曰 未可하다 旣陳而後擊之하야 宋師敗績하다 公傷股하고 하다
國人皆咎公하니 公曰 하고 니라 古之爲軍也 하니 이라
子魚曰 君未知戰이로소이다 阻而鼓之 不亦可乎잇가 이니이다
라도 獲則取之어늘 何有於二毛릿가
利而用之 阻隘可也 니이다
12-05-06 宋襄公卒
[左傳]僖二十三年이라 夏五月 宋襄公卒하니 傷於泓故也
[主意] 謂宋襄之愚 尙不能料目前之事 況能知帝王之兵乎 論者謂宋襄以帝王之兵取敗라하니 豈不過哉
由涿鹿으로 而至牧野注+由涿鹿 而至牧野:黃帝與蚩尤 戰于涿鹿之野 武王伐商 與紂戰于牧野 擧帝王之兵 更數十戰注+擧帝王之兵 更數十戰:紀帝王之用兵 甚多이요 由六經으로 而至諸子注+由六經 而至諸子:六經 易詩書禮樂春秋 諸子 百家之書也 談帝王之兵 踰數萬言注+談帝王之兵 踰數萬言:論帝王之用兵 甚詳하니
效非不明注+效非不明:謂數十戰이요 而說非不詳也注+而說非不詳也:謂數萬言 及宋襄公爲泓之役注+及宋襄公爲泓之役:與楚人戰于泓하야 而以帝王之兵自許注+而以帝王之兵自許:謂不重傷 不禽二毛 不阻隘 不鼓不成列라가 反至喪敗注+反至喪敗:宋師敗績 襄公傷股而死하니
後世指其一戰之失하야 盡疑數十戰之功爲不可信注+後世指其一戰之失 盡疑數十戰之功爲不可信:後世指宋襄爲戒 而廢帝王之兵하고
指其一言之謬하야 盡廢數萬言之理爲不可行하니 果哉 說之遽也注+果哉 說之遽也:謂後世論者不審
是說旣行하야 帝王之兵 人共視以爲迂闊遲鈍之具하고 儒者相與力挽而極辨之로되 終莫能勝이라 意者컨대 未知爭之之說乎
輿薪之不見而自謂能見秋毫者 愚也 責其不見者 亦愚也
撞鐘之不聞이로되 而自謂能聞蚋飛者 愚也 責其不聞者 亦愚也
信之在前하고 責之在後 不見輿薪者 方自譽其目之明이면 人固已不信之矣 豈待其眞不見秋毫而始責之乎
不聞撞鐘者 方自譽其耳之聰이면 人固已不信之矣 豈待其眞不聞蚋飛而後責之乎
古之難知 秋毫也 蚋飛也 今之易知 輿薪也 撞鐘也 欲驗宋襄言古道之是非인댄 當先觀宋襄料今事之中否
宋襄生於宋하니 豈不知宋之弱注+宋襄生於宋 豈不知宋之弱:自生長以至爲君 深知宋之弱矣이며 迫於楚하니 豈不知楚之強注+迫於楚 豈不知楚之強:與楚爲隣 深知楚之疆大이리오
乃不量宋之力注+乃不量宋之力:不自量其強弱不敵하고 偃然自爲盟主注+偃然自爲盟主:自爲霸主 以主諸侯之盟하야 欲屈強楚之君於會注+欲屈強楚之君於會:爲盂之盟屈致楚子 遂爲楚子所執하니 其愚而不能料事一矣注+其愚而不能料事一矣:不料彼己強弱 欲盟楚子 其愚一也
之霸 宋襄公耳目所接也注+齊威之霸 宋襄公耳目所接也:宋襄親見齊威之伯(패)業 宋襄自觀컨대 信義與齊威孰愈注+宋襄自觀 信義與齊威孰愈:愈 勝也 言信義不如齊威之着 壤地與齊威孰愈注+壤地與齊威孰愈:土地不如齊威之廣 兵甲與齊威孰愈注+兵甲與齊威孰愈:兵甲不如齊威之盛
齊威九合諸侯注+齊威九合諸侯:紏合諸侯 盟會屢矣 終不能屈致楚子注+終不能屈致楚子:中間召陵之盟 楚子使屈完如師 而不自來어늘 而宋襄乃驟欲致之注+而宋襄乃驟欲致之:欲屈楚子與盂之盟하니 其愚而不能料事二矣注+其愚而不能料事二矣:不料宋不如齊 欲致齊威之所不能致 其愚二也
盂之會 宋襄身見執於楚注+盂之會 宋襄身見執於楚:楚子執宋公以伐宋하야 幾不免虎口注+幾不免虎口:幾爲楚子所殺라가 僅能縱釋注+僅能縱釋:會于薄以釋之하고 曾未閱時 忘前日之辱注+曾未閱時 忘前日之辱:楚釋宋公 在二十一年之冬하고
忘前日之懼하며 忘前日之禍하야 尙敢稱兵與楚爭鄭注+忘前日之懼……尙敢稱兵與楚爭鄭:次年之夏 遂擧兵伐鄭하야 自取傷敗하니 其愚而不能料事三矣注+自取傷敗 其愚而不能料事三矣:不料宋不如楚 欲使鄭捨楚而從己 其愚三也
是三者皆匹夫匹婦之共曉注+是三者皆匹夫匹婦之共曉:以上三事 甚不難知어늘 宋襄尙不能知注+宋襄尙不能知:目前之事 尙不能料하니
況所謂帝王之兵制 遠在千百年之外注+況所謂帝王之兵制 遠在千百年之外:得於傳聞 其事已遠하야 斷編遺簡注+斷編遺簡:經史所載 未必全文하야 若滅若沒하고 若存若亡注+若滅若沒 若存若亡:不可究詰하니 是豈宋襄之所能知乎注+是豈宋襄之所能知乎:智者尙不能知 況宋襄之愚乎
觀其料今事之疏注+觀其料今事之疏:謂上文三事 且不能料 卽可驗其談古道之謬注+卽可驗其談古道之謬:謂其遠慕帝王之兵 此二句甚有力量 眞宋襄之斷案也하니 雖未交鋒之前注+雖未交鋒之前:雖未與楚人決戰之時이라도 固預知其必敗也注+固預知其必敗也:已可前知其喪敗矣
說者乃以宋襄之敗 爲古道之累注+說者乃以宋襄之敗 爲古道之累:謂帝王之兵 因宋襄而廢하니 是猶見聵者之誤評宮角注+是猶見瞶(외)者之誤評宮角:聵 聾也 宮角 樂音也 以喩宋襄誤評帝王之兵하고 遂欲幷廢大樂注+遂欲幷廢大樂(악):以喩說者因宋襄而幷廢古道이니 豈不過甚矣哉注+豈不過甚矣哉:其過失又甚矣
或者 又謂宋襄無帝王之德而欲效帝王之兵注+又謂宋襄無帝王之德而欲效帝王之兵:又生一說辨難하니 所以致敗注+所以致敗:謂無德以致敗라하니 亦非也注+亦非也:此一說 亦未是
使帝王之世 人皆服其德이면 則固不待於用兵矣注+使帝王之世……則固不待於用兵矣:此說甚當 斷得極到리라 德不能服注+德不能服:雖帝王之世 猶有不服其德而背叛者이라 是以有兵注+是以有兵:故不免於用兵이니 則兵者生於人之不服也注+則兵者生於人之不服也:議論的當니라
彼旣不服矣 豨縱豕突注+彼旣不服矣 豨(희)縱豕突:豨 野猪也 以喩背叛之人이면 亦何所不至注+亦何所不至:如蚩尤作亂之類리오 我乃欲從容揖遜以待之注+我乃欲從容揖遜以待之:如宋襄不重傷 不禽二毛之擧 適遺之禽耳注+適遺之禽耳:未有不爲敵人所敗者 吾恐帝王之兵不如是之拙也注+吾恐帝王之兵不如是之拙也:必不如宋襄之拙以取敗也
古之誓師者注+古之誓師者:引武王事 以證帝王之兵 曰殄殲乃讐注+曰殄殲乃讐:殄殲 殺戮也 讐 謂紂也하라하고 曰取彼凶殘注+故之誓師者……曰取彼凶殘:凶殘 亦謂紂也 二句皆出泰誓하라하니 凜然未嘗有毫髮貸注+凜然未嘗有毫髮貸:見得宋襄所謂不重傷不禽二毛者 非帝王之兵也 其所寛者 惟弗迓克奔而已注+其所寛者 惟弗迓克奔而已:此句出牧誓 謂敵人奔而降者 則不迎而殺之
奔而歸我 以弗擊注+以弗擊:釋弗迓克奔之意이니 苟推鋒而與之爭一旦之命注+苟推鋒而與爭一旦之命:推鋒 接戰也 我不殺彼 則彼必殺我矣이면 胡爲而縱之哉注+胡爲而縱之哉:豈如宋襄所謂不阻隘不鼓不成列者哉리오
是縱降者 帝王之兵注+是縱降者 帝王之兵:弗迓克奔 是也이요 縱敵者 宋襄之兵也注+縱敵者 宋襄之兵也:未旣濟而弗擊 未成列而弗鼓 是也 二句見得宋襄與帝王之兵全不同 烏可置之一域耶注+烏可置之一域耶:宋襄之兵 豈可係於帝王之列
公羊子 以宋襄之戰으로 爲文王注+公羊子……爲文王(之)[不是]過:公羊傳曰 君子大其不鼓不成列 臨大事而不忘大禮 以爲雖文王之戰 亦不過此也 嗚呼注+嗚呼:斷公羊之說謬 宋襄何足以知文王이리오 若子魚라야 乃眞知文王者也注+若子魚 乃眞知文王者也:子魚 名目夷 宋之司馬 襄公庶兄也
子魚諫宋襄之伐曹曰注+子魚諫宋襄之伐曹曰:見僖公十九年 文王聞崇德亂而伐之注+文王聞崇德亂而伐之:崇 國名 言昔者崇侯無道 文王伐之하야 軍三旬而不降注+軍三旬而不降:圍之三十日 而崇侯不服이어늘 退修敎而復伐之注+退修敎而復伐之:文王退兵 而修德敎 乃復伐之하니 因壘而降注+因壘而降:因舊營壘 不復增兵 而崇侯遂降이라
其言薰然而不傷注+其言薰然而不傷:薰然 和也하고 退然而不伐注+退然而不伐:退然 謙也 不伐 不矜也하야 妙得文王之本心注+妙得文王之本心:子魚前日之言 有文王之氣象이러니
至於泓之戰하얀 其諫宋襄之辭注+至於泓之戰 其諫宋襄之辭:其略曰 發揚激厲하고 奮起勁悍注+發揚激厲 奮起勁悍:形容其言切直하니 驟與前日異注+驟與前日異:與前日伐曹之諫氣象 頓不同하야 若與文王不相似注+若與文王不相似:與修敎因壘之事亦異
與變推移하야 不主故常注+與變推移 不主故常:言子魚進諫 隨事變易 不膠於一也이니 此眞學文王者也注+此眞學文王者也:文王作易 以明隨時變易之道 何甞膠於一也 知子魚之善學文王이면 則知宋襄之不善學文王矣注+知子魚之善學文王 則知宋襄之不善學文王矣:此意極佳 政如 深得奪胎換骨之法 又不待辨論 而公羊之說 自屈 尤見筆力之高리라


襄公楚人에서 싸우다
僖公 20년, 襄公諸侯糾合하려 하니 臧文仲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을 따르면 成功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의 욕망을 따르게 한다면 成功하지 못할 것이다.”
宋人鹿上에서 結盟하다
僖公 21년, 봄에 宋人鹿上에서 結盟하고서 나라에게 諸侯가 자기를 盟主로 추대하도록 도와주기를 요구하니 楚人이 허락하였다.
公子 目夷가 말하기를 “小國盟主가 되기를 다투는 것은 를 부르는 것이니 나라는 망할 것이다. 행운이 있은 뒤에야 敗戰에 그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楚子宋公을 사로잡다
가을에 諸侯宋公에서 會合하였다. 子魚가 말하기를 “가 이번 회합에 있을 것이다. 임금의 욕심이 너무 심하니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楚子宋公을 잡고서 나라를 토벌하였다.
宋公나라를 토벌하다
僖公 22년, 여름에 宋公나라를 토벌하니 子魚가 말하였다. “내가 앞서 말한 ‘’라는 것이 이번 전쟁에 있을 것이다.”
楚人宋公에서 戰爭하다
僖公 22년, 가을에 楚人나라를 토벌하여 나라를 救援하였다. 宋公이 전쟁하려 하자,
大司馬 하였다. “하늘이 나라를 버린 지 오래인데 임금님께서 復興시키려 하시니,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宋公은 듣지 않았다. 宋公楚人에서 전쟁하였다. 이때 宋人은 이미 戰列을 이루었으나 楚人은 아직 泓水를 다 건너지 못하였다.
司馬(子魚)가 말하기를 “저들은 군대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저들이 다 건너기 전에 공격하소서.”라고 하니, 宋公은 “不可하다.”고 하였다.
楚軍泓水를 다 건넜으나 아직 戰列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 司馬가 또 공격하자고 고하니, 宋公은 또 “不可하다.”고 하였다. 楚軍이 전열을 이룬 뒤에 공격하였다가 宋軍大敗하여 宋公은 허벅지에 상처를 입었고, 門官들은 모두 죽었다.
宋 襄公이 거짓 仁으로 군대를 잃다[宋襄公假仁失衆]宋 襄公이 거짓 仁으로 군대를 잃다[宋襄公假仁失衆]
國人이 모두 宋公을 탓하니 宋公은 말하였다. “君子는 상처를 입은 을 거듭 찌르지 않고, 二毛를 포로로 잡지 않는 것이다. 옛날의 전쟁에는 험한 地形을 이용해 을 공격하지 않았으니, 寡人이 비록 亡國의 후손이지만 戰列을 이루지 못한 에게 진격을 명하는 북을 치지 않았노라.”
子魚가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전쟁을 모르십니다. 강한 적군이 지형이 험하여 전열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이니 이 험한 곳에 있을 때 공격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그래도 오히려 〈승리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오늘날 임금님과 霸權을 다투는 자들은 모두 우리의 이니 비록 늙은이라 하더라도 잡을 수만 있다면 잡아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저 二毛를 고려하겠습니까?
군대들에게 수치를 밝게 일러주고 戰術을 가르친 것은 적을 죽이도록 요구한 것이니, 적이 상처를 입고도 죽음에 이르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거듭 傷害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거듭 傷害하는 것을 가엾게 여긴다면 애당초 상처를 입히지 않느니만 못하고, 二毛를 가엾게 여긴다면 적에게 항복하느니만 못합니다.
三軍은 유리한 때를 보아 사용하는 것이고, 金鼓는 소리로써 사기를 북돋워주는 것이니, 유리한 때를 만나 군대를 사용한다면 적이 험한 곳이 있을 때에 공격하는 것이 옳고, 북소리가 크게 울려 士氣가 높아졌으면 적이 戰列을 이루지 못했을 때 공격하는 것이 옳습니다.”
襄公하다
僖公 23년, 여름 5월에 襄公하였으니, 이는 에서 부상하였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말하였다. “ 襄公의 어리석음으로는 오히려 눈앞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帝王戰法을 알았겠는가? 그런데 論評하는 자들은 ‘ 襄公이 제왕의 전법을 썼다가 패배를 자초하였다.’고 하였으니, 어찌 지나치지 않은가?”
涿鹿의 전쟁’에서부터 ‘牧野의 전쟁’에 이르기까지注+黃帝蚩尤涿鹿의 들에서 싸웠고, 武王나라를 칠 때에 紂王牧野에서 싸웠다. 帝王이 군대를 일으켜 전쟁한 것이 수십 차례였고,注+帝王用兵에 대한 기록이 매우 많다는 말이다. 六經에서부터 諸子에 이르기까지注+六經은 ≪易經≫‧≪詩經≫‧≪書經≫‧≪禮記≫‧≪樂經≫‧≪春秋≫이고, 諸子는 여러 사상가들이 지은 책들이다. 帝王用兵을 담론한 것이 수만 가 넘으니,注+帝王用兵을 담론한 것이 매우 상세하다는 말이다.
周 武王周 武王
효과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注+앞글의 ‘數十戰’을 이른다. 설명이 상세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注+앞글의 ‘數萬言’을 이른다. 그런데도 襄公에서 楚軍과 전쟁할 적에注+楚人에서 싸운 것을 말한다. 帝王의 군대로 자부하였다가注+상처를 입은 을 거듭 상해하지 않고, 반백의 노인을 포로로 잡지 않으며, 험한 地形을 이용해 적을 공격하지 않고, 戰列을 이루기 못한 적에게 진격을 명하는 북을 치지 않음을 이른다. 도리어 실패에 이르니,注+나라 군대는 크게 패배하고, 襄公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죽었음을 이른다.
후세 사람들은 이 한 차례의 전쟁에 실패한 것을 가지고 聖王이 거둔 수십 차례의 전공을 모두 의심하여 믿을 수 없다고 하고,注+후세 사람들은 襄公을 가리키며 경계로 삼아 帝王의 용병을 폐기하였음을 이른다.
한마디 말의 오류를 가지고 수만 자로 설명한 이치를 모두 폐기하여 행할 수 없다고 하니, 과감하구나. 말을 너무 경솔히 함이여!注+후세의 논평하는 자들이 자세히 살피지 않았음을 이른다.
이런 말이 이미 유행하여 제왕의 용병을 사람들은 모두 오활하고 미련한 도구로 여기고, 儒者들은 함께 노력해 만회하려고 극력 변호하지만 끝내 논쟁해 이길 수가 없다. 생각건대 이는 아마도 전쟁의 (意義)을 모른 데서 연유한 듯하다.
수레에 실린 땔감을 보지 못하면서 스스로 가을 터럭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보지 못한다고 책망하는 자도 어리석다.
종 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스스로 파리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듣지 못한다고 책망하는 자도 어리석다.
믿음은 사전에 있고, 책망은 사후에 있다. 수레에 실린 땔감을 보지 못하는 자가 바야흐로 제 눈이 밝다고 자랑하면 사람들은 진실로 이미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니, 어찌 참으로 가을 터럭을 보지 못할 때를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그를 책망하겠는가?
종 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가 바야흐로 스스로 제 귀가 밝다고 자랑하면 사람들은 진실로 이미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니, 어찌 참으로 파리가 나는 소리를 듣지 못할 때를 기다린 뒤에 그를 책망하겠는가?
古代의 일은 알기 어렵기가 마치 ‘가을 터럭’이나 ‘파리 나는 소리’와 같고, 今世의 일은 알기 쉽기가 마치 ‘수레에 실린 땔감’이나 ‘종을 치는 소리’와 같다. 襄公이 옛 를 말한 것이 옳았는지 글렀는지를 징험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먼저 襄公이 당시의 사정을 헤아린 것이 이치에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襄公나라에서 生長하였으니 어찌 송나라의 미약함을 몰랐겠으며,注+ 襄公은〉 나고 자라면서부터 임금이 되기까지 나라가 약한 줄을 깊이 알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나라에 핍박받았으니 어찌 초나라의 강대함을 몰랐겠는가?注+나라는〉 나라와 이웃이니 초나라의 강대함을 깊이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송나라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注+자기 나라의 強弱이 〈나라를〉 대적할 수 없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말이다. 오만하게 스스로 盟主가 되어注+스스로 霸主가 되어 諸侯의 회맹을 주관하고자 했다는 말이다. 강한 초나라의 군주를 회맹에서 굴복시키고자 하였으니,注+의 회맹에 楚子를 불러 굴복시키려 했다가 마침내 楚子에게 사로잡혔다는 말이다. 이것이 그가 어리석어 일을 헤아리지 못한 첫 번째이다.注+상대와 자기의 強弱을 헤아리지 못하고 楚子와 회맹하고자 했으니, 그 첫 번째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桓公霸業 襄公이 직접 보고 들은 바이니,注+ 襄公 桓公이 패업을 이루는 것을 직접 보았다는 말이다. 송 양공은 스스로 보기에 자기의 信義가 제 환공에 비해 누가 더 나으며注+는 낫다는 뜻이니, 〈 襄公의〉 信義 桓公만큼 착실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기의 영토가 제 환공에 비해 누가 더 나으며注+土地 桓公만큼 광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기의 군대가 제 환공에 비해 누가 더 낫다고 여긴 것인가?注+兵甲 桓公만큼 성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제 환공은 아홉 번 제후를 회합하였으되注+諸侯를 규합하여 자주 회맹했다는 말이다. 끝내 초나라 군주를 회맹에 나오도록 굴종시키지 못하였는데,注+중간에 召陵의 회맹에 楚子屈完을 제후의 군중으로 보내어 〈강약을 살피게 하고〉 직접 오지는 않았다. 송 양공은 갑자기 초군을 회맹에 나오도록 부르고자 하였으니,注+ 襄公은〉 楚子를 굴복시켜 의 회맹에 참여시키고자 했다는 말이다. 이것이 그가 어리석어 일을 헤아리지 못한 두 번째이다.注+나라가 나라만 못한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桓公招致하지 못한 〈楚子를〉 초치하고자 하였으니, 그 두 번째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의 회맹에서 송 양공은 초나라에 포로로 잡혀注+楚子宋公을 사로잡고서 나라를 쳤다는 말이다.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할 뻔하다가注+ 襄公은〉 楚子에게 살해당할 뻔했다는 말이다. 겨우 풀려난 지注+ 襄公은〉 에서의 회합에서 풀려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날에 당했던 치욕과注+나라가 宋公을 풀어준 것은 僖公 21년 겨울이었다.
지난날에 당했던 두려움과 지난날에 당했던 화란을 잊고서 오히려 감히 군대를 일으켜 정나라를 차지하려고 초나라와 전쟁하여注+이듬해 여름에 마침내 군대를 출동하여 나라를 쳤다. 부상과 패배를 자초하였으니, 이것이 그가 어리석어 일을 헤아리지 못한 세 번째이다.注+나라가 나라만 못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나라에게 나라를 배반하고 자기 나라를 따르게 하고자 했으니, 그 세 번째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도 다 아는 것인데注+이상의 3가지 일은 매우 알기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송 양공은 오히려 몰랐으니,注+눈앞에 닥친 일도 오히려 헤아리지 못했다는 말이다.
하물며 이른바 ‘帝王兵制’는 먼 수백 년 전에 있었던 제도로서注+전하는 소문을 들었다면 그 일이 이미 먼 옛날의 일이라는 말이다. 記載典籍이 완전하지 못하여注+經史에 실린 글이 반드시 온전한 글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없어진 것도 있고 빠트린 것도 있고 보존된 것도 있고 망실된 것도 있어서注+다 밝혀낼 수 없다는 말이다. 〈다 규명할 수 없는데〉 어찌 송 양공이 알 수 있었겠는가?注+지혜로운 자도 오히려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어리석은 襄公이 어떻게 알겠느냐는 말이다.
그가 앞에 닥친 일을 헤아린 것이 이처럼 엉성했음을 보면注+위 글의 세 가지 일도 헤아릴 수 없었음을 이른다. 그가 담론한 古道 또한 오류임을 짐작할 수 있으니,注+먼 옛날의 帝王用兵을 사모하였음을 이른다. 이 두 구절은 매우 힘 있으니, 참으로 襄公에 대한 斷案(論斷)이라 하겠다. 비록 교전하기 전이라도注+‘비록 아직 楚人과 결전하지 않을 때라도’의 뜻이다. 그가 반드시 패배할 것임을 미리 알 수 있다.注+ 襄公이 반드시 喪敗할 것임을 먼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論說하는 자들은 곧 송 양공의 실패를 古道를 따른 잘못으로 여긴다.注+帝王의 용병이 襄公으로 인하여 폐기되었음을 이른다. 이는 귀머거리가 宮角(음률)을 잘못 논평하는 것을 보고서注+는 귀머거리이다. 宮角은 음악의 음률이다. 이로써 襄公帝王의 용병을 잘못 품평한 것을 비유하였다. 드디어 大樂(雅樂)마저 아울러 없애고자 하는 것과 같으니,注+이로써 說者 襄公으로 인하여 古道까지 아울러 폐기하였음을 비유하였다. 어찌 심한 잘못이 아닌가?注+그 과실이 더욱 심하다는 말이다.
또 어떤 이는 “ 襄公帝王이 없으면서 帝王의 용병을 본받고자 하였기 때문에注+一說을 만들어 辯難한 것이다. 실패를 부른 것이다.”注+이 없어서 패배를 초래하였음을 이른다.라고 하니, 이 또한 옳지 않다.注+一說도 옳지 않다는 말이다.
가령 帝王의 시대에 사람들이 모두 제왕의 에 복종하였다면 진실로 군대를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注+이 말은 매우 타당하니, 論斷이 극점에 도달하였다. 으로 복종시킬 수 없기注+비록 帝王의 시대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 덕에 복종하지 않고 배반하는 자가 있었다는 말이다. 때문에 군대를 쓰는 것이니,注+그러므로 군대를 쓰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다. 군대를 쓰는 일은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을 때에 발생한다.注+의론이 정확하다.
저들이 이미 복종하지 않고 함부로 날뛴다면注+는 멧돼지이니 배반하는 사람을 비유하였다. 또한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注+蚩尤가 난을 일으킨 것과 같은 따위를 이른다. 그런데도 나는 도리어 침착하게 예로써 그들을 대우하고자 한다면注+ 襄公이 상처를 입은 을 거듭 찌르지 않고, 반백의 노인을 포로로 잡지 않는 것과 같은 일을 이른다. 다만 그들에게 사냥감을 주는 것일 뿐이니,注+敵人에게 패배당하지 않을 자가 없다는 말이다. 나는 제왕의 용병은 이처럼 졸렬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注+반드시 襄公처럼 졸렬하여 패배를 자초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옛날에 출정할 때에 誓師하던 자는注+ 武王의 일을 인용하여 帝王用兵을 증명한 것이다. “너의 원수를 섬멸하라.”注+殄殲은 죽인다는 뜻이다. 紂王을 이른다. 하고 “저 흉악하고 잔학한 자를 잡으라.”注+凶殘紂王을 이른다. 이 2구는 모두 ≪書經≫ 〈周書 泰誓〉에 보인다.고 하였으니 그 기상이 엄숙하여 조금도 관용한 적이 없고,注+ 襄公이 말한 상처를 입은 을 거듭 찌르지 않고, 반백의 노인을 포로로 잡지 않는다는 것은 帝王의 용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관용한 경우는 오직 도망쳐 오는 적군을 맞이해 공격하지 않는 것일 뿐이었다.注+이 구절은 ≪書經≫ 〈周書 牧誓〉에 보인다. 敵人이 도망해 와서 항복하는 자는 맞아 공격해 죽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도망쳐 와서 우리에게 귀순하기 때문에 공격하지 않는 것이니,注+“도망해 오는 적군을 맞이해 공격하지 말라.[弗迓克奔]”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만일 나와 접전하여 언제 죽을지 모를 생명을 다툰다면注+推鋒接戰함이니, 내가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상대가 반드시 나를 죽일 것이라는 말이다. 어찌 그대로 놓아두겠는가?注+어찌 襄公이 말한 험한 지형을 이용해 을 공격하지 않고, 戰列을 이루기 못한 적에게 진격을 명하는 북을 치지 않은 것처럼 하겠느냐는 말이다.
항복한 자를 놓아주는 것은 帝王의 용병이고,注+書經≫ 〈周書 牧誓〉에 “도망해 오는 적군을 맞이해 공격하지 말라.”는 것이 이것이다. 적을 놓아주는 것은 襄公의 용병이니注+적군이 강을 건너지 않았다 하여 공격하지 않고, 전열을 이루지 않았다 하여 북을 치지 않은 것이 이 일에 해당한다. 이 두 구에서 襄公帝王의 용병이 전혀 같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어찌 동격으로 논할 수 있겠는가?注+ 襄公의 용병을 어찌 帝王의 대열에 귀속[]시킬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公羊子 襄公의 전쟁을 논하면서 文王의 전쟁도 이에서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겼다.注+春秋公羊傳≫에 이르기를 “君子 襄公이 〈楚軍이〉 대열을 이루기 전에 북을 쳐 진군하지 않았음과 大事에 임하여 大禮를 잊지 않았음을 크게 여겨 비록 文王의 전쟁이라도 이에서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겼다.”라고 하였다. 아!注+公羊高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단언한 것이다. 襄公이 어찌 文王을 알겠는가? 子魚야말로 진실로 文王을 안 자이다.注+子魚는 이름이 目夷이며, 나라의 司馬襄公庶兄이다.
子魚 襄公나라를 치려 할 때에 諫言하기를注+春秋左氏傳僖公 19년에 보인다.文王나라의 이 어지럽다는 말을 듣고 나라를 征伐하여注+은 나라 이름이다. 옛날에 崇侯가 무도하자 文王이 그를 쳤다는 말이다. 30일 동안 攻擊하였으나 항복하지 않자,注+30일을 포위하였으나 崇侯가 항복하지 않았다. 退軍해 돌아와서 敎化를 닦은 뒤에 다시 征伐하여注+文王이 군대를 퇴각하여 德敎를 닦고 나서 다시 쳤다는 말이다. 전의 堡壘를 그대로 이용하였으나 崇人이 항복하였습니다.”注+옛 보루를 그대로 사용하고 더 군대를 늘리지 않았는데도 崇侯가 마침내 항복하였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 말이 화기애애하여 상처를 주지 않고注+薰然은 화기애애한 모양이다. 겸손하여 자랑하지 않아注+退然은 겸손한 모양이며, 不伐은 자랑하지 않음이다. 신묘하게 文王의 본심을 터득하였는데,注+子魚의 전일의 말에는 文王의 기상이 있었다.
의 전쟁’에 이르러서는 襄公에게 간한 말이注+그 대략은 아래와 같다. “강한 적군이 地形이 험하여 전열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이니 이 험한 곳에 있을 때 攻擊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비록 늙은이라 하더라도 잡을 수만 있다면 잡아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저 ‘二毛’를 고려하겠습니까? 이 상처를 입고도 죽음에 이르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거듭 傷害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거듭 傷害하는 것을 가엾게 여긴다면 애당초 상처를 입히지 않느니만 못하고, ‘二毛’를 가엾게 여긴다면 에게 降服하느니만 못합니다.” 강직하고 간절하게 기운을 북돋우면서도 사납고 거칠었으니,注+그 말이 강직하고 간절함을 형용한 것이다. 갑자기 전일의 말과 달라注+전일 나라를 정벌하는 일을 간할 때의 기상과는 크게 달랐다는 말이다. 文王의 기상과 전혀 닮지 않은 듯하다.注+德敎를 닦은 일과 보루를 그대로 사용했던 일과도 달랐다는 말이다.
이는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常規를 고집하지 않은 것이니,注+子魚가 간언을 올린 것은 사안에 따라 變易하였고 하나에 膠着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참으로 文王을 잘 배운 것이다.注+文王은 ≪周易≫을 지어 때에 따라 變易하는 에 밝았으니 어찌 하나에 교착한 적이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子魚文王을 잘 배운 것을 안다면 襄公文王을 잘 배우지 못했음을 알 것이다.注+이 뜻이 매우 좋다. 바로 孔子께서 이른바 “柳下恵를 잘 배운 자로는 나라 男子만 한 자가 없다.”라고 말한 것과 같으니 換骨奪胎하는 을 깊이 터득한 것이다. 다시 변론할 필요 없이 公羊高의 논설이 저절로 꺾였으니 더욱 筆力高強함을 보겠다.


역주
역주1 宋襄公及楚人戰于泓 : 四庫全書本과 三民書局本에는 題名이 ‘宋襄公欲合諸侯’로 되어 있다.
역주2 以欲從人則可 : 以欲從人은 나의 욕심을 버리고 많은 이들의 善을 따른다는 말이다.〈杜注〉
역주3 以人從欲 鮮濟 : 明年에 鹿上에서 會盟한 傳의 배경이다.〈杜注〉
역주4 以求諸侯於楚 : 楚나라의 威勢를 빌려 諸侯의 霸主가 되기를 구한 것이다.〈附注〉
역주5 幸而後敗 : ‘幸而後敗’는 여러 가지 解釋이 있다. 楊伯峻은 僖公 15년 傳의 ‘幸而得囚’과 같은 句法으로 보아 ‘전쟁에 패배만하고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다.’라는 뜻으로 풀었다. 杜預의 注에는 敗만을 해석하고 幸而後에 대해서는 전혀 해석하지 않았으며, 林堯叟와 楊伯峻도 ‘後’를 해석하지 않았다. 譯者는 이상의 說들을 따르지 않고 아래와 같이 번역하였다.
역주6 君欲已甚 其何以堪之 : ‘어찌 霸者의 일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뜻이니, 반드시 諸侯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附注〉
역주7 宋公伐鄭 : 宋公은 鄭伯이 楚나라에 간 것에 怒하였기 때문에 鄭나라를 토벌한 것이다. 이것이 11월에 泓에서 전쟁이 일어난 원인이 되었다.〈杜注〉
역주8 大司馬固諫曰……弗可赦也已 : 大司馬 固는 宋 莊公의 손자 公孫固이다. 君께서 하늘이 버린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니 楚나라를 용서하고 싸우지 않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杜注〉
역주9 楚人未旣濟 : 군대가 아직 泓水를 다 건너지 못한 것이다.〈杜注〉
역주10 門官殲焉 : 門官은 문을 지키는 사람인데, 出戰한 때에는 임금의 좌우에 있으면서 임금을 보호한다. 殲은 다 죽은 것이다.〈杜注〉
역주11 君子不重傷 : 이미 상처를 입은 敵을 차마 재차 傷害할 수 없다는 말이다.〈附注〉
역주12 不禽二毛 : 二毛는 머리가 반쯤 세어 두 색깔이 나는 老人이다.〈杜注〉
역주13 不以阻隘也 : 험한 지형을 이용해 승리를 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杜注〉
역주14 寡人雖亡國之餘 : 宋나라는 商나라 紂王의 후손이다.〈杜注〉
역주15 不鼓不成列 : 敵軍이 戰陣을 갖추기 전에 우리가 북을 울려 진격하지 않은 것은 속임수로 승리를 취하는 것을 수치로 여긴 것이다.〈附注〉
역주16 勍敵之人……天贊我也 : 勍은 強이다. 楚軍이 험한 곳에 있어 전열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하늘이 宋나라를 돕는 것이라는 말이다.〈杜注〉
역주17 猶有懼焉 : 비록 敵이 험한 곳에 있어 전열을 갖추지 못한 기회를 이용하여 공격하더라도 승리하지 못할까 두렵다는 말이다.〈杜注〉
역주18 且今之勍者……雖及胡耈 : ‘今之勍者’는 우리와 경쟁하는 자들을 이름이다. 胡耈는 元老를 일컫는 말이다.〈杜注〉
역주19 明恥敎戰 求殺敵也 : 刑戮의 제도를 밝게 설치하여 용감하지 못한 자를 부끄럽게 한다는 말이다.〈杜注〉
역주20 傷未及死 如何勿重 : 그 敵이 오히려 나를 해칠 수 있다는 말이다.〈杜注〉
역주21 若愛重傷……則如服焉 : 敵軍을 殺傷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본래 전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楊伯峻은 “두 ‘愛’자는 모두 憐憫의 뜻이고, 두 ‘如’자는 모두 當의 뜻이다.”라고 하였고, ≪左氏會箋≫에는 如를 不如의 준말로 해석하였다. 譯者는 ≪左氏會箋≫의 설을 취하여 ‘하느니만 못하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역주22 三軍以利用也 : 군대는 이로움을 위해 일으킨다는 말이다.〈杜注〉
역주23 金鼓以聲氣也 : 북소리로 군사들의 士氣를 돕는 것이다.〈杜注〉
역주24 聲盛致志 鼓儳可也 : 儳은 험한 곳이니 戰陣을 整齊하지 못한 것이다.〈杜注〉 이미 북소리가 크게 울려 士卒의 용감한 意志가 드높아졌으면 敵軍이 험한 곳에서 戰陣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공격해야 한다는 말이다.〈附注〉
역주25 齊威 : 齊 桓公이다. ‘威’는 宋 欽宗의 이름 趙桓을 피휘한 것이다. 아래도 같다.
역주26 : 四庫全書本에는 ‘所’로 되어 있다.
역주27 (之)[不是] : 저본에는 ‘之’로 되어 있으나, 三民書局本에는 ‘不是’로 되어 있다. ‘之’를 ‘不是’로 고치는 것이 ≪春秋公羊傳≫에 부합하므로 ‘不是’로 바로잡았다.
역주28 勍敵之人……則如服焉 : ≪春秋左氏傳≫ 僖公 22년에 나온다.
역주29 孔子所謂善學柳下恵者 無如魯男子 : 魯男子는 女色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내를 가리키는 말로 ≪詩經≫ 〈小雅 巷伯〉의 〈毛傳〉에 보인다. 魯나라에 홀로 사는 사내가 있었는데, 그 이웃에 홀로 된 과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에 폭풍우로 과부의 집이 무너지니, 과부가 이 남자의 집에 와서 의탁하고자 하였으나 남자는 문을 닿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부가 창문 밖에서 “그대는 어째서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오?”라고 묻자, 사내는 “내 듣건대 남녀가 60세가 되지 않았으면 한 방에 거처하지 않는다고 하오. 지금 그대도 젊고 나도 젊으니 그대를 받아들일 수 없소.”라고 하였다. 그러자 과부는 “그대는 어째서 柳下惠처럼 하지 않으십니까? 유하혜는 성문에 들어가지 못한 여자를 품어주었으되 사람들은 그를 음란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니, 남자가 말하기를 “유하혜는 가능하지만 나는 불가능하니, 나는 장차 나의 불가능을 가지고 유하혜의 가능을 배우겠소.”라고 하였다. 孔子는 이 말을 듣고서 “유하혜를 배우고자 한 자에는 이 사람 같이 한 자가 없었다.”라고 하였다. ≪輟耕錄≫에 의하면, 유하혜는 술에 취해 郭門 밖에서 露宿할 때에 곁에서 노숙하던 여자가 凍死할까 우려하여 품에 안고 잤으나 아침이 될 때까지 음란한 일이 없었다고
周 文王周 文王
한다.

동래박의(3)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