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僖二十年
이라 宋襄公欲合諸侯
하니 臧文仲聞之
하고 曰
어니와 라하다
傳
[左傳]僖二十一年
이라 春
에 宋人爲鹿上之盟
하야 하니 楚人許之
하다
公子目夷曰 小國爭盟
은 禍也
니 宋其亡乎
ㄴ저 로다
傳
[左傳]秋
에 諸侯會宋公于盂
하다 子魚曰 禍其在此乎
ㄴ저 리오 於是
에 楚執宋公
하야 以伐宋
하다
傳
[左傳]僖二十二年
이라 夏
에 하니 子魚曰 所謂禍在此矣
라
傳
[左傳]僖二十二年이라 秋에 楚人伐宋以救鄭하다 宋公將戰한대
弗聽
하다 宋公及楚人戰于泓
하다 宋人旣成列
하고 어늘
司馬曰 彼衆我寡하니 及其未旣濟也하야 請擊之하소서 公曰 不可하다
旣濟而未成列
이어늘 又以告
한대 公曰 未可
하다 旣陳而後擊之
하야 宋師敗績
하다 公傷股
하고 하다
傳
國人皆咎公
하니 公曰
하고 니라 古之爲軍也
에 하니 나 이라
子魚曰 君未知戰
이로소이다 니 阻而鼓之
가 不亦可乎
잇가 이니이다
傳
[左傳]僖二十三年이라 夏五月에 宋襄公卒하니 傷於泓故也라
注
[主意] 謂宋襄之愚론 尙不能料目前之事온 況能知帝王之兵乎아 論者謂宋襄以帝王之兵取敗라하니 豈不過哉아
由涿鹿
으로 而至牧野
注+由涿鹿 而至牧野:黃帝與蚩尤 戰于涿鹿之野 武王伐商 與紂戰于牧野히 擧帝王之兵
이 更數十戰
注+擧帝王之兵 更數十戰:紀帝王之用兵 甚多이요 由六經
으로 而至諸子
注+由六經 而至諸子:六經 易詩書禮樂春秋 諸子 百家之書也히 談帝王之兵
이 踰數萬言
注+談帝王之兵 踰數萬言:論帝王之用兵 甚詳하니
效非不明
注+效非不明:謂數十戰이요 而說非不詳也
注+而說非不詳也:謂數萬言라 及宋襄公爲泓之役
注+及宋襄公爲泓之役:與楚人戰于泓하야 而以帝王之兵自許
注+而以帝王之兵自許:謂不重傷 不禽二毛 不阻隘 不鼓不成列라가 反至喪敗
注+反至喪敗:宋師敗績 襄公傷股而死하니
後世指其一戰之失
하야 盡疑數十戰之功爲不可信
注+後世指其一戰之失 盡疑數十戰之功爲不可信:後世指宋襄爲戒 而廢帝王之兵하고
指其一言之謬
하야 盡廢數萬言之理爲不可行
하니 果哉
라 說之遽也
注+果哉 說之遽也:謂後世論者不審여
是說旣行하야 帝王之兵을 人共視以爲迂闊遲鈍之具하고 儒者相與力挽而極辨之로되 終莫能勝이라 意者컨대 未知爭之之說乎ㄴ저
輿薪之不見而自謂能見秋毫者는 愚也요 責其不見者도 亦愚也라
撞鐘之不聞이로되 而自謂能聞蚋飛者는 愚也요 責其不聞者도 亦愚也라
信之在前하고 責之在後라 不見輿薪者가 方自譽其目之明이면 人固已不信之矣니 豈待其眞不見秋毫而始責之乎아
不聞撞鐘者가 方自譽其耳之聰이면 人固已不信之矣니 豈待其眞不聞蚋飛而後責之乎아
古之難知는 秋毫也와 蚋飛也요 今之易知는 輿薪也와 撞鐘也라 欲驗宋襄言古道之是非인댄 當先觀宋襄料今事之中否라
宋襄生於宋
하니 豈不知宋之弱
注+宋襄生於宋 豈不知宋之弱:自生長以至爲君 深知宋之弱矣이며 迫於楚
하니 豈不知楚之強
注+迫於楚 豈不知楚之強:與楚爲隣 深知楚之疆大이리오
乃不量宋之力
注+乃不量宋之力:不自量其強弱不敵하고 偃然自爲盟主
注+偃然自爲盟主:自爲霸主 以主諸侯之盟하야 欲屈強楚之君於會
注+欲屈強楚之君於會:爲盂之盟屈致楚子 遂爲楚子所執하니 其愚而不能料事一矣
注+其愚而不能料事一矣:不料彼己強弱 欲盟楚子 其愚一也라
之霸
를 宋襄公耳目所接也
注+齊威之霸 宋襄公耳目所接也:宋襄親見齊威之伯(패)業니 宋襄自觀
컨대 信義與齊威孰愈
注+宋襄自觀 信義與齊威孰愈:愈 勝也 言信義不如齊威之着며 壤地與齊威孰愈
注+壤地與齊威孰愈:土地不如齊威之廣며 兵甲與齊威孰愈
注+兵甲與齊威孰愈:兵甲不如齊威之盛아
齊威九合諸侯
注+齊威九合諸侯:紏合諸侯 盟會屢矣나 終不能屈致楚子
注+終不能屈致楚子:中間召陵之盟 楚子使屈完如師 而不自來어늘 而宋襄乃驟欲致之
注+而宋襄乃驟欲致之:欲屈楚子與盂之盟하니 其愚而不能料事二矣
注+其愚而不能料事二矣:不料宋不如齊 欲致齊威之所不能致 其愚二也라
盂之會
에 宋襄身見執於楚
注+盂之會 宋襄身見執於楚:楚子執宋公以伐宋하야 幾不免虎口
注+幾不免虎口:幾爲楚子所殺라가 僅能縱釋
注+僅能縱釋:會于薄以釋之하고 曾未閱時
에 忘前日之辱
注+曾未閱時 忘前日之辱:楚釋宋公 在二十一年之冬하고
忘前日之懼
하며 忘前日之禍
하야 尙敢稱兵與楚爭鄭
注+忘前日之懼……尙敢稱兵與楚爭鄭:次年之夏 遂擧兵伐鄭하야 自取傷敗
하니 其愚而不能料事三矣
注+自取傷敗 其愚而不能料事三矣:不料宋不如楚 欲使鄭捨楚而從己 其愚三也라
是三者皆匹夫匹婦之共曉
注+是三者皆匹夫匹婦之共曉:以上三事 甚不難知어늘 宋襄尙不能知
注+宋襄尙不能知:目前之事 尙不能料하니
況所謂帝王之兵制
는 遠在千百年之外
注+況所謂帝王之兵制 遠在千百年之外:得於傳聞 其事已遠하야 斷編遺簡
注+斷編遺簡:經史所載 未必全文하야 若滅若沒
하고 若存若亡
注+若滅若沒 若存若亡:不可究詰하니 是豈宋襄之所能知乎
注+是豈宋襄之所能知乎:智者尙不能知 況宋襄之愚乎아
觀其料今事之疏
注+觀其料今事之疏:謂上文三事 且不能料면 卽可驗其談古道之謬
注+卽可驗其談古道之謬:謂其遠慕帝王之兵 此二句甚有力量 眞宋襄之斷案也하니 雖未交鋒之前
注+雖未交鋒之前:雖未與楚人決戰之時이라도 固預知其必敗也
注+固預知其必敗也:已可前知其喪敗矣라
說者乃以宋襄之敗
로 爲古道之累
注+說者乃以宋襄之敗 爲古道之累:謂帝王之兵 因宋襄而廢하니 是猶見聵者之誤評宮角
注+是猶見瞶(외)者之誤評宮角:聵 聾也 宮角 樂音也 以喩宋襄誤評帝王之兵하고 遂欲幷廢大樂
注+遂欲幷廢大樂(악):以喩說者因宋襄而幷廢古道이니 豈不過甚矣哉
注+豈不過甚矣哉:其過失又甚矣아
或者
는 又謂宋襄無帝王之德而欲效帝王之兵
注+又謂宋襄無帝王之德而欲效帝王之兵:又生一說辨難하니 所以致敗
注+所以致敗:謂無德以致敗라하니 亦非也
注+亦非也:此一說 亦未是라
使帝王之世
에 人皆服其德
이면 則固不待於用兵矣
注+使帝王之世……則固不待於用兵矣:此說甚當 斷得極到리라 德不能服
注+德不能服:雖帝王之世 猶有不服其德而背叛者이라 是以有兵
注+是以有兵:故不免於用兵이니 則兵者生於人之不服也
注+則兵者生於人之不服也:議論的當니라
彼旣不服矣
요 豨縱豕突
注+彼旣不服矣 豨(희)縱豕突:豨 野猪也 以喩背叛之人이면 亦何所不至
注+亦何所不至:如蚩尤作亂之類리오 我乃欲從容揖遜以待之
注+我乃欲從容揖遜以待之:如宋襄不重傷 不禽二毛之擧면 適遺之禽耳
注+適遺之禽耳:未有不爲敵人所敗者니 吾恐帝王之兵不如是之拙也
注+吾恐帝王之兵不如是之拙也:必不如宋襄之拙以取敗也라
古之誓師者
注+古之誓師者:引武王事 以證帝王之兵는 曰殄殲乃讐
注+曰殄殲乃讐:殄殲 殺戮也 讐 謂紂也하라하고 曰取彼凶殘
注+故之誓師者……曰取彼凶殘:凶殘 亦謂紂也 二句皆出泰誓하라하니 凜然未嘗有毫髮貸
注+凜然未嘗有毫髮貸:見得宋襄所謂不重傷不禽二毛者 非帝王之兵也요 其所寛者
는 惟弗迓克奔而已
注+其所寛者 惟弗迓克奔而已:此句出牧誓 謂敵人奔而降者 則不迎而殺之라
奔而歸我
라 以弗擊
注+以弗擊:釋弗迓克奔之意이니 苟推鋒而與之爭一旦之命
注+苟推鋒而與爭一旦之命:推鋒 接戰也 我不殺彼 則彼必殺我矣이면 胡爲而縱之哉
注+胡爲而縱之哉:豈如宋襄所謂不阻隘不鼓不成列者哉리오
是縱降者
는 帝王之兵
注+是縱降者 帝王之兵:弗迓克奔 是也이요 縱敵者
는 宋襄之兵也
注+縱敵者 宋襄之兵也:未旣濟而弗擊 未成列而弗鼓 是也 二句見得宋襄與帝王之兵全不同니 烏可置之一域耶
注+烏可置之一域耶:宋襄之兵 豈可係於帝王之列아
公羊子
는 以宋襄之戰
으로 爲文王
過
注+公羊子……爲文王(之)[不是]過:公羊傳曰 君子大其不鼓不成列 臨大事而不忘大禮 以爲雖文王之戰 亦不過此也라 嗚呼
注+嗚呼:斷公羊之說謬라 宋襄何足以知文王
이리오 若子魚
라야 乃眞知文王者也
注+若子魚 乃眞知文王者也:子魚 名目夷 宋之司馬 襄公庶兄也라
子魚諫宋襄之伐曹曰
注+子魚諫宋襄之伐曹曰:見僖公十九年 文王聞崇德亂而伐之
注+文王聞崇德亂而伐之:崇 國名 言昔者崇侯無道 文王伐之하야 軍三旬而不降
注+軍三旬而不降:圍之三十日 而崇侯不服이어늘 退修敎而復伐之
注+退修敎而復伐之:文王退兵 而修德敎 乃復伐之하니 因壘而降
注+因壘而降:因舊營壘 不復增兵 而崇侯遂降이라
其言薰然而不傷
注+其言薰然而不傷:薰然 和也하고 退然而不伐
注+退然而不伐:退然 謙也 不伐 不矜也하야 妙得文王之本心
注+妙得文王之本心:子魚前日之言 有文王之氣象이러니
至於泓之戰
하얀 其諫宋襄之辭
注+至於泓之戰 其諫宋襄之辭:其略曰 가 發揚激厲
하고 奮起勁悍
注+發揚激厲 奮起勁悍:形容其言切直하니 驟與前日異
注+驟與前日異:與前日伐曹之諫氣象 頓不同하야 若與文王不相似
注+若與文王不相似:與修敎因壘之事亦異라
與變推移
하야 不主故常
注+與變推移 不主故常:言子魚進諫 隨事變易 不膠於一也이니 此眞學文王者也
注+此眞學文王者也:文王作易 以明隨時變易之道 何甞膠於一也라 知子魚之善學文王
이면 則知宋襄之不善學文王矣
注+知子魚之善學文王 則知宋襄之不善學文王矣:此意極佳 政如 深得奪胎換骨之法 又不待辨論 而公羊之說 自屈 尤見筆力之高리라
傳
僖公 20년, 宋 襄公이 諸侯를 糾合하려 하니 臧文仲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善을 따르면 成功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의 욕망을 따르게 한다면 成功하지 못할 것이다.”
傳
僖公 21년, 봄에 宋人이 鹿上에서 結盟하고서 楚나라에게 諸侯가 자기를 盟主로 추대하도록 도와주기를 요구하니 楚人이 허락하였다.
公子 目夷가 말하기를 “小國이 盟主가 되기를 다투는 것은 禍를 부르는 것이니 宋나라는 망할 것이다. 행운이 있은 뒤에야 敗戰에 그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傳
가을에 諸侯가 宋公과 盂에서 會合하였다. 子魚가 말하기를 “禍가 이번 회합에 있을 것이다. 임금의 욕심이 너무 심하니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楚子가 宋公을 잡고서 宋나라를 토벌하였다.
傳
僖公 22년, 여름에 宋公이 鄭나라를 토벌하니 子魚가 말하였다. “내가 앞서 말한 ‘禍’라는 것이 이번 전쟁에 있을 것이다.”
傳
僖公 22년, 가을에 楚人이 宋나라를 토벌하여 鄭나라를 救援하였다. 宋公이 전쟁하려 하자,
大司馬 固가 諫하였다. “하늘이 商나라를 버린 지 오래인데 임금님께서 復興시키려 하시니,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宋公은 듣지 않았다. 宋公이 楚人과 泓에서 전쟁하였다. 이때 宋人은 이미 戰列을 이루었으나 楚人은 아직 泓水를 다 건너지 못하였다.
司馬(子魚)가 말하기를 “저들은 군대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저들이 다 건너기 전에 공격하소서.”라고 하니, 宋公은 “不可하다.”고 하였다.
楚軍이
泓水를 다 건넜으나 아직
戰列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
司馬가 또 공격하자고 고하니,
宋公은 또 “
不可하다.”고 하였다.
楚軍이 전열을 이룬 뒤에 공격하였다가
宋軍이
大敗하여
宋公은 허벅지에 상처를 입었고,
門官들은 모두 죽었다.
宋 襄公이 거짓 仁으로 군대를 잃다[宋襄公假仁失衆]
傳
國人이 모두 宋公을 탓하니 宋公은 말하였다. “君子는 상처를 입은 敵을 거듭 찌르지 않고, 二毛를 포로로 잡지 않는 것이다. 옛날의 전쟁에는 험한 地形을 이용해 敵을 공격하지 않았으니, 寡人이 비록 亡國의 후손이지만 戰列을 이루지 못한 敵에게 진격을 명하는 북을 치지 않았노라.”
子魚가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전쟁을 모르십니다. 강한 적군이 지형이 험하여 전열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이니 敵이 험한 곳에 있을 때 공격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그래도 오히려 〈승리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오늘날 임금님과 霸權을 다투는 자들은 모두 우리의 敵이니 비록 늙은이라 하더라도 잡을 수만 있다면 잡아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저 二毛를 고려하겠습니까?
군대들에게 수치를 밝게 일러주고 戰術을 가르친 것은 적을 죽이도록 요구한 것이니, 적이 상처를 입고도 죽음에 이르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거듭 傷害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거듭 傷害하는 것을 가엾게 여긴다면 애당초 상처를 입히지 않느니만 못하고, 二毛를 가엾게 여긴다면 적에게 항복하느니만 못합니다.
三軍은 유리한 때를 보아 사용하는 것이고, 金鼓는 소리로써 사기를 북돋워주는 것이니, 유리한 때를 만나 군대를 사용한다면 적이 험한 곳이 있을 때에 공격하는 것이 옳고, 북소리가 크게 울려 士氣가 높아졌으면 적이 戰列을 이루지 못했을 때 공격하는 것이 옳습니다.”
傳
僖公 23년, 여름 5월에 宋 襄公이 卒하였으니, 이는 泓에서 부상하였기 때문이다.
注
이 글에서 말하였다. “宋 襄公의 어리석음으로는 오히려 눈앞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帝王의 戰法을 알았겠는가? 그런데 論評하는 자들은 ‘宋 襄公이 제왕의 전법을 썼다가 패배를 자초하였다.’고 하였으니, 어찌 지나치지 않은가?”
‘
涿鹿의 전쟁’에서부터 ‘
牧野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注+黃帝가 蚩尤와 涿鹿의 들에서 싸웠고, 武王이 商나라를 칠 때에 紂王과 牧野에서 싸웠다. 帝王이 군대를 일으켜 전쟁한 것이 수십 차례였고,
注+帝王의 用兵에 대한 기록이 매우 많다는 말이다. 六經에서부터
諸子에 이르기까지
注+六經은 ≪易經≫‧≪詩經≫‧≪書經≫‧≪禮記≫‧≪樂經≫‧≪春秋≫이고, 諸子는 여러 사상가들이 지은 책들이다. 帝王의
用兵을 담론한 것이 수만
字가 넘으니,
注+帝王의 用兵을 담론한 것이 매우 상세하다는 말이다. 周 武王
효과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注+앞글의 ‘數十戰’을 이른다. 설명이 상세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注+앞글의 ‘數萬言’을 이른다. 그런데도
宋 襄公이
泓에서
楚軍과 전쟁할 적에
注+楚人와 泓에서 싸운 것을 말한다. 帝王의 군대로 자부하였다가
注+상처를 입은 敵을 거듭 상해하지 않고, 반백의 노인을 포로로 잡지 않으며, 험한 地形을 이용해 적을 공격하지 않고, 戰列을 이루기 못한 적에게 진격을 명하는 북을 치지 않음을 이른다. 도리어 실패에 이르니,
注+宋나라 군대는 크게 패배하고, 襄公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죽었음을 이른다.
후세 사람들은 이 한 차례의 전쟁에 실패한 것을 가지고
聖王이 거둔 수십 차례의 전공을 모두 의심하여 믿을 수 없다고 하고,
注+후세 사람들은 宋 襄公을 가리키며 경계로 삼아 帝王의 용병을 폐기하였음을 이른다.
한마디 말의 오류를 가지고 수만 자로 설명한 이치를 모두 폐기하여 행할 수 없다고 하니, 과감하구나. 말을 너무 경솔히 함이여!
注+후세의 논평하는 자들이 자세히 살피지 않았음을 이른다.
이런 말이 이미 유행하여 제왕의 용병을 사람들은 모두 오활하고 미련한 도구로 여기고, 儒者들은 함께 노력해 만회하려고 극력 변호하지만 끝내 논쟁해 이길 수가 없다. 생각건대 이는 아마도 전쟁의 說(意義)을 모른 데서 연유한 듯하다.
수레에 실린 땔감을 보지 못하면서 스스로 가을 터럭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보지 못한다고 책망하는 자도 어리석다.
종 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스스로 파리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듣지 못한다고 책망하는 자도 어리석다.
믿음은 사전에 있고, 책망은 사후에 있다. 수레에 실린 땔감을 보지 못하는 자가 바야흐로 제 눈이 밝다고 자랑하면 사람들은 진실로 이미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니, 어찌 참으로 가을 터럭을 보지 못할 때를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그를 책망하겠는가?
종 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가 바야흐로 스스로 제 귀가 밝다고 자랑하면 사람들은 진실로 이미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니, 어찌 참으로 파리가 나는 소리를 듣지 못할 때를 기다린 뒤에 그를 책망하겠는가?
古代의 일은 알기 어렵기가 마치 ‘가을 터럭’이나 ‘파리 나는 소리’와 같고, 今世의 일은 알기 쉽기가 마치 ‘수레에 실린 땔감’이나 ‘종을 치는 소리’와 같다. 宋 襄公이 옛 道를 말한 것이 옳았는지 글렀는지를 징험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먼저 宋 襄公이 당시의 사정을 헤아린 것이 이치에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宋 襄公은
宋나라에서
生長하였으니 어찌 송나라의 미약함을 몰랐겠으며,
注+〈宋 襄公은〉 나고 자라면서부터 임금이 되기까지 宋나라가 약한 줄을 깊이 알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楚나라에 핍박받았으니 어찌 초나라의 강대함을 몰랐겠는가?
注+〈宋나라는〉 楚나라와 이웃이니 초나라의 강대함을 깊이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송나라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注+자기 나라의 強弱이 〈楚나라를〉 대적할 수 없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말이다. 오만하게 스스로
盟主가 되어
注+스스로 霸主가 되어 諸侯의 회맹을 주관하고자 했다는 말이다. 강한 초나라의 군주를 회맹에서 굴복시키고자 하였으니,
注+盂의 회맹에 楚子를 불러 굴복시키려 했다가 마침내 楚子에게 사로잡혔다는 말이다. 이것이 그가 어리석어 일을 헤아리지 못한 첫 번째이다.
注+상대와 자기의 強弱을 헤아리지 못하고 楚子와 회맹하고자 했으니, 그 첫 번째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齊 桓公의
霸業은
宋 襄公이 직접 보고 들은 바이니,
注+宋 襄公은 齊 桓公이 패업을 이루는 것을 직접 보았다는 말이다. 송 양공은 스스로 보기에 자기의
信義가 제 환공에 비해 누가 더 나으며
注+愈는 낫다는 뜻이니, 〈宋 襄公의〉 信義가 齊 桓公만큼 착실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기의 영토가 제 환공에 비해 누가 더 나으며
注+土地도 齊 桓公만큼 광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기의 군대가 제 환공에 비해 누가 더 낫다고 여긴 것인가?
注+兵甲도 齊 桓公만큼 성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제 환공은 아홉 번 제후를 회합하였으되
注+諸侯를 규합하여 자주 회맹했다는 말이다. 끝내 초나라 군주를 회맹에 나오도록 굴종시키지 못하였는데,
注+중간에 召陵의 회맹에 楚子는 屈完을 제후의 군중으로 보내어 〈강약을 살피게 하고〉 직접 오지는 않았다. 송 양공은 갑자기 초군을 회맹에 나오도록 부르고자 하였으니,
注+〈宋 襄公은〉 楚子를 굴복시켜 盂의 회맹에 참여시키고자 했다는 말이다. 이것이 그가 어리석어 일을 헤아리지 못한 두 번째이다.
注+宋나라가 齊나라만 못한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齊 桓公도 招致하지 못한 〈楚子를〉 초치하고자 하였으니, 그 두 번째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盂의 회맹에서 송 양공은 초나라에 포로로 잡혀
注+楚子가 宋公을 사로잡고서 宋나라를 쳤다는 말이다.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할 뻔하다가
注+〈宋 襄公은〉 楚子에게 살해당할 뻔했다는 말이다. 겨우 풀려난 지
注+〈宋 襄公은〉 薄에서의 회합에서 풀려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날에 당했던 치욕과
注+楚나라가 宋公을 풀어준 것은 魯 僖公 21년 겨울이었다.
지난날에 당했던 두려움과 지난날에 당했던 화란을 잊고서 오히려 감히 군대를 일으켜 정나라를 차지하려고 초나라와 전쟁하여
注+이듬해 여름에 마침내 군대를 출동하여 鄭나라를 쳤다. 부상과 패배를 자초하였으니, 이것이 그가 어리석어 일을 헤아리지 못한 세 번째이다.
注+宋나라가 楚나라만 못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鄭나라에게 楚나라를 배반하고 자기 나라를 따르게 하고자 했으니, 그 세 번째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도 다 아는 것인데
注+이상의 3가지 일은 매우 알기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송 양공은 오히려 몰랐으니,
注+눈앞에 닥친 일도 오히려 헤아리지 못했다는 말이다.
하물며 이른바 ‘
帝王의
兵制’는 먼 수백 년 전에 있었던 제도로서
注+전하는 소문을 들었다면 그 일이 이미 먼 옛날의 일이라는 말이다. 記載된
典籍이 완전하지 못하여
注+經史에 실린 글이 반드시 온전한 글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없어진 것도 있고 빠트린 것도 있고 보존된 것도 있고 망실된 것도 있어서
注+다 밝혀낼 수 없다는 말이다. 〈다 규명할 수 없는데〉 어찌 송 양공이 알 수 있었겠는가?
注+지혜로운 자도 오히려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어리석은 宋 襄公이 어떻게 알겠느냐는 말이다.
그가 앞에 닥친 일을 헤아린 것이 이처럼 엉성했음을 보면
注+위 글의 세 가지 일도 헤아릴 수 없었음을 이른다. 그가 담론한
古道 또한 오류임을 짐작할 수 있으니,
注+먼 옛날의 帝王의 用兵을 사모하였음을 이른다. 이 두 구절은 매우 힘 있으니, 참으로 宋 襄公에 대한 斷案(論斷)이라 하겠다. 비록 교전하기 전이라도
注+‘비록 아직 楚人과 결전하지 않을 때라도’의 뜻이다. 그가 반드시 패배할 것임을 미리 알 수 있다.
注+宋 襄公이 반드시 喪敗할 것임을 먼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論說하는 자들은 곧 송 양공의 실패를
古道를 따른 잘못으로 여긴다.
注+帝王의 용병이 宋 襄公으로 인하여 폐기되었음을 이른다. 이는 귀머거리가
宮角(음률)을 잘못 논평하는 것을 보고서
注+聵는 귀머거리이다. 宮角은 음악의 음률이다. 이로써 宋 襄公이 帝王의 용병을 잘못 품평한 것을 비유하였다. 드디어
大樂(
雅樂)마저 아울러 없애고자 하는 것과 같으니,
注+이로써 說者가 宋 襄公으로 인하여 古道까지 아울러 폐기하였음을 비유하였다. 어찌 심한 잘못이 아닌가?
注+그 과실이 더욱 심하다는 말이다.
또 어떤 이는 “
宋 襄公이
帝王의
德이 없으면서
帝王의 용병을 본받고자 하였기 때문에
注+또 一說을 만들어 辯難한 것이다. 실패를 부른 것이다.”
注+德이 없어서 패배를 초래하였음을 이른다.라고 하니, 이 또한 옳지 않다.
注+이 一說도 옳지 않다는 말이다.
가령
帝王의 시대에 사람들이 모두 제왕의
德에 복종하였다면 진실로 군대를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注+이 말은 매우 타당하니, 論斷이 극점에 도달하였다. 德으로 복종시킬 수 없기
注+비록 帝王의 시대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 덕에 복종하지 않고 배반하는 자가 있었다는 말이다. 때문에 군대를 쓰는 것이니,
注+그러므로 군대를 쓰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다. 군대를 쓰는 일은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을 때에 발생한다.
注+의론이 정확하다.
저들이 이미 복종하지 않고 함부로 날뛴다면
注+豨는 멧돼지이니 배반하는 사람을 비유하였다. 또한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注+蚩尤가 난을 일으킨 것과 같은 따위를 이른다. 그런데도 나는 도리어 침착하게 예로써 그들을 대우하고자 한다면
注+宋 襄公이 상처를 입은 敵을 거듭 찌르지 않고, 반백의 노인을 포로로 잡지 않는 것과 같은 일을 이른다. 다만 그들에게 사냥감을 주는 것일 뿐이니,
注+敵人에게 패배당하지 않을 자가 없다는 말이다. 나는 제왕의 용병은 이처럼 졸렬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注+반드시 宋 襄公처럼 졸렬하여 패배를 자초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옛날에 출정할 때에
誓師하던 자는
注+周 武王의 일을 인용하여 帝王의 用兵을 증명한 것이다. “너의 원수를 섬멸하라.”
注+殄殲은 죽인다는 뜻이다. 讐는 紂王을 이른다. 하고 “저 흉악하고 잔학한 자를 잡으라.”
注+凶殘도 紂王을 이른다. 이 2구는 모두 ≪書經≫ 〈周書 泰誓〉에 보인다.고 하였으니 그 기상이 엄숙하여 조금도 관용한 적이 없고,
注+宋 襄公이 말한 상처를 입은 敵을 거듭 찌르지 않고, 반백의 노인을 포로로 잡지 않는다는 것은 帝王의 용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관용한 경우는 오직 도망쳐 오는 적군을 맞이해 공격하지 않는 것일 뿐이었다.
注+이 구절은 ≪書經≫ 〈周書 牧誓〉에 보인다. 敵人이 도망해 와서 항복하는 자는 맞아 공격해 죽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도망쳐 와서 우리에게 귀순하기 때문에 공격하지 않는 것이니,
注+“도망해 오는 적군을 맞이해 공격하지 말라.[弗迓克奔]”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만일 나와 접전하여 언제 죽을지 모를 생명을 다툰다면
注+推鋒은 接戰함이니, 내가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상대가 반드시 나를 죽일 것이라는 말이다. 어찌 그대로 놓아두겠는가?
注+어찌 宋 襄公이 말한 험한 지형을 이용해 敵을 공격하지 않고, 戰列을 이루기 못한 적에게 진격을 명하는 북을 치지 않은 것처럼 하겠느냐는 말이다.
항복한 자를 놓아주는 것은
帝王의 용병이고,
注+≪書經≫ 〈周書 牧誓〉에 “도망해 오는 적군을 맞이해 공격하지 말라.”는 것이 이것이다. 적을 놓아주는 것은
宋 襄公의 용병이니
注+적군이 강을 건너지 않았다 하여 공격하지 않고, 전열을 이루지 않았다 하여 북을 치지 않은 것이 이 일에 해당한다. 이 두 구에서 宋 襄公과 帝王의 용병이 전혀 같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어찌 동격으로 논할 수 있겠는가?
注+宋 襄公의 용병을 어찌 帝王의 대열에 귀속[係]시킬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公羊子는
宋 襄公의 전쟁을 논하면서
文王의 전쟁도 이에서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겼다.
注+≪春秋公羊傳≫에 이르기를 “君子는 宋 襄公이 〈楚軍이〉 대열을 이루기 전에 북을 쳐 진군하지 않았음과 大事에 임하여 大禮를 잊지 않았음을 크게 여겨 비록 文王의 전쟁이라도 이에서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겼다.”라고 하였다. 아!
注+公羊高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단언한 것이다. 宋 襄公이 어찌
文王을 알겠는가?
子魚야말로 진실로
文王을 안 자이다.
注+子魚는 이름이 目夷이며, 宋나라의 司馬로 襄公의 庶兄이다.
子魚가
宋 襄公이
曹나라를 치려 할 때에
諫言하기를
注+≪春秋左氏傳≫ 僖公 19년에 보인다. “
文王은
崇나라의
德이 어지럽다는 말을 듣고
崇나라를
征伐하여
注+崇은 나라 이름이다. 옛날에 崇侯가 무도하자 文王이 그를 쳤다는 말이다. 30일 동안
攻擊하였으나 항복하지 않자,
注+30일을 포위하였으나 崇侯가 항복하지 않았다. 退軍해 돌아와서
敎化를 닦은 뒤에 다시
征伐하여
注+文王이 군대를 퇴각하여 德敎를 닦고 나서 다시 쳤다는 말이다. 전의
堡壘를 그대로 이용하였으나
崇人이 항복하였습니다.”
注+옛 보루를 그대로 사용하고 더 군대를 늘리지 않았는데도 崇侯가 마침내 항복하였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 말이 화기애애하여 상처를 주지 않고
注+薰然은 화기애애한 모양이다. 겸손하여 자랑하지 않아
注+退然은 겸손한 모양이며, 不伐은 자랑하지 않음이다. 신묘하게
文王의 본심을 터득하였는데,
注+子魚의 전일의 말에는 文王의 기상이 있었다.
‘
泓의 전쟁’에 이르러서는
宋 襄公에게 간한 말이
注+그 대략은 아래와 같다. “강한 적군이 地形이 험하여 전열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이니 敵이 험한 곳에 있을 때 攻擊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비록 늙은이라 하더라도 잡을 수만 있다면 잡아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저 ‘二毛’를 고려하겠습니까? 敵이 상처를 입고도 죽음에 이르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거듭 傷害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거듭 傷害하는 것을 가엾게 여긴다면 애당초 상처를 입히지 않느니만 못하고, ‘二毛’를 가엾게 여긴다면 敵에게 降服하느니만 못합니다.” 강직하고 간절하게 기운을 북돋우면서도 사납고 거칠었으니,
注+그 말이 강직하고 간절함을 형용한 것이다. 갑자기 전일의 말과 달라
注+전일 曹나라를 정벌하는 일을 간할 때의 기상과는 크게 달랐다는 말이다. 文王의 기상과 전혀 닮지 않은 듯하다.
注+德敎를 닦은 일과 보루를 그대로 사용했던 일과도 달랐다는 말이다.
이는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常規를 고집하지 않은 것이니,
注+子魚가 간언을 올린 것은 사안에 따라 變易하였고 하나에 膠着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참으로
文王을 잘 배운 것이다.
注+文王은 ≪周易≫을 지어 때에 따라 變易하는 道에 밝았으니 어찌 하나에 교착한 적이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子魚가
文王을 잘 배운 것을 안다면
宋 襄公이
文王을 잘 배우지 못했음을 알 것이다.
注+이 뜻이 매우 좋다. 바로 孔子께서 이른바 “柳下恵를 잘 배운 자로는 魯나라 男子만 한 자가 없다.”라고 말한 것과 같으니 換骨奪胎하는 法을 깊이 터득한 것이다. 다시 변론할 필요 없이 公羊高의 논설이 저절로 꺾였으니 더욱 筆力이 高強함을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