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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 成風請封須句
[左傳]僖二十一年이라 任宿須句顓臾 風姓也 하야 하다 須句子來奔하니 因成風也
成風爲之言於公曰 周禮也 若封須句
[主意]謂文武之澤 入人之深이라 雖成風以一女子 而發言不捨周室하야 禮曰周禮라하고 禍曰周禍라하니라
周禮之說 人所언마는 邾人滅須句 不曰須句之禍라하고 不曰魯之禍라하며
而曰周禍라하니 春秋之時 知此說者 成風一人而已
先王之澤 入人之深注+先王之澤 入人之深:此句一篇主意하야 雖至於世降道散注+雖至於世降道散:謂春秋之時이라도 猶相與誦說歌詠而不衰注+猶相與誦說歌詠而不衰:誦說 謂形於議論 歌詠 謂述於篇章
出於學士大夫之談者 敎之餘也注+敎之餘也:此先王之餘敎 出於故家遺老之傳者 俗之餘也注+俗之餘也:此先王之餘俗 出於田夫野父之口者 治之餘也注+治之餘也:此先王之餘治 ○主意欲說婦人女子 不忘先王之道 故先敍三者引入
習其敎注+習其敎:學士大夫 講習其餘敎하고 漸其俗注+漸其俗:故家遺老 漸染其餘俗하며 思其治注+思其治:田夫野人 思想其餘治하야 向望懷想하야 而不能自已注+向望懷想 而不能自已:不忘先王之道하니 亦其勢之當然注+亦其勢之當然:以先王之澤入人深故也이라
乃若所謂婦人女子者注+乃若所謂婦人女子者:形容成風 足不踰於墻屏하고 視不下於堂하야 組織是供하고 脯脩是職하니 其視先王之道 果何物耶注+足不踰於墻屏……果何物耶:文勢起伏
盖嘗觀詩之變風注+盖嘗觀詩之變風:自邶國風 至豳國風 十三國 皆變風也하니 往往多出於婦人女子之手注+往往多出於婦人女子之手:本題成風是女子 故引用女子作詩事하니라
綠衣 莊姜之詩也注+綠衣 莊姜之詩也:邶國風綠衣 衞荘姜傷己也 荘姜 衞荘公夫人 泉水 衛女之詩也注+泉水 衛女之詩也:同上 泉水 衞女思歸也 柏舟 共姜之詩也注+柏舟 共姜之詩也:鄘國風柏舟 共姜自誓也 共姜 衞世子共伯之妻 載馳 許穆夫人之詩也注+載馳 許穆夫人之詩也:同上 載馳 許穆夫人作也 夫人 衞文公之妹
其辭忠厚雅馴注+其辭忠厚雅馴:緫上四詩而言하야 憂而不傷注+憂而不傷:詩辭之憂思者 易至於傷 而不傷하고 勁而不怒注+勁而不怒:辭之勁直者 易至於怒 而不怒 此言得性情之正하야 藹然文武周公之遺澤在焉注+藹然文武周公之遺澤在焉:應起語이라 是孰開之而孰誘之耶注+是孰開之而孰誘之耶:設問
吾是以知文武周公之化注+吾是以知文武周公之化:以化字斷 固有黙行乎禮敎風俗致治之外者矣注+固有黙行乎禮敎風俗致治之外者矣:一篇主意在此 又應前敎俗治三字로라
不然이면 則婦人女子 豈告語之所可及이며 防範之所可率哉注+不然……防範之所可率哉:號令不可以告語 法制不可以 非王化之所及而何
之澤 至於使婦人女子不能忘注+成周之澤 至於使婦人女子不能忘:引入成風言周禮周禍意하니 則文武周公之用功深矣注+則文武周公之用功深矣:用功於敎化者深 是豈一朝一夕之故哉注+是豈一朝一夕之故哉:發明深字
成風請救須句注+成風請救須句:(句音劬) 成風 僖公之 風姓 謚曰成 須句 其國也 特以親昵而發注+特以親昵而發:其宗國爲邾所滅 故請救之이니 盖人情之常이라 不足深道注+盖人情之常 不足深道:道 言也 爲親請救 盖常情也
이나 其言曰 崇明祀注+崇明祀:尊崇明德之祀 指大(태)皥有濟也하고 保小寡注+保小寡:保存寡小之國 指須句也 周禮也注+周禮也:此二者 周室之禮也 蠻夷猾夏注+蠻夷猾夏:以蠻夷之國 而猾亂諸夏 蠻夷 指邾也 周禍也注+周禍也:此周室之禍也라하니
成風以一女子로되 而造次發言 不捨周室注+成風以一女子……不捨周室:禮曰周禮 禍曰周禍하니
非文武周公之遺化注+非文武周公之遺化:應前化字 潛中其心注+潛中其心:非告語之可及하야 陰致其意注+陰致其意:非防範可率 詎能至是乎注+詎能至是乎:足以見聖化之所感深矣 遠矣로다 周澤之長也注+周澤之長也:取照主意
吾嘗紬繹成風周禮之說注+吾嘗紬繹成風周禮之說:自此以下 拈出周禮立論하니 如仲孫湫注+如仲孫湫:閔公元年 齊仲孫湫曰 魯不棄周禮 未可動也하고 如韓宣子注+如韓宣子:昭公二年 韓宣子聘魯 見易象與魯春秋曰 周禮盡在魯矣하니 其知之者 代不乏人注+其知之者 代不乏人:知禮爲周禮者如二子 尙多有之이라
至周禍之說注+至周禍之說:至於以蠻夷猾夏而爲周禍者하야는 則春秋二百四十二年之間 諸侯皆不能知注+則春秋二百四十二年之間 諸侯皆不能知:無人道及此語하고 知之者成風一人而已注+知之者成風一人而已:獨有成風言此
平王之東注+平王之東:周平王 以犬戎之亂 東遷於洛 降於列國注+降於列國:其詩爲王國風 儕於諸侯之列하야 國異政하고 家殊俗注+國異政 家殊俗:國自爲政 家自爲俗하야 各私其私注+各私其私:無復之說하고 各戚其戚하야 燕不謀楚之難하고 齊不預秦之憂하니라
曰天禍晉國者注+曰天禍晉國者:成公十三年 晉侯使呂相 絶秦曰 天禍晉國 文公如齊 恵公如秦 注+晉人自言也:自言其爲晉之禍 注+未聞在晉而言周禍也:晉自言晉 不知爲周之晉 天禍鄭國者注+天禍鄭國者:襄公九年 公子騑曰 天禍鄭國 使介居二大國之間 鄭人自言也注+鄭人自言也:自言其爲鄭之禍 注+未聞在鄭而言周禍也:鄭自言鄭 不知爲周之鄭
成風請救須句하니 自常情言之 必以邾旣滅須句 勢將逼魯注+勢將逼魯:逼 近也 實魯之禍注+實魯之禍:他人言之 必如此 庶幾可動僖公之聽注+庶幾可動僖公之聽:禍切於魯故也이어늘
今乃置魯而專言周禍注+今乃置魯而專言周禍:成風不曰魯而曰周禍하니 周自有禍 何預於魯耶리오 成風之意則有在矣注+成風之意則有在矣:爲成風解說其意
通天下皆周也注+通天下皆周也:周爲天子 天下皆周所有 非魯之魯 乃周之魯也 須句 非須句之須句 乃周之須句也注+魯……乃周之須句也:發得十分精神
邾爲不道하야 翦滅周之須句注+邾爲不道 翦滅周之須句:諸侯相滅 不道之甚하니 則爲周之魯者 安得不被髮纓冠而亟救之耶注+則爲周之魯者 安得不被髮纓冠而亟救之耶:魯爲周救須句 議論正大 孟子曰 今有同室之人闘者 救之 雖被髮纓冠往救之可也
諸侯視王室如家하고 而國則其身也 以家禍爲不切於身者 是謂大不孝
以國禍爲不切於身者 是謂大不忠이니 成風之言 孰謂其緩而不切哉
嗚呼注+嗚呼:轉結尾意 文武周公旣沒數百年注+文武周公旣沒數百年:言去聖人已遠이로되 而一女子之所見 猶非周時諸侯之所能及注+而一女子之所見 猶非周時諸侯之所能及:成風獨能言周禍之語하니 吾是以知周之所以盛注+吾是以知周之所以盛:以見文武周公之化不可忘하고
晉楚齊秦以降數十國注+晉楚齊秦以降數十國:言大國尙多 合諸侯之所見이라도 反出一女子之下注+合諸侯之所見 反出一女子之下:無一人能道成風之語하니 吾是以知周之所以衰注+吾是以知周之所以衰:以見文武周公之化不可恃호라 君子未嘗不歎息於斯焉注+君子未嘗不歎息於斯焉:意味深長이로라


成風須句를 봉해줄 것을 청하다
僖公 21년, 宿須句顓臾風姓이다. 실제로 太皥有濟의 제사를 맡아 諸夏에 복종하여 섬겼다. 邾人須句를 멸하자 須句子나라로 도망해 왔으니 成風에 의지하기 위해서이다.
成風이 그를 위해 僖公에게 말하였다. “明祀를 높이고 小國을 보호하는 것은 나라의 이고, 蠻夷諸夏를 어지럽히는 것은 나라의 이니, 만약 須句를 봉해준다면 이는 太皥有濟를 높여 제사를 修行하고 를 푸는 일이오.”
이 글은 文王武王의 은택이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스며든 것을 말하였다. 成風은 한낱 부녀자였지만 말을 할 때 나라 왕조를 버리지 않아 를 ‘나라의 ’라고 하고 를 ‘나라의 ’라고 하였다.
나라의 를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아는 것이지만, 〈成風은〉 邾人須句를 멸하였는데 須句라고 하지 않고, 나라의 라고도 하지 않고서,
나라의 라고 하였으니, 春秋時代에 이 말을 아는 사람은 成風 한 사람뿐이다.
先王의 은택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어注+이 구절이 이 한 편의 主意이다. 비록 세대가 내려와서 가 흩어지는 데 이르렀어도注+春秋時代를 이른다. 오히려 서로 더불어 傳誦하며 해설하고 노래하고 읊조림이 쇠퇴하지 않는다.注+誦說議論에 나타남을 이르고, 歌詠篇章을 서술함을 이른다.
學士大夫들의 담론에 나오는 것은 바로 禮敎遺風[]이고,注+이는 先王이 남겨준 교화라는 말이다. 舊臣[故家]과 野老[遺老]의 전술함에서 나오는 것은 풍속의 유풍이며,注+이는 先王이 남겨준 풍속이라는 말이다. 농부와 촌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정치의 餘澤이다.注+이는 先王이 남겨준 다스림이라는 말이다. ○主意는 부녀자(성풍)가 先王를 잊지 않은 것을 말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먼저 세 가지를 서술하여 인용한 것이다.
그 예교를 익히고注+學士大夫들은 先王이 남겨준 가르침을 익힌다는 말이다. 그 풍속에 점차 물들고注+舊臣野老先王이 남겨준 풍속에 점차 물든다는 말이다. 그 정치를 사모하여注+농부나 촌부는 先王이 남겨준 정치를 사모한다는 말이다. 우러러 바라고 그리워해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는 것注+先王의 도를 잊지 못한다는 말이다. 또한 그 형세의 당연함이다.注+先王의 은택이 사람들에게 깊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부녀자(成風)’로 말하면注+成風을 형용한 것이다. 발이 담이나 병풍을 넘지 않았고 시선이 마루나 섬돌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으며, 베를 짜는 일과 음식을 만드는 일만을 직무로 삼았으니, 그것을 先王에 비교하면 과연 어떠한가?注+문장의 기세에 抑揚起伏이 있다.
일찍이 ≪詩經≫의 變風을 살펴보니,注+邶風〉부터 〈豳風〉에 이르기까지 13國風이 모두 變風이다. 흔히 부녀자의 손에서 나온 작품이 많았다.注+본편에 등장하는 成風이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가 를 지은 일을 인용한 것이다.
綠衣〉는 莊姜이고,注+邶風〉의 〈綠衣〉는 나라 荘姜이 자기 신세를 상심한 시이다. 荘姜 荘公夫人이다.泉水〉는 나라 여인의 이며,注+위와 같다. 〈泉水〉는 나라 여인이 歸寧하기를 생각하는 시이다.柏舟〉는 共姜이고,注+鄘風〉의 〈柏舟〉는 共姜이 스스로 맹세하는 시이다. 共姜나라 世子 共伯이다.載馳〉는 穆公夫人이 지은 이다.注+위와 같다. 〈載馳〉는 穆公夫人이 지은 시이다. 穆公夫人 文公의 누이이다.
그 시의 말이 忠厚하고 雅正하여注+위의 네 를 총결하여 말한 것이다. 근심하면서도 哀傷으로 흐르지 않고注+근심하는 자의 詩語哀傷에 이르기 쉬운데, 〈이 는〉 애상에 이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강직하면서도 怨怒로 흐르지 않아,注+강직한 자의 詩語怨怒에 이르기 쉬운데, 〈이 는〉 원노에 이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性情의 바름을 얻었음을 말한다. 文王武王周公이 남긴 和氣어린 은택이 그 속에 담겼다.注+起句의 말에 호응한다. 이는 누가 그들을 開導하고 누가 그들을 引導한 것인가?注+물음을 가설한 것이다.
나는 이로 인해 문왕‧무왕‧주공의 교화가注+’자로써 斷案한 것이다. 이미[] 禮敎‧풍속‧정치 밖에서 말없이 행해졌다는 것을 알겠다.注+이 한 편의 主意가 여기에 있다. 또 앞의 ‘’, ‘’, ‘’ 3자에 호응한다.
그렇지 않다면 부녀자(성풍)가 어찌 告誡하는 말로 언급하고 防範하는 예법으로 이끌었겠는가?注+號令으로 告戒할 수 없고 法制防犯할 수 없는데, 〈成風은 그렇지 않았으니〉 선왕의 교화가 미친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말이다.
成周의 은택이 부녀자까지 나라를 잊지 못하게 만들었으니注+成風이 ‘나라의 ’라 하고 ‘나라의 ’라고 말한 뜻을 끌어다 넣은 것이다. 이것은 문왕‧무왕‧주공이 교화에 공력을 들인 것이 심원해서이다.注+敎化에 공력을 들인 것이 深大하다는 말이다. 이것이 어찌 일조일석에 이루어진 것이겠는가?注+’자의 의미를 발명하였다.
成風須句를 구원하기를 요청한 것은注+讀音(구)이다.〉 成風僖公의 어머니이다. 이고 시호는 이다. 須句는 그녀의 친정나라이다. 친속이기 때문에 그리 말한 것뿐이니注+成風祖國나라에게 멸망당하기 때문에 구원을 요청한 것이다. 이는 인지상정이므로 심각하게 말할 것이 못 된다.注+는 말함이다. 친족을 위하여 구원을 요청한 것이니 이는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 말에 “明祀를 높이고注+밝은 덕을 지녔던 분을 존숭해 제사한다는 것이니 太皥有濟를 가리킨다. 小國을 보호하는 것은注+약소국을 보존한다는 것이니 須句를 가리킨다. 나라의 이고,注+이 두 가지는 나라 왕실이 행하는 라는 말이다. 蠻夷諸夏를 어지럽히는 것은注+蠻夷의 나라로서 諸夏를 어지럽혔다는 말이다. 蠻夷나라를 가리킨다. 나라의 이다.”注+이것은 나라 왕실의 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成風은 한낱 여자인데도 창졸간의 말이 나라 왕실을 버리지 않았으니,注+成風은〉 나라의 라고 하였고, 나라의 라고 하였다.
文王武王周公이 남긴 교화가注+앞글의 ‘’자에 호응한다. 그 마음속에 스며들어注+告戒하는 말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저도 모르게 그 뜻을 통달한 것이 아니라면注+방범하는 예법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찌 여기에 이를 수 있겠는가?注+성인의 교화에 감동받음이 깊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심원하다. 나라 은택의 장구함이여!注+主意에 조응함을 취한 것이다.
내가 일찍이 成風이 ‘나라의 ’를 말한 것에 대해 그 근원을 찾아보니注+이 이하의 글을 ‘나라의 ’로 끌어내어 의론을 세웠다. 仲孫湫注+春秋左氏傳閔公 元年나라 仲孫湫가 말하기를 “나라는 나라의 를 버리지 않고 있으니, 아직 〈우리가 군대를〉 움직일 때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韓宣子注+春秋左氏傳昭公 2년에 韓宣子나라에 빙문할 때 ≪易象≫과 ≪魯春秋≫를 보고서 말하기를 “나라의 가 모두 나라에 있구나.”라고 하였다. 등이 말한 것과 같았다. 이는 이것을 안 자가 대대로 끊이지 않은 것이다.注+仲孫湫韓宣子처럼 나라의 예임을 아는 자들이 아직 많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라의 ’라고 한 말에 대해서는注+蠻夷諸夏를 어지럽히는 것으로써 나라의 로 여긴 것에 대해서’라는 말이다. 춘추 242년간의 諸侯들이 모두 알지 못하였고,注+이렇게 언급한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다. 안 자는 成風 한 사람뿐이었다.注+成風만이 이렇게 언급하였다는 말이다.
平王東遷한 뒤에는注+ 平王犬戎의 난리로 인해 동쪽의 洛邑으로 遷都하였다. 王室이 쇠미해져서〉 列國으로 떨어졌다.注+나라의 가 〈王風〉이 되어 諸侯의 반열에 함께 끼게 된 것을 말한다. 〈이때는〉 나라마다 정치가 다르고 집집마다 풍속이 달라서注+나라마다 각자의 정치가 있고, 집집마다 각자의 풍속이 있다는 말이다. 각각 제 편만을 편애하고注+다시 王大一統이란 말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제 친척만을 친애하여, 나라는 나라의 재난을 구원하기를 꾀하지 않고 나라는 나라의 우환에 관여하지 않았다.
‘하늘이 나라에 를 내렸다.’는 것은注+春秋左氏傳成公 13년에 晉侯呂相나라에 보내어 絶交通告하며 말하게 하기를 “하늘이 나라에 를 내려 文公나라로 出奔하고 惠公나라로 出奔하였습니다.”라고 한 것을 이른다. 晉人이 스스로 〈나라의 를〉 말한 것이니注+나라 사람이〉 스스로 그것이 나라 라고 말한 것이다. 나라에 있으면서 나라의 를 말했다는 것은 듣지 못했으며,注+나라는 스스로 이라 말하였고, 나라의 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는 말이다. ‘하늘이 나라에 를 내렸다.’는 것은注+春秋左氏傳襄公 9년에 公子騑가 말하기를 “하늘이 나라에 를 내려 두 大國 사이에 끼어 있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鄭人이 스스로 〈나라의 를〉 말한 것이니注+나라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나라의 라고 말한 것이다. 나라에 있으면서 나라의 를 말했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다.注+나라는 스스로 이라 말하였고, 나라의 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는 말이다.
成風이 〈 僖公에게〉 須句를 구원하기를 청하였으니, 일반적인 정서로 말하면 반드시 ‘나라가 須句를 멸망시킨 뒤에는 그 형세를 이용해 나라를 핍박할 것이니注+은 가까이 다가감이다. 실제로 나라의 가 될 것입니다.’注+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반드시 이와 같이 말했을 것이라는 말이다.라는 말로 僖公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랐을 것이다.注+나라에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라는 버려두고 오로지 나라의 라고 말하였으니注+成風나라라고 말하지 않고 나라의 라고 말하였다. 나라에 固有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成風의 말에는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注+成風을 위하여 그 뜻을 해설한 것이다.
온 천하가 모두 나라이니注+나라는 天子이니 天下가 모두 나라의 소유라는 말이다. 나라는 나라의 나라가 아니고 곧 나라의 나라이며, 須句나라는 須句나라의 須句나라가 아니라 곧 나라의 須句나라이다.注+정신을 십분 발휘하였다.
나라가 無道하여 나라의 須句나라를 침략하여 격멸하였으니,注+諸侯가 서로 격멸하였으니 무도함이 심하다. 나라의 나라가 된 자가 어찌 머리를 풀어 헤친 채 갓끈을 매고서 급히 달려가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注+나라가 나라를 위하여 須句를 구원한 것은 議論이 정대하다. ≪孟子≫ 〈離婁 〉에 “지금 한 집안 사람 중에 싸우는 자가 있다면 그를 구원하되, 머리를 풀어 헤친 채 갓끈만 매고 달려가 구원하여도 괜찮다.” 하였다.
諸侯王室을 제 집처럼 보고 列國을 제 몸처럼 여긴다. 집안의 를 제 몸에 절실하게 여기지 않는 자를 큰 不孝라고 하고,
나라의 를 제 몸에 절실하게 여기지 않는 자를 큰 不忠이라고 하니, 成風의 말을 누가 느슨하여 절실하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아,注+結尾의 뜻을 전환하였다. 文王武王周公이 죽은 지 이미 수백 년이 되었으되注+성인과의 거리가 이미 멀다는 말이다. 한 여자의 소견이 오히려 나라 때의 제후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었으니注+成風만이 홀로 ‘나라의 ’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로써 나라가 번성한 이유를 알았고,注+文王武王周公의 교화를 잊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는 말이다.
이하 수십 나라의注+大國이 여전히 많았다는 말이다. 諸侯들의 소견을 합해도 도리어 한 여자만 못하였으니注+成風처럼 말할 수 있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로써 나라가 쇠퇴한 이유를 알았다.注+文王武王周公의 교화를 믿을 수 없음을 나타낸 말이다. 君子는 이에 대해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다.注+意味深長하다.


역주
역주1 實司太皥與有濟之祀 : 司는 主管하는 것이다. 太皥는 伏羲(風姓)이다. 네 나라는 모두 伏羲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 제사를 주관한 것이다. 任은 지금의 任城縣이다. 顓臾는 泰山 남쪽과 武陽縣 동북쪽에 있고, 須句는 東平 須昌縣 서북쪽에 있다. 네 나라의 封地가 濟水에 가깝기 때문에 대대로 濟水에 제사를 지냈다. 濟는 濟水이다.〈杜注〉
역주2 以服事諸夏 : 諸夏와 함께 朝聘, 征伐 등의 일을 행한 것이다.〈杜注〉
역주3 邾人滅須句 : 須句는 僖公의 어머니 成風의 親家이다.〈杜注〉
역주4 崇明祀保小寡 : 明祀는 太皥와 有濟의 제사이다. 保는 안정시키는 것이다.〈杜注〉
역주5 蠻夷猾夏 周禍也 : 여기서는 邾나라가 須句를 멸하자 邾나라를 蠻夷라고 하였고, 昭公 23년 傳에 叔孫豹가 ‘邾나라는 또 夷이다.’라고 하였으니, 邾나라가 비록 曹姓의 나라이지만 그 나라가 諸戎과 인접해 夷禮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표현해 蠻夷라고 말한 것이다. 滑夏는 諸夏를 어지럽히는 것이다.〈杜注〉 諸侯는 모두 周나라의 신하이기 때문에 周나라 王室의 禍라고 한 것이다.〈附注〉
역주6 是崇皥濟而脩祀紓禍也 : 紓는 푸는 것이다. 明年에 邾나라를 친 傳의 배경이다.〈杜注〉
역주7 (以)[知] : 저본에는 ‘以’로 되어 있으나, 본문의 ‘其知之者 代不乏人’에 의거하여 ‘知’로 바로잡았다.
역주8 (奧)[階] : 저본에는 ‘奧’로 되어 있으나, 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階’로 바로잡았다.
역주9 (柳楊)[抑揚] : 저본에는 ‘柳楊’으로 되어 있으나, ‘抑揚’의 오자인 듯하므로 ‘抑揚’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防範 : 범위를 넘지 못하도록 방지함이니, 곧 법도를 넘지 않도록 禮로 규제함을 이른다.
역주11 成周 : 西周 때의 東都였던 ‘洛邑’의 地名인데, 周公이 成王을 도와 周나라가 흥성했던 때를 일컫는다.
역주12 (世)[母] : 저본에는 ‘世’로 되어 있으나 문맥을 살펴 ‘母’로 바로잡았다.
역주13 王大一統 : 천명을 받은 군왕이 즉위하는 해를 천하 사람들이 모두 받들어 元年으로 삼는 것을 이른다.(≪春秋公羊傳≫ 隱公 元年)
역주14 晉人自言 : 四庫全書本과 三民書局本에는 ‘言’자 뒤에 ‘晉禍’ 두 자가 있다.
역주15 未聞在晉而言周禍 : 四庫全書本과 三民書局本에는 ‘禍’자 뒤에 ‘者’자가 있다.
역주16 天禍鄭國者……未聞在鄭而言周禍也 : 四庫全書本와 三民書局本에는 “曰是衞之禍者 衞人自言衛禍也 未聞在衛而言周禍者也(이것이 衛나라의 禍라고 한 것은 衛人이 스스로 衛나라의 禍라고 말한 것이니, 衛나라에 있으면서 周나라의 禍라고 말한 자가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로 되어 있다.

동래박의(3)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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