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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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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추자鄒子양효왕梁孝王에게 권고하였다.
伊尹로되 湯立以爲三公하야 天下之治太平하고 管仲之狗盜也 天下之庸夫也로되 齊桓公得之以爲仲父하니이다
이윤伊尹은 원래 유신씨有莘氏잉신媵臣이었으나 탕왕湯王이 등용하여 삼공三公으로 삼자 천하가 태평하게 다스려졌고, 관중管仲은 원래 성양成陽의 좀도둑이니 천하의 가장 용렬한 사내였으나 제 환공齊 桓公이 얻어서 중부仲父로 삼았습니다.
百里奚 於路라가 傳賣五羊之皮로되 秦穆公委之以政하고 甯戚 叩轅行歌於康之衢한대 桓公任以國하니이다
백리해百里奚는 길에 다니며 밥을 빌어먹다가 다섯 마리 양가죽에 몸이 팔렸으나 진 목공秦 穆公이 정치를 맡겼고, 영척甯戚은 원래 수레를 몰던 사람인데 수레끌채를 두드리며 큰 거리를 가면서 노래하자 제 환공齊 桓公이 나라를 맡겼습니다.
호되 而卒相中山하고 折脅拉齒於魏로되 而後爲應侯하니이다
사마희司馬喜나라에서 무릎뼈가 잘리는 형벌을 받았으나 마침내 중산국中山國의 재상이 되었고, 범저范雎나라에서 갈비뼈와 이가 부러지는 박해를 받았으나 뒤에 응후應侯가 되었습니다.
太公望 故老婦之出夫也 로되 年七十而相周하고 九十而封齊하니이다
태공망太公望은 원래 늙은 부인에게 쫓겨난 사내이고 조가朝歌에서 백정의 일을 도왔으며 극진棘津에서 손님이나 맞이하는 시종侍從이었으나 나이 일흔에 나라의 재상이 되고 아흔에 나라에 봉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시경詩經》에 ‘끊어지지 않고 뻗은 칡덩굴, 넓은 들판에 나 있구나.
良工得之하야 以爲絺紵로다
좋은 직공織工 이를 얻어, 갈포葛布마포麻布를 만들었지.
良工不得이면 枯死於野라하니이다
좋은 직공이 이를 얻지 않았다면, 들에서 말라 죽었을 거야.’라 하였습니다.
此七士者 不遇明君聖主런들 幾行乞丐라가 枯死於中野리니 譬猶綿綿之葛矣니이다
위에서 말한 일곱 사람이 명철明哲하고 거룩한 임금을 만나지 못했던들 아마 길에서 밥을 빌어먹다가 들판에서 말라 죽었을 것이니, 비유하자면 ‘끊어지지 않고 뻗은 칡덩굴’과 같았을 것입니다.”
역주
역주1 鄒子說梁王 : 鄒子는 漢나라 臨淄 사람 鄒陽이다. 梁王은 漢 文帝의 次子 梁孝王 劉武이다. 추양이 처음 吳王에게 벼슬하면서 上書하여 오왕에게 諫하였으나 듣지 않자 양효왕에게 가 上客이 되었다. 뒤에 羊勝 등의 참소를 받고 옥에 갇히자 옥중에서 양왕에게 상서하여 진상을 설명하니 양효왕이 감동하여 석방하고 그대로 상객으로 삼았다. 《史記 魯仲連鄒陽列傳》‧《漢書 賈鄒梅路傳》
역주2 有莘氏 : 중국 고대의 部族 이름이다.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다가 商代에 지금의 陝西省 合陽縣 지역에 定住하여 有莘國이 되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史記 殷本紀》
역주3 媵臣 : 시집가는 여자를 따라가는 奴僕이다.
역주4 成(陰)[陽] : ‘陰’은 ‘陽’의 誤字로, 成陽은 지금의 山東省 荷澤市 지역에 있었던 옛 지명이라고 한다.
역주5 (道之)[乞食] : 저본에는 ‘道之’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太平御覽》에 따라 ‘乞食’으로 고쳤고, 《說苑校證》에는 “《文選》 〈上梁王書〉에 ‘百里奚乞食於道路’로 되어 있고, 李善 注에 本書를 인용하면서 역시 ‘乞食’으로 썼다.” 한 것에 의거하여 ‘乞食’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將車人 : 수레를 모는 사람이다.
역주7 〈之〉 : 저본에는 ‘之’가 없으나, 《群書拾補》에 《太平御覽》을 따라 ‘之’자를 보충하였고, 《說苑校證》에는 “《文選》 李善 注의 인용에도 ‘之’자가 있다.”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8 司馬喜 髕脚於宋 : 司馬喜는 전국시대 사람이다. 처음에 宋나라에서 벼슬하였는데 무릎뼈를 잘라내는 형벌을 당하자 中山國에 가 세 차례 國相이 되었다. ‘髕’은 ‘臏’과 同字로 무릎뼈를 잘라내는 酷刑이다. 《戰國策 中山策》‧《史記 鄒陽列傳》
역주9 范雎(저) : 전국시대 魏나라 사람으로, 字는 叔이다. 저명한 정치가이며 군사전략가이다. 商鞅‧張儀‧李斯와 함께 先後로 秦나라 丞相이 되어 秦나라를 강성하게 하여 천하를 통일하는 데 기초를 다졌다. ‘雎’는 ‘且(저)’, 또는 ‘睢(수)’로도 쓴다.
역주10 朝家之屠佐 : 朝家는 商나라 때의 國都이다. 지금의 河南省 淇縣에 있었다. 屠佐는 白丁의 조수이다.
역주11 棘津迎客之舍人 : 棘津은 지금의 河南省 滑縣 남서쪽에 있던 옛 黃河의 나루 이름이다. 舍人은 전국시대와 漢나라 초기에 王公과 貴族의 개인 집에 두었던 侍從이다. 여기서는 고용된 일꾼으로 쓰였다.
역주12 詩曰……枯死於野 : 현재의 《詩經》에는 없으니 逸詩인 듯하다.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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