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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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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1. 衣韋衣하고 而朝齊景公한대 齊景公曰 此君子之服也 小人之服也
임기林旣가 가죽옷을 입고 제 경공齊 景公조현朝見하자, 제 경공이 물었다. “이 옷은 군자君子의 복장이오? 소인小人의 복장이오?”
林旣逡巡而作色曰 夫服事何足以士行乎잇가
임기는 뒤로 물러나 안색을 바꾸면서 말했다. “복장을 가지고 어떻게 선비의 품행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昔者 荊爲長劒危冠이라도 出焉하고 齊短衣而이라도 管仲出焉하고 越文身鬋髮이라도 出焉하고 西戎左衽而이라도 亦出焉하니이다
옛날 ()나라는 긴 을 차고 높은 을 썼으나 영윤令尹 자서子西가 나왔고, 나라는 짧은 옷에 수엽관遂偞冠을 썼지만 관중管仲습붕隰朋이 나왔으며, 나라는 몸에 문신을 하고 머리를 짧게 잘랐으나 범려范蠡대부大夫 이 나왔고, 서융西戎은 앞섶을 왼쪽으로 여미고 몽치 같은 상투를 하였으나 유여由余가 또 이곳에서 나왔습니다.
卽如君言인댄 衣狗裘者 當犬吠 衣羊裘者 當羊鳴이니이다 且君衣狐裘而朝하시니 意者컨대 得無爲變乎잇가
만일 임금께서 하신 말씀과 같다면 개가죽 갖옷을 입은 사람은 응당 개처럼 짖어야 하고, 양가죽 갖옷을 입은 사람은 응당 양처럼 울어야 합니다. 또 임금께서 여우 갖옷을 입고 조회를 보시니, 아마도 그렇게 변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景公曰 子眞爲勇悍矣로다 今未嘗見子之奇辯也로라 一隣之鬪也 千乘之勝也
경공이 말했다. “그대는 참으로 용감하고 사납구나! 나는 지금 그대가 말한 것 같은 기이한 변론은 듣지 못했다. 〈그대의 용감함과 사나움은〉 이웃 사람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냐? 천승千乘국군國君과 싸워 이기는 것이냐?”
林旣曰 不知君之所謂者何也로소이다 夫登高臨危하야 而目不眴하고 而足不陵者 此工匠之勇悍也 入深淵하야 刺蛟龍하고 抱黿鼉而出者 此漁夫之勇悍也 入深山하야 刺虎豹하고 抱熊羆而出者 此獵夫之勇悍也 不難斷頭裂腹하고 暴骨流血中野者 此武夫之勇悍也니이다
임기가 말했다. “임금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높은 데 올라 위험한 곳에 있으면서도 눈이 어지럽지 않고 다리가 떨리지 않는 것은 바로 공장工匠의 용감함과 사나움이고, 깊은 못 속에 들어가 교룡蛟龍을 찔러 죽이고 자라와 악어를 잡아 나오는 것은 어부漁夫의 용감함과 사나움이며, 깊은 산중에 들어가 범과 표범을 찔러 죽이고 곰과 말곰을 잡아오는 것은 사냥꾼의 용감함과 사나움이고, 머리가 잘리고 배가 갈라지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고 들판에 해골이 나뒹굴고 피를 흘리는 것은 무사武士의 용감함과 사나움입니다.
今臣居廣廷하야 作色端辯하야 以犯主君之怒하니 前雖有之賞이라도 未爲之動也 後雖有斧質之威라도 未爲之恐也 此旣之所以爲勇悍也니이다
지금 이 넓은 조정에 있으면서 안색을 엄숙히 하고 말을 바르게 하여 주군主君의 노여움을 범하고 있으니, 제 앞에 헌거軒車를 타는 상을 내리더라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제 뒤에 도끼와 모탕으로 형벌하는 위협이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용감하고 사나운 이유입니다.”
역주
역주1 林旣 : 춘추시대 齊나라 사람으로, 행적은 미상이다.
역주2 (端)[揣] : 저본에는 ‘端’으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太平御覽》 권437에 이 부분의 내용을 《新序》를 인용하면서 ‘揣’자로 썼고, 권464에도 ‘揣’자로 썼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揣’로 바로잡았다.
역주3 令尹子西 : 令尹은 춘추전국시대 楚나라의 執政大臣이다. 子西는 춘추 말기 초나라 영윤 公子 申으로, 子西는 字이다. 楚 平王의 庶子, 楚 昭王의 兄으로 영윤이 되어 집정하였으나 뒤에 太子 建의 아들 白公 勝에게 피살되었다. 《春秋左氏傳 昭公 26‧30년, 定公 5년, 哀公 1‧6‧13‧15‧16년》‧《史記 楚世家》
역주4 遂偞(엽)之冠 : 일설에는 가볍고 화려하면서 좋은 冠이라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群書拾補》에는 “《太平御覽》에 ‘遂之溝冠’으로 되어 있다.” 하였고, 《說苑校證》에는 “《太平御覽》 권437에 ‘遂溝之冠’으로 되어 있다.” 하였다.
역주5 隰朋 : 본서 권1 〈君道〉 19의 주3) 참고.
역주6 范蠡大夫種 : 范蠡는 춘추 말기 越나라 大夫로, 원래는 楚나라 사람이다. 越王 句踐을 도와 吳나라를 멸망시킨 후 齊나라로 가서 鴟夷子皮라 일컬었고, 陶(지금의 山東省 定陶縣 서북쪽)에 들어가 陶朱公이라 改名하고 商業으로 거부가 되었다. 《國語 越語 上‧下》‧《史記 貨殖列傳》 大夫種은 본서 권9 〈正諫〉 20의 주8) 참고.
역주7 椎結 : 머리를 위로 올려 몽치 모양으로 묶는 상투의 한 가지이다. 椎髻라고도 한다.
역주8 由余 : 본서 권8 〈尊賢〉 02의 주7) 참고.
역주9 乘軒 : 大夫가 타는 수레를 탄다는 뜻으로, 곧 높은 벼슬에 오름을 이른다.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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