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路曰 昔者
에 管子說
에 襄公不說
하니 是不辯也
요 欲立
而不能
하니 是無能也
요 家殘於齊而無憂色
하니 是不慈也
요 호되 無慙色
하니 是無愧也
요 하니 是不貞也
요 死之
어늘 管仲不死
하니 是無仁也
어늘 夫子何以大之
니잇고
子曰 管仲說襄公에 襄公不說은 管仲非不辯也라 襄公不知說也요 欲立子糾而不能은 非無能也라 不遇時也요 家殘於齊而無憂色은 非不慈也라 知命也요 桎梏居檻車而無慙色은 非無愧也라 自裁也요 事所射之君은 非不貞也라 知權也요 召忽死之어늘 管仲不死는 非無仁也라 召忽者는 人臣之材也니 不死則三軍之虜也요 死之則名聞天下어늘 夫何爲不死哉리오
管子者
는 天子之佐
요 諸侯之相也
라 死之則不免爲溝中之
이요 不死則功復用於天下
니 夫何爲死之哉
아 由
아 汝不知也
니라
자로子路가 공자孔子께 여쭈었다. “관중管仲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로가 다시 말했다. “옛날 관자管子가 양공襄公에게 유세했을 때 양공이 즐거워하지 않았으니 이는 말재주가 없는 것이고, 공자 규公子 糾를 임금으로 세우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으니 이는 능력이 없는 것이며, 집안사람이 제齊나라에서 해를 입었는데도 근심하는 기색이 없었으니 이는 자애롭지 않은 것이고, 차꼬와 수갑을 차고 함거檻車에 갇혔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으니 이는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며, 자기가 활을 쏘아 죽이려던 임금을 섬겼으니 이는 충정忠貞하지 않은 것이고, 소홀召忽은 따라 죽었는데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이는 인덕仁德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어찌 대인이라고 하십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관중管仲이 양공에게 유세했을 때 양공이 즐거워하지 않은 것은 관중의 말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양공이 밝지 못하여 그 말이 즐거운지를 몰랐기 때문이고, 공자 규를 세우려다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집안사람이 제齊나라에서 해를 입었는데도 근심하는 기색이 없었던 것은 자애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천명天命이 이와 같음을 알았기 때문이고, 차꼬와 수갑을 차고 함거檻車에 갇혔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던 것은 부끄러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제했기 때문이고, 자기가 활을 쏘아 죽이려던 임금을 섬긴 것은 충정忠貞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권변權變을 알았기 때문이고, 소홀은 따라 죽었는데 관중이 죽지 않은 것은 인덕仁德이 없어서가 아니라 소홀은 남의 신하가 될 재목에 불과하니 따라 죽지 않으면 삼군三軍의 포로가 되고 죽으면 천하에 이름이 날 것이니, 어찌 죽지 않겠느냐.
관중은 천자天子를 보필할 재목이고, 제후諸侯의 재상이 될 인물이다. 죽으면 구렁텅이에서 썩는 해골 신세를 면치 못하고, 죽지 않으면 천하에 공업功業을 다시 세울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죽겠느냐. 중유仲由(자로)야, 너는 그 도리를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