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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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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3. 春秋曰 이라하야늘 傳曰
춘추春秋》에 “임신일壬申日노 정공魯 定公고침高寢에서 훙서薨逝했다.”라고 하였는데, 《공양전公羊傳》에 “고침이란 무엇인가? 고침은 정침正寢이다.”라 하였다.
曷爲或言高寢하고 或言
어째서 고침이라 말하기도 하고, 노침路寢이라 말하기도 하는가?
曰 諸侯正寢三이니 一曰高寢이요 二曰左路寢이요 三曰右路寢이니라
제후諸侯는 세 개의 전침이 있으니, 첫째는 고침이라 하고 둘째는 좌로침左路寢이라 하며, 셋째는 우로침右路寢이라고 한다.
高寢者 始封君之寢也 二路寢者 之君寢也 其二何
고침은 처음 제후로 봉해진 군주君主침궁寢宮이고, 두 노침은 왕위를 계승한 군주의 침궁이다. 노침을 두 개 둔 것은 무엇 때문인가?
曰 子不居父之寢이라 故二寢이니라 繼體君 世世不可居高祖之寢이라 故有高寢하야 名曰高也
자식은 아버지의 침궁에 거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두 개의 노침을 두는 것이다. 왕위를 계승한 군주는 대대로 고조高祖(처음 제후가 된 시조始祖)의 침궁에는 거처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고침을 두어서 라고 일컫는 것이다.
路寢其立奈何 高寢立中하고 路寢左右니라
노침은 어떤 형식으로 건립하는가? 고침은 중앙에 건립하고, 노침은 왼쪽과 오른쪽에 건립한다.
春秋曰 라하야늘 傳曰
춘추春秋》에 “천왕天王(천자天子)이 성주成周로 들어갔다.”라고 하였는데, 《공양전公羊傳》에 “성주는 어떤 곳인가? 동주東周이다.”라고 하였다.
然則天子之寢奈何 曰 亦三이니 繼體守文之君之寢이니 曰左右之路寢이니라
그렇다면 천자의 침궁은 어떤 형식으로 되었는가? 이곳도 셋인데, 승명承明왕위王位를 계승하여 선왕先王법도法度를 준수하는 군주의 침궁이니, 고침의 왼쪽과 오른쪽에 건립한 노침이라는 것이다.
謂之承明何 曰承乎之後者也 故天子諸侯三寢立而名實正하고 父子之義章하며 尊卑之事別하고 大小之德異矣니라
승명이라 부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명당明堂의 뒤쪽에 맞닿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자와 제후는 세 침궁을 건립하여야 명분과 실제가 바로잡히고, 부자父子의 도리가 드러나며, 존비尊卑의 일이 구별되고, 크고 작은 덕행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역주
역주1 壬申 公薨于高寢 : 《春秋》 定公 15년조에 보인다. 壬申은 정공 15년 5월 22일이다. 高寢을 《春秋》에는 路寢으로 썼는데, 古代 天子와 諸侯의 세 寢宮 중의 하나이다.
역주2 高寢者何 正寢 : 《春秋公羊傳》 定公 15년조에 보인다. 高寢을 《春秋公羊傳》에는 路寢으로 썼다. 正寢은 곧 路寢으로, 古代 天子와 諸侯의 政事를 처리하던 宮이다. 《春秋公羊傳 莊公 32년》
역주3 路寢 : 古代 天子와 諸侯의 正寢이다. 《詩經 魯頌 閟宮》
역주4 繼體 : 嫡子가 帝位를 계승하는 일을 말한다. 《史記 外戚世家》
역주5 〈立〉 : 저본에는 없으나, 《說苑校證》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6 天王入于成周 : 《春秋》 昭公 26년조에 보인다. 成周는 지명으로, 지금의 河南省 洛陽市 東郊 지역에 있었다. 西周 초기에 周公이 武庚의 반란을 평정하고 東都 洛邑을 營建하였다. 《書經 周書 洛誥》
역주7 成周者何 東周也 : 《春秋公羊傳》 昭公 26년조에 보인다.
역주8 承明 : 古代 天子의 左右에 있는 路寢의 이름이다. 明堂의 뒤쪽에 맞닿아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주9 明堂 : 古代 帝王이 政敎를 밝게 펴던 곳이다. 朝會‧祭祀‧慶祝‧인재선발‧養老‧敎學 등의 큰 典禮를 모두 이곳에서 거행했다고 한다. 《孟子 梁惠王 下》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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