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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附註

심경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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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范氏
范氏心箴曰
茫茫俯仰無垠이라
人於其間 有身하니 是身之微 太倉로되 參爲三才 曰惟心爾
往古來今 孰無此心이리오마는 하야 乃獸乃禽이라
惟口耳目 手足動靜 하야 爲厥心病이라
一心之微 衆欲攻之하니 嗚呼
幾希로다
하나니 天君泰然하야 百體從令하나니라
原注
[附註]
○ 問 范箴 不知范從誰學이닛고 朱子曰
不曾從人이라
但他自見得到하여 說得此件物事 如此好어늘 向見呂伯恭하니 甚忽之러라
이닛고 曰 正爲少見有人 能說得如此者라하시니 니라
原注
雲峯胡氏曰
卽思之謂 而敬 卽存誠之方也
一誠 足以銷萬僞 一敬 足以敵千邪 所謂先立乎其大者 莫切於此니라
○ [按] 朱子旣有取于范氏之箴하고 又爲觀心說하야 以訂釋氏之繆하시니 尤有功于聖學이라
今摭附之하노니 當勉하고 彼之邪也 當辨하야 不至於泛求而多惑云이라
原注
○ 或問 佛者有觀心之說하니 然乎잇가
心者 人之所以主於身者也 一而不二者也 爲主而不爲客者也 命物而不命於物者也
故以心觀物이면 則物之理得이어늘 今復有物以反觀乎心이면 則是此心之外 復有一心하야 而能管乎此心也
然則所謂心者 爲一 爲二邪
爲主邪 爲客邪
爲命物者邪 爲命於物者邪
此亦不待較而審其言之謬矣니라
或者曰 若子之言이면 則聖賢所謂精一 所謂操存者 皆何爲哉 應之曰
言之相似而不同이니 而學者之所當辨者也
惟精惟一 則居其正而審其差者也 其異而者也
能如是 則信執其中而無過不及之偏矣리니 非以道爲一心, 人爲一心하고 而又有一心以精一之也
夫謂操而存者 非以彼操此而存之也 舍而亡者 非以彼舍此而亡之也 心而自操則亡者存하고 舍而不操則存者亡耳
然其操之也 亦曰 不使旦晝之所爲 得以梏亡其仁義之良心云爾 非塊然兀坐하야 以守其不用之知覺而
大抵聖人之學 本心以窮理하고 而順理以應物이니 如身使臂하고 如臂使指하야 其道夷而通하고 其居廣而安하고 其理實而其行自然이어늘 釋氏之學 以心求心하고 以心使心하야 如以口齕口하고 以目視目이라
其機危而迫하고 其途險而塞하고 其理虛而其勢逆하니 蓋其言 雖有若相似者 而其實之不同 蓋如此也
然非夫審思明辨之君子 其亦孰能無惑於斯邪
原注
問 未發之前 惟當敬以持養이요 旣發之後 又當敬以察之어니와
然旣發之情 是心之用이니 審察於此 未免以心觀心之病이라
如何잇고 朱子曰
已發之處 以心之本體權度 審其心之所發하야 恐有輕重長短之差耳 是也
若欲以所發之心으로 別求心之本體 則無此理矣니라


34. 범씨范氏 심잠心箴
범준范浚의 〈심잠心箴〉에 말하였다.
“아득하고 아득한 천지天地는 굽어보고 우러러봄에 끝이 없다.
사람이 그 사이에 작게 몸을 두고 있으니, 이 작은 몸은 비유하면 태창太倉의 한 낟알에 불과한데 참여하여 삼재三才가 됨은 마음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누가 이 마음이 없겠는가마는 마음이 형체形體에 사역을 당하여 마침내 금수禽獸가 되는 것이다.
입과 귀와 눈과 수족手足동정動靜이 마음의 빈틈을 파고들어 마음의 병이 된다.
한 작은 마음을 여러 욕심들이 공격하니, 그 보존된 것이 아!
얼마 되지 않는다.
군자君子을 보존하여 능히 생각하고 능히 하니, 천군天君이 태연하여 백체百體가 명령을 따른다.”
原注
[附註]
“여기 《맹자孟子》의 에 실려 있는 범씨范氏의 〈심잠心箴〉은, 범씨范氏가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일찍이 남에게서 배우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 식견이 지극하여 이러한 일을 말하기를 이와 같이 좋게 하였는데, 지난번 여백공呂伯恭(呂祖謙)을 만나보니, 이것을 매우 소홀히 여겼다.
‘이러한 말을 딴 사람들도 많이 말하였는데, 모름지기 이것을 취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고 묻자, ‘바로 사람들 중에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는 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셨으니, 이는 뜻이 〈크게〉 있는 것이다.”
原注
운봉호씨雲峯胡氏가 말하였다.
은 생각함을 이르고 은 곧 을 보존하는 방법이다.
이 만 가지의 거짓을 사라지게 할 수 있고 한 이 천 가지의 간사함을 대적할 수 있으니, 이른바 ‘먼저 큰 것을 세운다’는 것은 이보다 더 간절함이 없다.”
○ [按]주자朱子는 이미 범씨范氏의 〈심잠心箴〉을 취하였고, 또 관심설觀心說을 말씀하여 석씨釋氏의 오류를 바로잡으셨으니, 더욱 성학聖學이 있다.
이제 이것을 뽑아 붙이니, 배우는 자가 이의 바름을 힘써야 하고 저의 간사함을 분별해야 함을 분명히 알아서, 널리 구하여 의혹함이 많은 데에 이르지 않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原注
혹자가 “불가佛家에 마음을 본다는 말이 있으니, 옳습니까?”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마음은 사람의 한 몸을 주장하는 것이니, 하나이고 둘이 아니며 주인이 되고 객이 되지 않으며, 물건을 명령하고 물건에게 명령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면 사물의 이치를 얻을 수 있지만, 이제 다시 사물을 두어 도리어 마음을 관찰한다면 이는 이 마음의 밖에 다시 딴 마음이 있어서 이 마음을 관섭管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마음이라는 것이 하나인가, 둘인가?
주인인가, 객인가?
물건을 명령하는 것인가, 물건에게 명령을 받는 것인가?
이 또한 따질 필요도 없이 그 말의 잘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혹자가 “그대의 말과 같다면 성현聖賢의 이른바 정일精一과 이른바 조존操存은 모두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는 말이 서로 비슷하나 〈뜻이〉 같지 않음은 바로 벼싹과 가라지, 붉은 색과 자주색의 사이이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분별해야 할 점이다.
인심人心을 위태롭다고 말한 것은 인욕人欲이 싹트기 때문이요, 도심道心을 은미하다고 말한 것은 천리天理가 오묘하기 때문이니, 마음은 하나이지만 바르고 바르지 않음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하였을 뿐이다.
유정유일惟精惟一(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함)은 바름에 거하여 잘못됨을 살피고 다름을 내쳐 같음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진실로 중도中道를 잡아 불급不及의 편벽됨이 없을 것이니, 도심道心을 한 마음으로 삼고 인심人心을 한 마음으로 삼고, 또 한 마음이 있어서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하는 것이 아니다.
‘잡아서 보존한다’는 것은 저것으로써 이것을 잡아서 보존하는 것이 아니요, ‘놓으면 잃는다’는 것은 저것으로써 이것을 놓아서 잃는 것이 아니니, 마음이 스스로 잡으면 잃었던 것이 보존되고, 버리고 잡지 않으면 보존된 것이 잃어지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잡을 적에 또한 ‘낮에 하는 바로 하여금 인의仁義양심良心곡망梏亡하지 않게 할 뿐’이라고 말씀하였으니, 흙덩이처럼 오똑히 앉아서 밝기만 하고 쓰지 않는 지각知覺을 지키면서 이것을 일러 잡는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대저 성인聖人학문學問은 마음에 근본하여 이치를 연구하고 이치를 순히 하여 사물에 응하는 것이니, 마치 몸이 팔뚝을 부리고 팔뚝이 손가락을 부리는 것처럼 하여 그 가 평탄하고 통하며 그 거처가 넓고 편안하며 그 이치가 진실하고 그 행함이 자연스러운데, 석씨釋氏학문學問은 마음으로써 마음을 찾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부려서 마치 입으로 입을 물고 눈으로 눈을 보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그 기틀이 위태롭고 박절하며 그 길이 험하고 막히며 그 이치가 허황하고 그 형세가 거슬리니, 그의 말은 비록 서로 비슷함이 있는 듯하나 그 실제의 같지 않음이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살펴서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는 군자君子가 아니면 또한 누가 이에 의혹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原注
이 발하기 전에는 오직 하여 잡아 기르고 이미 발한 뒤에는 또 하여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발한 은 바로 마음의 이니, 이를 자세히 살피면 마음으로써 마음을 보는 병통을 면치 못할 듯합니다.
어떻습니까?”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이미 발한 곳에 마음의 본체本體권도權度(저울과 자)로써 마음의 발하는 바를 살펴서 〈마음에〉 경중輕重장단長短의 착오가 있을까 두려워할 뿐이니, 이른바 ‘사물이 다 그렇지만 마음이 더욱 심하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만약 발한 마음을 가지고 별도로 마음의 본체本體를 찾고자 한다면 이런 이치는 없는 것이다.”


역주
역주1 心箴 : 心箴은 ‘마음을 경계한 글’이란 뜻으로 朱子가 일찍이 이 〈心箴〉을 《孟子集註》 〈告子 上〉의 章下註에 수록하였다.
역주2 [釋疑]堪輿 : 天地를 가리킨다.
역주3 [釋疑]眇然 : 매우 작은 것을 이른다.
역주4 [釋疑]稊米 : 《莊子》의 註에 “작은 쌀이다.”하였다.
역주5 [釋疑]心爲形役 : 形은 곧 아랫글의 입, 귀, 눈, 손, 발 등을 가리키고, 役은 부림을 당하는 것이다. [補註]心爲形役은 마음이 耳目口鼻 등의 육체적인 욕망을 따라 良心을 상실함을 이른다.
역주6 [釋疑]投間抵隙 : 投와 抵는 형체로써 말하였고, 間과 隙은 마음으로 말하였다.
역주7 [釋疑]其與存者 : 與는 함이니, 굳이 깊이 해석할 필요가 없다.
역주8 [釋疑]君子存誠 克念克敬 : 范氏가 마음을 논한 것이 매우 훌륭한데, 마지막에 誠敬 두 글자로 맺었으니, 말은 비록 간략하나 뜻은 실로 무궁하다.
역주9 [釋疑]所載 : 《孟子》 〈告子 上〉의 註에 실려 있다.
역주10 [釋疑]問似恁地說話 …… 須取他則甚 : 問은 門人이 또 물은 것이다.
역주11 [釋疑]向見呂伯恭 …… 此意蓋有在也 : 이것[此]은 門人이 말한 것이고, 뜻[意]은 朱子의 뜻이다. [刊補] 중간의 ‘問似恁地’ 이하는 처음 물었던 사람이 재차 물은 것이고, ‘此意’ 이하는 기록한 사람의 말인 듯하다. 혹자는 ‘問似恁地’ 이하는 朱子가 呂伯恭의 물은 말을 든 것이고, ‘此意有在’는 朱子가 스스로 말씀한 것이라고 하는데 옳지 않은 듯하다.
역주12 [釋疑]庶學者曉然知此之正也 : 庶는 庶幾의 庶이다. [補註]庶幾는 ‘행여’ 또는 ‘부디’의 뜻으로 바램을 의미한다.
역주13 : 耶
역주14 [釋疑]苗莠朱紫之間 : 《論語》 〈陽貨〉에 “가라지가 싹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하고 자주색이 붉은 색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한다.[惡莠之亂苗 惡紫之亂朱]”하였다. [補註]莠는 ‘가라지’라는 잡초로 피와 비슷하여 벼싹과 혼동하기 쉬우므로 말한 것이다.
역주15 [刊補]人欲之萌也 …… 異其名耳 : 살펴보건대 이는 朱子의 觀心說이다. 朱子는 初年에 人心을 人欲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人心을 곧바로 人欲이 싹트는 것으로 여겨 바르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晩年의 定論은 이와 같지 않다. ○ 朱子가 人心과 道心을 논한 것에는 몇 가지 說이 있다. 여기에서 人心은 人欲이고 道心은 天理라고 말씀하였으니 이것이 한 가지 설이며, 조금이라도 억지로 잡으려는 意思가 있는 것을 人心이라 하고, 자연스러워 從容히 道에 맞는 것을 道心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또 한 가지 설이며, 《中庸》의 序文이 한 가지 설인데 이것(《中庸》의 서문)이 定論이다.
역주16 : 黜
역주17 [釋疑]反其同 : 反은 還歸(돌아옴)의 뜻이다.
역주18 [釋疑]炯然 : 未發의 體를 가리킨 것이다.
역주19 [刊補]所謂操存者 …… 謂之操也 : 《朱子大全》에는 也字 앞에 또 存字가 있다. 위의 ‘所謂操存’ 아래에는 ‘盡心知性 存心養性 參前倚衡’ 등 묻는 말이 있고 ‘操也’ 아래에는 또 답하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모두 빼버렸다.
역주20 [譯註]所謂物皆然心爲甚 : 《孟子》 〈梁惠王 上〉에 ‘權然後 知輕重 度然後 知長短 物皆然 心爲甚’ 이라고 보인다.

심경부주 책은 2019.05.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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