擴充之則大
요 易視之則小
니 在人能弘之而已
注+中庸曰 不明乎善이면 不誠乎身矣라하고 又曰 擇善而固執之者也라하니라 ○ 孟子公孫丑上篇에 凡有四端於我者를 知皆擴而充之라하니라 ○ 論語衛靈公篇曰 人能弘道라하니라 ○ 欄外書曰 非道弘人이라 故易視之則小耳니라니라
明善者는 爲學之本이니 知之旣明이요 由是固守之면 則此德有立이라
推廣之
면 則此德日大
요 苟以忽心視之
면 則所見者亦寖微
注+按 大小는 以德言也니 葉說이 未曉라矣
리라
[張伯行 註] 此는 張子合中庸孟子論語之言하야 以明爲學之功也라
學貴知行並進하니 乃能盡道之量이로되 而入手는 必自知始라
故必先明乎至善之所在然後에 用力以求其至면 則明善이 爲學之本이라
知之旣明이면 則必固而執之라야 其德이 乃植立而不移요 守之旣固면 則必推廣而擴充之라야 其德이 乃能光大而不隘니 若忽以爲易면 便是不能明善하야 而所見亦卑狹하야 而不足語夫道之大全矣리라
然則由知而行하고 由行而大가 皆所以盡乎道之量而不可以自畫其功者也라
人心有覺하고 道體無爲하니 弘道之力이 豈不在乎人哉아
93. 〈횡거선생橫渠先生이 말씀하였다.〉
“선善을 밝힘이 근본根本이 되고 이것을 굳게 잡아지켜야 비로소 확립된다.
확충擴充하면 커지고 하찮게 보면 작아지니, 사람이 이것을 크게 함에 달려 있을 뿐이다.”
注+《중용中庸》에 “선善을 밝게 알지 못하면 몸을 성실히 하지 못한다.” 하였으며, 또 “선善을 가려서 굳게 지키는 자이다.” 하였다.
○ 《맹자孟子》〈公孫丑 상편上篇〉에 “무릇 나에게 있는 사단四端을 알아서 다 넓힌다.” 하였다.
○ 《논어論語》〈衛靈公篇〉에 “사람이 도道를 넓힌다.” 하였다.
○ 《난외서欄外書》에 말하였다. “도道가 사람을 크게 넓히는 것이 아니므로 쉽게 보면 작아지는 것이다.”
선善을 밝힘은 학문學問을 하는 근본이니, 앎이 이미 분명하고 이로 말미암아 굳게 지키면 이 덕德이 서게 된다.
이것을 미루어 넓히면 이
덕德이 날로 커질 것이요, 만일 소홀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찮게 보면 보는 바가 또한 점점 작아질 것이다.
注+살펴보건대 대소大小는 덕德으로 말한 것이니, 섭씨葉氏의 말은 분명치 못하다.
[張伯行 註] 이는 장자張子가 《중용中庸》과 《맹자孟子》, 《논어論語》의 말씀을 모아 학문學問하는 공부를 밝힌 것이다.
학문學問은 지知‧행行이 함께 진전함을 귀하게 여기니, 지知‧행行이 함께 진전하여야 비로소 도道의 양量을 다할 수 있으나 손을 대는 것은 반드시 지공부知工夫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먼저 지선至善의 소재를 밝게 안 뒤에야 힘을 써서 그 지극함을 구할 수 있으니, 그렇다면 선善을 밝힘이 학문學問의 근본根本이 되는 것이다.
앎이 이미 밝아지면 반드시 굳게 잡아야 덕德이 비로소 꿋꿋이 세워져서 옮겨가지 않고, 지킴이 이미 견고해지면 반드시 미루어 넓혀서 확충하여야 덕德이 비로소 광대光大하여 좁지 않을 것이니, 만약 이것(知工夫)을 소홀히 여겨서 쉽게 생각한다면 곧 선善을 밝히지 못하여 보는 바가 또한 낮고 좁아서 도道가 완전히 갖추어져 모자람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知로 말미암아 행하고 행行으로 말미암아 커지는 것이 모두 도道의 양量을 다하는 것이어서 그 공부를 스스로 한계지을 수 없는 것이다.
인심人心은 깨달음이 있고 도체道體는 함이 없으니, 도道를 넓히는 힘이 어찌 사람에게 달려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