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가 무위無爲로 다스리는 것에 대해서 물으니, 양자揚子가 말하였다. “어찌 작위하는 바가 있겠는가.注+변화에 응할 뿐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작위함이 있는 것은 당시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것일 뿐이다. 도를 잃지 않은 때라면 또 어찌 작위하겠는가.” 옛날에 우순虞舜과 하우夏禹는 요堯임금의 지위를 계승하고 요堯임금의 도를 행하였지만 법도가 밝혀지고 예악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의상을 늘어뜨리고 두 손을 마주 잡고서 천하의 백성들이 풍족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을 보았으니注+송함宋咸이 말하였다. “부阜는 성대함이고 풍부함이다.”, 이것이 바로 무위로 다스리는 것이다.注+오비吳祕가 말하였다. “부阜는 후함이다. 의상을 늘어뜨리고 두 손을 마주 잡고서 천하의 백성들이 풍족하게 지내는 것을 보았다면 어찌 작위하겠는가.”
탕왕湯王은 하걸夏桀의 뒤를 잇고 무왕武王은 상주商紂의 뒤를 이었지만 법도가 폐지되고 예악이 무너져 있었으니, 어찌 앉아서 천하의 백성들이 죽어가는 것을 쳐다보면서 무위로 다스릴 수 있었겠는가.”注+걸왕桀王의 뒤를 이은 것은 성탕成湯이고, 주왕紂王의 뒤를 이은 것은 주 무왕周 武王이다. 이때를 당하여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은 편안히 앉아서 천하의 백성들이 죽는 것을 쳐다보면서 무위無爲로만 다스릴 수 없었으니, 이른바 ‘행할 수 있는 것은 인순하고 행할 수 없는 것은 개혁한다.’는 것이다. 임기응변하여 때를 따랐기 때문에 자취는 같지 않으나 이치로 말하면 모두 작위한 것이 아니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은 혁명革命하여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민심을 따랐으니, 자연히 유위有爲할 때였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송함본宋咸本‧오비본吳祕本에는 모두 ‘천민天民’으로 되어 있고 ‘하下’자가 없는데 이궤본李軌本에는 ‘천하민天下民’으로 되어 있다.”
역주
역주1[下] :
저본에는 없으나, 四部叢刊本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뒤의 ‘安坐而視天[下]民之死’의 ‘下’도 같다.